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유대인 과부≫는 1904년에 초고를 완성하고, 1908년 개작을 거쳐 1911년에 피셔 출판사에서 정식으로 출판되었다. 오랜 습작 기간을 거친 후 처음으로 자신의 독자적인 극작 스타일을 제시한, 최초의 성공적인 작품이다.
유디트는 성전에서 율법과 주님의 뜻이라는 명목 아래에 늙은 율법학자와 원치 않는 결혼을 한다. 그러나 유디트는 정작, 이 율법이 자신의 깨어나는 성욕을 충족시켜줄 수 없고 도시를 적으로부터 지켜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유디트는 이 도시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에게 버려졌다는 망언을 하고, 원하는 남자를 찾기 위해 도시를 포위한 적들의 막사로 간다. 유디트는 적진에서 자신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남자 홀로페르네스와 네부카드네자르를 만나고 기뻐하지만, 네부카드네자르의 환심을 사기 위해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어, 본의 아니게 그들을 몰아내게 된다.
도시로 돌아온 유디트는 도시를 구한 업적에 대한 포상 대신 그녀가 계율을 어겼는지에 대한 재판을 받게 된다. 사람들은 그녀가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베기 위해 그와 잠자리를 가졌다고 추측하지만 재판에서 그녀가 처녀임이 밝혀지자 금세 성녀로 추앙받는다. 그러나 유디트는 남자를 곁에 둘 수 없는 성녀의 길을 강하게 거부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성전에서 비로소 자신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젊은 대사제 요야킴을 만나고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이 이야기의 율법과 인습, 유디트의 운명은 가히 모순적이다. 율법과 인습은 한 소녀의 욕구조차 해결해줄 수 없다. 율법에 의한 오랜 단식으로 건강한 남자가 없는 환경이 만들어졌고, 율법 안에 갇혀 현실을 보지 못한 도시의 지도자들은, 도시를 지키지 못하고 적장 홀로페르네스에게 넘겨주기로 약속한다. 이후 도시는 약하디약한 소녀 유디트가 구하는데, 이 영웅마저도 율법을 준수했는지 여부로 재판을 받게 된다. 재판 후 유디트는 율법이 받드는 ‘성녀’로 여겨지지만, 성녀라는 거창한 것도 유디트를 행복하게 해 주진 못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유디트는 그 율법과 인습의 최고층에 위치한 대사제에 의해 구원받게 된다. 그에 의해 낡은 서판이 깨부숴졌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계명이 신성시되고 진리가 사라진 세태를 “오, 나의 형제들이여, 깨부수어라, 낡은 서판들을 깨부수어라!”라고 한탄했듯, 낡은 서판은 곧 ‘지켜야 할 것과 지키는 것의 괴리’ 그 자체이다.
종교적 계율에 대한 플롯이라 동떨어져 보이나, 국민을 위해야 할 법이 억울한 사람을 만들고 솜방망이 처벌을 행하는 우리 세태와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양한 상황이나 급격한 시대 변화를 아우르지 못하는 경직된 현대 사회의 법은 낡은 서판의 현재진행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자평
성서에서 유디트는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어 베툴리엔을 구해 낸 과부로 나타난다. 구스타프 클림트, 크라낙 등의 화가들은 이 일화를 소재로 유디트를 형상화했다. 한편, 게오르크 카이저는 이런 유디트를 기적을 일으킨 성녀의 모습이나 용감하게 적장에 다가선 팜므파탈의 모습이 아닌, 성욕에 눈을 뜬 소녀로 재해석해 풍자함으로써 계율과 인습으로 순환하는 사회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지은이
