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실천 없는 학문은 없다
거리의 ‘하이브리드’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를 제자의 글로 읽다
우리의 모든 앎의 근원이 ‘삶’에 있다고 한다면 학자의 본연의 임무는 학술 행위를 통해 앎과 삶을 통풍시키는 데 있을 것이다. 사상의 전도사가 뚫어준 통풍의 혜택은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 장삼이사가 ‘선물’로서 받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치다 다쓰루 사상은 이 시대에 우리가 꼭 읽고 음미해야 할 양식과도 같은 것이다.
이 책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 메타 언어의 소유자 우치다 다쓰루의 진면목을 그의 제자 박동섭이 글로 담았다. 스승과 제자는 단순히 학교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가 아니라, 배움이 있는 모든 곳에서 발생하는 관계다. 저자는 이 책에 우치다 다쓰루에 대한 제자 정신과 이를 전도하는 스승의 마음을 담았다. ‘마치바론’, ‘학술론’, ‘하이브리드론’ 등은 하나의 체계화된 이론이라기보다 우치다 다쓰루의 실천 방식을 박동섭이 정리한 것이다. 우치다 다쓰루 사상은 신체를 파고들어서 언어에 도달하고, 윤리를 깊게 해서 논리와 만나고, 실감을 파고 들어가서 이론을 조형해 내는 힘을 갖고 있다. 이념과 관념이 아닌 몸으로 움직이는 지성을 경험해 보자.
사상 분야 학제간 연구
연관 사상가 이마뉘엘 레비나스
200자평
우치다 다쓰루는 ‘학술언어’와 ‘일상언어’의 경계를 쉴 새 없이 넘나들며 모험을 감행하는 사상의 전도사다. 이마뉘엘 레비나스의 영향을 받은 그의 사상은 현대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무도, 전통 예술, 건축, 만화, 영화, 종교 등 분야를 막론하지 않는다. 이 책은 우치다 다쓰루의 제자 박동섭이 ‘제자’된 입장에서 그의 ‘스승’ 우치다 다쓰루의 사상의 전개와 글쓰기 방식을 소개한다. 학술이 사유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실천과 행동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우치다 다쓰루와 박동섭의 글쓰기는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한다.
지은이
박동섭
독립연구자. 특정 분야 연구자라는 제도화된 아이덴티티로 살아가는 일의 한계를 실감하며 ‘아이덴티티 상실형 인간’으로 살면서 공부하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비고츠키를 연구하며 대중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고 알리고자 애쓰고 있다.
『동사로 살다』, 『레프 비고츠키』, 『해럴드 가핑클』, 『상황인지』, 『회화분석』, 『우치다 선생에게 배우는 법』을 썼고, 『보이스 오브 마인드』, 『수학하는 신체』, 『수학의 선물』,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 『스승은 있다』, 『망설임의 윤리학』, 『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 『배움엔 끝이 없다』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차례
‘하이브리드’로 탄생한 사상가
01 마치바론
02 학술론
03 하이브리드론
04 문체론
05 일리론
06 사제론
07 종교론
08 무도론
09 교육론
10 어른론
책속으로
자신의 신체 깊숙한 곳에 뿌리를 내린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체험을(그것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 어려운) 거기에 걸맞은 말로 변환시키려고 하면 타인에게 의미를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화자가 말을 더듬거나, 말이 흔들리거나 요동치고 휘어지는 것은 그만큼 그 말이 전하려고 하는 체감이 리얼하기 때문이다.
_ “01 마치바론” 중에서
난해한 철학서를 읽고 그것을 일단 자기 안에서 잘 씹어서 자신의 말로 정리하면 말은 일종의 ‘신체성’을 획득한다. 문체의 ‘결’이라고 해도 좋고 ‘온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나는 이런 글쓰기를 심사를 받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의 귀에 가 닿기를 바라는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스타일의 학술적 글쓰기가 아닐까?
_ “02 학술론” 중에서
연출가는 모성애가 일종의 ‘환상’ 혹은 ‘픽션’이라는 사실을 숙지하고 있다. 그런데 무대를 분석적으로 보는 데에만 너무 몰입하다 보면 관객이 무대 위에서 ‘정말로 보는 것’을 놓쳐버릴 가능성이 있다. 우치다 다쓰루는 모성애를 일종의 환상 혹은 픽션이라고 숙지하는 깨어 있음을 연출가로서 견지하면서도 동시에 무대에서 일어나는 일에 몰입하는(혼자서 키운 딸을 사랑하는) 관객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_ “05 일리론” 중에서
“우치다 군, 자네는 왜 합기도를 시작하였는가?” 그 질문에 우치다 다쓰루는 마치 준비한 듯 곧바로 “싸움을 잘하고 싶어서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대답에 대해 만약 타다 선생이 “그런 불손한 이유로 합기도를 하면 안 된다!”고 호통을 치면 그 자리에서 합기도를 그만둘 생각이었다. 그런데 선생의 대답은 우치다 다쓰루의 허를 찌르는 대답이었다. 우치다 다쓰루의 대답을 듣고 타다 선생은 빙긋이 웃으면서 “음, 그런 이유로 합기도를 시작해도 된다”고 했다.
_ “08 무도론” 중에서
교육이라는 활동은 ‘결국’이라고 절대로 말하지 않는 인간의 ‘결의’이고, 그 사람에 관해서 설령 뭔가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미지수 x’를 ‘x’로 남겨두고 결코 거기에 ‘정수 a’를 마지막까지 대입하지 않는 이른바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거는’ 결의 혹은 결기가 아닐까?
_ “09 교육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