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오네스코의 연극적 상상력은 반(反)연극이라는 타이틀 <의무의 희생자>를 탄생시켰다. 이 희곡은 1953년 2월 카르티에라탱 극장에서 자크 모클레르의 연출로 초연되었다. 무대 음악은 폴린 캉피슈, 무대장치는 르네 알리오가 맡았다. 1954년 바빌론 극장과 1959년 샹젤리제 극장에서의 재공연은 자크 노엘이 무대장치를 맡았다. 플롯은 1952년 자신이 발표한 동명의 1인칭 소설 ≪의무의 희생자(Une victime du devoir)≫에서 따왔다.
슈베르-이오네스코, 니콜라-이오네스코
사이코드라마적 특징을 보이는 이 작품은 이오네스코의 개인의 고정관념, 고뇌, 환상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주인공인 슈베르의 죽은 아버지와 수사관을 동일시한 것은 이오네스코적 콤플렉스를 드러내는 심리극이라 할 만하다. 실제로 작가의 죄의식이 매우 강조되어 있다. 그의 어린 시절 경험처럼 슈베르-이오네스코는 용서하라고 말하는 엄마의 말을 경청한다. “용서해야 한다, 얘야, 힘들겠지만… 눈물의 시간이 오고, 후회의 시간이 오고, 고백성사의 시간이 올 것이다… 아버지를 용서하렴.”
또한 이오네스코는 작중인물 니콜라를 자신의 대변자로 삼아 연극에 대한 고유한 생각을 관객에게 설명하도록 한다. <의무의 희생자> 역시 연극 형식을 갖춘 전통적 드라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이를 통해 아방가르드 연극을 옹호한다. 쓰인 모든 희곡은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탐정극에 불과하다고 슈베르는 주장한다. 연극은 사실주의 극이거나 탐정극일 뿐이다. 모든 연극은 그럴듯한 결말로 향하는 일종의 탐색이다. 거기에 하나의 수수께끼가 있고, 그것의 정답은 마지막 장면에서 밝혀진다. 니콜라는 비이성적 연극, 몽환극, 초현실주의 연극에 대한 생각을 펼친다. 그의 주장에서 이오네스코의 연극관을 만날 수 있다.
의무의 희생자
<의무의 희생자>는 권위와 이데올로기로 인간을 옭아매는 상황에 대한 저항으로 읽힌다.
섬세하고 복잡한 성격의 존재인 슈베르는, 처음과 달리 차츰 잔인한 존재로 변해서 슈베르에게 강제로 지식을 주입하는 즉 빵을 강제로 삼키도록 하는 수사관에 의해 진흙 속으로 빠져든다. 그러다가 빛을 향해 올라가면서 어린 시절에 겪었던 상처들, 늙음과 죽음에 대한 불안, 존재들 상호 간의 몰이해, 사랑의 불가능성 등을 발견한다. 잠재의식의 미로 속에서 망설이는 슈베르를 행동하게 이끄는 그의 아내 마들렌은 기성 질서의 승리자이자 권위에 복종하는 보수주의자다.
이러한 슈베르, 마들렌, 수사관, 심지어는 수사관을 죽이는 니콜라 역시도 모두 ‘의무의 희생자’ 부류에 속한다.
꿈의 무대
이 작품은 통일성이나 일관성이 없어 보이기도 해 극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다. 몽환 속에서처럼 인물들은, 작품의 정신과 일치하도록 끊임없이 변화와 변신의 흐름 속에서 움직인다. 현실의 관객은 꿈의 세계로 들어가 있는 듯하다.
이 점은 이오네스코가 의도한 바다. 자신의 의식 상태, 기억, 불안에 맞댈 수 있는 어떤 불편함을 야기하기 위한 것이다. 즉 초현실주의자들이 즐겨 다룬, 깨어 있는 꿈의 무대인 것이다.
200자평
≪의무의 희생자≫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부조리극 작가 이오네스코의 작품 중에서도 연극성과 희극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극중극 형식을 통해 권위와 이데올로기로 인간을 옭아매는 상황에 대한 저항을 주제로, 현실의 부조리성과 잔혹함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 자신도 사이코드라마라고 일컬었던 반연극으로, 전체적으로 비이성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된다. 우리는 초현실주의 연극에 대한 이오네스코의 연극관을 만나 볼 수 있다.
