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마음 닦는 법
《수심결(修心訣)》은 낱낱의 한자를 풀이하면 닦을 수(修), 마음 심(心), 비결 결(訣)로 마음 닦는 노하우(knowhow)를 아낌없이 선사하는 책이다. 불교에서의 ‘마음 닦는 법’의 정수(精髓)를 설명하면서 그 ‘마음’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있다. ‘마음’을 관조하면서 ‘마음 수행’을 하는 행위는 불교라는 특정 종교와 불자(佛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마음’에 대한 인식과 ‘마음공부’는 모든 이에게 절실한 과제다. 특히 자본과 물질에 대한 무분별하고 왜곡된 집착과 숭배 현상이 만연한 오늘날에 ‘마음’과 ‘마음 치유’는 개인뿐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행복의 열쇠가 될 것이다.
《수심결》은 1권 1책으로, ‘마음’이라는 화두(話頭)를 던지며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 고려 시대의 고승 보조 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1158∼1210) 스님의 저작으로,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 또는 《보조국사수심결(普照國師修心訣)》이라고도 한다. 전체적으로 돈오(頓悟)와 점수(漸修)의 두 수행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선정(禪定)과 지혜(智慧)를 고르게 닦아야 한다는 지눌 스님의 수심관(修心觀)이 체계적으로 펼쳐져 있다.
이 책의 저술 연대와 간행 시기는 미상이다. 내용 중에 지눌 스님이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에 거처할 때 열람한 《대혜어록(大慧語錄)》을 인용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1198년 이후인 40세 이후의 저술로 추정되며, 이후 중국에 전해져서 《대명삼장성교(大明三藏聖敎)》, 《대청삼장성교(大淸三藏聖敎)》, 《경산장(徑山藏)》 등에 수록되었다.
《수심결》의 체제는 서분(序分), 정종분(正宗分), 유통분(流通分)으로 이루어졌다. 서론에 해당하는 서분에서는 수행의 근본이 마음에 있음을 언급한다. 본론에 해당하는 정종분은 아홉 개의 문답으로 구성되어 문답을 통해 진정한 ‘나’를 찾는 방법, 돈오점수(頓悟漸修), 정혜쌍수(定慧雙修) 관련 내용을 설명한다. 결론에 해당하는 유통분에서는 게으름이나 물러남 없이 끝없는 실천 수행의 길을 가도록 당부한다.
스스로 읽기
《수심결》역주본과 해석본은 이미 많이 출간된 상태다. 그러나 책 자체의 무게감과 깊이감으로 상당히 전문적이면서 심오한 분석과 사유 체계를 펼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인에게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수심결》’인 것이다. ‘너무나 먼 그대’이므로 차근차근 다가갈 필요가 있다. 그 시작은 한문에 대한 기본 지식을 바탕으로 원문 문장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번역하는 것이다. 직역(直譯)을 기본으로 하되 과하지 않은 의역(意譯)이 중요하다. 이 기본적인 과정이 《수심결》의 근원적 내용과 가치에 꾸밈없이 다가갈 수 있는 지름길이다. 이 책에서는 한자와 한문 문장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원문에 한자의 독음을 달고 해석과 독법 요점을 제시했다. 특히 각주로 처리한 독법 요점 부분에는 《수심결》 문장을 해석할 때 관건이 되는 중요한 문형과 단어, 허사(虛辭) 등의 해석법을 설명했다. 누구나 이 책으로 《수심결》 원문을 읽어 나가며 독법 요점 부분을 활용하면 혼자서도 문장 독해가 수월할 것이며, 한문 해석 실력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200자평
보조 국사 지눌이 ‘마음’을 화두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 고려 불교의 중흥주이자 조계종의 개조인 지눌은 돈오 후에 점수가 필요함을 설명하고, 선정과 지혜를 고르게 닦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간 소개된 《수심결》은 대부분 전문 독자를 위한 심오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 일반 독자들이 선뜻 접근하기 어렵다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 고숙희 교수는 초심자나 독학자가 혼자 힘으로 읽을 수 있도록 이 책을 구성했다. 원문과 독음을 보고 주석의 단어 설명을 참고해 스스로 한 문장씩 새겨 보면서 마음 닦는 법에 한 걸음씩 차근차근 다가갈 수 있다.
지은이
고려 시대 지눌(知訥, 1158∼1210) 스님의 속성은 정씨(鄭氏)이고 법명이 지눌이다. 호는 목우자(牧牛子)로 ‘소 치는 사람’을 뜻하며, 입적 후 희종(熙宗)이 하사한 시호는 불일보조 국사(佛日普照國師)인데, 간단히 보조 국사라고 부른다. 지눌 스님은 고려 불교의 중흥주이자 조계종(曹溪宗)의 개조(開祖)로,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조직해 불교의 개혁을 추진했으며, 돈오점수(頓悟漸修)와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주장해 선교일치(禪敎一致)를 제창했다.
