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마야문명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방대한 보고서
사람들은 마야문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현재는 중앙아메리카의 유명 관광지로 명성을 떨치고 있지만, 예전에는 셀바(중앙아메리카 아열대숲) 속에 숨겨진 채 사람들과 단절되어 있었다. 이를 처음으로 대중에게 소개한 책이 존 스티븐스와 프레더릭 캐서우드의 ≪중앙아메리카 치아빠스와 유까딴의 여행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전에도 몇몇 탐험가나 군인들에 의해서 마야문명에 관한 보고가 있었으나, 이를 방대한 내용으로 현실감 넘치는 이야기로 접근한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스티븐스는 1839∼1840년, 1841∼1842년, 두 번의 탐사를 했는데, 탐험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고고학 보고서의 느낌이 들 정도로 정확하게 유적을 묘사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도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벨리세, 온두라스, 과테말라의 셀바에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나 메리다와 같은 유까딴 북부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축제, 입는 옷, 음악 등은 모두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 당시 탐험하면서 있었던 생생한 이야기와 온갖 유적에 대한 빼어난 묘사는 마치 우리가 마야에 와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생생한 현장 그림
이 책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스티븐스의 동반자 캐서우드의 그림이다. 당시 잡풀에 둘러싸이거나 나무 그늘에 숨어 있던 고대 유물을 그리기 위해 캐서우드는 잡풀을 제거하고 조명을 만드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하루 종일 불편한 자세로 그림을 그리는 데 전념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마야문명의 생생한 현장을 더욱 살리기 위해서 캐서우드의 그림을 싣고 있다. 캐서우드는 유적에 대한 세세한 그림을 그림으로써 지금 마야의 유적을 독자들 눈앞으로 옮겨오고 있다.
원전은 방대한 분량의 책이다. 이 책은 첫 번째 탐사에서의 유적지를 발견하는 흥미로운 과정과 유적에 대한 감동, 두 번째 탐사에서의 좀 더 냉정한 태도로 유적을 객관적인 태도로 보고하며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최대한 살려 발췌했다.
200자평
‘이상한 나라’로 잊히던 마야문명을 대중에게 처음으로 소개한 책이다. 중앙아메리카에서 가장 찬란했던 마야문명은 이민족과 스페인의 침입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1839~1845년 작가이자 탐사가인 존 스티븐스와 화가인 프레더릭 캐서우드에 의해 되살아났다. 존 스티븐스는 미개척지의 새로운 모습을 생생하게 글로써 전달하고, 프레더릭 캐서우드가 사진처럼 정확한 그림을 더했다. 국내에 거의 소개가 되지 않은 마야문명을 탐험하기에 가장 적합한 책이다.
지은이
존 스티븐스는 1805년 11월 28일 뉴저지에서 태어났다. 컬럼비아 대학을 거쳐, 예일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리치필드의 태핑 리브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여, 1824년 변호사 자격을 땄다. 1827년에 뉴욕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1835∼1836년 사이에 유럽과 중동의 유적지를 방문한 뒤 여행기를 잡지에 기고했다. 이후 관심을 중남미로 돌려 1839년과 1841년에 중미의 마야문명 유적지를 방문하고 보고서를 출판했다. 이 책이 큰 성공을 거두고 난 후에 전화, 사진, 증기선, 철도 등의 다양한 사업에 참여하여 사업가로서도 성공을 했다. 나중에는 파나마 철도회사를 차려 운영했다. 1852년 10월 13일 집의 정원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영원히 깨어나지 못했다.
옮긴이
정혜주는 멕시코 국립 역사인류학 대학의 고고학과에서 공부했다. 1989∼1993년 사이에 마야문명의 유적지인 멕시코의 치첸 이쯔아와 쁠라야 델 까르멘에서 발굴과 토기 분석을 했다. 이후 멕시코 국립대학에서 중미학을 전공하고 치첸 이쯔아의 연대와 토기 분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멕시코시티≫, ≪옥수수문명을 따라서≫, ≪신들의 시간≫ 등 마야문명을 비롯한 메소아메리카 문명에 관한 저서를 발간하였으며, 현재 사이버경희대학교 강사로 있다.
차례
출발 : 벨리세에서
꼬빤
뻬드로 사바나에서 빨렌께로
유까딴으로 돌아가다
우슈말
지배자의 집
말라리아에 걸리다
마야의 책
마야의 샘
치첸 이쯔아
아깝 찝
까라꼴
성(Castillo−꾸꿀깐 신전)
전사의 신전
구기장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이윽고 일행은 강둑에 이르렀다. 맞은편에 높이가 30미터는 되어 보이는, 돌로 된 벽이 보였다. 벽은 강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이어졌는데, 무너진 곳도 있었지만 거의 완전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것에 대해서 묘사된 그 어느 것보다도 독특했다. “옛날의 도시… 꼬빤, 그 도시 외벽의 일부분이었다. 나는 홀연히 새로운 땅에 들어서고 있었다….
-33쪽
어떤 경로를 통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캐벗이 파리에서 공부한 외과의라는 것이 알려졌다. 마야 사람들에게는 사팔눈이 매우 흔하다. 마야 시대에는 사팔눈이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져 어릴 때 작은 물체를 가운데에 두고 보게 하여 일부러 사팔눈을 만들기도 했다. 캐벗이 눈 아래의 피부 가까이에 있는 힘줄을 분리하여 사팔눈을 고칠 수 있다고 하자 어머니가 아이의 손을 잡고 왔다. 그는 도끼나 마체떼 대신에 가는 해부칼을 들고 살짝 그었지만, 불행하게도 마취가 되어 있지 않았던 어린이는 눈가에 피를 흘리고 울부짖으며 일어났다. 그러나 이미 사팔눈은 아니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다음 날 일행의 방문 앞은 어른의 손을 잡고 서 있는 사팔눈 어린이로 가득 찼다. 캐벗은 메리다의 의사 두 명, 사제와 무뇨스(Mun?oz)의 도움을 받아 수술을 했는데 끝이 없었다. 캐벗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으나 다음 날 아침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문 앞에 몰려와 있었다.
-91쪽
마니(Mani)는 우슈말 근처에 있는 마을이다. 1571년, 스페인 정복자들이 메리다를 세운 지 29년째 되던 해에 이곳에서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마야와 스페인 사람들을 모아놓고 공개적으로 마야의 오래된 책인 고문서들을 불태운 것이다. 마야 사람들이 의식에 쓰는 향료와 집 안에 있던 작은 조상들도 다 부서지고 불태워졌다. 그리고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요구하는 종교재판이 이어졌다. 스페인 가톨릭 쪽에서는 우상숭배를 금지하고 복음화를 이룬다는 명분이었으나 마야 사람들은 그들의 과거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 후에도 마야의 지식인들은 스페인의 알파벳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했다.
-1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