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이탄 시인은 과장하는 법이 없다. 그의 시는 상황이나 사태를 담담하게 서술하다가 읽는 이의 마음 한 곳을 찌르면서 삶의 슬픔을 묘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시적 대상에 대한 관조적인 관찰과 고단한 삶에서 흘러나오는 서정을 밀도 있게 결합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탄 시인은 196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바람 불다>로 등단했으니, 영면한 2010년까지 47년 동안의 시업을 쌓았다. 등단작 <바람 불다>는 이탄 시인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이 시에는 폭력적인 역사-전쟁-로 인해 고통스런 젊은 시절을 보내야 했던 시인이 허무 의식과 싸우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 나가는 정신적 고투가 녹아들어 있다. 시인의 첫 시집 ≪바람 불다≫(장문사, 1967)는 젊은 이탄에게 전쟁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깊은 영향을 끼쳤는가를 잘 보여 준다.
두 번째 시집 ≪소등≫(현대문학사, 1968)에 실린 ‘소등’ 연작 6번 <빈 뜰>은 이러한 허무 의식이 좀 더 깊은 인생관에 도달해 삶에 대한 긍정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 뒤 7년 만에 펴낸 시집인 ≪줄 풀기≫(어문각, 1975)의 시편들은 산문적인 일상의 구체성이 시에 전폭적으로 수용되어 있다.
네 번째 시집인 ≪옮겨 앉지 않는 새≫(문학예술사, 1979)에 실린 표제작 <옮겨 앉지 않는 새>는 삶을 살면서 끝끝내 해소할 수 없는 고독을 형상화한다. 그 고독은 시를 쓰는 자가 결국은 맞닥뜨려야 할 슬픔이다. 이탄 시인이 40대에 들어선 1983년에 펴낸 다섯 번째 시집 ≪대장간 앞을 지나며≫(민족문화사, 1983)는 시인이 도달한 시 정신의 높이, 그 완숙성과 고결성을 잘 보여 준다.
그러나 1987년 1월, 중풍을 맞아 쓰러지면서 시인은 삶에서 가장 큰 위기를 맞게 된다. 시인은 수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했는데, 병원에서는 회복하기 힘들다고 했을 정도로 심각했다. 의식을 회복했어도 말하기와 글쓰기가 안 되어서 처음부터 다시 배우듯이 말과 글을 익히며 기억을 복구해야 했다. 시인에게 이 경험은 또 다른 삶을 선물받은 것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시인이 퇴원 직후 상재한 여섯 번째 시집 ≪미류나무는 그냥 그대로지만≫(문학과비평사, 1988)의 2부는 입원 생활에 대해 쓴 시들이 실려 있다. 병을 이겨 낸 이후 시인은 바로 삶의 바탕에 대해 본격적으로 탐구한다. 그리고 다소 개인적인 생활 세계나 인생관, 그로부터 빚어지는 서정에 머문 감이 있었던 예전의 시 경향과는 사뭇 다른 경향의 시를 쓰기 시작한다. ≪철마의 꿈≫에서 ≪윤동주의 빛≫에 이르기까지의 시집에서는 민족 분단의 문제나 저항의 문제, 미래의 희망과 같이 거시적인 시야에서 다룰 수 있는 주제를 주로 시화했다. 하지만 ≪혼과 한잔≫은 시인의 생활과 개인적 삶에 대해 성찰하는 주제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이 시집의 시들은 그러한 주제를 다루었던 초기 시와는 확연하게 다른 내용을 전달한다. 육체적 진통으로 고통 받으며 죽음을 대면하는 자의 삶에 대한 성찰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탄 시인이 펴낸 마지막 시집인 ≪동네 아저씨≫(학이원, 2006)에는 몸이 아픈 상황을 시화한 시편들이 다수 실려 있다. 말년에 이르러 시인은 삶의 본질에 다다르는 데 성공한다. 시인은 이제 그 여전한 미루나무의 정신으로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바라본다. 왜 하늘을 바라보았을까? ≪철마의 꿈≫에 실린 <빛을 향하여>라는 산문에서 시인은 “시의 방향을 묻는다든지 왜 쓰냐고 했을 때 나는 서슴없이 ‘높이 날기’ 위해서라고 말해 왔다”고 쓰고 있다. 이탄 시인이 시작(詩作)에 임하는 초심은 높이 날기였던 것. 그는 이 ‘여전한’ 초심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구름이 하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200자평
하늘을 바라보고 구름이 하는 말을 들었다. ‘높이 날기’ 위해 시를 썼다. 전쟁을 겪고 병마와 싸우며 삶의 본질을 찾았다. 답은 일상이다. 자질구레하고 소소한 오늘을, 가족을, 이웃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은이
이탄[본명 김형필(金炯弼)] 시인은 1940년 어머니의 친가인 대전에서 아버지 김홍권과 어머니 서인석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했다. 유년기에는 서울에서 살다가 1951년 1·4 후퇴 때 가족이 부산으로 피난 가게 되어 10세 이후 소년기는 부산에서 보냈다. 등록금 마련이 어려워서 대학 입학을 포기하고 있었던 이탄 시인은 어떻게 등록금을 마련해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에 입학하고, ‘대학시학회’라는 문학회 모임에 참여했다. 당시 시인은 어두운 주제에 냉소적인 시들을 썼다. 그러나 1963년 대학을 졸업한 이후 냉소적이고 우울에 젖은 어휘들을 버리기로 마음먹고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때 쓴 시 중 하나가 196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바람 불다>다. 이때부터 ‘이탄’이란 필명을 사용했다.
