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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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박은식이 중국에 망명한 뒤 집필해 1920년 12월 상해에 있는 유신사(維新社)에서 순한문으로 간행되었다. 내용은 갑신정변부터 3 · 1 운동기까지의 역사를 주제별, 사건별, 사실별로 분류해 상편(25장), 하편(31장), 부록(세계 여론)으로 구성했다.
상편은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혁명 운동으로 규정하고 갑신정변, 동학 농민 혁명 운동, 의병 투쟁, 독립 협회 운동, 105인 사건을 서술하면서 일제의 침략 과정을 기술했다. 특히 1910년대의 식민 통치를 토지 침탈, 회사령, 동화 정책, 종교 탄압을 중심으로 폭로했다. 하편은 3 · 1 운동 이전의 국내외에서의 독립운동, 3 · 1 운동기의 일제의 탄압 및 만행 사례, 3 · 1 운동 이후의 독립운동 실태(파리 강화 회의 청원 활동, 대동단, 여운형의 도일 활동, 청산리 대첩) 등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부록은 한국 독립운동에 대한 세계의 여론과 동향을 소개했다. 헐버트, 매켄지가 쓴 일제의 만행과 미국 상원의 한국 독립운동 보고서, 한국인의 독립운동에 관한 중국 · 영국 등의 언론 기사들을 수록했다.
국가와 역사와의 관계를 ‘형체’와 ‘정신’으로 비유한 박은식은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두 요소를 정신적인 ‘혼(魂)’과 물질적인 ‘백(魄)’으로 구분하고 ‘혼’이 멸하지 않는 한 ‘백’도 망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국혼이 멸망하지 않는 한 그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국사를 존속시키는 것이 국혼을 존재시키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한국통사≫와 함께 일본의 침략상을 전해 주는 생생한 자료이며 민족 운동가가 복원한 민족사학의 지표가 될 만한 저술로 높게 평가받고 있다. 즉, 대외적으로는 일제의 잔학상을 폭로하고 대내적으로는 국민에게 독립운동의 정신적 원동력을 공급하는 한편 일제에게 침략당한 아픈 역사적 교훈을 통해 반성을 촉구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후학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이 두 책은 한국 근대사의 고전으로 함께 연결해서 읽어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
200자평
역사가이자 독립운동가, 교육 사상가였던 박은식이 쓴 ‘독립 투쟁을 위한 혈투의 역사’다. ≪한국통사≫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일본의 침략상을 전해 주는 생생한 자료이며 민족 운동가가 복원한 민족사학의 지표가 될 만한 저술이다. 상편 25장, 하편 31장의 핵심 내용 10%를 골고루 뽑아 옮겼다. 1919년 3 · 1 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오늘, 우리가 꼭 읽고 바로 알아야 할 우리 역사다.
지은이
박은식(朴殷植, 1859∼1925)은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 호는 겸곡(謙谷) · 백암(白巖)이며, 필명으로 무치생(無恥生) · 태백광노 · 창해노방실(滄海老紡室) · 백치(白痴)를 사용했다. 그는 한국 근대사상 격동기에 활동한 유학자, 근대 학교 운동의 선구자, 교육 사상가, 언론인, 역사가로서 애국 계몽 운동과 독립운동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그리고 국내뿐만 아니라, 격동하는 중국으로 1911년 망명한 후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가 활동한 시기는 대내적으로 양반 중심의 지배 체제가 해체되면서 근대 사회로의 태동이 시작되는 한편, 대외적으로 서구 열강의 침략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우리의 자주 의식이 고양되는 때였다. 그의 생애는 제1기(1859∼1897)의 주자학 수학기, 제2기(1898∼1909)의 언론 활동과 계몽 운동기, 제3기(1910∼1925)의 망명과 독립운동기로 나눌 수 있다.
박은식은 어려서부터 주자학을 배우며 성장한 주자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신(新)문화와 다양한 사상을 접하면서 주자학 사상의 한계를 인식하고,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양명학(陽明學)으로 학문적 전환을 결단했다. 그는 이러한 사상적 변화와 함께 1898년 ≪황성신문≫의 주필이 되었으며 독립협회에도 가입해 활동했다. 그 후 경학원 강사, 한성사범학교 교관을 역임하면서 교육 개혁에 관한 글을 쓰고, 1904년 ≪학규신론(學規新論)≫을 간행했다. 1905년 일제가 한국을 강제로 보호국으로 만들자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서 이를 비판했다. 그는 이후 복간된 ≪황성신문≫에서 일제의 침략을 고발하는 항일 언론 활동을 1910년 폐간될 때까지 펼쳤다. 또한 1906년 교육 계몽 단체인 서우 · 서북학회의 기관지 ≪서우≫ · ≪서북학회월보≫의 주필로 논설을 써서 계몽 활동에 진력하고, 서우사범학교 · 오성학교 · 서북협성학교 교장으로서 교육에 힘썼다.
