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전쟁의 참혹함과 종군의 고통을 말하다
성당(盛唐) 시기, 당나라는 적극적인 대외 확장 정책으로 인해 토번, 돌궐, 해, 거란 등 주변의 이민족들과 끊임없이 갈등을 겪었다. 전쟁은 끊이지 않았고, 백성은 부역에 시달렸으며 문인들은 변방 종군 경험 없이는 관직에 오르기 어려웠다. 이에 변방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이국적인 풍광과 병사들의 정서를 노래하는 이들이 나타났으니, 바로 고적, 잠삼, 왕창령으로 대표되는 변새시파(邊塞詩派)다. 왕창령 역시 관직에 나아가기 전, 공업 수립의 기회를 얻기 위해 변방을 유랑하면서 전쟁의 참상을 목도하고 빼어난 변새시들을 남겼다. 그의 변새시는 전쟁의 참상과 병사들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할 뿐 아니라 전장의 부조리함을 비판하고 전쟁을 종식할 방안까지도 제시해, 변새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칠언성수(七言聖手), 당대 칠언절구의 모범이 되다
변방 유람에서 공을 세울 만한 기회를 얻지 못한 왕창령은 30대 후반에야 관직에 올랐으나 크게 쓰이지 못했다. 그는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는 비애를 왕의 총애를 잃은 궁녀의 원망이나 임과 이별한 여인의 회한을 통해 드러냈다. 이러한 궁원시(宮怨詩)와 규원시(閨怨詩)들은 그의 칠언절구의 특색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 주는데, 정교한 시어 선택과 적절한 경물 묘사를 통한 감정의 섬세한 표현과 기승전결을 바탕으로 한 짜임새 있고 치밀한 시적 구성은 가히 당대 칠언절구의 전범이라 할 수 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왕창령 시선≫은 ≪전당시(全唐詩)≫본 ≪왕창령시(王昌齡詩)≫ 4권본을 저본으로 삼고 여러 판본을 비교해 각 판본에 따른 글자와 의미의 차이를 주석에서 밝혔다. 저본에 수록된 시 중 다른 시인의 작품이 분명한 것을 제외한 총 158제(題) 181수(首)의 시를 대상으로 해서 이 중 약 40퍼센트인 56제(題) 77수(首)를 선록했으며, 작품의 순서는 ≪전당시≫에 수록된 순에 따라 배열했다.
국내에 처음으로 왕창령의 시집을 소개하는 만큼, 그의 작품의 전반적인 특징을 파악할 수 있도록 각 주제와 형식에 따라 고루 소개하려 노력했으며, 원작의 형식미를 맛볼 수 있도록 번역에도 특히 공을 들였다. 상세한 주석과 작품 해설을 통해 전문 연구가뿐 아니라 일반 독자도 작품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200자평
고적, 잠삼과 함께 당나라 변새시파를 대표하는 왕창령의 시를 엮었다. 그는 변방의 이국적이고도 쓸쓸한 풍광, 종군한 병사의 고통과 향수를 섬세한 표현과 치밀한 구성으로 노래했다. 특히 칠언절구에 뛰어나 이백과 더불어 후대 창작의 모범이 되었으며 ‘칠언성수(七言聖手)’ 혹은 ‘칠언장성(七言長城)’이라고 높이 칭송받았다.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출간한 ≪고적 시선≫, ≪잠삼 시선≫과 함께 읽으면 변새시에 대해 한층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지은이
왕창령(王昌齡, 698?∼757?)은 당(唐)나라 경조(京兆) 장안[長安, 지금의 산시성(陝西省) 시안시(西安市)] 사람으로, 자(字)가 소백(少伯)이다. 현종(玄宗) 개원(開元) 15년(727)에 진사(進士)에 급제해 비서성교서랑(秘書省校書郞)에 제수되었다가, 개원 22년(734)에 박학굉사과(博學宏辭科)에 합격해 사수위(汜水尉, 사수는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싱양시(滎陽市) 서북쪽]에 제수되었다. 개원 25년(737)에 죄를 얻어 영남(嶺南)으로 폄적되었다가 사면되어 개원 28년(740)에 장안(長安)으로 돌아왔으며, 이듬해 강녕승[江寧丞, 강녕은 지금의 장쑤성(江蘇省) 난징시(南京市)]으로 임명되었다. 천보(天寶) 6년(747)에 다시 죄를 얻어 용표위[龍標尉, 용표는 지금의 후난성(湖南省) 화이화 지구(懷化地區)]로 좌천되었으며, 천보 14년(755)에 안사(安史)의 난이 일어나자 난을 피해 장강(長江)과 회수(淮水) 일대에 머물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호주자사(濠州刺史) 여구효(閭丘曉)에게 피살되었다. 왕지환(王之渙), 고적(高適), 잠삼(岑參), 왕유(王維), 이백(李白) 등과 교유했으며 개원(開元)·천보(天寶) 연간에 시로 명성이 높았다. ‘변새(邊塞)’, ‘궁원(宮怨)’, ‘규원(閨怨)’, ‘송별(送別)’을 노래한 작품들의 성취가 매우 높으며, 특히 칠언절구(七言絶句)에 뛰어나 후인들에게 ‘칠절성수(七絶聖手)’라고 불린다. 저서로 ≪왕창령집(王昌齡集)≫ 4권이 있다.
