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육기(陸機)는 ‘문학의 자각’을 보여준 시인 가운데 하나다. 그가 다른 문인과 구분되는 한 가지 특징은 문학의 정체에 대해 이성적인 태도로 사고했다는 점이다. 그는 뛰어난 작가이자 날카로운 이론가다. 그가 쓴 문학 이론서인 ≪문부(文賦)≫는 중국 문학사에서 “처음으로 문학 창작의 이론을 전면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한” 글로 평가받는다. 당시의 현학(玄學)으로 인해 유행하던 철학적 개념들을 문학의 영역에 도입해 이론적으로 접근했으며, 자주 발생하는 오류와 대안, 이상적인 심미관, 상상력과 영감, 문체와 풍격 등 창작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했다. ≪문부≫는 “시는 감정을 따라 우러나오는 것이므로 아름다워야 한다(詩緣情而綺靡)”라고 말함으로써 ‘아름다움’을 문학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속성으로 제시했다. 이는 중국의 문학 관념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육기가 말하는 ‘아름다움’은 사상이나 내용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언어와 문자의 형식적 아름다움이다. 즉 도덕이나 인격과는 무관한, 예술로서의 문학 그 자체의 미감이다. 유가(儒家)에서는 표현의 미감을 경시해 단순하고 투박한 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했지만, 육기는 유가 문학 사상의 제약을 넘어 심미성을 인정한 것이다. ≪문부≫에서 문학 창작의 가치와 즐거움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200자평
육기는 서진 시기의 문인이다. 남조의 시평론집인 종영의 ≪문선≫은 육기의 시를 상품으로 분류했고 조식-사령운을 연결하는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했다. 육기의 시는 규격을 중시했고 화려한 미감을 선호했다. 형식주의 문풍이라는 평가와 시의 외형적 규칙을 탐색했다는 평가가 공존한다.
지은이
육기(陸機, 261∼303)는 오나라 출신으로 서진(西晉) 시기 낙양에서 활동한 문인이다. 그의 생애는 ≪삼국지(三國志)≫의 후일담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유비의 군대를 패퇴시켰던 육손(陸遜)이 그의 조부다. 조부 육손은 승상을 지냈고, 부친 육항(陸抗)은 대사마를 지냈으니 그의 집안은 오나라 최고의 명문가다. 280년 서진이 오나라를 침공하자 육기도 부친의 병사를 이끌고 참전했는데 결국 오나라는 멸망했다. 289년 육기는 남방의 인재를 발탁한다는 서진의 정책에 따라서 다시 낙양으로 갔다. 것이었다. 육기는 조국이 멸망한 마당에 낙양에서 다시 가문을 부흥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패망국 출신으로 전승국의 수도에서 입신을 도모하는 처지에서 오는 고충이 많았다. 게다가 당시 낙양의 문화적 분위기를 주도하던 명사들과도 원만한 관계가 아니었으므로 낙양에서의 생활이 상당히 외롭고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실은 그의 문학이 끊임없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게 된 배경이 된다. 301년, 육기가 모셨던 조왕(趙王) 사마윤(司馬倫)이 제위를 찬탈했다가 살해되었을 때 육기는 사마윤의 찬위를 도왔다는 죄명으로 죽을 뻔했다. 하지만 이때 사마영(司馬穎)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그 후 사마경(司馬冏)의 수하에서 벼슬을 하다가 다시 사마영에게 몸을 맡기는데 이때 평원내사(平原內史)가 되어 후에 육 평원(陸平原)으로 불렸다. 303년 사마영이 사마옹(司馬顒)과 연합해 사마예(司馬乂)를 공격할 때 육기는 하북대도독이 되어 20만 군사를 이끌고 낙양성을 공격했다가 실패하고, 환관 맹구(孟玖) 등의 모함으로 사마영에게 죽음을 당한다. 그의 나이 43세였다. 그는 낙양 문인들에게 최고의 문인으로 인정받았고 남조(南朝) 문인들에게도 대단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남조의 문학 이론서인 ≪시품(詩品)≫은 육기의 시를 상품으로 분류하고, 육기가 조식(曹植)과 사영운(謝靈運)을 잇는 대작가라고 평가했다. 문학작품 선집인 ≪문선(文選)≫에서도 남조까지의 작품 중에서 육기의 작품을 가장 많이 수록했다. 이러한 사실은 남조 문단에서 육기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
옮긴이
이규일은 강원도 삼척 출생으로 국민대학교를 졸업한 후, 베이징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영동대학교 중국어중국통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국고전문학 전공으로 위진남북조와 당나라 시기의 시가, 문학사, 문학이론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육기 문학 창작 연구≫(차이나하우스) 등이 있으며 <문학자각설의 전개와 의의>, <전통문화와 20세기의 문화 우상> 등 2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차례
1.고시(古詩)
은자를 부른다
승명정에서 아우 사룡에게
교지태수 고공진에게
종형 거기에게
장사연에게 답하다
고언선이 아내에게 보내는 시를 대신 짓다 – 첫 번째
고언선이 아내에게 보내는 시를 대신 짓다 – 두 번째
풍문비에게 보내다
아우 사룡에게 보내다
봄을 읊다
서쪽 성곽을 나가 노닐다
낙양으로 가는 길에
동궁에서 짓다
다시 낙양으로 가는 도중에 – 첫 번째
다시 낙양으로 가는 도중에 – 두 번째
정원의 해바라기
오왕낭중 시절 양, 진 옛 땅을 지나다 짓다
반니에게
주 부인이 거기에게 보내는 시를 대신 짓다
2.의고시 (擬古詩)
<가고 또 가고>를 따라 짓다
<오늘 좋은 술자리>를 따라 짓다
<환하고 환한 견우성>을 따라 짓다
<강을 건너 연꽃을 따다>를 따라 짓다
<푸르고 푸른 강가의 풀잎>을 따라 짓다
<밝은 달빛이 어찌나 환한지>를 따라 짓다
<난약은 산의 동쪽에서 피네>를 따라 짓다
<푸른 언덕 위의 측백나무>를 따라 짓다
<동성은 얼마나 높은가>를 따라 짓다
<서북쪽에 높은 누각이 있네>를 따라 짓다
<마당에 좋은 나무가 있네>를 따라 짓다
<명월이 한밤에 빛나다>를 따라 짓다
3.악부시 (樂府詩)
사나운 호랑이
군자의 길
예장의 노래
장성굴에서 말에게 물 먹이다
문밖에 수레를 타고 온 나그네가 있어
군자의 생각하는 바는
장안의 좁고 굽은 길
부드러운 소리로 부르는 노래
긴 노래
강둑에서
슬픔을 노래하다
짧은 노래
수양버들 가지를 꺾다
술상을 차리다
반첩여
연가행
양보의 노래
동탁이 도망치다
달무리야
햇무리야
만가 – 첫 번째
만가 – 두 번째
만가 – 세 번째
추호행
해가 동쪽에서 서문으로 지다
상류전의 노래
태산을 노래하다
동무의 노래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밝아오는 새벽빛에 마음은 괴로워
옷깃을 떨치며 주저하고 있다
주저해 장차 어디로 가리
은자는 깊은 계곡에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