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시선 이백은 당대 시단 나아가 중국 역대 시단을 통틀어 시성(詩聖) 두보와 쌍벽을 이루는 시인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이백에 대한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이태백시집≫을 제외하고는 그의 시에 대한 완역이 없어 학자들이 많이 아쉬워하고 있다. 이러한 반성에 기초해 몇몇 사람들이 뜻을 모아 ≪이백 전집≫을 역주하고 해설해 출판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지난날을 돌이켜 그리워하다
‘회사(懷思)’는 “생각하다, 그리워하다”라는 의미다. <회사> 편에 실린 실제 시의 내용 또한 옛날을 그리워하는 상념의 정을 담고 있다. 중국 고전 시에서는 옛일을 읊을 때 주로 ‘회고’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회사’라는 용어는 시보다는 ‘부(賦)’에서 보인다. ‘회사부(懷思賦)’는 위진 남북조 시기 문인들이 벗과의 우정, 가족에 대한 그리움뿐 아니라 아끼던 물건에조차 마음을 담아 작품으로 남기면서 중요한 항목으로 발전했다. ‘회사부’는 다른 부에 비해 감상적이고 때론 나약하며 여리고 쉽게 흔들리는 감정이 두드러지는데, 이백의 시들이 ‘회사’라는 이름으로 묶인 것은 아마도 이 ‘회사부’와 풍격과 정조가 유사해서일 것이다.
회고와 회사
과거를 그리워한다는 면에서 ≪이백 시전집 4 회고(懷古)≫와 비교할 수 있다. <회고> 편의 시들은 주로 역사적 인물이나 고적을 제재로 삼고 있다. 반면 <회사> 편의 시들은 좀 더 개인적이다. 이백이 좋아하고 자주 다녔던 장소, 옛 친구 등, 역사적 과거가 아니라 이백 자신의 지난 시절에 대한 추억과 회상이 대부분이다.
가장 많은 내용을 차지하는 것은 은일, 또는 유선에 대한 그리움으로, ‘동산(東山)’이나 ‘옛 산(故山)’ 혹은 ‘산중(山中)’의 이미지를 통해 그리움을 드러낸다. 다음은 망자에 대한 그리움인데, 막역한 친구인 최종지(崔宗之), 자신을 알아준 하지장(賀知章)에 대한 마음을 애달프게 그리고 있다. 또한 누구인지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살아 있는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시도 있다. 이렇듯 이백의 <회사> 편에서는 어떤 구체적인 대상을 직접적으로 그리워하거나 혹은 그 대상과 관련한 일을 그리워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200자평
이백시문학회에서 이백 시전집을 완역한다. 오랫동안 이백을 연구해 온 14명의 전문 학자가 국내외 모든 이백 관련서를 참고하고 수차례의 윤독과 토론을 거쳐 가장 완벽한 정본에 도전한다. 제6권은 <회사> 11수를 모두 옮겼다. 정확한 번역과 방대한 주석, 다양한 교감과 상세한 해설은 이백 시를 처음 만나는 사람부터 전문 연구자까지 모두에게 이백 시의 진정한 면모를 보여 줄 것이다.
지은이
시선(詩仙) 이백(李白, 701∼762)의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고 이 한림(李翰林)이라고도 부른다.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며 10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이백의 출생과 어린 시절은 명확하지 않다. 전해지는 바로는 조적(祖籍)은 지금의 간쑤성 톈수이(天水) 부근의 농서현(隴西縣) 성기(成紀)였으나, 수나라 말기에 부친이 서역으로 이사해 서안도호부 관할이었던 중앙아시아에서 이백을 낳았고, 부친이 다시 사천성 면주(綿州) 창륭현(昌隆縣) 청련향(靑蓮鄉)으로 옮겨 옴에 따라 이백 또한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725년(25세) 촉 땅을 떠나서 장강을 따라 삼협을 거쳐 강남 일대를 유람했으며 산동, 산서 등지를 떠돌며 도교(道敎)에 심취했다. 742년(42세) 도사 오균(吳筠)의 추천으로 한림공봉(翰林供奉)에 제수되었으나,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실현할 수 없자 3년 만에 관직을 버리고 장안을 떠나 다시 방랑의 길로 들어선다.
