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보편 철학으로서의 예술철학
프리드리히 셸링은 심리적·감각적 방식으로 예술을 고찰한 기존의 ‘미학(Aesthetik)’을 철저히 거부한다. 셸링에게 그것은 ‘예술 없는 예술 이론’이었다. 따라서 셸링은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예술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예술학을 정초하려 했다. 그 답으로서 셸링이 제시하는 예술철학은 철학의 한 갈래가 아니라 보편 철학 그 자체다.
셸링은 그의 예술철학에서 보편성과 절대자, 전체의 이념을 역설한다. 그러나 그는 개별적인 특수자를 단순한 부분이나 무의미한 복제물로 여기지 않으며, 더 나아가 양자 사이의 경계를 깨뜨린다. 보편은 특수 안에서, 무한자는 유한자 안에서 둘은 살아 있는 통일성으로 결합한다. 즉 부분 안에 온전한 전체가 들어 있는 것이다. 예술은 미적 직관에 따라 절대자의 이념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우리에게 제시한다. 즉, 예술철학의 과제는 이상 속에서 예술 안에 있는 실재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된 예술학은 철학 자체와 완전한 일치를 이룬다.
셸링 철학의 목적과 의의
18세기 후반의 유럽은 새로운 이성적 세계관에 대한 확신이 가득했다. 이 세계관은 이론과 실천, 자연과 정신, 개별과 보편, 주관과 객관, 자유와 필연, 존재와 사유 등 다양한 이원론 위에 세워졌다. 그러나 세계는 그렇게 딱 나누어떨어지지 않는 부분을 서서히 드러냈고, 각종 모순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철학은 모순과 대립을 인정하고 다루는 동시에 양극을 통일할 수 있는 논리가 필요했다. 이러한 요청에 부응해 등장한 것이 변증법적 논리고, 독일관념론자들은 변증법적 사유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독일관념론 철학자 중 하나인 셸링은 이원론적 대립이 동일성으로 극복될 수 있으며, 동일성의 완성은 전체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동일성을 통해 이원론을 극복하는 것이 셸링 철학의 목적이었다. 이 책은 대표적인 독일관념론 철학자 중 하나인 셸링이 어떤 체계적 구축을 통해서 이원론을 극복하는가, 그리고 그 극복의 완성 지점을 왜 예술철학에서 구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잘 보여 준다. 또 이 책은 음악·회화·조소 등 별개의 종으로 나뉘어 스타일이나 사회와의 관계 위주로 논의되어 왔던 예술을, 하나의 총체로서 철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틀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이 책은 ≪Philosophie der Kunst≫(Friedrich W. J. Schelling, Darmstadt, 1980)를 원전으로 삼아 전체의 약 10%에 달하는 분량을 발췌, 번역했다.
200자평
독일관념론 철학자 프리드리히 셸링은 세계의 수많은 대립과 모순이 통일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셸링은 이원론을 극복할 방법으로서 예술철학을 제시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예술철학은 철학의 한 갈래가 아닌 보편 철학으로, 그 과제는 이상 속에서 예술 안에 있는 실재를 표현하는 것이다. ≪예술철학≫은 셸링이 어떤 체계적 구축으로 이원론을 극복하는지, 그리고 그 극복의 완성 지점을 왜 예술철학에서 구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지은이
1775년 독일 뷔르템베르크의 레온베르크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숙했던 셸링은 15세에 튀빙겐대학교에 입학했다. 튀빙겐대학교에서 헤겔(Hegel) 및 횔덜린(Hölderlin)과 친구가 된다. 17세 때 이미 원죄에 관한 내용으로 학위논문을 썼으며, 1793년부터 지속적으로 일련의 철학 논문들을 발표해 독일 철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의 몇몇 글에서는 피히테의 영향이 많이 보이지만, 1797년에 발표한 ≪자연철학에 대한 이념(Ideen zu einer Philosophie der Natur)≫에서부터는 자신만의 고유한 철학 세계를 펼쳐 나가기 시작한다. 곧이어 1798년 괴테의 추천으로 예나대학교의 교수로 초빙된다. 그때 예나에는 독일철학의 리더였던 피히테가 있었는데, 피히테는 셸링의 우상이었으며 친구이기도 했다. 셸링은 예나에서 괴테, 실러, 슐레겔 같은 독일 낭만파 작가들과 사귀었으며, 그때 A. W. 슐레겔의 아내인 카롤리네 슐레겔을 만났다. 그녀는 1803년에 이혼하고 셸링과 결혼했다.
1802년과 1803년에 셸링은 헤겔과 함께 ≪철학 비판지(Kritisches Journal der Philosophie)≫를 제작했다. 헤겔은 셸링보다 다섯 살 위였지만 셸링을 친구이자 스승처럼 생각했고, 헤겔의 첫 번째 저술도 ≪피히테의 철학 체계와 셸링의 철학 체계의 차이(Differenz des Fichteschen und Schellingschen System der Philosophie)≫(1801)다. 그러나 튀빙겐대학교에서부터 맺어 온 셸링과 헤겔의 우정은 헤겔이 ≪정신현상학(Phänomenologie des Geistes)≫(1807)을 발표한 후 안타깝게도 깨지고 만다.
