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고문으로 돌아가다
육조(六朝) 시대 이래로 중국 문단에서는 문장을 쓸 때 자수(字數)·대우(對偶)·평측(平仄)·압운(押韻)·전고(典故) 등 형식적인 요소를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작자의 사상이나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병폐가 심각했다. 이와 같이 극도로 문장의 형식미를 추구한 문장을 변문(騈文)이라고 한다. 중당(中唐) 때에 이르러 한유(韓愈)가 이러한 문단의 기풍을 개탄해,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작자의 사상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데에 주안점을 둔 선진(先秦) 시대와 진한(秦漢)의 문장으로 돌아가자는 이른바 고문운동(古文運動)을 전개했다. 유종원(柳宗元)도 한유의 주장에 동조해 고문운동에 동참했는데, 이들 두 사람은 단순히 고문 운동을 주창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남달리 빼어난 창작 능력을 통해 고문의 우수성을 직접 입증해 보이기도 했다. 그 결과 당시 문단에는 변문을 멀리하고 다시 고문을 중시하는 기풍이 형성되었다.
개혁 실패와 남방 오지에서의 생활
유종원은 환관의 전횡과 번진의 할거를 억지하고 중앙 집권제를 강화해 정치적 폐단을 시정하려는 왕숙문(王叔文)의 영정혁신(永貞革新)에 동참했으나, 결국 기득권층의 반발로 영정혁신은 100일 만에 실패로 돌아가고, 머나먼 영주[지금의 후난성(湖南省) 융저우(永州)]로, 다시 유주[지금의 광시좡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 류저우(柳州)]로 쫓겨나 남은 평생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말도, 기후도, 문화도 전혀 다른 남방 아열대 지역에서 남은 평생을 힘겹게 적응하면서도 농작물의 수확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학교를 열어 후진을 양성하며, 노비를 해방해 억울한 백성이 없게 하는 등 여러 가지 선정을 베풀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국적인 산수와 풍토를 몸소 겪어 보고 그곳 민중의 삶의 애환을 들여다본 후 그것을 시문으로 승화시켰다.
다양한 형태의 산문
유종원의 산문은 <도목수 전기(梓人傳)>와 같이 서민들의 생활이나 언행에서 영감을 얻어 거기에 정치적 경계와 교훈을 깃들인 전기류(傳記類) 산문, <말곰 이야기(羆說)>와 같이 우화 형식으로 사회적 문제를 풍자한 우언류(寓言類) 산문, <처음으로 서산을 발견해 노닐고(始得西山宴游記)>와 같이 낯선 남방 폄적지에서 처음으로 본 산수의 아름다움에 자신의 풍부한 감수성을 가미한 기행류 산문, <스승의 도를 논해 위중립에게 답하는 편지(答韋中立論師道書)>와 같이 직설적으로 논지를 전개한 논변류(論辯類) 산문으로 대별할 수 있는데 이 책에서는 이러한 여러 형태의 글들을 골고루 소개해 유종원의 여러 면모를 살필 수 있도록 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유종원 산문선≫은 ≪사고전서(四庫全書)≫본 ≪유하동집주(柳河東集注)≫에 수록되어 있는 산문 가운데 22편을 류종목 교수가 엄선해 소개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문과 상세한 주석을 추가했을 뿐 아니라, 작품 창작 배경과 작가의 의도 등을 자세히 설명한 작품 해설을 통해 누구나 쉽게 작품의 참맛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나온 당송팔대가의 작품집 ≪한유 서간문≫(한유 지음, 이종한 옮김), ≪유종원 시선≫(유종원 지음, 류종목 옮김), ≪구양수 사선≫(구양수 지음, 홍병혜 옮김), ≪시화/속시화≫(구양수 지음, 류소진 옮김), ≪왕안석 시선≫(왕안석 지음, 류영표 옮김), ≪소동파 시선≫(소식 지음, 류종목 옮김), ≪소동파 사선≫(소식 지음, 류종목 옮김), ≪소동파 산문선≫(소식 지음, 류종목 옮김) 등과 함께 읽으면 좋습니다.