755년(55세) 안녹산이 난을 일으켰을 때 이백은 안휘성 선성(宣城)에 있었다. 57세에 황자(皇子) 영왕(永王) 인(璘)의 막료가 되었으나, 영왕이 권력 투쟁에서 패하고 숙종이 즉위하자 이백도 역도로 몰려 강서성 심양(尋陽)에 투옥되었다. 송약사(宋若思)가 구명해 그의 막료가 되었으나 끝내 귀주성 야랑으로 유배되었다. 야랑으로 가는 도중, 삼협을 거슬러 무산에 당도했을 때 특사를 받아 강릉으로 내려가며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을 지었다.
이후 노쇠한 이백은 금릉과 선성을 오가다가 당도(當塗) 현령으로 있던 친척 이양빙(李陽冰)에게 몸을 의탁했다. 762년 병이 중해지자 이백은 자신의 원고를 이양빙에게 주고 <임종가(臨終歌)>를 짓고는 회재불우의 한 많은 한평생을 끝마쳤다. 우리에게는 당도에 있는 채석기(採石磯)에서 노닐다 장강에 비친 달그림자를 잡으려다가 익사했다는 전설이 훨씬 더 익숙하다.
이백은 굴원 이후 가장 뛰어난 낭만주의자로 꼽힌다. 그는 당시의 민간 문예뿐 아니라 진한(秦漢)과 위진(魏晉) 이래 악부 민가를 이어받아 자신만의 독특한 풍격을 형성했다. 더구나 그는 도가에 심취해서 그의 시는 인간의 세계를 초월한 환상적인 경향 또한 짙다.
옮긴이
이백시문연구회
이백의 시문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이 모여서 이백의 시문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번역하는 모임이다. 2013년 2월 결성되었으며 매주 온·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이백의 시문을 강독하고 토론하고 있다. 2017년 중국 안후이성 마안산시를 방문해 중국이백연구회와 학술 교류를 시작했다. 그간의 역서로는 ≪이백시전집 I(고풍)≫, ≪이백시전집 II(등람)≫, ≪이백시전집 III(행역)≫, ≪이백시전집 IV(회고)≫가 있다.
이동향(李東鄕)
이백시문연구회 고문. 현 고려대 명예교수. 서울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국립타이완대에서 석사 학위를,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고려대 교수를 역임했다. 타이완 정치대학과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했으며,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중국어대사전편찬실 실장을 지냈다. ≪이하시선≫, ≪송사삼백수≫ 등을 번역했으며 ≪중국문학사≫를 저술했다. 당시와 송사에 관한 논문 다수와 ≪가헌신기질사연구≫ 등이 있다.
김경천(金慶天)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특히 ≪논어≫의 성립 과정과 원의에 관심을 두고 있다. 대표 논문으로는 <고염무의 경학관> 등이 있으며, 공역으로 ≪다산의 경학 세계≫ 등이 있다.
김의정(金宜貞)
성결대 파이데이아 학부 교수. 이화여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 시를 전공했고 주요 논문으로 <흥(興), 오래된 비유>, <영상 미학을 통해 본 중국 고전시의 재해석>, <명대 여성 시에 나타난 전통과의 대화 방식> 등이 있다. 저역서로는 ≪한시 리필≫, ≪두보 시선≫, ≪중국의 종이와 인쇄의 문화사≫, ≪장물지≫, ≪쾌락의 정원(李漁, 閑情偶寄)≫ 등이 있다.
