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프란츠 카프카, 밀란 쿤데라와 함께 20세기 체코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 차페크의 단편집이다. 차페크가 편집자로 근무하던 일간지인 《리도베 노비니(Lidové noviny)》와 잡지에 1920년부터 1938년에 걸쳐 연재했던 작품들을 묶은 것이다. 이 작품은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숨겨져 있다가 최근에야 연구되기 시작했다.
차페크는 소설과 희곡에서 체코어 구어체를 사용한 체코 작가들 중 첫 세대에 속한다. 이는 차페크가 신문기자 생활을 한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 《외경 이야기들》은 그의 문학 활동 중 가장 저널리스트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구어체와 간단한 체코어 스타일, 크랄리체(Kralice) 성경에 나오는 성서적 언어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내용 면에서 보자면《외경 이야기들》에 나오는 보통 사람들은 위대한 문학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이거나 역사적, 종교적 인물들이다. 대홍수 이야기에 나오는 야네체크(Janeček), 프란체스코 아시시, 돈 주앙,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등의 영웅도 포함된다. 보통 사람들의 삶이 위대한 비극들이나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과 교차된다. 역사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해서, 거기에 좀 더 보태고,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확대경으로 보거나 왜곡하여 봄으로써 그 상황을 재해석한 것이다. 형식은 대부분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논쟁 같은 여러 형태의 대화이고, 예외적으로 편지 형식의 글도 있는가 하면, 철학적인 강의나 무운시 형식으로 쓴 희곡도 있다.
《외경 이야기들》에 실린 각각의 작품은 각각 형식, 주제 그리고 어조에서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다른 문제를 다루고 있고, 서로 다른 관점으로 진행된다. 어떤 이야기들은 그 특성상 철학적이거나 유사 철학적이다. 또 다른 이야기들은 유명한 사건이나 인물들을 상당히 상식적이고 반(反)영웅적인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 또 다른 어떤 이야기들은 도덕적인 것처럼 보인다. 《외경 이야기들》은 한 사람의 관찰자가 여러 다양한 사건을 다룬다. 즉, 작가가 여러 다른 사건들을 다룰 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들에 대해 각기 다른 태도를 취한다.
《외경 이야기들》은 문학과 저널리즘 사이에서 차페크의 독특한 위치를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 다룬 작품들에는 유럽과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평화와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차페크의 비관주의적 관점이 비유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역사적인 모자이크의 영역과 하찮은 양의 이야기들 사이의 모순 때문에 대부분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차페크의 주요한 소설이나 희곡보다는 저평가했지만 실상 무엇보다 저널리즘적인 흥미로운 글이다.
200자평
차페크가 편집자로 근무하던 일간지와 잡지에 1920년부터 1938년에 걸쳐 연재했던 작품들을 묶은 것이다. 인터뷰와 증언, 논쟁 등의 형식으로 보도하는 상상의 저널리즘 양식으로 역사나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사건들을 기술한다. 신문 잡지에 실렸던 작품이었던 만큼 흡인력 있고, 차페크식 풍자와 위트가 잘 드러난다. 책에는 역자가 발표했던 논문을 재구성한 30쪽가량의 해설을 실어 작품 분석의 심도를 더했다.