200자평
문장이 빼어나기로 유명한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유종원의 산문을 모았다. 그는 한유와 함께 당시 유행하던 형식에 치중한 변려문을 버리고, 내용을 중시하는 고문으로 돌아가자는 고문 운동을 벌였다. 그 주장대로 유종원의 산문은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그 속에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전체 약 500편에 달하는 산문 중 엑기스에 해당하는 22편을 류종목 교수가 엄선해 소개한다. 서민의 삶에 교훈을 깃들인 전기류, 우화 형식으로 사회 문제를 풍자한 우언류, 유배 간 낯선 남방 지역의 산수를 감성적으로 그린 기행류, 직설적으로 논지를 전개한 논변류 등 여러 가지 형태의 글을 골고루 만날 수 있다.
지은이
유종원[柳宗元, 773∼819, 자(字) 자후(子厚)]은 하동[河東, 지금의 산시성(山西省) 용지(永濟)] 지방의 명문 대족 출신이었다. 네 살 때 벌써 고부(古賦) 14편을 숙독했을 정도로 어릴 때부터 남다른 재주를 보여 ‘기동(奇童)’이라고 불렸다.
그는 덕종 정원 9년(793)에 스물한 살의 나이로 진사에 급제하고, 이어서 정원 14년(798)에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급제해 집현전서원정자(集賢殿書院正字)에 임명됨으로써 벼슬길에 발을 들여놓았다. 당시는 부패한 관리들이 정권을 전횡하는 정치적 암흑 시대였는데 유종원은 몇몇 동지들과 함께 당시의 정치적 폐단을 개혁하려는 열망을 품고 정치 개혁의 의지를 불태웠다. 순종(順宗) 영정 원년(805)에 조정을 장악하고 정치 개혁을 주도하던 왕숙문(王叔文)이 유종원의 이러한 의지를 알아보고 그를 일약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으로 발탁했다.
그러나 그해 8월에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침해당한 환관(宦官)과 번진(藩鎭) 및 기타 보수파 인사들의 반격을 받은 순종이 물러나고 헌종(憲宗)이 즉위함으로써 ‘영정혁신(永貞革新)’이라고 불린 왕숙문의 정치 개혁이 100여 일 만에 끝나 버렸다. 영정혁신의 핵심 인사들은 모두 원지로 폄적(貶謫)되었고 그 이듬해에 영정혁신의 주도자였던 왕숙문이 유배지에서 사사(賜死)되었다. 유종원은 영정 원년(805) 9월에 소주자사(邵州刺史)에 임명되었다가 부임 도중인 11월에 다시 영주사마(永州司馬)로 좌천되었다. 이때 유종원과 함께 영정혁신의 동지였던 유우석(劉禹錫)·위집의(韋執誼)·한태(韓泰)·진간(陳諫)·한엽(韓曄)·능준(淩準)·정이(程異) 등도 모두 조정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의 사마로 쫓겨났다. 이것이 이른바 ‘팔사마사건(八司馬事件)’이다.
유종원은 약 10년 동안 영주에 머물면서 아열대 지방인 영주 지역의 이국적인 산수와 풍토를 몸소 겪어 보고 그곳 민중의 삶의 애환을 들여다본 후 그것을 시문으로 승화시켰다.
헌종(憲宗) 원화 10년(815) 봄에 유종원은 도성으로의 소환령을 받아 재기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안고 장안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는 달리 그해 3월에 바로 유주자사(柳州刺史)에 임명되었다. 그는 풍속도 다르고 말도 알아듣기 힘든 유주에서, 풍토병의 발병 요인이 되는 독기인 장기(瘴氣)와 싸워 가며, 농작물의 수확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학교를 열어 후진을 양성하며, 노비를 해방해 억울한 백성이 없게 하는 등 여러 가지 선정을 베풀었다.
다시 약 5년이 지난 원화 14년(819)에 대사면령이 내려져 유종원도 조정으로 귀환하게 되었지만 유주에 머무는 동안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그는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조서(詔書)가 도착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향년 47세였다.