지눌 스님은 의종(毅宗)12년(1158) 지금의 황해도 서흥군(瑞興郡) 동주(洞州)에서 출생했다. 부친 정광우(鄭光遇)는 국자감 학정(學正)으로 고관은 아니었으나 지식인 계층에 속했다.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병약해 부모가 병을 고치려 애썼지만 효험이 없었다. 부친은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며 아들의 병이 낫기만 한다면 불문에 출가시키겠다고 서원했다. 결국 병이 나았고, 지눌 스님은 어린 나이에 출가했다. 1165년 8세에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사굴산문(闍崛山門)의 종휘(宗暉) 선사를 스승 삼아 출가해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당시 사굴산문은 혜조 국사(慧照國師) 담진(曇眞), 대감 국사(大鑑國師) 탄연(坦然), 대선사 연담(淵湛)에 이르기까지 선문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지눌 스님 역시 혜조 국사로부터 탄연, 지인(之印), 연담에 이르기까지 형성된 사굴산문의 높은 수행 가풍과 수많은 서적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스님은 출가 후 25세까지 특별한 스승 없이 불법을 배우고 선도(禪道)를 닦아서 선(禪)의 사상 체계를 세웠다. 1182년에 승과(僧科)에 합격한 후, 담선법회(談禪法會)에서 당시 법회에 참석했던 10여 명의 스님들에게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제안했다. 그러나 각자의 사정에 의해 성사되지 못했고, 지눌 스님은 남하해 지금의 전남 담양군 창평면(昌平面)에 위치한 청원사(淸源寺)에 머물렀다. 이곳에서 3년 정도 지내다가 처음으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중국 당나라 혜능(慧能, 638∼713)의 《육조단경(六祖壇經)》을 보다가 자성(自性)의 본바탕을 체득한 것이다. 1185년 28세에는 지금의 경북 예천군(醴泉郡)에 위치한 하가산(下柯山) 보문사(普門寺)로 옮겨 갔다. 이곳에서 《화엄경(華嚴經)》 〈여래출현품(如來出現品)〉과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선(禪)과 교(敎)의 일치를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1188년에는 지금의 경북 영천시(永川市) 팔공산(八公山), 바로 공산(公山)에 위치한 거조사(居祖寺)에서 머물렀다. 이곳에서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조직했고, 1190년에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을 발표했다. 거조사의 정혜결사는 밤낮으로 습정균혜(習定均慧), 즉 정혜쌍수를 바탕으로 수행할 것을 강조했다. 1198년에는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에 가서 수행에 정진했다. 이때, 남송(南宋) 임제종(臨濟宗) 양기파(楊岐派)의 선승인 대혜 선사(大慧禪師) 종고(宗杲, 1089∼1163)의 《대혜어록(大慧語錄)》을 통해 세 번째 깨달음을 얻었다. 보문사의 깨달음 이후에도 남아 있던 정견(情見)의 장애가 소멸되었다고 한다. 1200년에는 중수(重修)를 시작한 지금의 전남 순천시에 위치한 송광사(松廣寺), 바로 송광산(松廣山) 내 길상사(吉祥寺)로 자리를 옮겼다. 1205년 불사가 마무리되어 경찬법회(慶讚法會)가 열렸는데, 이는 수선사(修禪社) 결사의 시작을 알리는 개당 법회였다. 왕명으로 송광산을 조계산(曹溪山)으로, 정혜사를 수선사(修禪社)로 개칭한 뒤 6년 동안 머물며 수행과 전법(傳法)에 주력하다가 1210년 53세로 입적했다.
현재 전하는 저술로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 1권, 《수심결(修心訣)》 1권, 《계초심학입문(誡初心學入門)》 1권,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 1권,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 1권,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竝入私記)》 1권, 《화엄론절요(華嚴論節要)》 3권 등이 있다.