이탄 시인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직장에 들어갔다. 1963년 1월에서 1969년 5월까지 대한교과서 주식회사 편집부에서 일했고 월간 ≪새소년≫ 편집장을 맡았다. 1969년 5월에서 1970년 5월까지 사이에는 여원사 주간 TV가이드 편집부장을 지냈다. 1970년 5월에서 1975년 4월까지 서울신문사 편집2국 편집부장, 1975년 5월에서 1980년 8월까지 저축 추진위원회 차장을 역임했다. 그런데 이 시기에는 학문에 뜻을 두어 1975년 3월에서 1977년 2월까지 단국대학교 대학원 국문과(문학석사)에서 수학했으며 1980년 9월에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박사 과정에 입학해 1985년 8월에 박사 논문 <박목월 시 연구>를 발표하고 졸업했다. 1977년 9월부터 대학 강사를 시작했고 1982년에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사범대학 한국어교육과 부교수로 부임해 2005년 정년퇴임 때까지 대학교수이자 시인의 삶을 살았다. 시인이 출간한 학술 성격의 저서는 ≪현대시와 상징≫(1982), ≪높이 날기≫(1983), ≪박목월 시 연구≫(1988), ≪현대시 작법≫(1990), ≪한국의 대표 시인론≫(1996), ≪한국 대표 시인 연구≫(1998) 등이 있다.
이탄 시인은 등단한 이후 꾸준히 시를 발표했다. 2010년 작고 전까지 시인은 모두 시집 12권과 시선집 4권을 펴냈다. 그는 등단한 후 3년 만인 1967년, 첫 시집 ≪바람 불다≫(장문사)를 상재했다. 이 시집의 서문은 당시 ≪현대문학≫ 주간이었던 조연현 평론가가 썼다. ≪바람 불다≫가 출간된 직후인 1968년에는 역시 조연현이 서문을 쓴 시집 ≪소등(消燈)≫을 현대문학사에서 출간했다(사실 이 시집에 실린 ‘소등 연작’은 ≪바람 불다≫의 시편들을 쓰면서 동시에 쓴 것들이라고 한다. 따로 한 책으로 꾸미기 위해 그 ‘소등 연작’을 ≪바람 불다≫에는 싣지 않았던 것이다). 이 시집 ≪소등≫으로 이탄 시인은 제3회 월탄문학상을 수상했다.
1973년에 강도희 여사와 결혼한 시인은 성실한 직장인으로 생활해 나갔다. 그리고 두 번째 시집이 출간된 지 7년 만인 1975년에 제3시집 ≪줄 풀기≫(어문각)를 상재했다. 이후 시인은 시작(詩作)에 더욱 정진해 1979년에 시집 ≪옮겨 앉지 않는 새≫(문학예술사)를, 1983년에는 다섯 번째 시집 ≪대장간 앞을 지나며≫(민족문화사)를 펴냈다. 이 다섯 번째 시집으로 1984년 제16회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했다. 1986년에는 시인의 시업을 중간 결산하는 성격을 가진 ≪잠들기 전에≫(고려원)를 펴내기도 했다.
이탄 시인은 꾸준한 시작(詩作)과 적극적인 문단 활동을 병행했다. 등단하자마자 일간 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인들의 모임인 신춘시 동인에 가담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1967년에서 1968년까지 권오운, 김광협, 이성부, 최하림 등과 ‘시학’ 동인에 가담했고, 1975년에는 ‘손과 손가락’ 동인을 결성해서 주재했다. 또한 1979년부터 1982년 사이에 민예극단과 함께 강우식, 정진규, 이건청, 김후란, 이근배, 허영자, 김종해와 함께 ‘현대시를 위한 실험무대’라는 명칭으로 시극을 공연했다. 그리고 1980년에는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으로 일했다.
