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초판본 한국 근현대소설 100선’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이광수의 초기 단편들은 습작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다. 백철이 그랬고 이광수 스스로도 그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단편소설이 많지 않았던 시대에 그 정도의 소설 형식을 취했다는 점만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그의 단편들 중 연구자들의 주목을 많이 받은 작품을 골랐다.
<어린 희생>: 개화 시기 이광수의 민족의식과 문체적 특성을 함께 보여 주는 단편이다. 피상적으로 관찰하기에 이 작품은 ‘소년’의 희생을 강조하고 있으나 그 배면에는 조부인 노인, 전사한 아비, 그리고 비명횡사한 소년 등 민족 전체의 희생을 동시에 펼쳐 보이고 있다. <무정>: 1917년의 장편 ≪무정≫과는 다른, 1910년에 발표된 단편이다. 이 작품의 말미에는 “마땅히 장편이 될 재료로되 학보에 게재키 위하여 경개만 서(書)한 것이니 독자 제씨는 양찰”하라는 주석이 붙어 있다. 결혼을 잘못하여 나이 어리고 책임성 없는 남편을 만나고 결국은 음독자살을 시도하는 한 부인을 주인공으로 했다.
<소년의 비애>: 구시대적 사랑 및 결혼 문제를 다루고 있다. 종매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던 문호가 아끼고 사랑하던 난수의 결혼 문제에 접근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작가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어린 벗에게>: 중편 분량의 소설이다. ‘어린 벗’은 그야말로 어린 나이의 벗이 아니라 고국에 둔 연인이리라는 것이 소설 전체를 통독한 후의 소감이다. 이 작품은 그 벗에게 보내는 4편의 서신으로 되어 있고, 각기의 서신이 전개되는 동안 이야기의 무대가 상해, 동경, 바다의 난파선, 블라디보스토크, 소백산 관통 열차 등으로 다양하게 확대된다.
<윤광호>: 한국 현대문학에서 처음으로 동성애 문제를 다룬 소설이다. 왜 이광수는 동성애를 통해 자살에 이르는 괴로운 인생의 모습을 그렸던 것일까. 실상 윤광호의 동성애는 그 상대방에게 직접적으로 끌리기보다는 마음을 소통할 ‘따뜻한 애정’을 찾아 헤맨 것이다.
<꿈>: 작가 자신이 스스로의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강하게 내보이는 작품이다. 바닷가에서 꾼 꿈과 그에 대한 생각이 소설 분량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며, 이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데 중점이 있다.
<무명>: 감옥 체험에 관한 소설이다. 작중 화자 ‘나’가 병감으로 이감되어 감옥 내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건을 관찰하며 이를 순차적으로 기술하는 형식을 보여 준다. 소설 속의 ‘나’는 동료 수인들을 따뜻하게 대하는 박애주의자이며, 감방 안의 삶을 통해 세상을 제유법적으로 판단하려는 이성적 인물이다.
<길놀이>: 어느 오월 아침, 서울 자하문 밖 세검정 부근에서 ‘조의일 하는 사람’의 길놀이 구경을 다뤘다. 이 단편은 그의 여느 작품들과 달리, 시대사적 또는 개인사적 중압감이 거의 없이 세태 풍광을 관조하는 담담한 시선으로 일관한다.
200자평
흔히 이광수는 장편 작가로 평가된다. 그러다 보니 그의 단편은 장편에 비해 주목을 덜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단편은 당시로서 선구적이었으며 가장 현대적이고 참신한 문장이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광수의 괄목할 만한 단편 8편을 실었다.
지은이
춘원 이광수는 189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으며, 시인·소설가·평론가·언론인이었다. 본관은 전주(全州)며 아명은 보경(寶鏡), 호는 춘원(春園)·장백산인(長白山人)·고주(孤舟)·외배·올보리 등이다.