옮긴이
주기평(朱基平)은 호(號)는 벽송(碧松)이다.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책임연구원과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의 객원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서울대·서울시립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역서로 ≪육유 시가 연구≫, ≪육유사≫, ≪육유 시선≫, ≪고적 시선≫, ≪잠삼 시선≫, ≪향렴집≫, ≪역주 숙종춘방일기≫, ≪당시 삼백수≫(공역), ≪송시화고≫(공역), ≪협주명현십초시≫(공역), ≪사령운·사혜련 시≫(공역), ≪진자앙 시≫(공역), ≪악부시집·청상곡사 1≫(공역) 등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중국 만가시의 형성과 변화 과정에 대한 일고찰>, <진자앙 감우시의 용사 연구>, <중국 역대 도망시가의 사회 문화적 배경과 문학 예술적 특징 연구> 등이 있다.
차례
<행로난>을 바꾸어(變行路難)
변경의 노래 4수(塞下曲四首)
변경의 노래(塞上曲)
종군의 노래 2수(從軍行二首)
소년의 노래 2수(少年行二首)
월 땅의 여인(越女)
풍입송 금(琴) 가락을 듣고 양 보궐에게 드리다(聽彈風入松闋贈楊補闕)
사촌 동생 왕소의 <남쪽 서재에서 달을 감상하다가 산음의 최 소부가 생각나>에 화답해(同從弟銷南齋玩月憶山陰崔少府)
부풍 주인을 대신해 답하다(代扶風主人答)
무릉의 원 현승과 이별하며 남기다(留別武陵袁丞)
잠삼 형제와 이별하며 남기다(留別岑參兄弟)
배씨의 산장에서 유숙하며(宿裴氏山莊)
역사를 노래하다(詠史)
잡흥(雜興)
가을의 흥취(秋興)
강에서 피리 소리 들으며(江上聞笛)
구강 입구에서 쓰다(九江口作)
대량으로 가는 도중에 쓰다(大梁途中作)
소부곡 용담사에서 쓰다(小敷谷龍潭祠作)
공후인(箜篌引)
성 옆의 노래(城傍曲)
호가의 노래(胡笳曲)
사원 남쪽 나루에서(沙苑南渡頭)
광릉에서 떠돌며(客廣陵)
한식날 쓰다(寒食卽事)
중양절에 높이 올라(九日登高)
아침의 노래(朝來曲)
종군의 노래(從軍行)
무릉의 전 태수에게 답하다(答武陵田太守)
파지에 쓰다 2수(題灞池二首)
승방에 쓰다(題僧房)
석경 두드리는 노인(擊磬老人)
호대를 보내며(送胡大)
곽 사창을 보내며(送郭司倉)
종군의 노래 7수(從軍行七首)
변경으로 나가며 2수(出塞二首)
연 따는 노래 2수(采蓮曲二首)
궁전 앞의 노래 2수(殿前曲二首)
봄 궁궐의 노래(春宮曲)
서궁의 봄날 원망(西宮春怨)
서궁의 가을날 원망(西宮秋怨)
장신궁의 가을 노래 5수(長信秋詞五首)
푸른 누각의 노래 2수(靑樓曲二首)
빨래하는 여인(浣紗女)
여인의 원망(閨怨)
감천궁의 노래(甘泉歌)
사냥을 구경하다(觀獵)
떠도는 이의 <수조자> 곡을 듣고(聽流人水調子)
양왕의 정원(梁苑)
위이를 보내며(送魏二)
부용루에서 신점을 보내며 2수(芙蓉樓送辛漸二首)
이 평사와 거듭 이별하며(重別李評事)
곽팔과 이별하며 남겨 주다(留別郭八)
신점과 이별하며(別辛漸)
시 시어를 보내며(送柴侍御)
봄날의 원망(春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공후인
노계군 남쪽에서 밤에 배를 정박하니
밤에 양쪽 강 언덕에서 강족 오랑캐의 노랫소리 들리네.