김정희(金貞熙)
한양여대 교수. 한양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타이완 중앙연구원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했으며,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박사후과정을 이수했다. 사(詞) 문학을 전공했으며, 중국 고전 시와 중국 문화 연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 저역서로 ≪베이징 이야기≫, ≪현대 중국 생활차≫, ≪한 손에 잡히는 중국≫, ≪뉴스와 중국어≫ 등이 있고, 대표 논문으로 <주방언의 청진사 연구>, <韓國‘中國詞文學硏究’評述> 등이 있다.
노은정(盧垠靜)
성신여대 중국어문문화학과 강사. 성신여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 시를 연구하고 중국 고전 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용재수필≫, ≪중국 문학 이론 비평사≫, ≪그림으로 읽는 중국 고전≫ 등의 번역서와 <송시에 나타난 양귀비의 형상 변화 연구>, <중국 유일의 여황제 무측천의 시가 연구> 등의 논문이 있다.
박민정(朴玟貞)
세종사이버대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중국 고전 시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중국 저장대학에서 대외한어교학(對外漢語敎學)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 시와 대외한어교학을 연구하고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어 정태어미와 이에 대응하는 중국어 정태동사(韓語情態詞尾與漢語相應情態動詞)≫, 편역서로는 ≪서곤체 시선≫ 등이 있고, 대표 논문으로는 <칠언율시의 형식적 특징으로 본 서곤파와 안수>, <송초 삼체시의 형식적 특징 비교 연구> 등이 있다.
서성(徐盛)
배재대 교수. 홍익대 산업도안과 및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한 후 베이징대 중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저역서로 ≪양한(兩漢) 시집≫, ≪한시, 역사가 된 노래≫, ≪삼국지 그림으로 만나다≫, ≪대력십재자 시선≫, ≪당시별재집≫ 등이 있다.
여정연(呂亭淵)
우송대 교수. 숙명여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베이징대 중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 문학 이론을 전공했으며 대표 논문으로 <위진남북조문론의 물감설 연구>가 있다.
이기면(李基勉)
배재대 명예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 문학 이론을 전공했으며 대표 저서로는 ≪원굉도 문학 사상≫, 대표 역서로 ≪이욱 사선≫(공역), ≪거인의 시대 : 명 말 중국 예수회 이야기≫(공역) 등이 있고, 대표 논문으로는 <명 말 청 초 이단 문학론의 실학적 이해>, <명 말 청 초 방외 문학론의 근대 지향성 연구> 등이 있다.
이승신(李承信)
한국산업기술대 외래교수. 이화여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상하이푸단대 방문학자,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visiting scholar, 고려대학교 중국학연구소 연구교수 등을 역임했다. 저역서로 ≪首屆宋代文學≫(공저), ≪취옹문선역(醉翁文選譯)≫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 <중국고전산문연구의 시각과 방법론 모색>, <구양수 ≪귀전록(歸田錄)≫의 체재와 서술 방식 연구> 등이 있다.
조득창(趙得昌)
협성대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베이징사범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희곡을 전공했으며, 저서로는 ≪중국 문화의 즐거움≫(공저), 편역서로는 ≪삼국연의 상·하≫, 역서로는 ≪피에로≫, ≪결혼/염라대왕 자오/오규교≫, ≪안개 낀 충칭≫이 있다.
조성천(趙成千)
을지대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 문학 비평 및 시론 중 왕부지의 학술 사상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저역서로는 ≪왕부지 시가 사상과 예술론 연구≫, ≪강재시화≫, ≪인간사화≫ 등이 있고, 대표 논문으로는 <중국 시론상 흥회(興會)의 역사성과 문예 미학적 의의>, <왕부지 소식 시문 비판론 초탐> 등이 있다.
채수민(蔡守民)
충북대학교 중국학연구소 객원연구원.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 난징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중국 고전 희곡을 전공했다.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방문학자, 고려대 세종캠퍼스 인문대학 교양교직 조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중국 전통극의 공연과 문화≫(공저), 편역서로 ≪봉신연의≫가 있으며, 대표 논문으로는 <청 중엽 희곡 활동의 변화 양상>, <경극 연기 도구 챠오(蹺)에 관한 소고> 등이 있다.