그는 다섯 살에 한글을 비롯한 천자문을 깨칠 정도로 명석했으나 11세 때 부모가 사망하여 졸지에 고아가 되어 외가, 재당숙 집을 전전했다. 1906년 도일하여 메이지학원 중학부 3학년에 편입했고, 이때부터 여러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17년, 그 유명한 장편 ≪무정≫을 신문에 연재했다. 1919년엔 상해로 가서 안창호를 보좌하면서 ≪독립신문≫의 사장 겸 편집국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1921년 4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단신으로 상해를 떠나 귀국, 선천에서 왜경에게 체포되었으나 곧 불기소처분 된다. 그는 이때부터 변절자라는 비난을 받았으며, 1910년대에 지녔던 진보성을 상실하고 봉건적이며 친일적인 문필활동과 행적을 보이기 시작한다.
1922년 <민족개조론>을 발표하여 민족진영에 물의를 일으키며 문단에서 소외당했다. 한편으론 언론계에 종사하면서 여러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표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안창호 등과 함께 수감되지만 반년 만에 병보석으로 석방된다. 1939년에는 조선문인협회 회장이 되었고,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친일 연설을 하며 각지를 유세했다. 8·15 해방 후에는 친일파로 지목되어 양주의 봉선사와 사릉의 농가로 전전하며 은신하다 1949년에 반민법으로 구속되지만 병보석으로 풀려나고, 한국전쟁 중 납북되었다. 그 뒤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엮은이
김종회는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있다. 1988년 ≪문학사상≫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문단에 데뷔했다. 그동안 활발한 비평 활동을 보이는 한편 ≪문학사상≫, ≪문학수첩≫, ≪21세기문학≫, ≪한국문학평론≫ 등 여러 문예지의 편집위원과 주간을 맡아 왔다.
김환태평론문학상, 김달진문학상, 편운문학상,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시와시학상, 유심작품상, 경희문학상 등의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평론집으로 ≪위기의 시대와 문학≫(세계사, 1996), ≪문학의 숲과 나무≫(민음사, 2002), ≪문화 통합의 시대와 문학≫(문학수첩, 2004), ≪문학과 예술혼≫(문학의숲, 2007), ≪디아스포라를 넘어서≫(민음사, 2007) 등이 있고 그 외 다수의 저서가 있다.
특히 사단법인 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사무총장, 통일문화연구원 원장 등의 주요 경력과 관련하여 북한 문학과 해외 동포 문학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많으며, 그 결과로 ≪북한문학의 이해≫1∼4권 및 ≪한민족 문화권의 문학≫1∼2권을 엮은 바 있다.
차례
어린 희생(犧牲)
무정(無情)
소년(少年)의 비애(悲哀)
어린 벗에게
윤광호(尹光浩)
꿈
무명(無明)
길놀이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이때에 光浩는 P라는 한 사람을 보았다. 光浩의 全 精神은 不識不知間에 P에게로 옮았다. P의 얼굴과 그 위에 눈과 코와 눈썹과 P의 몸과 옷과 P의 語聲과 P의 걸음걸이와… 모든 P에 關한 것은 하나도 光浩의 熱烈한 사랑을 끌지 아니하는 바가 없었다. 光浩는 힘 있는 대로 P를 볼 기회를 짓고 힘 있는 대로 P와 말할 機會를 지으려 한다.
P는 光浩의 下宿에서 二, 三十 分이나 걸리는 곳에 있었다. 光浩는 幸여나 P를 만날까 하고 七 時 半에 學校로 가던 것을 六 時 半이 못하여 집을 떠나서 P의 집 곁으로 빙빙 돌다가 P가 冊褓를 끼고 學校에 가는 것을 보면 自己는 가장 必要한 일이 있는 듯이 P와 反對方向으로 速步로 걸어가서 P가 지나가거든 잠깐 뒤를 돌아보고는 一種 快感과 羞恥한 생각이 섞어져 나오면서 學校로 갔다. 아침마다 이러하므로 P도 이따금 光浩를 暫間 쳐다보기도 하고 혹 웃기도 한다. P는 아주 無心하게 하는 것이언마는 光浩는 終日 그 ‘쳐다봄’과 웃음의 意味를 解釋하노라고 애를 쓴다. 그러다가는 每樣 自己에게 有利하도록 그 意味를 說明하여 ‘P도 나를 사랑하나 보구나’ 하고는 혼자 기뻐한다. 그러나 그 기쁨에는 疑心이 半 以上이나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