옮긴이
고숙희(高淑姬)는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중국 고전 소설로 중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 공안 소설(公案小說)과 전통 시대 한중(韓中) 문화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의 셜록 홈스(Sherlock Holmes) 이야기를 읽으며 추리 소설 마니아가 되었다. 셜록 홈스의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며 흥미진진한 사건 추리와 해결 과정에 빠져들어 추리 소설 작가를 꿈꾸기도 했다. 어느 순간 서양 추리 소설과 범죄 소설에 대한 시선은 동양으로 옮겨졌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영국을 무대로 활동했던 가상의 탐정 셜록 홈스에게서 11세기 중국에서 활동했던 포청천(包靑天)에게로 학문적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포청천은 송대(宋代)의 청관(淸官)이자 명판관(名判官)으로 널리 알려진 역사 인물 포증(包拯, 999∼1062)이다. 그의 재판 서사에 매료되어 포청천을 중심인물로 설정한 《백가공안(百家公案)》, 《용도공안(龍圖公案)》으로 박사 논문을 완성했다. 이후 범죄와 추리 서사에 기반한 학문적 관심은 중국 전통 법의학과의 연관성을 고찰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지금은 동서양 고전을 즐겨 읽으면서 동서양 소통을 주제로 한 대중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특히 18세기 한중 사회의 다양한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다수의 학술 논문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중국 전통 법의학과 전통 시대 동아시아 재판 서사의 관련성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고, 아울러 바다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중국 전통 시대 해상 교역 디아스포라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저서로 《고대 중국의 문명과 역사》, 《중국 고전 산문 읽기》가 있다. 역서로 《송원화본》(공역,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중국문화 17 : 문학》, 《원서발췌 백가공안》, 《용도공안 천줄읽기》, 《원서발췌 열두 누각 이야기(十二樓)》, 《신(新) 36계》, 《해국도지(海國圖志)》 1∼8권(공역,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등이 있다.
차례
옮긴이 서문
수심결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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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界熱惱 삼계열뇌, 猶如火宅 유여화택, 其忍淹留 기인엄류, 甘受長苦 감수장고?
欲免輪廻 욕면윤회, 莫若求佛 막약구불.
若欲求佛 약욕구불, 佛卽是心 불즉시심, 心何遠覓 심하원멱?
不離身中 불리신중.
色身是假 색신시가, 有生有滅 유생유멸.
眞心如空 진심여공, 不斷不變 부단불변.
故云 고운, “百骸潰散 백해궤산, 歸火歸風 귀화귀풍, 一物長靈 일물장령, 蓋天蓋地 개천개지.”
삼계의 뜨거운 번뇌가 불타는 집과 같으니, 어찌 차마 오래도록 머물며 긴 고통을 달게 받겠는가? 윤회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부처를 구하는 것만 한 것이 없다. 만약 부처를 구하고자 한다면 부처는 곧 마음이니, 마음을 어찌 멀리서 찾는단 말인가? 이 육신을 벗어나지 않는다. 육신은 임시적인 것이라 태어남이 있고 죽음이 있다. [그러나] 참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끊어지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온몸의 모든 뼈가 무너지고 흩어져서 불로 돌아가고 바람으로 돌아가는데, 한 물건은 영원히 신령스러워 하늘을 덮고 땅을 덮는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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雖有後修 수유후수, 已先頓悟妄念本空 이선돈오망념본공, 心性本淨 심성본정,
於惡斷 어악단, 斷而無斷 단이무단, 於善修 어선수, 修而無修 수이무수.
此乃眞修眞斷矣 차내진수진단의.
故云 고운, “雖備修萬行 수비수만행, 唯以無念爲宗 유이무념위종.”
圭峯 규봉, 摠判先悟後修之義云 총판선오후수지의운,
“頓悟此性 돈오차성, 元無煩惱 원무번뇌, 無漏智性 무루지성,
本自具足 본자구족, 與佛無殊 여불무수,
依此而修者 의차이수자, 是名最上乘禪 시명최상승선, 亦名如來淸淨禪也 역명여래청정선야.
若能念念修習 약능염념수습, 自然漸得百千三昧 자연점득백천삼매,
達磨門下 달마문하, 轉展相傳者 전전상전자, 是此禪也 시차선야.”
則頓悟漸修之義 즉돈오점수지의, 如車二輪 여거이륜, 闕一不可 궐일불가.
비록 뒤의 닦음이 있지만 이미 먼저 망념이 본래 공하고 심성이 본래 깨끗함을 단박 깨달아서 악을 끊음에 끊어도 끊음이 없고 선을 닦음에 닦아도 닦음이 없다. 이것은 곧 참된 닦음이며 참된 끊음이다. 그러므로 “비록 온갖 행을 갖추어 닦지만 오직 무념을 근본으로 삼는다”라고 말한다.
규봉 스님께서 먼저 깨닫고 나중에 닦는 것의 의미(이치)를 총괄적으로 판별해서 말씀하셨다. “이 성품이 원래 번뇌가 없고 번뇌 없는 지혜의 성품이 본래 스스로 구족해 부처와 더불어 다름이 없음을 단박 깨치고, 이것에 의해 닦는 것을 최상승선이라고 이름하고, 또한 여래청정선이라고 이름한다. 만약 능히 생각 생각에 닦고 익힐 수 있다면 자연히 점차 백천[온갖] 삼매를 얻을 것이니, 달마 문하에서 계속해 서로 전한 것이 바로 이 선이다.” 곧 돈오와 점수의 의미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