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수필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수필을 대표하는 주요 수필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수필은 문학과는 다른 영역인 걸까. 이 질문에 답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겠지만, 우선 할 수 있는 말은 모든 수필이 문학일 수는 없으나 문학적인 것을 품은 수필은 존재한다는 점이다. 수필의 장르적 문제를 떠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수필에 속하는 글만이 지닐 수 있는 문학적인 요소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문학적인 것을 품은 수필이란 또 무엇일까. 윤모촌이라는 수필가를 알아 가는 일이 흥미로운 것은 그가 문학적인 것을 품은 수필을 쓰는 작가이며 동시에 스스로 수필의 이론을 확고히 짚어 두었기 때문이다. 그는 수필 이론서인 ≪수필 어떻게 쓸 것인가≫(1996, 을유문화사)를 비롯한 여러 편의 글에서 자신의 수필관을 뚜렷하게 드러내며 수필계 내부에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그의 글을 통해 우리는 윤모촌이 수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꾸미지 않는” 그대로의 삶, 즉 “삶의 실체”와 진실을 담아내는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윤모촌이 수필에서의 ‘고백적 1인칭 화자’의 존재를 시나 소설에서의 그것과 구분한 일과도 연관이 있다. 수필은 허구에 기반을 두는 문학의 영역과 구분되며, 이때 진실을 진솔하게 말함으로써만 얻어지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필을 수필이게 하며 수필만이 지닐 수 있는 무엇이란 1인칭 화자의 독백과 고백이 진실과 사실만을 다룰 때 얻어지는 진정성의 측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저절로 중요해지는 것은 작가의 ‘개성’이기도 하다. 작가와 직접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는 수필의 특성상 작가 개인의 개성과 인격이 중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윤모촌이라는 개인이 겪은 시대적 비극은 그가 지극히 일상적인 순간을 서술할 때 역시 고스란히 남아 모습을 드러낸다. 윤모촌의 수필은 개인의 일상과 기억을 통해 거대한 역사 속 비극을 짐작하게 하며 그것이 여전히 살아 있는 문제임을 확인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의 비극에 대한 실감이 가능한 것은 그의 글이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고 그리움을 토로하고 있어서라고는 할 수 없다. 그의 글이 우리에게 역사를 실감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여기 진실에 가까이 가려는 마음뿐 아니라 그것에 접근하는 개성적인 시선, 또 미세한 것들을 발견할 줄 아는 감수성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 위에 힘 있는 하나의 문장을 만들어 낼 줄 알기 때문이다. 빌딩 위에 걸린 달과 오동나무 위에 걸린 달을 구분할 줄 아는 감수성, 계절의 흐름을 귀로 듣고 마음으로 만나게 할 줄 아는 마음, 계절의 화려함이 아니라 그 화려함 뒤의 소멸의 무게를 짐작해 보는 시선이 이곳에만 남겨져 있다. 이 사소한 순간들이 그의 시대와 우리의 시대를 저절로 이어 주곤 하는 것이다.
200자평
윤모촌은 수필가인 동시에, 현대 수필 이론을 정립한 수필 이론가이기도 하다. 그는 수필을 통해 수필에 대한 그의 이론을 설명하고, 실천했다. 그에게 수필이란 거짓 없는 진실, 꾸밈없는 있는 그대로의 삶을 작가의 개성과 인격을 담아 고백하는 글이다. 그렇기에 그의 수필은 개인적이되 시대를 반영하고 가식 없이도 감수성을 자극한다.
지은이
윤모촌은 1923년,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 기곡리 637번지에서 아버지 윤상영과 어머니 해주 최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3남 2녀 중 막내다. 1945년 연천공립농업실수학교를 졸업해 경기도 고양군의 초등학교에 취직했다. 1961년 교직 단체의 관리과 책임자로 근무했다. 1979년에 ≪한국일보≫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서 <오음실 주인>으로 당선되었다. 1984년 한국수필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1990년에는 동포문학본상을 수상했다. 수필 강좌 등 후진 지도에 열중하던 중 2005년 파킨슨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수필집 ≪정신과로 가야 할 사람≫(1983, 교음사), ≪서울 뻐꾸기≫(1990, 미리내), ≪발자국≫(2000, 선우미디어), ≪촌모 씨의 하루≫(2004, 선우미디어)가 있다. 수필 선집으로 ≪서투른 초대≫(1987, 교음사), ≪산마을에 오는 비≫(1995, 한마음사), ≪오음실 주인≫(1999, 선우미디어), ≪실락원≫(2008, 좋은수필사)이 있다. 수필 이론서인 ≪수필 어떻게 쓸 것인가≫(1996, 을유문화사)가 있다.
엮은이
이재원(李在苑)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12년에 ‘중앙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에 <이름을 찾는 주체들의 문장−신해욱, 이근화, 심보선의 시를 중심으로>가 당선되어 현재 문학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차례
字憂患
梧陰室 主人
失鄕記 1
봄밤에 쓴 日記
山村 雨情
아낙 군수
한가한 마음
한 다리를 들고 오줌을 누시오
눈 내리던 날
바뀌지 않는 계절
다시 그려 보는 내 얼굴
占
우울한 入學式 날
띄우지 못하는 편지
천 사람의 이름
정신과로 가야 할 사람
分斷의 현장, 自由의 다리 앞에서
서울 뻐꾸기
마음의 고향
나의 결혼식 딸의 결혼식
왕골자리
서울의 대장간
작은 소망
회갑
잡필객(雜筆客)
바다
부용꽃
부끄러운 젊음
권태 1
권태 2
건강한 체하면서
가을 단상(斷想)
총독부(總督府) 건물을 지나다니며
내가 겪은 6·25
한국의 ‘민주주의 나무’에 붙여
물어볼 데가 없다
수필 흐름의 문제점
연수필의 관념어와 분식어
수필 문장의 몇 가지 문제
상업주의에 업힌 수필 문장
내가 다루는 수필의 주제
수필에서는 허구가 있을 수 없다
옛 향기 산책
가벼운 서가(書架)의 무거운 책
귀뚜라미 우는 소리
나지막한 집을 그리며
미망(迷妄)의 계절 자락에
할아비와 손자
5시간 속의 50년
자존심(自尊心)
꿀과 꽁보리밥
촌모 씨의 하루
글과 사람
수필인의 격(格)
실락원(失樂園)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달은 허공에 떠 있는 것보다 나뭇가지에 걸렸을 때가 더 감흥을 돋운다지만, 현관문을 열고 나서면 나뭇가지에 와서 걸린 달이 바로 이마에 와 닿는다. 빌딩가에 걸린 달은 도시의 소음 너머로 플라스틱 바가지처럼 보이지만 내 집 오동나무에 와 걸리면, 신화와 동화의 달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소녀의 감동만큼이나 서정의 초원을 펼쳐 주고, 어린 시절의 고향을 불러다 준다.
<梧陰室 主人>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