그는 1909년 <유교구신론(儒敎求新論)>을 발표해 유교 개혁을 주장했다. 이어 장지연(張志淵) 등과 함께 대동교(大同敎)를 창건해 유교 개혁 운동을 전개했다. 1910년에는 양명학 보급을 위해 ≪왕양명실기(王陽明實記)≫를 간행하고, 한문 교과서 ≪고등한문독본≫을 저술했다. 병합 후에는 독립운동과 국혼이 담긴 역사서의 집필을 위해 1911년 중국으로 망명했다. 만주의 환인현(桓仁縣)에 있는 윤세복(尹世復)의 집에 1년간 머물면서 저술에 집중했고, 대종교(大倧敎) 신도인 그의 영향으로 대종교에 입교했다. 이때 ≪동명성왕실기(東明聖王實記)≫, ≪발해태조건국지(渤海太祖建國誌)≫, ≪몽배금태조(夢拜金太祖)≫, ≪명림답부전(明臨答夫傳)≫, ≪천개소문전(泉蓋蘇文傳)≫, ≪대동고대사론(大東古代史論)≫을 집필했다.
1912년 상해로 가서 신규식(申圭植) 등과 함께 동제사(同濟社)를 조직하고, 동포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박달학원(博達學院)을 설립했다. 1914년에는 홍콩으로 가서 중국어 잡지 ≪향강(香江)≫의 주간이 되었다. 이 시기에 강유위(康有爲, 캉유웨이) · 양계초(梁啓超, 량치차오) · 당소의(唐紹儀, 탕사오이)를 비롯한 중국 혁명 동지회 인물들과 친교를 맺었다. ≪안중근전(安重根傳)≫을 저술하고, 망명 후에 꾸준히 집필하던 ≪한국통사≫를 간행했다. 상해에서 이상설(李相卨), 신규식, 유동열(柳東說) 등과 함께 신한혁명당(新韓革命黨)을 조직해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또 신규식 등과 함께 대동보국단(大同輔國團)을 조직해 단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이후 한국인촌의 여러 학교를 순회하면서 한국 역사에 대한 강연으로 독립 사상을 고취했다. 또 ≪발해사(渤海史)≫와 ≪금사(金史)≫를 한글로 번역하고, ≪이준전(李儁傳)≫을 저술했다.
박은식은 1919년 3 · 1 운동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맞았다. 이때는 대한 국민 노인 동맹단을 조직해서 활동했다. 1919년 8월 상해로 가서 임시 정부, 블라디보스토크의 대한 국민 의회 정부, 서울 한성 정부의 통합에 의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수립을 지원했다. 임시 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사장이 되었으며, 대한 교육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동시에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의 집필을 시작해 1920년 12월에 간행했다. 이후 ‘건국사’를 쓰고야 말겠다는 각오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24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 제2대 대통령에 추대되었으나 이듬해 11월 1일 서거했다.
옮긴이
최혜주(崔惠珠)는 숙명여자대학교 사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에서 한일 관계사를 전공해 석 ·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쿄대학 문학부 외국인연구원, 숙명여자대학교와 한양대학교의 학술연구교수를 지냈다. 지금은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저서로는 ≪창강(滄江) 김택영(金澤榮)의 한국사론≫(1996), ≪한국 근대사와 고구려 · 발해인식≫(2005, 공저), ≪일본의 한국 침략과 주권 침탈≫(2005, 공저), ≪근현대 한일 관계와 국제 사회≫(2007, 공저), ≪최남선 다시 읽기≫(2009, 공저), ≪한국 근현대사를 읽는다≫(2010, 공저), ≪여행의 발견 타자의 표상≫(2010, 공저), ≪근대 재조선 일본인의 한국사 왜곡과 식민 통치론≫(2010), ≪문교의 조선≫(2011, 편저), ≪일제의 식민 지배와 재조 일본인 엘리트≫(2018, 공저), ≪정탐−제국 일본, 조선을 엿보다≫(2019)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일본 망언의 계보≫(1996), ≪일본의 근대 사상≫(2003), ≪일본의 군대≫(2005), ≪조선 잡기(朝鮮雜記)−일본인의 조선 정탐록≫(2008), ≪일본인의 조선관≫(2008), ≪조선인의 일본관≫(2008), ≪만주국의 탄생과 유산−제국 일본의 교두보≫(2009), ≪인구로 읽는 일본사≫(2009, 공역), ≪일본 망언의 계보 개정판≫(2010), ≪일본의 식민지 조선 통치 해부≫(2011), ≪아시아 · 태평양 전쟁≫(2012), ≪식민지 조선과 일본≫(2015), ≪조선 시베리아 기행≫(2016) ≪원서발췌 한국통사≫(2018) 등이 있다.
