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기호학적 해석을 통해서 드러나는 이야기의 심연
『김비서가 왜 그럴까』, 『내부자들』 등 웹툰+드라마+영화 재밌게 해석
기호학은 표층에서 심층을, 즉 의미를 길어내는 작업이다. 소쉬르는 기표와 기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기의를 결정하는 것은 기표다. 표현과 내용은 기표와 기의의 다른 말이다. 이 책은 표현과 내용, 소리공간과 이미지공간, 사이공간, 횡단의 독서, 초점화, 디제시스, 약호, 외연과 내포, 서사의 시간 등과 같은 기호학적 해석의 도구를 가지고 웹툰과 영상을 읽는 방법들을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분석 대상은 <김비서가 왜 그럴까> <타인은 지옥이다> <신과함께> <스위트홈><내부자들> 등 미학적으로도 완성도가 높고 대중적으로 인정받은 최신 작품들이다. 이러한 기호학적 해석작업을 통해서 우리는 표면적인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이야기의 심연으로 들어가며 독창적인 작품을 창작할 수도 있다.
<신과 함께>는 불교의 ‘화탕영도’라는 문화약호를 웹툰과 영화라는 미디어형식에 맞는 특정약호로 변환했다. 또 저승과 이승의 교차편집은 이승과 저승이 긴밀히 얽혀있다는 내포를 갖는다. 영화 <내부자들>은 3년이라는 기의의 시간을 3시간이라는 기표의 시간 안에 배치하면서 영화의 리듬을 결정한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픽션 세상, 소리 공간 및 이미지 공간에 대해 논하기 좋은 작품이다. <타인은 지옥이다>는 사이 공간에서 어떤 의미작용이 발생하는지와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작품 진행 또는 표현 형식을 찬찬히 살펴보는 횡단의 독서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다. <스위트홈>에서는 누구의 관점에서 사건을 이야기하는지와 픽션 세상의 현실 효과와 환상 작용을 들여다본다.
웹툰과 영상은 언어와 이미지라는 표현형식을 가지고 이 둘의 상호보완적 관계가 기호학적 해석을 할 때 주요한 분석 대상이 된다. 서사공간 디제시스란 허구의 캐릭터를 마치 실존하는 인물처럼 여기고 우리가 그들의 삶에 몰입하게 하는 현존감을 가진 것이다. 이를 위해서 웹툰과 영화는 소리를 각각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재현하고, 또 요소를 프레임 안에 배치하는 미장센을 통해 칸과 컷을 연결한다. 이 이미지공간과 소리공간의 연결은 시간의 흐름을 갖는 표현이다. 몽타주의 대상은 칸과 컷의 사이공간이며, 프레임간의 흐름을 잇는 이 사이공간은 인지적 참여공간이기도 하다. 만화기호학에서는 내러티브의 변화가 크지 않을 경우 단순히 이야기가 진행되도록 돕는 사이공간을 ‘무능여백’이라고 하고, 사이공간이 그 자체로 의미를 만들며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제공할 때 ‘창의여백’이라고 한다. 영상에서는 디졸브, 페이드인·아웃, 시간역행 등이 창의여백의 기능을 갖는다. 종의 흐름이 지배적인 웹툰에서 종단의 독서는 이야기의 흐름을 최우선으로 하는 감상법이며, 횡단의 독서는 내면을 묘사할 때 느린 리듬의 맴도는 인상을 가진 흐름이다. 횡단의 독서에서는 내면을 살펴보고 감정을 공유하기 쉽다.
기호학으로 웹툰 또는 영상 보기는 ‘콘텐츠를 하나의 의미작용 시스템으로 보고 해석한다’는 뜻이다. 어떤 해석이 옳은가의 문제는 없다. 해석이 얼마나 논리적이고 체계적인가가 관심사다.