그런데 1987년 1월, 생각지 못한 시련이 닥쳤다. 중풍을 맞고 쓰러져 수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했던 것이다. 병원에서는 회복하기 힘들다고까지 했지만, 시인은 의식을 회복하고 처음부터 다시 배우듯이 우리말과 글을 익히며 기억을 복원했다. 기독교인이었던 시인은 투병 생활 속에서 신앙심이 더욱 굳건해졌다고 한다. 퇴원 직후 상재한 시집 ≪미류나무는 그냥 그대로지만≫(문학과비평사, 1988)에는 입원 생활에 대해 쓴 시편들이 실려 있는데, 이 시편들에서 병마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인의 눈물겨운 고투를 볼 수 있다. 같은 해에 시선집 ≪약속≫(문학사상사)과 ≪꽃은 깊은 밤 홀로≫(종로서적)를 펴냈고, 제3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퇴원 이후에도 병에서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해서 말하기가 부자연스러웠지만, 시인은 시 쓰기에 더욱 몰두해 예전보다 시를 더 많이 썼다. ≪철마의 꿈≫(영언문화사, 1990), 자작시 해설 시선집 ≪한 잔 가득 별을 부어 마셨다≫(스포츠서울, 1991), ≪당신은 꽃≫(문학아카데미, 1993), ≪반쪽의 님≫(문학세계사, 1996), ≪윤동주의 빛≫(문학아카데미, 1999), ≪혼과 한잔≫(문학세계사, 1999) 등 10여 년 동안 신작 시집 5권과 시선집 1권을 출간하는 저력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또한 1993년에는 제6회 기독교문화대상을 수상했고, 2000년에는 <나무토막>이라는 시로 제8회 공초문학상을 수상했다. 또 ≪미네르바≫라는 문학잡지를 직접 창간했다.
2003년에 다시 쓰러지고 건강이 악화되지만, 이때에도 병마를 이겨 내서 2005년에는 무사히 정년퇴임했다. 2007년 ≪미네르바≫ 27호를 끝으로 잡지 운영에서 물러나 문효치 시인에게 운영권을 넘겼다. 2009년에는 시인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펴낸 시집인 ≪동네 아저씨≫(학이원)를 발간했다. 그러나 암이 발견되었고 암 수술을 받아야 했다. 역시 꿋꿋하게 투병했지만, 2010년 7월 29일, 향년 70세로 이 세상을 떠났다. 다음 해인 2011년, 이탄 시인의 친구들은 이탄 사후 1주기를 맞아 한지에 활판으로 인쇄하고 수제본인 ≪별과 함께 살다-이탄 시선집≫(시월)을 출간했다.
엮은이
이성혁(李城赫)은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이탄 시인의 지도로 <이상 시의 미적 근대성 연구>로 석사 학위를, 역시 이탄 시인의 지도로 <1920년대 한국 근대시의 전위성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 김수영론으로 ≪문학과창작≫ 평론 부문 신인상을 받고 2003년 기형도론으로 대한매일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한 후, 주로 시에 대한 현장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강원대, 세명대, 추계예술대 등에 출강했고 현재 한국외국어대와 서울과학기술대에 출강하고 있다. 평론집으로 ≪불꽃과 트임≫(2005), ≪불화의 상상력과 기억의 시학≫(2011), ≪서정시와 실재≫(2012), ≪미래의 시를 향하여≫(2013)가 있으며, 역서로 ≪화폐인문학≫(공역, 2010)이 있다.
