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이야기를 다각도로 재구성함으로써, 아들 이사악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는 하느님의 명령에 대해 아브라함이 보여준 행위에 대한 심리적·윤리적·종교적 이해를 시도하는 책이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희생시키라는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해 아들 이사악을 모리야 산으로 끌고 가 번제의 제물로 바치려고 했다. 하느님의 명령은 누가 보더라도 반윤리적이며, 따라서 아브라함의 행위 역시 객관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아브라함은 살인미수자, 그것도 살인 중에 가장 잔인한 살인으로 규정되어 있는 비속(卑屬) 살인미수자인 것이다. 어떻게 이런 범죄자가 그리스도교에서는 신앙의 영웅으로 찬양되고 있는가?
키르케고르는 아브라함이 윤리적 의무를 무한히 체념하고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 관계 속으로 들어갔다고 대답했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제약하는 윤리적 의무와 이를 지지하는 보편적 세계를 넘어서서 하느님 앞에 홀로 섰다. 하느님 앞에 홀로 서 외톨이가 된 일대 사건을 키르케고르는 “윤리적인 것의 목적론적 정지(停止)”라고 불렀다. 그리고 효력을 정지시키는 것은 하느님의 무조건적 명령이다. 문제는 어떻게 그것이 하느님의 명령인지 확인할 수 있느냐는 것인데, 이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윤리적인 것의 목적론적 정지는 역설이라는 개념으로 연결된다. 보편적인 세계 밖으로 나가 외톨이가 된다는 것,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하느님의 명령을 확인한다는 것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키르케고르는 오로지 믿음을 통해서만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영웅적 비약은 아주 높은 경지여서 이 기막힌 비약 앞에서 뭇사람은 한없는 두려움으로 전율하게 된다.
200자평
‘신앙의 기사’ 아브라함이 아들 이사악을 희생 제물로 바친 행위를 분석한 <조율>, <아브라함에 대한 찬미>, 그리고 <문제들> 중 ‘예비적 심정 토로’를 옮겼다. 윤리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아브라함의 행위를 심미적·윤리적·종교적, 최종적으로는 그리스도교적 실존에 따라 다각도로 바라보면서 오로지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한 행위라고 결론짓는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두려움과 떨림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다.
지은이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미카엘 키르케고르는 코펜하겐의 성공한 상인으로서 경제적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는 부자였지만, 어린 시절 유틀란 황야에서 심한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린 나머지 하느님을 저주했던 일로 늘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영혼의 구원을 받아 영원한 행복을 얻고자 했던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였다.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미카엘은 막내아들 쇠렌에게 엄격한 그리스도교 교육을 베풀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곤 했으며, 아들이 신학교를 나와 목사가 되기를 원했다. 쇠렌은 누구보다 아버지를 따랐고, 아버지의 암울한 성격, 신앙심, 그리고 가르침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쇠렌의 암울한 성격과 어떻게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라는 평생의 문제의식은 아버지로부터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이다. 그가 나중에 저술한 위대한 작품들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이러한 유산의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버지 미카엘과 형 페테르의 권유를 받아 키르케고르는 18세에 코펜하겐대학 신학부에 입학한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 키르케고르는 한동안 방탕한 생활을 하며 그리스도교는 광기라고 말할 정도로 그리스도교에서 멀어진다. 아버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슬픈 마음으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키르케고르의 파멸의 시기는 1836년 자살 미수 사건으로 절정에 이르게 되지만, 이 사건 이후 그는 점차 안정을 되찾는다.
안정을 되찾으며 아버지와 화해한 키르케고르는 그리스도교로 다시 돌아온다. 그는 그리스도교는 역설이라는 신념으로 철저히 무장하고, 레기네 올센과의 약혼을 파기하면서까지 당시 덴마크 지성계를 지배하고 있던 합리주의의 전형인 헤겔주의를 공격하는 데 몰두한다. 이런 공격의 일환으로 1843년에 내놓은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필두로 그는 10여 년에 걸쳐 수십 편에 달하는 작품들을 쏟아낸다.
《반복》, 《두려움과 떨림》, 《불안의 개념》, 《철학적 조각들》, 《철학적 조각들에 대한 결론으로서의 비학문적 후서》, 《사랑의 역사》, 《그리스도교적 강화집》, 《죽음에 이르는 병》 등이 이 시기에 나온 키르케고르의 대작들이다.
그는 세속에 물든 덴마크 국교회와 치열하게 싸우다 1855년 마흔넷의 나이로 외롭게 세상을 떠난다. 그는 세상을 떠나며 폭탄이 터져 불을 지를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의 예언대로 그의 사상은 현대 실존주의 철학과 변증법적 신학에 불을 댕겼다. 이제 그의 사상을 빼고 현대 실존주의 철학과 변증법적 신학은 말할 것도 없고, 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현대 철학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옮긴이
고려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1992년에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논문 <키에르케고어의 자기의 변증법>은 키르케고르 실존철학의 핵심인 실존의 3단계의 변증법적 구조를 다루고 있다. 또한 그는 키르케고르 실존철학에 관한 논문을 여러 편 썼으며, 저서로는 《헤겔에서 리오타르까지》(공저, 지성의샘, 1994), 《공간 물질, 시간 정신, 그리고 생명 진화》(공저, 북스힐, 2007) 등이 있다. 역서로는 《니체》(지성의샘, 1993), 《반철학으로서의 철학》(공역, 지성의샘, 1994), 《직업윤리》(공역, 군산대학교 출판부, 1995), 《하이데거》(지성의샘, 1996), 《스칸디나비아 철학》(공역, 지성의샘, 1996), 《라틴아메리카 철학》(공역, 지성의 샘, 1996), 《불안의 개념》(한길사, 1999), 《키에르케고르》(시공사, 2001), 《철학의 거장들 3》(공역, 한길사, 2001), 《유혹자의 일기》(공역, 한길사, 2001), 《키에르케고르, 코펜하겐의 고독한 영혼》(한길사, 2003), 《카사노바의 귀향》(신아출판사, 2006), 《죽음에 이르는 병》(한길사, 2007), 《결혼에 관한 약간의 성찰》(지식을만드는지식, 2008), 《주체적으로 되는 것》(공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08), 《키르케고르》(웅진지식하우스, 2009), 《두려움과 떨림》(지식을만드는지식, 2009) 등이 있다. 현재 군산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다.
차례
조율(調律)
아브라함에 대한 찬미
문제들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으며 또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네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서 거기에서 내가 일러주는 산에 올라가 그를 번제물로 나에게 바쳐라.’”
2.
나로 말하자면, 내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갈 용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나는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또 만일 내가 그런 두려움과 맞닥뜨리더라도, 나는 적어도 다음과 같이 말할 진실성을 가지고 있기를 희망한다. “이런 생각이 나를 두렵게 만들고, 나를 겁에 질리게 하며, 또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생각하지 않겠다. 만일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면, 나는 벌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