옮긴이
류종목(柳種睦)은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구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와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다. 주요 저서 및 역서로 ≪소식사연구(蘇軾詞硏究)≫, ≪당송사사(唐宋詞史)≫, ≪여산진면목(廬山眞面目)≫, ≪논어의 문법적 이해≫, ≪송시선(宋詩選)≫, ≪한국의 학술 연구−인문사회과학편 제2집≫, ≪범성대시선(范成大詩選)≫, ≪팔방미인 소동파≫, ≪육유시선(陸游詩選)≫, ≪소동파 시선≫, ≪소동파 사선(蘇東坡詞選)≫, ≪소동파사(蘇東坡詞)≫, ≪당시삼백수(唐詩三百首)≫1·2, ≪중국고전문학정선−시가≫1·2, ≪정본 완역 소동파시집≫1·2·3·4, ≪중국고전문학정선−시경 초사≫, ≪소동파 산문선≫, ≪중국고전문학정선−사곡(詞曲)≫, ≪소동파 문학의 현장 속으로≫1·2, ≪송사삼백수 천줄읽기≫, ≪유종원 시선(柳宗元詩選)≫, ≪소식의 인생 역정과 사풍(詞風)≫, ≪한시 이야기≫, ≪소동파 전기 명시≫, ≪소동파 후기 명시≫ 등이 있다.
차례
도목수 전기
정원사 곽탁타 전기
처음으로 서산을 발견해 노닐고
고무담 유람기
고무담 서쪽의 작은 언덕을 유람하고
작은 언덕 서쪽의 소석담에 가서 유람하고
소석성산 유람기
우계를 읊은 시의 서문
스승의 도를 논해 위중립에게 답하는 편지
말곰 이야기
부판 전기
세 가지 훈계와 그 서문
– 임강 지방의 사불상
– 검 지방의 나귀
– 영주에 사는 어떤 사람의 쥐
땅꾼 이야기
임지로 가는 설존의를 전송하며
오동나무 잎으로 동생을 제후에 봉한 일에 관한 논변
진(晉)나라 문공(文公)이 원읍(原邑) 수령에 관해 문의한 일에 대한 비판
송청 전기
≪논어≫에 관한 논변 상편
≪논어≫에 관한 논변 하편
우기 어린이 전기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저 천자를 보좌해서 천하 통치를 돕는 사람은 인재를 천거해 그들에게 직책을 부과하고, 그들을 지휘해서 일하게 하고, 기강을 정비하고 보완하며 법제를 통일하고 정돈하니, 이는 도목수가 컴퍼스·기역자자·먹줄을 가지고 건축의 체제를 결정하는 것과 같다. 천하의 인재를 골라 어울리는 직책을 맡기고, 천하의 백성이 흩어지지 않게 해서 안심하고 자기 일에 종사하게 하고, 도성의 상황을 보고 시골의 상황을 알고, 시골의 상황을 보고 제후국의 상황을 알고, 제후국의 상황을 보고 천하의 상황을 알아 가깝고 먼 곳의 크고 작은 일들을 손에 도면을 들고 그것에 의거해 파악하듯이 훤히 알아내니, 이는 도목수가 담에 집의 설계도를 그려 놓고 그것에 따라 일을 완성하는 것과 같다. 유능한 사람을 끌어들여 등용하되 그 사람으로 하여금 감지덕지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무능한 사람을 사퇴시켜 쉬게 하되 역시 감히 원망하는 사람이 없게 하며, 재능을 과시하지 않고 명성이 있다고 뻐기지 않으며, 작은 일을 친히 하는 수고를 하지 않고 하급 관리들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날마다 천하의 영재들과 함께 나라를 경륜하는 커다란 법도를 토론하니, 이는 도목수가 여러 목공들을 잘 지휘하면서 자신의 재주를 뽐내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런 다음에야 재상의 도리에 맞게 되고 따라서 만국이 다 잘 다스려져서 태평하게 될 것이다.
(중략)
일의 강요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와 상반되어서 신중하고 부지런한 것을 공인의 자세로 여기고 실무적인 문서 처리를 귀하게 여기며, 능력을 과시하고 명성을 뽐내며, 작은 일을 친히 하는 수고를 하고 하급 관리들의 권한을 침해하며, 육부(六部)와 백관의 일을 몰래 가져와 조정에서 그것을 두고 옥신각신 다투느라 중대한 일과 멀리 내다보는 일을 놓치니, 이는 이른바 이 재상의 도리에 정통하지 못한 사람으로, 도목수가 되어 가지고 먹줄이 굽었는지 곧은지, 컴퍼스와 기역자자가 각진지 둥근지, 자가 짧은지 긴지는 모르고, 잠시 목공들의 도끼와 칼과 톱을 빼앗아 그들의 일을 돕지만 또 그 일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함으로써 효용을 거두는 데 실패해 이룬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되는 것과 같으니 이 또한 잘못된 것이 아닌가?
<도목수 전기>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