차례
제1시집 ≪바람 불다≫
구름 지나간 자리
꽃과 兵丁
難破船 위의 비
바람 불다
海邊에서
雪林
특히 겨울 저녁의 나무
작은 방울
제2시집 ≪소등(消燈)≫
序詩
빈 뜰
動物記
無題
밤 이야기
혀
이런 돌
나무
제3시집 ≪줄 풀기≫
빛의 근육
저녁 걸음(1)
밤의 詩(1)
화분을 보며
술 한잔
消燈(33) 타는 목
흔들리며
줄 풀기
못 박기
제4시집 ≪옮겨 앉지 않는 새≫
그 나무에
옮겨 앉지 않는 새
알려지지 않는 허전
義足
하늘빛
기도
구름
休日
제5시집 ≪대장간 앞을 지나며≫
夢見潘溪
절벽을 보며
俗謠調—2. 行商
대장간 앞을 지나며
젖은 나이
이슬 속에서 만나는 연습
九老洞 흙—2. 별을 마신다
꽃은 남는다
꽃은 깊은 밤 홀로
제6시집 ≪미류나무는 그냥 그대로지만≫
부엉이 날개
담배 한 대
눈물 감추기
퇴원
늑골 사이의 낙엽
새
별
저녁
미류나무는 그냥 그대로지만
제7시집 ≪철마의 꿈≫
휴전선
철마
철조망
사랑
물 이야기
공중의 새
자연
김용사 풍경
제8시집 ≪당신은 꽃≫
층계를 오르며
눈으로 말한다
눈의 꽃
눈동자
길
자기가 쓰고 자기가 받는 편지
까치
당신은 꽃
제9시집 ≪반쪽의 님≫
우리의 걸음
산천을 뒤흔드는 짐승이 되어
반쪽의 님
서울 한때
길
사람 같은 사람
휴전선
멀리 있는 님
제10시집 ≪윤동주의 빛≫
날개
계명
자기 해석
부끄러움
점점 줄어든다
신발
윤동주의 빛
제11시집 ≪혼과 한잔≫
죄송하다
이런 그림
도청
나무토막
사랑시
만남
풀빛 사랑
혼과 한잔
시대의 병
제12시집 ≪동네 아저씨≫
내 몸은 반쪽
동네 아저씨
우주 위의 우주
아버지의 안경
나는 좋다
가을 햇볕
유고시
고독
구름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구름 지나간 자리
구름 지나간 자리에
무엇이 남나
무엇이 남나
그렇게 봐도
눈에는
구름 한 점
비치지 않고
그저 하늘이기만 하네.
●흔들리며
흔들리는 버스에 앉아 졸며 저녁 신문을 들여다보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눈에 비치는 불빛과 바쁜 차들이 유행가처럼 흘러가고
오늘도 늦었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토요일이 아니니까 만취는 안 했읍니다.
와글와글 주점에서 말한 것도 아니고 들은 것도 아닌 술잔을 들어
틈이 난 하루의 바닥에 부어 봅니다.
산다는 것이 손금에 읽혀 있는 것이 아닌 줄 알면서도 손바닥을 들여다보고 늘어 가는 아버지의 주름살을 생각타 보면 밤도 이미 깊었읍니다.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이 사람 저 사람 정겨운 사람들 생각도 하고
갚아야 할 돈 생각도 하고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하면서
한 시간을 흔들리면, 구로동 소방서 앞
낯익은 약국을, 가게를 지나면
우리 집 냄새가 도는 골목길
두드릴 때 문을 열어 주는 것은
그래도 내일입니다.
흔들리며, 흔들리며 돌아와 문에 기대면
그래도 내일이 어깨를 짚어 줍니다.
●알려지지 않는 허전
나는 땅을 샀다.
경기도 산골, 공원묘지의 한 귀퉁이
어머니를 위해 5평,
성묘할 우리를 위한 공터로 4평,
말하자면 어머니의 묘를 위해
나는 9평의 땅을 샀다.
백운대가 보이고 멀리 이름 모를 봉우리가 나란히 보이는,
그래서 사람들은 좋은 곳이라고들 했다.
나는 땅을 샀다. 암, 나는 땅을 샀지, 사구 말았구!
그러나, 그 땅은 누구의 것이냐.
관 위에 후두득후두득 흙이 부어지고 가난과 병으로 시달린 목숨 위에 흙이 부어지고
우리들은 하산했다.
그날 나는 분명히 계약하고, 돈을 내고 땅을 샀다.
그러나 나는 평생 마음에
아픈 땅 9평을 갖게 된 것을.
●나는 좋다
위도 좀 잘라 내고
십이지장도 좀 잘라 내고
담낭도 좀 잘라 내고
겨우, 시늉만 해 놓았단다
그래도 하나님이 고마운 것은
웃을 수도 있고
화낼 수도 있고
책장을 넘길 줄 알기 때문.
쓸개 없는 놈이라는 말이 있지만
쓸개도 없는 몸이 되었다
주책없는 일을 하여도
히히 쓸개가 없어, 나는 좋다
소년 시절부터
왼쪽과 오른쪽이 바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다시금 느끼는
왼쪽으로 기운 사람과 오른쪽으로 기운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구나
사람들은 짝을 맞추기 위해
데이트도 해 보고
부산 떠는 일이 아닌지
1주일에 며칠은 방사선 맞는데
쓸개가 없어서 나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