지은이
체코가 낳은 위대한 작가 카렐 차페크(Karel Čapek, 1890∼1938)는 체코 북부 지방에서 의사인 아버지와 예술적 취향이 강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프라하 카렐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한 다음 베를린과 파리에서 유학했고, 1915년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형 요세프와 공저로 1916년 《눈부신 심연》과 1918년 《크라코노시 정원》을 출간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길가 십자가(Boží muka)》(1917)는 그의 최초의 단독 작품집이다. 소설, 드라마, 비평, 저널리즘 등 다방면에 걸쳐 왕성한 활동을 벌여 현대 체코 문학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또한 무엇보다도 형 요세프와 함께 쓴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Rossum’s Universal Robots, R. U. R.)》(1921), 《압솔루트노 공장(Továrna na absolutno)》(1922), 《크라카티트(Krakatit)》(1924)를 통해 20세기 과학 소설과 유토피아 소설 및 희곡을 개척한 대표적인 작가 중의 한 사람이 되었으며, 실용주의 철학의 상대주의와 깊은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작품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1938년 48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옮긴이
학산(學山) 김규진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러시아어과에 재학 중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시카고대학교 대학원 슬라브어문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체코 프라하 카렐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카렐대학교 한국학과 교환교수를 거쳐 2014년까지 한국외국어대학교 체코·슬로바키아어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명예교수로 체코 문학 번역에 전념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캠퍼스 부총장과 동유럽학대학장을 지냈다. 전국부총장협의회 회장직을 지냈다. 한국동유럽발칸학회 회장, 세계문학비교학회 부회장, 번역원 이사, 대한민국오페라연합회 상임고문 등을 맡았다. 1990년부터 신문과 잡지 등에 러시아와 동유럽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여행기를 써 왔다. 저서로는 《한 권으로 읽는 밀란 쿤데라》, 《카렐 차페크 평전》, 《일생에 한 번은 프라하를 만나라》, 《체코 현대 문학론》, 《프라하−매혹적인 유럽의 박물관》, 《여행 필수 체코어 회화》, 《여행 필수 슬로바키아어 회화》, 《러시아·동유럽 문학·예술 기행》, 《내 사랑 압사라 앙코르와트 무희의 미소 : 캄보디아 사회 문화 인상기》와 《영주 외나무다리 마을 무섬 알방석댁 이야기》 등이 있고, 번역서로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별의 왈츠》, 미할 아이바스의 《제2의 프라하》, 카렐 차페크의 소설 《별똥별》, 《첫 번째 주머니 속 이야기》, 《두 번째 주머니 속 이야기》, 《압솔루트노 공장》, 《크라카티트》, 타탸나 루바쇼의 과학 장편만화 《로봇(Robot)》과 카렐 차페크 원작, 추포바의 과학 희곡 만화 《R.U.R.(로숨 유니버설 로봇)》와 보제나 넴초바의 《체코 민담집》, 편역으로 《러시아 문학 입문》 등이 있다. 2006년 체코학을 해외에 소개한 공로로 체코의 ‘그라티아스 아지트(Gratias Agit)’ 상에 이어, 2021년 체코 문학을 번역하고 체코 문화를 해외에 소개한 공로로 체코에서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권위 있는 문학상인 ‘이르지 타이너 문학상(The Jiří Theiner Prize)’을 아시아 최초로 수상했다.
현재 여러 대학, 각종 문화 단체나, 여러 백화점 등 문화 기관에서, 《러시아, 동유럽 여행》에 대한 특강을 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 방문한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여행기를 블로그 〈김규진 교수의 세계 여행기〉에 집필 중이고, 자서전 《호기심은 창조의 지름길?》(가제)을 집필 중이다. 체코 문학 연구와 체코 문학 작품 번역에 매진하고 있다.
차례
프로메테우스의 형벌
예전 같지 않은 시대
예전처럼
테르시테스
아가톤 또는 지혜에 관해
알렉산드로스 대왕
아르키메데스의 죽음
로마 군단
열 명의 의인 이야기
가짜 롯 또는 애국심에 대해서
거룩한 밤
마르다와 마리아
나사로
다섯 개의 빵 이야기
벤하난
십자가 처형
빌라도의 저녁
빌라도의 신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아틸라-십자가에 못 박힘
성상 파괴
프란체스코 형제
오빌
리어왕의 딸 고네릴
햄릿, 덴마크 왕자
돈 후안의 고백
로미오와 줄리엣
쿠프슈타인 출신 히네크 라브 씨
나폴레옹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벤하난, 당신은 그에게 죄가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그건 이렇습니다. 나는 그를 사형에 처한 것이 아니라 가야바에게 보냈을 뿐입니다. 가야바에게서 그가 어떤 죄를 범했는지 들으십시오. 나는 개인적으로 그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나는 늙은 실용주의자입니다, 벤하난. 나는 당신에게 아주 솔직하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그의 가르침의 요점 중 일부는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은 많은 진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벤하난. 그의 의도는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전술은 틀렸습니다.
그는 이런 식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써서 책으로 출판했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책을 읽고, 그것은 빈약한 책이라고 말하고, 사람들이 항상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대로 거기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는 둥 뭐 그럴 것입니다.
–<벤하난> 중
여섯째 시간이 되었을 때부터 아홉째 시간까지 온 땅에 어둠이 깔렸다. 아홉째 시간이 되매 가운데 있는 자가 큰 소리로 부르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신이시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하더라. 보라,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두 동강이 나고 땅이 흔들리고 바위가 산산조각이 났다.
–<십자가 처형>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