최우석(崔宇錫)
국립안동대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국립타이완대에서 석사 학위를, 고려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상하이 푸단대학과 베이징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연구를 했으며, 중국 고전 시가를 전공했다. 저서로는 ≪魏晉四言詩硏究≫(中國巴蜀書社), ≪漢韓學習詞典≫(北京大學出版社) 등이 있으며, 대표 논문으로는 <고대 사언시와 율시 속의 아정(雅正) 심미관(審美觀)>, <당대(唐代) 시격론(詩格論)과 선(禪)> 등이 있다.
차례
제1수 가을밤 홀로 앉아 옛 산을 그리며(秋夜獨坐懷故山)
제2수 낭중 최종지가 남양에 놀러 와서 나에게 공자의 금(琴) 준 것을 추억하며 이를 어루만지다가 눈물 흘리며 옛 생각에 젖다(憶崔郎中宗之遊南陽遺吾孔子琴撫之潸然感舊)
제3수 동산을 그리며 두 수 중 첫째 수(憶東山二首 其一)
제4수 동산을 그리며 두 수 중 둘째 수(憶東山二首 其二)
제5수 달을 보며 감회에 젖다(望月有懷)
제6수 술을 마주하고 비서감 하지장을 그리워하다 두 수 중 첫째 수(對酒憶賀監二首 其一)
제7수 술을 마주하고 비서감 하지장을 그리워하다 두 수 중 둘째 수(對酒憶賀監二首 其二)
제8수 다시 그리워하며 1수(重憶一首)
제9수 봄날 원수와 상수 간에 머물며 산중을 그리워하다(春滯沅湘有懷山中)
제10수 저물녘 산중을 그리워하며(落日憶山中)
제11수 추포의 복사꽃 피던 옛 놀던 곳 생각하며. 이때 야랑으로 유배되었다(憶秋浦桃花舊遊時竄夜郎)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 후기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낭중 최종지가 남양에 놀러 와서 나에게 공자의 금(琴) 준 것을 추억하며 이를 어루만지다가 눈물 흘리며 옛 생각에 젖다
憶崔郎中宗之遊南陽遺吾孔子琴撫之潸然感舊
예전에 남양성에 있을 때
독산에 나던 고사리만 먹었지.
추억하노니 최종지와 함께
백수 가에서 밝은 달과 놀았지.
때때로 국화꽃 핀 물가에 들러
쉬지 않고 마음껏 술 마셨네.
황금색 꽃잎을 술잔에 띄워 놓고
마음껏 맑은 목소리로 노래했네.
하루아침에 옥나무 같던 그대 꺾이니
삶과 죽음이 너무나도 순식간에 바뀌었구나.
나에게 공자의 금(琴)을 남겼건만
금만 남고 사람은 이미 가고 없네.
누가 ≪광릉산≫ 곡을 전해 줄 수 있을까
그저 북망산 유골 앞에서 울기만 할 뿐.
묘문에 볕 들 날이 있을까?
길이길이 여우 토끼 굴이 되겠구려.
昔在南陽城, 唯餐獨山蕨.
憶與崔宗之, 白水弄素月.
時過菊潭上, 縱酒無休歇.
汎此黃金花, 頹然清歌發.
一朝摧玉樹, 生死殊飄忽.
留我孔子琴, 琴存人已沒.
誰傳廣陵散, 但哭邙山骨.
泉戶何時明? 長歸狐兔窟.
동산을 그리며 두 수 중 첫째 수
憶東山二首 其一
동산에 못 가 본 지 오래
장미는 몇 번이나 꽃을 피웠을까?
흰 구름은 여전히 절로 흩어지고
밝은 달은 뉘 집을 비출까?
不向東山久, 薔薇幾度花?
白雲他自散, 明月落誰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