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피터 셰퍼의 작품은 ‘블랙 코미디’ 등의 희극과 심각한 작품으로 구별할 수 있는데, <태양 제국의 멸망>, <에쿠우스>, <아마데우스> 그리고 <요나답> 등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심각한 작품에는 종교에 관한 논쟁이 중요하게 자리를 잡은 것이 특징이다.
<요나답>은 구약성서의 사무엘하기에 나오는 다윗 왕과 그 자손의 이야기를 극화한 작품이다. 다윗의 아들들이 무서운 범죄와 음모, 배반과 반목으로 멸망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 준다. 피터 셰퍼는 이 이야기에 나오는 주요 사건을 요나답의 관점에서 묘사하며 다윗과 그 자손들의 멸망을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 찬, 그리고 공포를 무기로 하는 신에게 반항한 한 인간의 승리로 그려 냈다.
피터 셰퍼는 <태양 제국의 멸망>을 비롯해 <에쿠우스>, <아마데우스> 등 주요 작품을 통해 의심에서 시작해 반항을 지나 도전으로 이어지는 주제를 다뤄 왔다. 피터 셰퍼의 작품들은 서사극의 원칙대로 실제 있었던 사건이나 얘기를 통해 관객이 이제까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믿음에 의심을 던져 준다. <요나답> 역시 이들 작품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200자평
<요나답>은 구약성서의 사무엘하기에 나오는 다윗 왕과 그 자손들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피터 셰퍼의 희곡이다. 종교에 대해 논쟁적인 질문을 던지며 <태양 제국의 멸망>. <에쿠우스>, <아마데우스> 같은 작품에서 탐색해 온 주제를 강화하고 있다.
지은이
피터 셰퍼(Peter Shaffer, 1926∼2016)
피터 셰퍼는 1926년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자랐다. 전업 작가가 되기 전 잠시 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극작가로서 첫 성공을 거둔 작품은 1962년 글로브극장에서 초연된 단막 코미디 <개인적인 귀(The Private Ear)>와 <공적인 눈(The Public Eye)>이다. 두 작품으로 피터 셰퍼는 “중요한 작가이자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주요 작품으로는 <아마데우스>, <에쿠우스>, <태양 제국의 멸망>이 있다. 그 외 작품으로는 단막 코미디 <블랙 코미디>와 <새하얀 거짓말>이 1966년 공연되어 영국에서 인기를 끈 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1년간이나 공연되었고, 1970년에는 현대극 <고해를 위한 전쟁(The Battle of Shrivings)>이 공연되었다. 이어 구약성서 속 다윗 왕과 그 아들 암논, 압살롬 등의 갈등을 그린 <요나답(Yonadab)>을 발표했다. 20세기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옮긴이
박준용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교육방송국 프로듀서, 영국 BBC 연수 지구비디오 프로듀서를 지냈다. 희곡 번역가로서 닐 사이먼의 ≪희한한 한 쌍≫과 ≪브라이튼 해변의 추억≫, ≪플라자 스위트≫, ≪굿 닥터≫, 조 오튼의 ≪미친 사람들≫, 페터 바이스의 ≪마라 사드≫, 숀 오케이시의 ≪주노와 공작≫, 시드니 마이클스의 ≪칭칭≫, 피터 셰퍼의 ≪태양 제국의 멸망≫, ≪요나답≫, 윌리 러셀의 ≪리타 길들이기≫, 우디 앨런의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 존 밀링턴 싱의 ≪서쪽 나라의 멋쟁이≫, 빌 노턴의 ≪바람둥이 알피≫, 줄스 파이퍼의 ≪폭력 시대≫ 외 다수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기며 1970∼1980년대 한국 연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책속으로
다말 : 저는 다말이에요. 저를 보세요. 오빠, 저는 다말이에요. (그는 다말을 본다.)
암논 : 그대는 내가 사랑하는 나의 여동생 다말이야. (그는 알몸인 채로 관객에게 등을 돌리고 서서, 위에서 늘어져 있는 줄을 잡아당긴다.)
요나답 : 바로 그 순간 무의식적으로 그랬는지, 아니면 그의 머릿속에 무슨 소리가 들렸는지, 그는 팔을 뻗어 커튼을 내렸습니다. (흰 커튼이 내려져 침대를 감싸듯 둘러싼다. 화가 나서) 왜? 왜 그랬을까요? 정말이지 모를 일입니다. 왜 커튼을 친 거죠? 저 황소는 평생 한 번도 커튼을 쳐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왜 지금은 커튼을 친 걸까요?
-87쪽
요나답 : 다윗, 당신은 내게 복수를 당한 거야! 당신의 하나님까지도! 그리고 다말! 당신의 그 끔찍스럽고 잘난 척하는 딸. 내가 그토록 미워하고, 또 질투했던 다말!… 나는 당신들처럼 하나님의 냄새를 고약스럽게 풍기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자들을 증오해! 그리고 동시에 당신들의 저주를 받았다고 허무를 느끼는 나 자신도 증오해! 우리는 모두 혼자 힘으로는 살 수 없는 바보들이야! (조명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여러분이라면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다말처럼 단순하고 뜨거운 광신주의? 아니면 저처럼 복잡하고 차가운 회의주의? 신앙으로 온 세상을 폐허로 만들 건가요? 아니면 믿음 없이 강간을 저지를 건가요? 믿음과 불신, 양쪽 다 위험하긴 마찬가지, 여러분은 다말과 나,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2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