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디킨스의 소설은 영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널리 인기를 누리는데 그중에서도 ≪올리버 트위스트≫(1838)의 인기는 독보적이다. 디킨스는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당시 독자의 흥미를 끌던 범죄소설의 플롯을 사용하여 대중성을 확보했다. 한편으론 다른 저급한 범죄소설과는 달리 당시의 중요한 시대적 사안을 작품 속에 끌어와 시사적 담론의 장을 마련하였다.
이 소설의 대중적 인기 요인 가운데 하나는 젠틀맨 품성을 타고난 영국인의 속성을 그렸다는 점이다. 사생아이자 구빈원 출신으로 도둑 집단 속에서도 살았던 올리버가 전혀 타락하지 않고 젠틀맨의 품성을 그대로 유지하며 자라는 모습은 젠틀맨을 국민의 이상으로 생각하는 영국인에게 자부심을 주었다.
또한 ≪올리버 트위스트≫는 악명 높은 신구빈법(新救貧法)에 대한 당대 사람들의 반응을 보여 주는 역사적 사료로도 가치가 크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교구의 빈민이나 취약 계층에게 책임감을 느끼는 온정주의적 전통을 면면히 이어 온 신분제 사회다. 지역의 교구는 빈민에게는 생존 가능한 수준의 경제적 원조를 해 왔다. 그러다 자본주의적 체제로 경제가 움직이면서 빈민에 대한 온정적 지원이 부담스럽게 다가왔고 그러한 지원은 오히려 빈민들의 의존심만 키워 사회악을 유발한다는 비판이 거세졌다. 급기야 1834년 기존의 구빈법을 개정한 신구빈법에 따라 오직 구빈원에 수용된 빈민만을 교구가 지원하도록 했다. 신구빈법에 따라 자립 능력이 없는 사람은 오직 구빈원 안에 수용되어야만 교구의 원조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구빈원은 수용된 빈민들을 노동과 통제로 혹독하게 다루었다.
≪올리버 트위스트≫를 신구빈법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사회 비평적 소설로 읽는 비평 작업은 상당한 성과를 이루어 왔다. 그 논의는 고아인 올리버가 구빈원에서 겪는 굶주림이나, 빈민을 범죄자로 취급하는 사회에 대해 비판한 텍스트의 내용에 기초하여 이루어졌다. 특히 가난한 사람을 ‘원조 받을 만한’ 빈민과 ‘원조 받을 자격이 없는’ 빈민으로 구분하여 전자만을 구빈원에 수용하고, 구빈원이 안락한 곳이 되지 않도록 대우를 박하게 하고 일을 시키는 감옥으로 만든 점에 대한 비판이 거세었다. 또한 신구빈법은 가난과 타락을 동일시하는 반면, 디킨스는 올리버의 경우에서처럼 가난한 사람은 타락한 사람이라는 단정을 깨뜨린다. 올리버가 구빈원 출신 아이면서도 완전히 도덕적인 소년임을 보여 줌으로써, 혹은 도덕적으로 선하면서도 동시에 완전히 거지임을 보여 줌으로써 구빈원의 공식을 비틀어 놓았다. 디킨스는 바로 당대의 큰 이슈였던 신구빈법 문제를 과감히 붙들고 그 비인간성과 통제성에 대해 비판의 장을 열었던 것이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디킨스의 상업적 대중성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잘 어우러진 명작이다.
200자평
19세기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가 쓴 소설. 경찰도 혼자서는 순찰 가기 꺼렸다는 당대 영국 뒷골목의 세계를 다뤘다. 이 책은 원전의 3분의 1을 발췌했다.
지은이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말단 공무원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낙천적 성격으로 돈 씀씀이가 헤퍼서 늘 빚을 졌다. 급기야 열한 살 때에는 아버지가 채무자 감옥(Debt Prison)에 수감되어 온 가족이 감옥에서 1년가량 생활하게 된다. 장남인 그는 학업을 중단하게 되고 구두약 공장에 보내진다.
