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영국에서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널리 읽히는 작가인 제인 오스틴의 첫 소설이다. 그녀의 나이 불과 20세 때 쓰인 이 소설은 이후 오스틴 소설에서 제기되는 당대 여성들의 삶의 조건에 대한 관심이 이 책에서부터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여 준다.
소설의 주인공인 두 자매, 엘리너와 마리앤의 삶은 부친이 사망하면서 하루아침에 갑자기 달라진다. 장자 상속법에 따라서 이복오빠가 모든 것을 물려받게 된 것이다. 오빠는 아버지 임종 전, 여동생들과 어머니를 잘 돌보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아내 루시 스틸의 말에 설득되고 만 것이다. 그렇게 자매들과 어머니는 오래 살아온 놀런드 파크에서 쫓겨나다시피 해서 바턴 코티지로 이사하고 연 500파운드의 수입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처지가 된다. 이제 아가씨들에게는 생활 기반을 확보해 줄 결혼이 무엇보다도 절실한 필요조건이 된다.
‘고결한 마음을 잃지 않으면서 여성에게 특히 가혹한 사회적, 금전적 체제에서 생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금전 지향적 사회에서 어떻게 낭만적 사랑을 이룰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 이 소설은 지극히 현실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며 낭만적 사랑을 해체한다. 제인 오스틴은 파렴치하게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재산 사냥꾼들이 난무하는 물질 지향적인 사회에서 물적 기반이 없으면서도 비물질적인 가치를 잃지 않고 자기를 지켜 나가려는 여자들의 삶을 그리며 그들이 처한 사회적 제약뿐 아니라 그들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다양한 심리와 동기, 약점과 허위의식까지 정직하게 그려 나간다.
200자평
제인 오스틴이 스무 살에 쓴 첫 장편소설이다. 원래 서간체로 집필되었다가 서술체로 개작된 이 책은 이후 그녀의 소설에서 다양하게 변주되어 나타날 주제들을 예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높다. 오스틴의 작품 세계를 구성하는 경쾌한 세태 풍자와 아이러니, 젊은 남녀들의 로맨스 구도, 여성의 삶의 조건에 대한 관심, 인식과 착오의 문제 등을 이 책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원전의 주요 부분을 약 1/3 발췌했다.
지은이
제인 오스틴(Jane Austen, 1775∼1817)은 1775년에 스티븐턴 교구 목사의 일곱 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열두 살 때부터 시와 단편소설, 희곡을 쓰기 시작했고, 스무 살에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해 1795년부터 1799년 사이에 《오만과 편견》, 《분별력과 감수성》, 《노생거 사원》을 완성했다. 1800년 부친의 은퇴와 더불어 바스로 이주하고, 1805년 부친의 사망 후 셋집과 친척 집을 전전하다가 1809년에 오빠 에드워드의 집이었던 초턴의 코티지에 정착할 때까지는 작품 활동이 그리 왕성하지 못했다. 초턴에서 생애의 마지막 8년 동안, 오스틴은 《맨스필드 파크》, 《에마》, 《설득》을 완성할 수 있었고 1816년 마흔두 살의 나이에 병으로 사망했다.
오스틴은 생전에 발표된 작품들이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사후에는 찰스 디킨스와 조지 엘리엇 등 빅토리아조의 소설가들에게 가려서 그리 인정을 받지 못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조지 헨리 루이스와 헨리 제임스와 같은 평자들의 높은 평가에 힘입어 문학 정전의 반열에 들었으며 대중에게도 큰 인기를 얻었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오스틴의 작품은 수백만의 열광적인 독자들을 확보했고 영화, 연극, 드라마 등에서 무수히 개작되면서 대중적인 문학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옮긴이
이미애는 현대 영국 소설 전공으로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동 대학교에서 강사 및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조지프 콘래드, 존 파울즈, 제인 오스틴, 카리브 지역의 영어권 작가들에 대한 논문을 썼고, 역서로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등대로》, 《런던 거리 헤매기》, 《지난날의 스케치》, 《올랜도》, 조지 엘리엇의 《아담 비드》, 조지프 콘래드의 《노스트로모》, 제인 오스틴의 《설득》, 《에마》, J. R. R. 톨킨의 《호빗》, 《반지의 제왕》(공역), 《위험천만 왕국 이야기》, 《톨킨의 그림들》, 토머스 모어의 서한집 《영원과 하루》, 리처드 앨틱의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과 사상》 등이 있다.
차례
제1부
제2부
제3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맏딸 엘리너는 열아홉 살이었지만 어머니의 조언자가 되기에 손색이 없을 만큼 강한 분별력과 냉정한 판단력을 갖고 있었다. 엘리너의 마음은 탁월했다. 애정이 깊고 감정이 강렬했지만, 그 감정을 억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마리앤은 엘리너와 비슷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그녀는 판단력이 있고 영리했다. 하지만 모든 점에 열정적이어서 그녀의 슬픔이나 기쁨에는 절제가 없었다. 관대하고, 다정하고, 감정이 풍부했지만, 신중하지는 않았다. 놀라울 만큼 그녀는 어머니를 닮았다.
2.
마리앤 대시우드의 운명은 참으로 특이한 것이었다. 자신의 견해가 틀렸음을 알게 되고 자기가 좋아하던 금언을 바로 자신의 행동으로 부정하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그녀는 열일곱이라는 성숙한 나이에 느낀 애정을 극복하고, 존경심과 호감보다 더 우월한 감정을 느끼지 않으면서 자발적으로 결혼에 동의하는 운명을 타고 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