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수필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수필을 대표하는 주요 수필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이양하는 한국의 수필 문학을 독자적인 문학의 한 영역으로 정립한 사람 중 한 명이다. 1930년대 ‘해외 문학파’ 중 한 사람인 그는 일본 도쿄대와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영문학자다. 이양하의 수필이 지닌 특징은 이러한 그의 학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일본 유학 시절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당시 유행하던 주지주의 문학의 영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의 미학주의적인 문체, 지성을 바탕으로 한 일상적인 사색의 기풍 등은 사물에 대한 이성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주지적 감수성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 준다. 특히, <신록 예찬>, <나무> 등의 수필은 자연에 대한 사색적 관조, 도시적 일상과 인간적 욕망에 대한 거리 두기 등, 자기 성찰적 특징을 많이 지니고 있는 그의 대표적 작품이다.
일찍이 교과서에 수록되어 해방 이후 한국 수필 문학의 한 정석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던 그의 작품은 일상적 소재, 관찰, 사색 등을 바탕으로 한 글쓰기가 수필적 산문의 중요한 특징으로 자리 잡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수필집은 1947년에 발간한 ≪이양하 수필집≫(을유문화사)과 1964년 발간한 ≪나무≫(민중서관) 두 권이다. 문체에 대한 자의식이 강한 그의 수필은 산문이지만 문장의 미학, 사색을 통한 교양과 품격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측면이 강하다.
현대 지식인의 임무는 지식의 차원으로 떨어진 지성을 다시 ‘가치 판단’, ‘혜지’의 영역으로 돌려놓는 것,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라는 그의 생각은 ‘수필’의 내적 형식 속에 ‘가치 판단’, ‘일상적 지혜’가 담겨 있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 수필은 일찍이 지식인의 글쓰기였다. 따라서 ‘지식을 탐구하는 정신’과 ‘가치를 판단하는 지혜’의 양면적 균형을 ‘지성’이라고 규정하는 데에는 수필이라는 장르가 나아갈 한 방향이 이미 내포되어 있다고 하겠다.
200자평
한국 수필 문학의 개척자 이양하의 대표 수필을 모았다. 그는 정통 유럽풍의 수필을 도입, 본격 수필을 발표해 그동안 주변 장르로 취급되던 수필이 ‘본격 문학’의 한 영역으로 인정받게 했다. 그의 수필은 자신의 체험과 일상생활을 어린이, 나무, 주변 인물, 풍경과 같은 소재에 대한 사색과 명상을 통해 섬세하게 서술한다.
지은이
이양하(1904∼1963)는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났다. 수필가이면서 영문학자다. 어린 시절 성장 과정은 그의 수필 <어머님의 기억>에 잘 나타나 있다.
1923년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 1927년 일본 제삼고등학교(第三高等學校) 졸업, 1930년에는 도쿄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31년 도쿄제국대학 대학원을 수료 후 귀국해서 1934년에 연희전문학교 강사를 지냈다. 1941년부터 연희전문학교 문학과 교수로 지내면서 영문학 관계 논문과 수필을 발표했다. 1945년 경성제국대학 교수로 취임한 뒤 해방이 되었다. 1946년 해방 후 경성제국대학이 국립 서울대학교가 되면서 문리과대학 교수로 취임했다. 1950년부터 1952년까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연구했다. 1953년부터 1957년까지 미국의 예일대학에서 언어학부의 마틴 교수와 함께 ≪한미사전(韓美辭典)≫을 편찬했다. 1954년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이 되었고 1957년 귀국 후 다음 해인 1958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장 서리가 되었다. 1963년 2월 4일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위암으로 타계했다.
그는 수필가로 유명하지만 주지주의 이론을 소개한 평론가, 시인이기도 하다. 평론 <리차즈의 문예가치론>(1933)을 비롯해 <‘말’ 문제에 대한 수상(隨想)>(1935), <조선 현대시 연구>(1935), <바라던 ‘지용 시집’>(1935) 등을 발표했고, 이후 <송전 풍경(松田風景)>(1939)·<내 차라리 한 마리의 부엉이가 되어>(1949)·<마음과 풍경>(1956)·<조지 호반에서>(1956)·<내가 어질다면>(1957)·<미국 병정>(1957)·<삼면경(三面鏡)>(1958)·<사람의 마음이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1958)·<조춘 삼제(早春三題)>(1958)·<십 년 연정(十年戀情)>(1958)·<미스터 모리슨(Mr. Morison)>(1959) 등의 시를 발표했다. 소설로는 <백조의 노래>(1943)가 있다.
피천득(皮千得), 김진섭 등과 함께 찰스 램(Charles Lamb)·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등 정통 유럽풍의 수필을 도입, 본격 수필을 발표했다고 평가된다. 수필집 ≪이양하 수필집≫(1947)과 ≪나무≫(1964)는 한국 현대 수필 문학사의 주요 업적으로 꼽히며, ≪이양하 수필집≫에 수록된 <봄을 기다리는 마음>·<신록 예찬>·<내가 만일 다시 대학생이 된다면>·<프루스트의 산문(散文)>·<페이터의 산문(散文)> 등은 대표적 수필로 1960∼1970년대 독자들에게 널리 읽혔다.
일찌기 영문학자로서 아이버 리처즈(Ivor Armstrong Richards)의 ≪시와 과학≫(1947)을 번역해 리처즈의 문학 이론을 식민지 조선에 최초로 소개하는 한편, 권중휘(權重輝)와 함께 ≪포켓 영한사전≫(1954)을 펴내어 영미 문학 보급에 기여했다. 이 밖에 <루소와 낭만주의>(1940, 서평)·<제임스 조이스>(1941) 등의 영문학 관련 학술 논문이 있다.
엮은이
김춘식은 199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 평론 부문에 당선해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무크지 ≪무애≫, ≪시힘≫ 등과 계간지 ≪내일을 여는 작가≫, ≪한국 문학 평론≫ 등의 편집위원을 역임했고 현재는 시 전문지 계간 ≪시작≫의 편집위원과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평론집 ≪불온한 정신≫, 연구서 ≪미적 근대성과 동인지 문단≫, ≪한국문학의 전통과 반전통≫, ≪근대성과 민족문학의 경계≫ 등이 있다.
차례
무궁화
나무
나무의 威儀
봄 꿈
어머님의 記憶
解放道德에 관하여
길에 관하여
늙어 가는 데 관하여
知性과 價値
西歐 紀行 (一)
西歐 紀行 (二)
新衣
나의 所願
글
일연이
경이 건이
아버지
失幸記
KOREAN OTIOSITY
PHILIP MORRIS ETC
新綠 禮讚
쉘리의 소리
젊음은 이렇게 간다.
京都 紀行
松田의 追憶
페이타아의 散文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나무는 德을 가졌다. 나무는 주어진 分數에 滿足할 줄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한다. 등성이에 서면 햇살이 따사로울까, 골짝에 내려서면 물이 좋을까 하여, 새로운 자리를 엿보는 일도 없다. 물과 흙과 태양의 아들로 물과 흙과 태양이 주는 대로 받고, 厚薄과 不滿足을 말하지 아니한다. 이웃 친구의 處地에 눈떠 보는 일도 없다. 소나무는 진달래를 내려다보되 깔보는 일이 없고, 진달래는 소나무를 우러러보되 부러워하는 일이 없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스스로 足하고,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스스로 足하다.
<나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