지은이
외젠 이오네스코(Eugène Ionesco)는 1909년 루마니아 슬라티나에서 루마니아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프랑스 파리로 이주했다가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로 복귀했고, 부쿠레슈티대학에서 프랑스문학을 전공했다. 1930년부터 루마니아 문학지에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1934년 평론집 ≪거부(Nu)≫를 출간했다. 프랑스어 교사로 재직 중 1938년 정부 장학금을 받고 ‘보들레르 이후 프랑스 시에 나타난 원죄와 죽음’이라는 주제의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 프랑스로 갔다. 1948년 <대머리 여가수> 초고를 작성했고, 이는 1950년 5월 11일 파리 녹탕뷜 극장에서 니콜라 바타유의 연출로 초연되었다. 프랑스로 귀화해 <수업>, <자크 혹은 복종>, <의무의 희생자> 등 지속적으로 극작품을 발표했다. 1951년 2월 20일에 포슈 극장에서 마르셀 퀴블리에의 연출로 <수업>이, 1953년 카르티에라탱 극장에서 자크 모클레르의 연출로 <의무의 희생자>가 초연되었다. 1957년 <대머리 여가수>와 <수업>이 위셰트 극장에서 재공연되기 시작해서 2010년 현재까지 초장기 공연 중이다. 이어서 베랑제 사이클이라 불리는 연작 <증거 없는 살인자>, <코뿔소>, <공중 보행자>, <왕은 죽어 가다>를 발표했다. 1959년 <증거 없는 살인자>가 레카미에 극장에서 조제 카글리오의 연출로 초연되었고, 그해 11월 6일 <코뿔소>가 독일 뒤셀도르프의 샤우슈필 극장에서 카를하인츠 슈트루의 연출로 초연되었다. 1964년 <갈증과 허기>를 발표했고, 이 작품은 1966년 장 마리세로의 연출로 코메디 프랑세즈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1983년에는 로제 플랑숑의 연출로 <스펙터클 이오네스코>가 니스, 릴, 스트라스부르, 르아브르, 안시, 파리 등에서 공연되었다.
1983년 이후 그림에 몰두해 로카르노에서 3월 9일∼4월 5일, 뮌헨에서 3월 11일∼4월 20일, 만하임에서 10월 29일∼11월 20일 개인 전시회를 열었다. 1984년에는 베를린, 생갈, 불로뉴, 파리 그랑팔레에서 10월 20∼28일 전시회를 열었다. 1985년 5월에는 독일 뮌헨에서 <왕은 죽어 가다>가 주터마이스터의 음악을 중심으로 한 오페라로 공연되었다.
그리고 1991년 이오네스코 작품들(희곡 33편)이 ≪플레야드 총서≫로 출간되었다.
이오네스코는 1994년 3월 28일 85세를 일기로 사망했으며, 파리 몽파르나스 묘지에 영면해 있다.
옮긴이
박형섭은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파리3대학에서 <이오네스코 연극 속의 부조리 연구>로 석사 학위를, 파리8대학에서 <이오네스코의 베랑제 사이클에 나타난 비극의 의식>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2년 현재 부산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아르토와 잔혹연극론≫(월인, 공저)이 있고, 옮긴 책으로 ≪코뿔소≫(동문선), ≪잔혹연극론≫(현대미학사), ≪노트와 반노트≫(동문선), ≪이오네스코의 발견≫(새물결), ≪잔혹성의 미학≫(동문선), ≪기호와 몽상≫(동문선), ≪문화국가≫(경성대출판부), ≪도둑일기≫(민음사), ≪의무의 희생자≫(지식을만드는지식), ≪장미의 기적≫(문학에디션 뿔) 등이 있다. 주로 이오네스코, 베케트, 주네, 아르토 등 프랑스 현대극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의무의 희생자
부록: ≪의무의 희생자≫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우리는 정체성이라든가, 성격의 통일성 등의 원리를 포기할 것입니다. 변화와 역동성의 심리학을 위해서죠.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개성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우리 속에는 모순적인 힘이나 비모순적인 힘만이 존재할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