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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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론≫ 이전에 전쟁 이론은 대부분 전략 및 전술 중심의 테마로 구성되었으나 ≪전쟁론≫은 그 단계를 뛰어넘어 광범위하게 전쟁 자체의 현상, 구조, 내재적 역학, 그리고 전쟁과 사회의 관계 등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들을 다룬 점에서 선구적이었다. 또한 시대를 초월해 항구적 가치가 있는 이론들을 밝힌 것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전쟁론≫은 클라우제비츠가 집필하기 전에 그가 소망한 대로 “2∼3년 지난 뒤면 쉽게 잊혀버리는 것이 아니고 전쟁과 군사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두고두고 읽고 참고할 만한 책”으로서 최고의 고전이다.
클라우제비츠는 19세기의 이상주의 철학과 자신의 경험을 적절히 결합해서 자기 이론을 개발했다. 그는 전쟁의 중요한 요소들을 도출하고 그것들을 큰 구조 속에서 체계적으로 연결했으며 이론의 일반화를 위해서 실제 전투들을 참고하고 일부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실들을 반영했다. 그가 비록 7년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의 예를 특별히 많이 들었을지라도 그 목적은 단순히 당시 전쟁을 해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의 본질적인 문제를 규명하기 위해 그의 시대에서 좋은 예를 든 것에 불과했다. 전쟁의 본질 문제 가운데서도 특히 전쟁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그의 명쾌한 이론, 즉 전쟁은 수단이고 정치가 목적이라는 주장은 오늘날 불변의 명제가 되어 있다.
한편 전쟁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하는 방법에 대한 클라우제비츠의 이론은 그가 살았던 시대 이후 엄청난 기술 발전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다소 낙후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물질적인 요소들보다 사기, 용기, 희생, 리더십 등 정신적 요소들이라는 점을 강조한 그의 이론은 오늘날의 전쟁 기술에서도 지속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0자평
병법 차원의 방법론적 기술만이 아니라, 전쟁의 본질과 성격을 논함으로써 전쟁을 사회과학적 이론의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린 책이다. 이 발췌본은 전쟁의 본질과 성격을 논한 1, 2편과 결론에 해당하는 8편을 번역해 전쟁이 정치의 수단임을 알려 주고자 했다. 군사 이론가뿐만 아니라 정치학자나 사회학자들에게도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원서의 약 10%를 발췌해 옮겼다.
지은이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1780년 6월 1일 프로이센의 작은 도시 부르크에서 중산층 가정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12살의 나이에 소년병으로 입대한 그는 프랑스혁명 후에 프로이센이 프랑스와 벌인 싸움에서 처음으로 전투를 경험했으며 1831년 11월 16일 사망할 때까지 평생을 군에서 보낸 직업군인이었다.
그는 1803년 베를린 정규 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는데, 당시 프로이센군 개혁의 기수였던 사관학교 교장 샤른호르스트(Gerhard von Scharnhorst) 중령의 총애를 받았으며 졸업 후 장교 생활 중에도 줄곧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클라우제비츠에게 샤른호르스트는 그의 말대로 “정신적인 아버지이자 친구”였다.
임관하자마자 클라우제비츠는 샤른호르스트의 천거로 프로이센의 젊은 황태자 아우구스트(August) 장군의 전속부관으로 발탁되었다. 그 후 그는 궁중 출입을 자주 하면서 여왕의 시녀였던 마리 폰 브륄(Marie von Brühl)을 만나 결혼했다.
1806년 나폴레옹군과 맞서 싸운 아우에르슈테트(Auerstädt) 전투에서 그는 황태자 아우구스트와 함께 포로로 붙잡혀 1년 동안 파리에 억류되었다. 포로 생활을 마치고 귀환한 뒤 그는 샤른호르스트 장군의 핵심 참모로 기용되었으며 프로이센군의 개혁과 개편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일련의 개혁 논쟁에서 인력 정책과 군기 및 훈련 제도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당시 군내 분위기에서는 파격적인 주장을 많이 했다. 그 바람에 과격주의자라는 평판이 항상 따라다녔다.
