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8∼19세기 영국 여류 작가 앤 래드클리프의 소설로 고딕 소설 중에서도 ‘여성 고딕 소설’로 분류된다. 고딕 소설은 기이한 전설과 유령 등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을 통해 독자에게 불안과 긴장, 공포를 경험하게 하고 이런 감정을 해소시켜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는 문학의 한 장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월폴의 ≪오트란토 성≫을 시초로 등장한 고딕 소설은 초자연적 사건에 연루된 남성 인물이 주변으로부터 단절되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과정을 그려 냈는데 이러한 성향의 고딕 소설은 ‘남성 고딕 소설’로 분류한다.
한편 ‘여성 고딕 소설’은 그와 반대로 비현실적 영역이 적으며, 여성 인물이 잃어버렸거나 파괴된 가정을 회복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특히 ‘여성 고딕 소설’은 당대 여성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결혼과 가정의 외양을 드러냄으로써 여성의 지위에 대한 실제적 갈등을 보여 준다. ≪이탈리아인≫에서는 원하지 않는 선택을 강요당하는 여성 인물을 제시해 배우자 선택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즉, 권력이나 재력보다 내면적 가치과 개인적 자질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여성 고딕 소설은 과격하고 폭력적인 장면이 아닌 온건하고 섬세한 감정 묘사가 중심인 것이 특징이다. 앤 래드클리프의 변화하는 감정과 복잡한 심리에 대한 섬세하고 치밀한 묘사는 악인으로 등장하는 인물에 대해서도 공감을 이끌어 낼 정도다. 때문에 ≪이탈리아인≫은 ‘여성의 지위에 대한 반성’과 ‘감상주의의 유행’ 같은 역사적 맥락과 함께 살펴볼 가치가 있다.
국내에서는 처음 번역 출간되며, 세 부로 구성된 원전을 두 권으로 분권했다.
200자평
여성 고딕 소설의 대표 작가 앤 래드클리프에게 재정적 성공을 안겨 준 작품이다. 빈첸티오와 엘레나를 둘러싼 음모와 두 남녀의 여정을 그렸다. 여주인공 엘레나가 겪는 수모를 통해 당대 여성의 지위에 대해 비판하고 권력과 재력을 인간의 내면과 자질보다 우선시하는 현실을 꼬집는다. 치밀하고 섬세한 심리 묘사가 돋보인다. 국내에서는 처음 번역 출간한다.
지은이
래드클리프는 생전에 네 편의 소설과 한 편의 기행문을 출판했고, 서신이나 저널과 같이 사적인 삶에 대해서 단편적으로라도 알 수 있게 해 주는 자료는 그다지 많이 남기지 않았다. 래드클리프의 아버지는 상업에 종사하던 평범한 인물이었고, 의회에 출입하던 기자이자 ≪잉글리시 크로니클≫의 편집자였던 윌리엄 래드클리프와 결혼할 때까지 래드클리프 본인 또한 당대의 여성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다. 래드클리프는 결혼 이후에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아내의 자질을 발견한 남편의 격려가 작가로서의 길을 선택하게 된 동기 중 하나로 언급되곤 한다. 1790년에는 ≪시칠리안 로맨스≫를, 1791년에는 ≪숲속의 로맨스≫를 익명으로 출판했다. 두 번째 소설이 인기를 얻으면서 래드클리프의 이름 또한 알려지기 시작했고, 1794년 세 번째 작품 ≪우돌포의 비밀≫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1797년 출판된 ≪이탈리아인≫은 래드클리프의 생전에 나온 마지막 소설로, 상업적으로도 문학적 평판에 있어서도 큰 성공을 거두게 해 준 작품이다. ≪이탈리아인≫의 성공으로 재정적 안정을 누리게 된 래드클리프는 이후 적극적으로 집필을 시도하는 대신 남편과 함께 영국의 여러 지방을 여행하며 조용한 삶을 살았다. 1802년 방문했던 케닐워스 성에서 영감을 얻어 ≪개스턴 드 블론드빌≫을 집필했으나 출판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작가로서의 명성을 즐기며 다른 문인들과 활발히 교류하기보다는 홀로 은둔하기를 좋아했던 성향으로 인해 래드클리프는 많은 비밀을 간직한 인물로 여겨졌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같이 누군가의 손에 감금되어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고, 1810년 익명으로 출판된 시에서는 래드클리프가 광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1823년 천식과 합병증으로 인해 사망했고, 유작이라 할 수 있는 ≪개스턴 드 블론드빌≫은 토머스 탤포드가 서론으로 붙인 <회고록>과 함께 1826년 출판되었다.
옮긴이
류혜원은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The Metropolitan Body in the Rise of the Early English Novel>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앙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문과를 거쳐 현재는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 BK21Plus 사업단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한국18세기영문학회, 한국영미문학페미니즘학회에서 이사로 일하고 있고, 국내외 여러 학회에서 근대 도시와 여성 작가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해 왔다. 최근에 출판된 연구로는<“All honey, all honey!” : The Grotesque Body in the Carnivalesque City in ≪The London Spy≫>, <도시적 서술자의 등장 : 존 스토우의 ≪런던 답사≫를 중심으로>, <Anthony Munday’s Metropolitan Communality in ≪The Survey of London≫>, <제인 오스틴의 ≪설득≫에 드러난 상대적 가치의 세계> 등이 있다.
차례
III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고해 내용이 무엇이었나?”
“알지 못합니다.” 비발디가 답했다.
“진실을 고하게.” 낯선 자가 엄숙히 명했다.
“고해란 신성한 것이어서 그 고해를 들은 사제의 가슴에 영원히 묻힌다고 들었습니다.” 비발디가 답했다. “그렇다면 제가 그 고해의 내용을 알고 있을 거란 추정이 어떻게 가능한가요?”
“스케도니 신부가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야기, 가혹한 속죄의 길을 걸으며 이를 양심에서 지워 내려 애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단 말인가?”
“절대로 없습니다!” 비발디가 말했다.
“아내가−형제가 있었다는 말도 들어 본 적이 없나?”
“절대로 없습니다!”
“그자가 사용했던 수단−살인에 대한−어떤 암시도−”
낯선 자는 비발디가 그의 이야기를 이어 주기를 바라는 듯 말을 멈췄으나, 비발디는 경악해 침묵을 지켰다.
“그렇다면 스케도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군.” 무거운 침묵이 흐른 뒤, 수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과거에 대해서도?”
“제가 언급했던 사항들 외에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비발디가 답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하는 말을 잘 듣게.” 수사가 엄숙히 말을 이었다.
-2권 3부, 673∼6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