그때 달은 어둡고 원숭이 울음소리는 구슬프고
가랑비에 옷은 젖어 사람 시름겹게 하네.
좌천된 나그네 하나 높은 누각에 올라
말없이 잠 못 이루고 공후를 연주하니,
연주 소리에 계문의 뽕나무 잎엔 가을이 들고
먼지바람은 푸른 무덤 위에 사그락거리네.
장군의 철총마는 피 같은 땀을 흘리며
흉노 땅 깊이 들어가 전투 그치지 않는데,
한 점 누런 깃발로 병마들을 거두니
어지러이 죽인 오랑캐가 언덕처럼 쌓였네.
다치고 병든 자들을 내쫓아 서남 변방에 배치하니
북쪽 사막에서의 양가죽 갖옷을 여전히 입고 있고,
안색은 굶주려 말라 얼굴 가리며 부끄러워하는데
눈자위에선 눈물 떨어지고 두 눈동자는 움푹 파였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고 들소 고기도 먹고 싶지만
말하려 해도 하지 못하고 목구멍만 가리키고,
혹 강건한 사람이 있어도 말 얼버무리니
속마음 말했다간 다른 변방 장수들에게 보복당한다네.
오대에 걸쳐 번국에 속하도록 황제께서 머물러 두니
푸른 털 깔개와 휘장에서 지내며 하곡 땅을 노닐고,
오만 마리 낙타는 부락에 가득한데
봉황 장식의 황금 투구도 하사하셨네.
임금을 위해 백 번 전투하기를 산가지 세듯 하고
음산을 깨끗이 소탕해 새조차 날아들지 못하건만,
집에 철권 소장한 장군들만 특별히 우대받으며
천 근 황금에도 흡족해하지 않는다네.
친지들은 모두 흩어져 초 땅의 죄수가 되니
적막한 깊은 계곡에 현 소리는 고통스럽고
초목도 슬퍼해 스산한 소리 내네.
내 본디 동산에 있다가 나라를 걱정해
명광전 앞에서 치세의 도를 논하고
상자 속 병서 읽으며 깊이 고심했으니,
임금을 위해 손바닥 위에서 권모를 펼치고
산천을 환히 꿰뚫어 짝할 자가 없었네.
자신궁에서 조서를 내어 멀리 회유함에
붓을 흔드니 칼이 번뜩이듯 서리 날리고,
귀신도 이를 알지 못하게 하니
개미 같은 백성을 아껴서라네.
북방 하북 지역에 주둔한 군대를 점차 빼내고
모든 투항해 온 자들에게 궁궐에서 관직을 내리면
곧 천하에 전쟁이 그치게 할 것이니,
어찌 정원후에 봉해졌던 반초가 필요할 것이며
사관이 이를 기록하는 것도 그칠 수 있지 않겠는가?
箜篌引
盧谿郡南夜泊舟, 夜聞兩岸羌戎謳.
其時月黑猿啾啾, 微雨沾衣令人愁.
有一遷客登高樓, 不言不寐彈箜篌.
彈作薊門桑葉秋, 風沙颯颯靑塚頭.
將軍鐵驄汗血流, 深入匈奴戰未休.
黃旗一點兵馬收, 亂殺胡人積如丘.
瘡病驅來配邊州, 仍披漠北羔羊裘.
顔色飢枯掩面羞, 眼眶淚滴深兩眸.
思還本鄕食犛牛, 欲語不得指咽喉.
或有强壯能咿嚘, 意說被他邊將讎.
五世屬藩漢主留, 碧毛氈帳河曲遊.
橐駝五萬部落稠, 勅賜飛鳳金兜鍪.
爲君百戰如過籌, 靜掃陰山無鳥投.
家藏鐵券特承優, 黃金千斤不稱求.
九族分離作楚囚, 深谿寂寞絃苦幽,
草木悲感聲颼飅. 僕本東山爲國憂,
明光殿前論九疇, 簏讀兵書盡冥搜.
爲君掌上施權謀, 洞曉山川無與儔.
紫宸詔發遠懷柔, 搖筆飛霜如奪鉤.
鬼神不得知其由, 憐愛蒼生比蚍蜉.
朔河屯兵須漸抽, 盡遣降來拜御溝.
便令海內休戈矛, 何用班超定遠侯,
史臣書之得已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