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중국문학사에서 소설은 오랫동안 문학의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소설이 문학의 한 형식으로 주목받게 되었던 것은 ≪삼국지≫를 비롯한 4대 기서의 출현 이후였다. 그러다 소설이 문학으로서 확실한 지위를 다진 것은 비로소 ≪유림외사≫에 오고부터다. 바꿔 말해 ≪유림외사≫는 소설의 융성에 기폭제 역할을 수행한 작품인 것이다.
‘유림(儒林)’이란 무사의 상대적 개념인 문사(文士) 계층을 망라하는 말이다. ‘외사(外史)’는 국가에 의한 공식적 역사기록인 정사(正史)의 상대적 개념으로 ‘개인에 의한 사실 기록’을 가리킨다. 즉 ≪유림외사≫는 작자 오경재가 공적인 세계로부터 한발 빗겨난 곳에 서서 지식인 사회[儒林]의 심연을 들여다보며 기록한 소설인 것이다.
그 문법은 폭로다. 당시의 문사들은 오직 팔고문(八股文)이라는 정형화된 문장만을 그럴싸하게 지어 과거에 합격하는 것만이 인생에서 유일한 목표로 삼고 있었다. 하지만 팔고문을 중심으로 한 과거제도는 인재를 뽑는 것이 아니라 출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수준 낮은 문사들만을 양산하는 폐단을 낳았다. 오경재가 바라본 유림들의 세계란 철저하게 인간성이 파괴된 타락한 세계다.
그러한 세계 다른 한쪽에 우육덕(虞育德) 박사처럼 선인들의 가르침과 정신을 견지하며 살아가는 진정한 문사들의 세계가 있다. 그러나 그들의 세계는 저물어 가는, 스러져 가는 세계다. 팔고문의 세계에서 시문(詩文) 짓기란 비웃음을 살 뿐. 청대 타락한 지식인 사회에서 그들의 위치는 낙오자 혹은 정신 이상자의 그것에 불과하다. 오경재의 담담한 필치에는 그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쓸쓸함이 묻어난다.
형식상 장회(章回) 소설인 ≪유림외사≫는 그 구조가 아주 독특하다. 주인공도 없고 간단히 요약할 만한 줄거리도 없다. 소설 전체가 짧은 삽화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양한 계층의 여러 인물이 차례차례 등장해 자기 역할을 마치면 사라져 버린다. 이런 구성은 자칫 산만해 보일 수 있지만, 오경재는 오히려 이러한 구성을 통해 자유로운 공간을 조성하고 인물의 성격을 다채롭게 창조했다.
≪유림외사≫ 제1회에서는 원(元)나라 말기의 시인 왕면(王冕)의 일생을 묘사해 문사의 모범을 제시하고, 이어 제2회, 제3회에 범진, 주진과 같은 인물을 등장시켜 당시 사회가 양산한 전형적 인간형을 묘사했다. 회가 거듭하며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서 위선적이고 우둔하며 교활한 인물, 그리고 바른 심성을 가진 군자들의 모습이 대비하며 당시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이 책은 ≪유림외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에 해당하는 여섯 회를 발췌해 전문을 옮긴 것이다.
200자평
≪유림외사(儒林外史)≫는 ≪수호지≫, ≪홍루몽≫ 등과 함께 중국 6대 기서로 꼽히는 중국 최고의 고전이다. 작자 오경재는 스스로 체험했던 타락한 지식인 사회[儒林]의 모순적 현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그려낸다. 각 회마다 펼쳐지는 지식인 사회의 위선을 날카롭게 꼬집는 오경재의 필력. 독자들은 어째서 루쉰(魯迅)이 “오경재의 ≪유림외사≫가 나온 이후 비로소 중국에 풍자소설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극찬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
1701∼1754. 중국 청(淸)나라 사람으로 안휘성에서 태어났다. 18세기 중엽, 관직에 뜻을 이루지 못한 명문가의 후손으로 세태의 쓴맛 단맛을 몸소 겪으며 곤궁한 생활 속에 생을 마쳤다. 시문집으로 ≪문목산방집(文木山房集)≫이 있다. 고증에 따르면 ≪유림외사(儒林外史)≫는 작자의 절실한 체험을 바탕으로 쓴 것으로, 남경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설 속의 인물들은 작자 주변에 실존했다고 한다.
