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서구의 식민지 경영과 원주민의 반문명적인 원시생활이 공존하던 금세기 초의 인도차이나의 원시림 속에서 세월에 묻힌 고대의 조각을 찾으러 떠난 젊은 고고학자 클로드와 모험가 페르캉이 겪은 이야기. 이 소설에서 두 주인공 클로드와 페르캉이 보여주는 정신은 세속적인데, 이것은 서구의 정신적 위기를 반영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왔던 세계와의 완전한 단절을 거쳐 낯선 미지의 공간, 즉 문명과 대립되는 밀림이란 원초적 공간 속으로 뛰어든다. 이는 영원을 향한 내면의 외침이 부르주아 세계 속에 갇혀 있는 존재의 비극적인 실체를 나타낸다. 모든 것을 무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죽음과 운명에 맞서 자신의 인생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려는 인간의 실존적인 몸부림을 양식화, 구조화하여 담았다. 말로의 ‘죽음’에 대한 천착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제목 ‘왕도로 가는 길’은 클로드가 찾아가는 고대 신전들을 잇는 길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시간의 흐름과 죽음이 가져오는 파괴력에 대항할 수 있는, 영원히 미완성일 수밖에 없는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인간이 끝없이 걷는 길이기도 하다.
200자평
1930년 앵테랄리에상 수상이 보증하는 앙드레 말로의 대표작. 서구의 식민지 경영과 원주민의 반문명적 원시생활이 공존하던 금세기 초, 인도차이나의 원시림으로 세월에 묻힌 고대의 조각을 찾으러 떠난 젊은 고고학자 클로드와 모험가 페르캉이 겪는 이야기다. 불문학계의 태두(泰斗)로 불린 김붕구 필자의 번역으로, 2001년 지식공작소에서 나온 것을 복간했다.
지은이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는 1901년 11월 3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1923년에 앙코르와트 유적 조사를 위해 인도차이나에 다녀왔다. ≪정복자≫(1928), ≪왕도로 가는 길≫(1930)을 출간하고, 1932년에 ≪인간의 조건≫으로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1936년에 스페인에서 내란이 일어나자 참전해 반파쇼 의용군을 조직했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희망≫(1937)을 출간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다시 참전했다. 1959년에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되었지만, 1969년에 드골이 국민투표에서 패해 대통령직을 그만두자 그와 함께 은퇴했다. 1976년에 만성 폐출혈로 파리 교외 앙리 병원에서 사망했다.
옮긴이
김붕구(金鵬九, 1922~1991)는 1922년에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났다. 호는 석담(石潭)이다. 일본 와세다대학교 정치경제학과에서 수학하고,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 전공 후 불어불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53년부터 1991년 작고할 때까지 약 40년간 서울대학교 교수 및 명예교수로 재직했다. 왕성한 연구와 집필 활동으로 루소, 보들레르, 앙드레 지드, 앙드레 말로, 카뮈, 사르트르, 생텍쥐페리 등의 문학을 한국에 소개하면서 현대 문학의 특성을 밝히고, 한국 현대 문학과 인문학의 방향을 제시하는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지은 책으로 ≪불문학 산고≫(1958), ≪작가와 사회≫(1973), ≪현실과 문학의 비원≫(1962), ≪보들레에르−평전·미학과 시세계≫(1977)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루소의 ≪고백≫,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카뮈의 ≪반항인≫, 지드의 ≪지상의 양식≫, 스탕달의 ≪적과 흑≫, 보들레르의 ≪악의 꽃≫, 말로의 ≪왕도로 가는 길≫과 ≪인간의 조건≫,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 르나르의 ≪홍당무≫, 세르방의 ≪미국의 도전≫ 등 다수가 있다.
차례
제1부
제2부
제3부
제4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그는 지도를 펼쳤다.
“여기 이게 호수들. 그 주위에 모여 있는 붉은 점들, 이게 절들이죠. 이 흩어진 점들은 딴 사원들이고.”
“이 푸른 점들은?”
“캄보디아의 옛 도시들의 폐허. 이미 탐사된 것들입니다. 내 생각 같아서는 아직 또 있을 것입니다만 그 이야긴 뒤로 미루고, 다시 보십시오. 이 검은 줄의 기점과 그 줄을 따라 붉은 점이 많이 찍혔죠?”
“그게?”
“왕도의 길이죠. 앙코르와 메남 분지를 연결하던 길입니다. 유럽으로 말할 것 같으면 중세에 론 강과 라인 강을 연결하던 도로처럼 한때는 중요한 국도였지요.”
“그러면 이 줄을 따라 사원들이 어디까지 널려 있다고….”
“지명은 문제가 아닙니다. 실제로 탐사된 지역의 한계선까지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옛 사원들을 다시 찾아내기 위해선 옛 왕도의 길의 자취를 자침을 따라 뒤밟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말입니다, 만일 오늘날 가시덤불 속에 묻혔던 유럽이 다시 발견된다고 가정합시다. 그때 론 강과 라인 강 줄기를 쫓아 마르세유에서 콜로뉴까지 훑어 가는 길에 성당들의 폐허를 찾아볼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말이 안 될 겁니다. 그리고 내가 꺼내는 이야기가 이미 탐사된 지역에 한해서는 충분히 증명될 수 있고, 또 사실 증명되어 있습니다. 옛날 여행자들의 기록에 그 사실이 적혀 있으니까요….”
−45∼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