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불야성을 이루는 도시의 혼탁한 먼지와 잡다한 불빛을 피해 광활한 자연 한가운데 누워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빛에 감흥이 일 때면 누구나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하곤 했을 것이다. “저 별들은 무엇이며 또한 어떻게 움직이는가? 내가 딛고 있는 땅 그리고 거기에 서 있는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러한 질문과 관련해서 독자는 아마도 1980년에 처음 방영되었던 과학 다큐멘터리 영화 <코스모스 : 사적인 항해(Cosmos : A Personal Voyage)>나 2014년에 다시 제작된 <코스모스 : 시공간 여행(Cosmos : A Spacetime Odyssey)>을 떠올릴 것이다. 최근 100∼200년 사이에 획기적으로 이룬 지적 성취를 바탕으로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21세기 우리의 인식은 과거의 사람들과는 많이 달라졌다. 우리가 놓여 있는 세상, 즉 우주는 어마어마하게 광활하며 이에 비교하면 한낱 푸른 점에 불과한 지구와 그 위에서 찰나에 불과한 시간을 살고 있는 인간은 너무나 미미할 뿐이다. 게다가 그러한 우리 인간은 본래 별의 흩어진 먼지에서 기원한 것으로 태양ᐨ지구라는 생태 환경의 우연적 조건에 따른 진화의 산물일 뿐이다. 그렇다면 같은 질문 “세상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움직이며 과거와 미래의 모습은 어떠한가?”에 대해서 과거, 이를테면 조선의 학자들은 이를 어떻게 풀어냈는가?
이와 관련해 나는 400여 년 전 활동했던 조선 중기의 학자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이 지은 ≪우주설(宇宙說)≫(1631)에 주목한다. 조선에서 가장 학문이 융성한 시기로 평가받는 16세기 후반의 지적 토양 속에서 성장했던 장현광은 정치나 벼슬보다는 학문과 교육에 주로 힘썼다. 장현광은 마침내 인간, 자연 그리고 우주를 아우르는 거대한 학문 체계를 정립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물로 17세기 전환기에 ≪우주요괄(宇宙要括)≫, ≪역학도설(易學圖說)≫, ≪성리설(性理說)≫ 등 여러 관련 저술을 남겼다. 이 가운데 ≪우주설≫은 장현광이 만년이었던 1631년, 즉 그의 나이 78세 되던 해에 지은 것으로, ≪성리설(性理說)≫의 일부인 권8[卷之八]로 편제되어 있는 독립된 논설이다. 우주 구조론 및 생성론을 함께 다루고 있는 ≪우주설≫은 현재의 학문 분과로 말하자면 천문학, 지질학, 생물학, 진화학, 물리학, 수학 분야 등을 포괄하는 저술이지만, 당시의 지식 범주로 보면 성리학적 사유를 담고 있는 유학 논설로 분류된다. 먼저, ≪우주설≫은 네 개의 작은 편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편은 이(理)와 기(氣), 체(體)와 용(用)이 행하는 끝없는 묘법을 논하고 있고[“論理氣體用無窮之妙”], 둘째 편은 온갖 갈래의 물품이 서로 갖춰지는 이치를 논하고 있으며[“論品彙互備之理”], 따로 편목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셋째 편은 도(道)의 불변성, 이(理)의 무한한 역량, 순환하는 천지의 역사 그리고 이에 따른 우리 사람의 도리를 논급하고 있다. 마지막 부편(附篇)에 해당하는 “동자의 물음에 답함[答童問]”에서는, 지각 불가능한 영역에 헛되이 정신을 소모치 말 것을 경계하며 무궁한 천지 우주의 이치는 오히려 나의 한 치 마음속에서 구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한마디로, ≪우주설≫은 천지 만물 조화(造化)의 원리, 바꿔 말하면 무한한 시간과 공간인 우주의 모양과 운행 원리를 논설하고 유한한 세상에 살아가는 인간이 행해야 할 지침을 제시한 것이다.
200자평
서양 과학을 모르던 시절, 우리 조상들은 우주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조선 시대 성리학자인 장현광은 우주가 ‘이(理)’의 원리에 따라, ‘기(氣)’로 구성되었다고 보았다. 서구 사상이 들어오기 전 순수한 유학 사상을 바탕으로 17세기 조선 지식인이 생각한 우주 구조론과 생성론, 그리고 그 우주 안에서 인간이 행해야 할 도리를 밝히고 있다.