한말 · 일제 강점기 일본인의 한국사 왜곡과 일본인의 조선 사정 조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 근대 사상사, 한일 관계사, 재조 일본인의 활동과 조선 인식, 역사 교과서 문제 등에 관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차례
한국 독립운동사 서(序)
서문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상편
서언
제1장 우리 민족의 약력
제2장 갑신 독립당의 혁명 실패
제3장 갑오 동학당의 대풍운
제4장 일본인의 민비 시해와 유림 의거
제5장 독립 협회의 활약
제6장 일본인의 이권 침탈과 의정 6조 체결
제7장 보호 늑약(保護勒約)에 대한 국민의 통곡
제8장 만국 평화 회의 밀사
제9장 이토의 양위 강요와 7조약의 강제 체결
제10장 이토의 군대 해산과 박승환(朴勝煥)의 자결
제11장 각지 의병의 저항
제12장 이토의 육군 · 사법 양부 폐지
제13장 세계를 진동한 의협(義俠)의 목소리
제14장 병합 후에 순절한 지사들
제15장 120인의 데라우치 암살 미수 사건
제16장 포악한 총독 정치
제17장 불법적인 사법 제도
제18장 헌병 경찰 기관의 확대
제19장 헌병 경찰의 야만과 불법
제20장 각 관서의 한국인 배척
제21장 동양 척식 회사
제22장 한국인 기업의 억압
제23장 한국인의 사유 재산 감시
제24장 교육의 동화 정책
제25장 종교의 박멸 정책
한국독립운동지혈사 하편
제1장 한일 국민성의 어긋남
제2장 독립운동을 촉진한 세계 개조의 신문화
제3장 서울의 독립운동 본부와 학생 단체
제4장 독립운동을 위해 희생된 태황제(太皇帝)
제5장 재외 한국인의 활동
제6장 독립운동 본부의 시위운동
제7장 독립운동 일람표
제8장 의주 · 평양 · 진주의 운동 상황
제9장 미국 선교사의 수난
제10장 재외 동포의 독립 선포
제11장 상해 임시 정부 의정원(議政院)
제12장 일본인의 야만적인 살육
제13장 일본인의 만행
제14장 일본의 간교한 술책
제15장 우리 대표가 파리 회의에 제출한 청원서
제16장 각 방면에서의 호소
제17장 각국 사람의 동의
제18장 부녀자와 아동들의 애국열
제19장 강우규(姜宇奎)의 사이토 저격
제20장 의친왕과 대동단
제21장 북한 의병단의 활동
제22장 여운형(呂運亨)의 도일(渡日) 활동
제23장 일본 군인의 노령 한인 동포 학살
제24장 연통제(聯通制) 재판
제25장 대한 광복군의 활약
제26장 서상한(徐相漢) · 김영철(金榮哲) · 박재혁(朴在赫) 열사
제27장 미국 의원단의 내한(來韓)
제28장 혼춘(琿春) 약탈 사건과 일본 군대의 강점
제29장 우리 의병의 뛰어난 전공
제30장 왜적의 우리 양민 대학살
제31장 일본군의 죄악에 대한 서양 신문의 평론
결론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나는 우리나라가 반드시 광복의 날을 맞이할 것을 믿는다. 또한 일본은 장래 반드시 패망할 날이 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대체로 나라끼리 힘을 가지고 경쟁하는 세계에서 약자가 강자에게 병탄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다. 그러나 민족의 발전 정도가 같고 종교, 역사, 언어, 문학, 풍속 등에 국혼이 깃들어 없어지지 않는 나라는 일시적으로 병탄되더라도 거기서 벗어나 독립한 것을 세계의 역사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우리의 민족성은 모든 면에서 다른 종족과 구별되어 왔다. 여러 요소가 우리의 국혼을 강하게 만들었으므로 다른 종족에 동화될 수 없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광복할 날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