책소개
사(詞)란 무엇인가
사(詞)는 시와 비슷한 운문으로, 당 중엽에 민간에서 발생해 송대에 가장 번성했던 문학 양식이다. 민간 가요의 가사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장단이 일정치 않아 ‘장단구(長短句)’라 고도 하며, 초기에는 가창할 수 있었던 근체시의 변형이라고 여겨 ‘시여(詩餘)’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는 음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사를 창작할 때 일정하게 정해진 악보인 사조(詞調)에 가사를 채워 넣는 방식으로 지어져서, 사를 짓는 것을 두고 가사를 소리에 맞추어 메운다는 뜻의 ‘전사(塡詞)’, 혹은 ‘의성(依聲)’이라 했다.
사는 시와는 달리 음악과 긴밀한 관계였으므로 유희적 성격이 매우 강했다. 따라서 그 내용도 술, 여색, 애정, 희롱에 대한 것이 많았고, 서정적이고 감상적인 특성이 강해 깊고 섬세한 내면을 완곡하고 함축적으로 표현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처음에는 문사들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한 장르였지만, 당나라 말엽에 이르러 문인들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송대에는 공전의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사가 대량으로 창작됨에 따라 염정적이고 개인적인 신세타령에서 벗어나 시국에 대한 개탄이나 국가의 흥망성세 등까지도 읊게 되어 점차 시와 비슷한 성격을 띠게 되었다.
온정균의 사(詞)
온정균은 만당(晩唐)의 시인이자 사인인데, 특히 그의 사는 중국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역대의 평론가는 그를 ‘화간파(花間派)의 비조(鼻祖)’라고 평가했는데, 그것은 사의 풍격이나 성격을 규정짓는 데 큰 역할을 한 ≪화간집(花間集)≫에 온정균의 사가 가장 많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는 본래 민간에서 발생했지만, 온정균의 손에서 단련되어 문사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이후 오대와 송대 사인들이 경쟁적으로 창작하게 되어 중국문학의 주요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온정균 이전에 몇몇 시인들이 민간사 형식을 빌려 사를 짓기도 했지만, 온정균은 음악적 재능을 살려 여러 사조를 만들어냈고, 문학적 재능을 쏟아 누구보다도 많은 사를 창작해 낭만적이고 유미적인 감성을 표현했다.
온정균 사의 주제는 대략 여성의 자태, 사랑, 그리움, 이별과 원망으로 한정된다. 편협하다는 느낌이 있을 수 있지만, 이는 온정균 개인의 성향과 사의 초기 성격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온정균의 성격에 관한 일화는 여럿 전하는데, 대체로 그의 낭만적인 성격과 방탕한 품행이 주를 이룬다. 온정균이 처음 장안에 왔을 때에는 많은 사람이 그의 출중한 재주를 존중했으나, 그는 자신의 재주를 믿고 주색에 빠져 염려한 문사만을 짓거나 권력자를 비꼬거나 비판하는 일을 일삼아 금방 미움을 받게 되었다. 과거시험장에서도 자신의 재주를 자랑하고자 여러 번 부정행위를 저질렀고, 승상이나 권력자, 심지어 왕에게도 방자하게 구는 등, 본래부터 상대방의 기분을 맞추거나 자신을 낮추는 데 소질이 없었던 것 같다.
200자평
중국 문학사에서 사(詞)가 자리매김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온정균의 사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개한다. 그의 완약(婉約)하고 염려(艶麗)한 사의 성격은 사의 정격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음악적·문학적 재능은 모두 ‘사’에 녹아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의 자유분방한 삶과 유희, 재주 많고 오만한 시인이 그려내는 당나라 여인과 그윽한 규방을 눈앞에 그려보길 권한다.