지은이
장현광(張顯光)은 1554년(명종 9)에 출생해서 1637년(인조 15)에 사망한 조선 중기의 학자다. 호는 여헌(旅軒)이고 자는 덕회(德晦)다. 경상북도 인동(仁同)에서 태어난 장현광은 17세기 영남학파를 대표하는 유학자로 이황(李滉)의 문인들 사이에서 확고한 권위를 인정받았다.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힘썼으며 많은 남인계 학자들을 길러 냈다. 학맥은 퇴계 학파로 분류되지만 이(理)와 기(氣)를 이원적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이이(李珥)의 심성론에 부합하는 바가 많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런 까닭에 그의 학설은 남인 계열의 학자들 중에서 매우 이색적이고 독창적이라고 평가된다. 그의 생애 기간은 왜란 및 호란의 양란기와 맞물려 있는데 한때 의병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왜란 이후 15년간 여기저기를 떠돌 수밖에 없었는데, 자호(自號) 여헌(旅軒)이 암시하듯이 모든 인간은 궁극적으로 우주 사이의 나그네이며, 나그네로서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장현광은 적지 않은 저술을 남겼다. 18세에 ≪우주요괄(宇宙要括)≫, 44세에 ≪여헌설(旅軒說)≫을 지었으며, 55세에는 ≪역학도설(易學圖說)≫을 찬술하기 시작했다. 68세에는 ≪경위설(經緯說)≫을, 75세에는 ≪만학요회(晩學要會)≫를, 77세에는 ≪역괘총설(易卦總說)≫을, 78세에는 ≪우주설(宇宙說)≫을, 79세에는 ≪태극설(太極說)≫을, 81세에 ≪도서발휘(圖書發揮)≫를 각각 지었다. 그는 보은현감(報恩縣監), 공조좌랑(工曹佐郎), 의성현령(義城縣令), 형조참판(刑曹參判)을 지냈으며, 대사헌(大司憲)과 공조판서(工曹判書)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사후에 영의정(領議政)으로 추증되었다.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옮긴이
이기복은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및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 철학 협동 과정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 논문에서는 <19세기 이제마의 의학 사상과 실천>을 다뤘으며, 관심 있는 연구 주제는 조선 시대 과학사 및 의학사 분야다. 영국 런던에 있는 웨스트민스터대학교(University of Westminster, EASTmedicine Research Centre)에서 2년간 박사 후 연구원으로 있었고, 현재는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에 학술 연구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에 ≪역시만필(歷試漫筆) : 조선 어의 이수귀의 동의보감 실전기≫(공저)가 있다.
차례
이(理)와 기(氣), 체(體)와 용(用)이 행하는 끝없는 묘법(理氣體用無窮之妙)
물품의 무리가 서로 갖춰지는 이치(品彙互備之理)
역서(易書)에서의 태극(太極), 양의(兩儀), 사상(四象), 팔괘(八卦)의 차서와 조화(造化) 과정에서의 음양(陰陽)·오행(五行) 및 한서(寒暑)·주야(晝夜)의 변화(易書之太極·兩儀·四象·八卦之序, 造化之陰陽五行·寒暑晝夜之變)
붙임 : 동자의 물음에 답함(附答童問)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만물(萬物)을 시작하고 끝내는 것이 우주이고, 우주(宇宙)를 시작하고 끝내는 것은 도(道)다. 그 둘레 언저리가 얼마이며, 그 차지하는 크기는 얼마이기에 도(道)가 이미 우주를 시작하고 끝낼 수 있고 또한 우주로 하여금 그 가운데서 만물을 시작하고 끝내게 할 수도 있는가? 대저 소위 도(道)라는 것은 이(理)와 기(氣)를 부합시키고 체(體)와 용(用)을 아울러서 늘 한결같고 늘 존재하는 것으로, 이(理)를 둘레로 삼고 이(理)를 크기로 삼는다. 그러므로 둘레와 크기를 가지고는 말할 수 없으며, 참으로 본시 모양[象]이 없는 둘레, 몸[形]이 없는 크기가 있어서, 가히 경계를 지을 수 없고, 가히 끝을 헤아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