디킨스에게 심리적 상처를 남긴 이 경험은, 그러나 작가로서는 유익한 경험이었다. 당시의 산업혁명 시대에는 열 살도 채 안 된 수많은 어린이들이 산업 현장으로 내몰렸다. 디킨스의 작품에는 이러한 아이들이 많이 등장한다. 런던의 영세민 속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디킨스는 소설사상 처음으로 도시의 빈민들을 작중에 등장시킨다.
열다섯 살까지만 학교 교육을 받은 그가 처음 시작한 일은 법률 사무소의 서기였다. 여기서 속기술을 익힌 그는 이후 신문 기자가 된다. 고등법원과 의회 출입 기자였던 그는 통찰력 있는 시각과 빼어난 문장력을 습득하게 된다. 스물네 살 때부터 자신이 편집위원으로 있는 잡지에 ≪픽윅 문서≫를 삽화와 함께 기고한다. 중년 신사 픽윅이 영국을 여행하며 겪는 모험과 인정 넘치는 사건들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큰 인기를 끌었다. 같은 시기에 ≪올리버 트위스트≫를 써서 올리버를 온 국민이 사랑하고 돌보아 주고 싶은 어린이로 만들었다. 그 후 디킨스는 생애 마지막까지 2년에 평균 장편소설 한 권을 써내는 괴력을 발휘한다.
디킨스의 인생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대중과의 연애였다. 그는 평생 대중과 연애하듯이 그들에게 충심을 다했고 그의 모든 일이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그는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소설 낭독을 위해 영국 곳곳과 미국을 여행했다. 가는 곳마다 대대적인 성공이었고 대중들의 눈물 어린 환대와 지역 유지의 영접을 받았다. 그의 낭송 여행은 개인적 이벤트로 생각되지 않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공적이며 국제적인 행사로 받아들여졌다.
디킨스에 대한 대중의 사랑은 평생 변함이 없었다. 디킨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노동자들은 주막에서 “우리의 친구가 죽었다”고 울부짖었다 한다. 아울러 신문과 잡지들은 며칠 동안 그의 일대기로 지면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옮긴이
이선주는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디킨스의 소설에 나타난 근대성 연구>라는 논문으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송호대학 관광서비스영어과 교수를 지내고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 HK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19세기영어권문학회 대표 편집이사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디킨스와 신분과 자본≫이 있고, 역서로는 노라 옥자 켈러의 ≪여우 소녀≫와 I. A. 리처즈의 ≪문학비평의 원리≫가 있으며, <이주 여성 노동의 비가시화와 임파워먼트>, <미국 이주 한인들의 디아스포라적 상상력>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올리버 트위스트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이 이사 양반들은 매우 현명하고 심오하고 철학적인 분들로, 그들의 관심을 구빈원에 돌리자마자 보통 사람은 죽어도 알 수 없는 중대한 사실을 발견했다. 사실인즉 가난한 사람들은 구빈원에 있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계급에게 이곳은 공공 오락을 즐기는 단골 장소다. 공짜로 술 마시는 주막이요, 국가에서 내는 아침·점심·간식·저녁을 얻어먹는 곳이며, 1년 내내 놀고먹고 일하지 않아도 되는, 벽돌과 회반죽으로 지은 낙원인 것이다. “그렇군!” 이사회는 잔뜩 아는 척하며 말했다. “우리야말로 바로 이것을 시정할 위인들이다. 즉시 모든 것을 다 중지하자.” 그래서 이들은 규칙을 정했으니, 가난한 사람은 양자택일을 해야만 한다. 구빈원에 들어와 점차적으로 굶어 죽든지, 구빈원에 안 들어오고 바깥에서 즉각 굶어 죽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하도록 한 것이다. 이런 목적으로 하루 세끼 묽은 죽과 일주일에 두 번 양파 조금, 일요일엔 둥근 빵 반 덩어리를 지급하게 했다. 그들은 또한 가난한 부부를 이혼시키는 일을 친절하게도 떠맡아서 법원의 엄청난 소송비를 면하게 해주었고, 종전처럼 남편이 가족을 부양하도록 강요하는 대신에 처자식을 남편에게서 떼어놓아 다시 독신자로 만들어주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