200자평
『김비서가 왜 그럴까』, 『타인은 지옥이다』 등 인기 웹툰과 이를 영상화한 작품을 중심으로, 기호학의 핵심 개념을 활용하여 작품의 재미를 설명한다. 기호학으로 웹툰 또는 영상 보기는 ‘콘텐츠를 하나의 의미작용 시스템으로 보고 해석한다’는 뜻이다. 어떤 해석이 옳은가의 문제는 없다. 해석이 얼마나 논리적이고 체계적인가가 관심사다. 우리가 엮어낸 다층적인 해석은 전체적인 문화 약호와 미디어 각각의 특정 약호 체계를 파악하는 초석이 된다. 독창적인 작품은 기존의 약호를 비틀고 ‘새로 고침’하며 의미작용 시스템을 풍부하게 한다. 겉에서 속으로, 안에서 밖으로, 시스템에서 개별 콘텐츠로, 미시적 차원에서 거시적 차원으로, 모든 방향을 횡단하며, 우리가 대면하는 표층을 관찰하고 너머에 자리한 심층의 의미작용을 추적한다.
지은이
이수진
인하대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교수다. 서강대 불문과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프랑스 파리 8대학 불문과에서 이미지 기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 인문과학원 연구교수와 서강대 프랑스문화학과 연구교수를 지냈다. 기호학, 만화, 영화, 게임, 사이언스픽션, 테크놀로지 인문학 연구의 크로스오버를 도모한다. 저서로 『사이언스픽션, 인간과 기술의 가능성』(2017), 『크리스티앙 메츠』(2016), 『기호와 기호 사이, 이미지들 너머』(2013), 『만화기호학』(2004), 역서로 『영화의 의미작용에 관한 에세이 1, 2』(2011), 『상상적 기표』(2009) 등이 있다. 최근 논문으로 “인터랙티브 무비의 종단과 횡단의 플레이”(2020), “<블레이드 러너 2049>에 드러난 ‘약함(vulnerability)’의 영화 기표 연구”(2020), “개인화된 영상 : Searching의 이미지 기억과 라이브 스트리밍”(2019), “시뮬라시옹과 포스트-재현”(2018) 등이 있다.
차례
기호학 개념으로 웹툰·영상 분석하기
01 웹툰과 영상
02 웹툰과 영상의 디제시스, 그리고 소리 공간
03 프레임과 이미지 공간
04 사이 공간, 무능 여백과 창의 여백
05 종단 독서와 횡단 독서
06 초점화와 동일시
07 디제시스적 환상
08 문화 약호와 특정 약호
09 외연과 내포
10 내러티브의 형식과 서사의 시간
책속으로
기호학의 분석 과정은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을 면밀히 관찰하는 일부터 시작해, 이를 근거로 심층의 내용과 의미를 통찰하는 방식이다. 요컨대 기호학을 기반으로 웹툰 또는 영상을 보는 일은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이루어진다.
_ “01 웹툰과 영상” 중에서
영상에는 무능 여백에 해당하는 스트레이트 컷 이외에도 급작스럽게 시공간을 뛰어 넘는 편집이라든지 디졸브되거나, 페이드인·아웃되거나, 또는 시간을 역행하는 방식 등 다양한 기법이 사용되고 있으며, 그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요컨대 창의 여백의 경우 사이 공간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맥락을 고려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책임져야 한다.
_ “04 사이 공간, 무능여백과 창의여백” 중에서
내면을 묘사하는 연출 방식은 사건과 행위를 빠르게 전개시키는 방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독서리듬이 느리고 심지어 제자리에 맴도는 인상을 남긴다. 만약 독자가 이미지로 표현된 종우의 내면을 찬찬히 살펴보고 유사한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면, ‘횡단의 독서’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_ “05 종단의 독서, 횡단의 독서” 중에서
드라마에서는 웹툰의 독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상상한 크리처들의 소리와 움직임이 시청각적으로 형상화되면서 디제시스적 환상을 작동시킨다. 설사 원작을 모른 채 드라마를 봤을지라도, 인간일 때의 욕망을 상상해 움직임을 구현한 창작 심급의 디제시스적 환상이 우리에게도 통하게 된다.
_ “07 디제시스적 환상” 중에서
이때 아우성 소리와 긴박한 분위기의 음악은 앞선 화탕영도 신처럼 청각적으로 동일한 의미를 강조하는 방식이다. 역동적인 카메라의 움직임과 웅장한 분위기의 음악은 특정 약호에 해당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문화 약호에 기반을 두고, 각 미디어에 맞는 특정 약호를 적절하게 사용한 점이 <신과 함께>를 보는 즐거움이라 할 것이다.
_ “08 문화약호와 특정약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