옮긴이
서울의 대동세무고등학교장을 역임했다. 개인 문집 ≪도연집(陶硯集)≫(2008)과 자서전 ≪陶硯勤學七十年 도연근학칠십년≫(2022)이 있다. 그리고 저서와 역서는 아래와 같다.
≪戰國策≫(全 3권), ≪완역 漢書≫(全 15권), ≪正史 三國志≫(全 6권), ≪완역 後漢書≫(全 10권), ≪十八史略≫(全 3권), ≪史記人物評≫, ≪史記講讀≫, ≪唐詩大觀≫(全 7권), ≪三國演義 원문 읽기≫(全 2권), ≪完譯 王維≫, ≪唐詩絶句≫, ≪唐詩逸話≫, ≪唐詩三百首≫(全 3권), ≪金甁梅 評說≫, ≪上洞八仙傳≫, ≪三國演義 原文 註解≫, ≪三國志 人物 評論≫, ≪水滸傳 評說≫, ≪三國志의 지혜≫, ≪中國人의 俗談≫, ≪三国志 故事名言 三百選≫, ≪三國志 故事成語 辭典≫, ≪東遊記≫, ≪聊齋誌異 요재지이≫, ≪神人≫, ≪儒林外史≫(全 3권), ≪孔子家語≫(상,하), ≪顔氏家訓≫(상,하), ≪孔子聖蹟圖≫, ≪論語名言三百選≫, ≪論述로 읽는 論語≫, ≪중국의 神仙 이야기≫, ≪아들을 아들로 키우기 / 가정교육론≫, ≪三国志에서 배우는 인생의 지혜≫, ≪中國人의 土俗神과 그 神話≫
차례
≪유림외사≫ 원서(原序)
제1회 설자로 큰 뜻을 설명하고, 명사의 행적으로 전문을 바로잡다(說楔子敷陳大義, 借名流隱括全文)
제2회 왕 거인은 시골 서당에서 급제 동기를 만나고, 주 훈장은 늙어 급제하다(王擧人村學識同科 周蒙師暮年得上第)
제3회 주 학도는 시험으로 참인재를 선발하고, 호 백정은 합격 통보 날에 폭행을 하다(周學道校士拔眞才 胡屠戶行凶鬧捷報)
제53회 국공부에서 설야의 술자리와 내빈루 등불에 꿈을 깨다(國公府雪夜留賓 來賓樓燈花驚夢)
제54회 병든 여인은 기루(妓樓)에서 점을 보고, 멍청한 사내는 기생에게 시를 바치다(病佳人靑樓算命 呆名士妓館獻詩)
제55회 네 사람의 이야기로 과거를 회상하고, 고산유수에 금(琴)을 타다(添四客述往思來 彈一曲高山流水)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남경의 명사들은 하나씩 사라져 갔다. 이 무렵 박사 우육덕(虞育德)과 가까웠던 명사들 중에는 노쇠해 출입을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이는 벌써 죽었거나 또는 사방으로 흩어졌고, 폐문하고 칩거하는 사람도 있었다. 풍류를 즐기는 재녀(才女)도 호걸 준재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예악(禮樂)과 문장을 논하며 열변을 토하는 현인군자도 만나 볼 수 없었다.
그 출신을 논한다면 관직을 얻은 이는 좀 유능한 사람이었고, 실의에 잠긴 사람은 좀 우둔했을 뿐이었다. 그 호협(豪俠)을 논한다면 여유가 있는 이는 멋을 좀 부린다 했고, 궁핍한 사람은 쓸쓸하게 처박혀 있을 뿐이었다. 그 시절 당신이 설령 이백(李白)이나 두보(杜甫) 같은 문재(文才)가 있었다 해도, 또 안자(顏子)나 증자(曾子) 같은 품행을 쌓았다 해도 어느 누구 하나 당신을 찾아와 학문과 도덕을 논하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소위 명문대가 집에 관혼상제나 회갑연이 있어 몇 사람이 둘러앉았어도 화제는 벼슬살이와 낙향, 승진했느니 아니면 좌천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뿐이었다. 당시에 가난한 유생들이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과거 급제였고, 그도 저도 아니면 권문세가에 아부하는 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