지은이
온정균(溫庭筠)
온정균(801?~866?)은 당나라 말엽의 시인이자 사인(詞人)으로, 본명은 기(岐), 자는 비경(飛卿)이며, 태원(太原) 기[祁: 지금의 산시성(山西省) 치현(祁縣)]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거문고와 피리를 잘 다루었고, 영민하고 문재(文才)가 뛰어났으며 글을 잘 지었다. 그는 ‘온팔차(溫八叉)’ ‘온팔음(溫八音)’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온정균이 과거시험장에서 8번 팔짱을 끼었다 풀자 팔운시(八韻詩)가 완성되었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재주가 뛰어났지만, 과거시험에는 누차 낙방했다. 함통 6년(865) 온정균은 국자조교(國子助敎)에 임명되어 국자감시(國子監試)를 관장했다. 그는 문장으로 사람을 판단하겠다는 기준을 제시했는데, 이것이 권세가와 귀족의 불만을 샀다. 또한 그가 시정을 비판하고 부패한 자를 폭로한 시문을 지은 것이 재상 등의 분노를 사서 결국 방성위(方城尉)로 폄관되었다. 이미 고령이었던 그는 함통 7년(866), 우울함 속에 죽고 말았다. 온정균은 시와 사에서 모두 뛰어나, 시에 있어서는 이상은(李商隱)과 명성을 견주었고, 사에 있어서는 위장(韋莊)과 이름을 나란히 했다. 그의 시사는 대상의 천착에 뛰어났고, 색채미와 음률미가 있었다. 시는 개인의 조우, 시정에 대한 생각, 행려 중에 느낀 감회 등을 담고 있고, 사는 여인의 규정을 담아 섬세하고 정교한 작품이 많다.
옮긴이
이지운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자대학교 강의전담교수와 성균관대학교 전임연구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대학에서 강의 중이다. 당시(唐詩)를 비롯하여 중국 고전시 전반의 시적 아름다움에 관심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고전문학에 있어 여성의 창작과 고전의 대중화에 관심을 갖고 있다.
차례
1. 보살만(菩薩蠻)
2. 보살만(菩薩蠻)
3. 보살만(菩薩蠻)
4. 보살만(菩薩蠻)
5. 보살만(菩薩蠻)
6. 보살만(菩薩蠻)
7. 보살만(菩薩蠻)
8. 보살만(菩薩蠻)
9. 보살만(菩薩蠻)
10. 보살만(菩薩蠻)
11. 보살만(菩薩蠻)
12. 보살만(菩薩蠻)
13. 보살만(菩薩蠻)
14. 보살만(菩薩蠻)
15. 경루자(更漏子)
16. 경루자(更漏子)
17. 경루자(更漏子)
18. 경루자(更漏子)
19. 경루자(更漏子)
20. 경루자(更漏子)
21. 귀국요(歸國遙)
22. 귀국요(歸國遙)
23. 주천자(酒泉子)
24. 주천자(酒泉子)
25. 주천자(酒泉子)
26. 주천자(酒泉子)
27. 정서번(定西番)
28. 정서번(定西番)
29. 정서번(定西番)
30. 남가자(南歌子)
31. 남가자(南歌子)
32. 남가자(南歌子)
33. 남가자(南歌子)
34. 남가자(南歌子)
35. 남가자(南歌子)
36. 남가자(南歌子)
37. 하독신(河瀆神)
38. 하독신(河瀆神)
39. 하독신(河瀆神)
40. 여관자(女冠子)
41. 여관자(女冠子)
42. 옥호접(玉胡蝶)
43. 청평락(淸平樂)
44. 청평락(淸平樂)
45. 하방원(遐方怨)
46. 하방원(遐方怨)
47. 소충정(訴衷情)
48. 사제향(思帝鄕)
49. 몽강남(夢江南)
50. 몽강남(夢江南)
51. 하전(河傳)
52. 하전(河傳)
53. 하전(河傳)
54. 번녀원(蕃女怨)
55. 번녀원(蕃女怨)
56. 하엽배(荷葉杯)
57. 하엽배(荷葉杯)
58. 하엽배(荷葉杯)
59. 보살만(菩薩蠻)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병풍에 그려진 작은 산에는 금빛 반짝이고,
흐트러진 머리는 눈같이 희고 향기로운 뺨을 덮고 있네.
느지막이 일어나 눈썹을 그리고
화장을 하고 천천히 머리를 빗네.
–<보살만(菩薩蠻)> 중에서
2.
강가 누각을 뒤로 하고 바닷가 달을 마주했네.
성 위의 호각 소리는 흐느끼고
제방 버들은 흐느적대고 섬 안개는 자욱한데
기러기는 두 줄로 나뉘어 날아가네.
–<경루자(更漏子)> 중에서
3.
이별의 노 젓는 소리 부질없이 스산하고
옥 같은 얼굴 근심으로 화장은 옅어지는데
푸르른 보리밭에 제비는 드물고
주렴 말아 올리고는 근심 속에 고운 누각 마주하네.
–<하독신(河瀆神)>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