게오르크 카이저(Georg Kaiser)는 1878년 11월 25일 마그데부르크에서 상인 프리드리히 카이저와 그의 부인 안토니 안톤의 여섯 아들 중 다섯 번째로 태어났다. 그는 교사와 교육과정에 대한 불만으로 김나지움을 중퇴한 후 3년간 상업수업을 받았다. 서점과 수출입상에서 견습사원으로 일하면서도 항상 플라톤과 니체를 읽고, 바흐와 베토벤의 음악을 듣기를 좋아했다. 1898년에 카이저는 석탄 운반 인부로서 화물선을 타고 남아메리카로 가서 3년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아에게(AEG) 지사의 경리 사원으로 일한다. 그러나 말라리아에 걸려 스페인, 이탈리아를 거쳐 다시 독일로 돌아와서는 주로 마그데부르크에 머물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 25세에 첫 작품으로 희비극 ≪클라이스트 교장≫을 발표했다. 1908년 10월에 카이저는 부유한 상인 가문 출신의 마르가레테 하베니히트(Margarethe Habenicht)와 결혼하여 제하임 안 데어 베르크슈트라세로 이사했으며, 1911년부터는 바이마르에도 겨울 저택을 갖게 되었다. 1915년에 처음으로 그의 작품 <학생 페게자크 사건>이 빈에서 공연되었다. 1917년 ≪칼레의 시민들≫과 ≪아침부터 자정까지≫의 초연으로 카이저는 극작가로서 최초의 성공과 명성을 얻는다. 이후 카이저의 작품 중 40편 이상이 세계 각국에서 초연을 갖게 됨으로써 명실상부한 세계적 극작가로 부상한다.
옮긴이
김충남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본 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수학했으며, 뷔르츠부르크 대학 및 마르부르크 대학교 방문교수, 체코 카렐대학교 교환교수를 지냈다. 1981년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재직하면서 외국문학연구소장, 사범대학장,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세계의 시문학≫(공저), ≪민족문학과 민족국가 1≫(공저), ≪추와 문학≫(공저), ≪프란츠 카프카. 인간· 도시·작품≫, ≪표현주의 문학≫이, 역서로는 게오르크 카이저의 ≪메두사의 뗏목≫, ≪아침부터 자정까지≫, ≪병사 다나카≫, ≪구원받은 알키비아데스≫, 페터 슈나이더의 ≪짝짓기≫,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헤르만 전쟁≫, 에른스트 톨러의 ≪변화≫, 프란츠 베르펠의 ≪거울인간≫, ≪야코보프스키와 대령≫, 프리드리히 헤벨의 ≪니벨룽겐≫, 슈테판 하임의 ≪6월의 5일간≫, ≪다윗 왕에 관한 보고서≫, 일제 아이힝거의 ≪더 큰 희망≫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응용미학으로서의 드라마ᐨ실러의≪빌헬름 텔≫연구>, <신화의 구도 속에 나타난 현재의 정치적 상황: 보토 슈트라우스의 드라마, ≪균형≫과 ≪이타카≫를 중심으로>, <최근 독일문학의 한 동향: 페터 슈나이더의 경우>, <베스트셀러의 조건ᐨ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의 경우> 외에 독일 표현주의문학과 카프카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명예교수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제5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어머니: (끙끙대며) 얘는 당나귀 새끼처럼 고집이 세단 말이야!
레베카: 엄마, 더 이상 그런 말 하면 안 돼요!
어머니: 아, 내가 얘 엄마지!
레베카: (유디트에게) 유디트야, 엄마가 네게 간청하고 있어. 대사제님이 지금 오실 거야. 어서 와!
유디트: (몹시 반항적으로) 안 가!
레베카: (절망적으로 처녀들에게) 대단한 축제야. 아주 혼란스러워!
어머니: (격하게, 유디트에게) 대사제님께 반항할 생각이니?
레베카: 엄마, 그런 게 아니에요. 성전 안의 사람들과 죽은 사람의 머리를 보는 것이 무서운 거예요.
어머니: 이제 그건 다 지나갔어, 보이지 않아. 지금 우린 가장 안쪽 성전에 와 있는 걸!
레베카: (처녀들에게) 이제 가까이 와서 시작하도록 해요!
유디트: (강력하게 저항하며) 안 가!
148∼1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