셸링은 1803년 뷔르츠부르크대학교로 자리를 옮겼고, 1806년에는 뮌헨으로 가서 바이에른 학술원 회원과 미술대학 사무총장을 지내게 된다. 에를랑겐대학교에서도 강의했으며, 1827년에는 뮌헨대학교 교수직을 맡고 미술대학 학장도 지내게 된다. 1841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베를린대학교로 셸링을 초빙했으며, 그는 그곳에서 1846년까지 교수직을 수행했다. 베를린에서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 중에는 나중에 유명해진 사람이 많았는데, 그중에는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엥겔스(Friedrich Engels),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 바쿠닌(Mikhail Bakunin)도 있었다. 셸링은 1854년 스위스의 바트 라가츠에서 죽었다.
대표작은 다음과 같다.
≪자연철학에 대한 이념(Ideen zu einer Philosophie der Natur)≫(1797)
≪자연철학의 체계에 대한 첫 번째 기획(Erster Entwurf eines Systems der Naturphilosophie)≫(1799)
≪선험적 관념론의 체계(System des transzendentalen Idealismus)≫(1800)
≪대학 수업 방법에 관한 강의(Vorlesungen über die Methode des akademischen Studiums)≫(1803)
≪인간 자유의 본질에 관한 철학적 탐구(Philosophische Untersuchungen über das Wesen der menschlichen Freiheit)≫(1809)
사후 출간된
≪예술철학(Philosophie der Kunst)≫(1859)
≪신화 철학(Philosophie der Mythologie)≫(1856)
≪계시 철학(Philosophie der Offenbarung)≫(1861)
등.
옮긴이
건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화여자대학교, 인천교육대학교, 아주대학교, 상명대학교, 건국대학교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셸링의 예술철학≫, ≪논리학의 이해≫, 역서로는 ≪인간의 이해력에 관한 탐구≫, ≪선험적 관념론의 체계≫, ≪인간 자유의 본질에 관한 철학적 탐구≫, 논문으로는 <셸링의 예술철학에 관한 존재론적 연구>, <셸링 자연철학에 있어서의 주관의 자기 전개>, <셸링의 예술철학에 대한 연구>, <셸링과 근대 합리론>, <셸링 사유에 있어서의 자유의 가능성으로서의 선과 악의 가능성에 관한 고찰> 등이 있다.
차례
서론
예술학을 개정하도록 만드는 동기
예술철학의 가능성
예술철학의 보편적 연역
제1장 예술철학의 보편적인 부분
제1절 예술 일반의 그리고 보편적인 것으로서의 예술의 구성
제2절 예술의 소재의 구성
1. 예술의 소재로서 신화학을 이끌어 냄
2. 신화학과 관련해 본 고대 시와 근대 시의 대립−종교철학적 전개
제3절 특수자 또는 예술형식의(특수한 예술 작품의) 구성
1. 예술 작품 일반론: 숭고함과 미의 대립, 소박함(Naiv)과 감상적임(Sentimental)의 대립, 스타일(Stil)과 작풍(Manier)의 대립
2. 미적 이념의 구체적 예술 작품으로의 이행
제2장 예술철학의 특수한 부분
제1절 실재적 계열과 이상적 계열의 대립에서 예술형식들의 구성
1. 예술 세계의 실재적 측면 또는 조형예술
2. 예술 세계의 이상적 측면 또는 언어예술(좁은 의미에서의 시
전체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누구든 예술철학이라는 개념 안에는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 것이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은 실재(das Reale)이며 객관적인 것(das Objektive)이고, 철학은 이상(das Ideale)이며 주관적인 것(das Subjektive)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예술철학의 과제를 잠정적으로 다음과 같이 규정할 수 있겠다. 즉, 예술철학의 과제는 이상 속에서, 예술 안에 있는 실재를 표현하는 것이다.(11쪽)
그래서 조형예술은 단지 죽은 말일 뿐이다. 그러나 조형예술 역시 말이고, 또 말함이다. 그리고 말이 더 완전하게 죽을수록−니오베의 입술에서 돌이 되어 버린 외침에 이르도록−조형예술은 자신의 방식에서 더 고차원적인 것이 된다. 반대로 저차원적인 단계인 음악에서는 죽음 속에 들어가서 살고 있는 것, 즉 유한자 속으로 들어가서 말해진 말은 아직도 울림(Klang)처럼 감지된다.(97∼98쪽)
이제 우리는 리듬은 첫 번째 차원이고, 전조는 두 번째 차원이고, 멜로디는 세 번째 차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음악은 첫 번째 차원을 통해서는 반성과 자기의식으로서, 두 번째 차원을 통해서는 감정과 판단으로서, 세 번째 차원을 통해서는 직관과 구상력으로서 규정된다. 우리는 우선 다음과 같은 것을 미리 말할 수 있겠다. 즉, 예술의 세 가지 근본 형식들 내지 범주들이 음악과 회화와 조소라고 할 경우에 리듬은 음악의 음악적인 것이고, 전조는 음악의 회화적인 것이고, 멜로디는 음악의 조소적인 것이다.(109쪽)
사람들은 만족이 자신이 사는 곳에 없음을 알고,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다 하고, 또 이 사람들은 저들을 행복하다고 하며, 모두들 똑같은 착각 속에서 살고 있는데 이 착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어리석은 자들이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2부 9장 어디에도 없는 만족>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