그런데 클라우제비츠는 무엇보다도 프로이센 정부의 프랑스에 대한 굴욕적인 종속 상태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 침공 지원을 요구해 왔을 때 프로이센 정부가 너무 쉽게 그것을 수용하는 비굴한 모습을 보고서 그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조국의 군대를 떠났다.
1812년의 전쟁에서 그는 러시아군에 입대해 참전했다. 이때 그는 대령 계급이었지만 언어 장벽 때문에 관전자 이상의 주요한 직책을 맡지 못했다. 그러나 종전 무렵에 프로이센군 군단장 요르크 폰 바르텐부르크(Yorck von Wartenburg) 장군을 찾아가 나폴레옹 군대에서 이탈, 전향하도록 설득함으로써 프랑스군에 큰 타격을 입혔다.
프로이센이 드디어 1813년에 반기를 들고 대(對) 프랑스 전쟁에 가담함으로써 이보다 앞선 클라우제비츠의 행동들은 모두 정당화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Friedrich Wilhelm III)는 클라우제비츠의 프로이센군 복귀 요청을 상당 기간 동안 거절했다. 그의 과거 돌출적 행동에 대한 괘씸죄를 적용한 것이다.
프로이센군에 복귀한 클라우제비츠는 1815년 나폴레옹의 백일천하(百日天下) 시절에 제3군단 참모장으로 근무했다. 이 군단은 워털루(Waterloo) 전투에서 프랑스군의 그루시(Grouchy) 군단을 묶어 놓는 중요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연합군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뒤에 클라우제비츠는 프로이센 군부 내에서 늘 보수파로부터 심한 견제를 받아 최고위급 요직까지는 오르지 못했다. 1818년에 그는 당시 비교적 한가한 행정직인 베를린 사관학교 교장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덕분에 오랫동안 중단한 연구를 재개함으로써 한직은 오히려 그를 위대한 전쟁 이론가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그는 스승 샤른호르스트의 전기를 집필하고 그 밖에 많은 독창적인 정치 및 군사 관련 논문들을 저술했다. 그리고 역작 ≪전쟁론≫을 집필하는데 1819년부터 시작해 오랜 기간에 걸쳐 온 정열을 다 바쳤다. 하지만 초고 집필을 마친 뒤, 세심하게 수정 작업을 하던 중에 1831년 콜레라에 감염돼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결국 이듬해에 그의 부인이 유고를 모아 출판했다. 따라서 엄격히 말하면 ≪전쟁론≫은 하나의 미완성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옮긴이
정토웅은 육군사관학교에서 전쟁사와 군사사 과목들을 30년 이상 가르치고 정년 퇴임했다. 미국 캔자스주립대학교에서 군사사를 전공하고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20세기 결전 30장면≫, ≪세계전쟁사 다이제스트100≫, ≪역사 속의 전사들≫, ≪세계전쟁사≫(공저), ≪한국전쟁사≫(공저), ≪군사사상사≫(공저), ≪군사학 논고≫(번역), ≪전쟁과 리더십≫(번역) 등이 있다.
차례
제1장 전쟁의 본질
1. 전쟁이란 무엇인가?
2. 전쟁의 목적과 수단
3. 군사적 천재
4. 전쟁에서의 위험
5. 전쟁에서의 육체적 노력
6. 전쟁에서의 정보
7. 전쟁에서의 마찰
8. 결론
제2장 전쟁 이론
1. 전쟁술의 분류
2. 전쟁 이론
제3장 전쟁 계획
1. 군사적 목표에 대한 상세한 정의
2. 정치적 목적이 군사적 목표에 미치는 영향
3. 전쟁은 정치의 수단이다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전쟁은 결코 심심풀이가 아니고, 모험과 승리를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며, 또 무책임한 광신주의자들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중요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전쟁이 우연성의 게임과 같은 색채를 띤다든지 변화무쌍한 열정, 용기, 상상, 열광 등을 수반하는 것은 다만 전쟁 수단의 특성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