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괴테의 천재성을 일깨운 삶의 일대 전환기적 기록을 담은 책으로, 원전의 30% 정도를 발췌해 번역하였다.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은 대시인의 천재성을 일깨우고 삶을 변화시킨 일대 전화기적 기록으로 평가받는다.1786년 9월부터 1788년 4월까지 괴테가 쓴 여행 기록을 담은 이 책은 여행의 추이에 따라 3부로 나뉘어져 있다. 기록, 서신, 보고(報告)의 다양한 양식의 글들 속에서 괴테가 품었던 예술에 대한 이상과 열정 등을 엿볼 수 있다.
200자평
괴테는 이 여행에 대해 “익은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은” 필연성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이 책은 흥미 위주의 여행기가 아닌, 대시인이 겪은 삶의 일대 전환기적 체험의 기록으로 보아야 더 큰 의미를 얻게 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원전의 30% 정도를 발췌해 번역했다. 물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빠지지 않도록 해서 이 책만 읽어도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 전반을 조감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괴테에게 있어 이 여행기가 갖는 위치와 의의를 심도 깊게 조명한 상세한 해설은 괴테의 삶과 문학 세계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지은이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1749년 8월 28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태어났다. 아들의 교육에 헌신적이던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불어, 영어, 이탈리아어 등을 배웠고, 그리스 로마의 고전 문학과 성경 등을 읽었다. 1757년, 어린 나이에 신년시를 써서 조부모에게 선물할 정도로 문학적 재능을 타고났다.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나 문학과 미술에 더 몰두하였고, 1767년에 첫 희곡 <연인의 변덕>을 썼다. 1770년 슈트라스부르크 대학 재학 당시 헤르더를 통해 호머, 오시안, 그리고 특히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에 눈을 떴으며, ‘질풍노도 운동’의 계기를 마련했다. 1772년 베츨라의 법률 사무소에서 견습 생활을 하던 중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 부프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이때의 체험을 소설로 옮긴 것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이 소설은 당시 유럽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주인공 베르테르의 옷차림이나, 절망적인 사랑으로 인한 자살이 유행하기까지 했다. 1775년 카알 아우구스트 공의 초청으로 바이마르로 이주하여 그곳을 문화의 중심지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행정가로 국정에 참여하고 교육, 재정, 건설, 군사, 산림 등 온갖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고, 식물학, 해부학, 광물학, 지질학, 색채론 등 인간을 설명하는 모든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다. 1786년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고전주의 문학관을 확립했고, 1794년 독일 문학계의 또 다른 거장 실러를 만나 그와 함께 독일 바이마르 고전주의를 꽃피웠다. 1796년에 쓴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는 대표적인 교양소설이다. 1797년에는 실러의 <시신연감(詩神年鑑)>에 공동작의 단시(短詩) <쿠세니엔(손님에게 드리는 선물)> 414편을 발표하여 문단을 풍자하였다. 또한 문단의 물의(物議)를 외면한 채 이야기체로 쓴 시(詩)를 경작(競作)하여, 1797년은 ‘발라드의 해’라고 일컬어진다. 1805년 실러의 죽음과 더불어 만년기(晩年期)를 맞이하였다. 만년의 괴테의 문학활동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세계문학’의 제창(提唱)과 그 실천이었다. 괴테는 그 무렵에 이미 유럽 문학의 최고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위치에서 프랑스·이탈리아·영국, 나아가서 신대륙인 미국의 문학을 조망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각 국민문학의 교류를 꾀하고, 젊은 세대를 위한 세계문학적 시야를 넓혔던 것이다. 실러의 죽음으로 “존재의 절반을 잃은 것 같다.”라고 말할 만큼 큰 충격에 빠지지만 이후에도 창작 활동과 연구는 끊임이 없었고, <색채론>(1810),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1821), <이탈리아 기행>(1829) 등을 완성했다. 스물네 살에 구상하기 시작하여 생을 마감하기 바로 한 해 전에 완성한 역작 <파우스트>를 마지막으로 1832년 세상을 떠났다.
옮긴이
정서웅은 1943년 평북 철산에서 태어났다. 독일학술교류처(ADDA) 초청으로 브레멘 대학에서 교환 교수를 지냈다. 숙명여대에서 독어독문학과 교수를 지냈다. 옮긴 책으로 ≪독일어 시간≫, ≪콜린≫, ≪크눌프 로스할데≫, ≪로마체류기≫, ≪환상소설집≫, ≪스퀴데리 양≫, ≪베네치아와 시인들≫ 등이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제1부 카를스바트에서 로마까지(1786년 9월∼1787년 2월)
카를스바트에서 브레너까지
브레너에서 베로나까지
베로나에서 베네치아까지
베네치아
페라라에서 로마까지
로마
제2부 나폴리와 시칠리아(1787년 2월∼1787년 6월
나폴리
시칠리아
나폴리에서 헤르더에게
제3부 두 번째 로마 체류(1787년 6월∼1788년 4월)
6월의 서신
7월의 서신
보고7월
8월의 서신
9월의 서신
10월의 서신
보고10월
11월의 서신
12월의 서신
1월의 서신
로마의 사육제
2월의 서신
3월의 서신
4월의 서신
보고4월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이 행복했던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몇 줄의 글을 남겨 생생하게 보존하고 아울러 내가 즐겼던 일을 적어도 사실대로 알려야겠다. 날씨는 아름답고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하늘은 쾌청하고 태양은 따사로웠다. 나는 티슈바인과 함께 성 베드로 광장으로 가서 우선 이리저리 거닐었다. 무더워지면 우리 둘에게 넉넉한 그늘을 선사하는 커다란 오벨리스크의 그림자 밑에서 서성이면서 근처에서 산 포도를 먹었다. 그런 다음 시스티나 성당으로 들어갔는데 그 안은 기분 좋게 밝았으며 그림들도 조명을 받은 듯 빛났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최후의 심판>과 갖가지 천장화들이 우리의 경탄을 자아냈다. 바라보면서 놀랄 뿐이었다. 거장의 내면에 존재하는 확신과 남성성, 그 위대함은 어떤 필설로도 따라갈 수가 없다. 그림들을 보고 또 본 후에 우리는 성 베드로 성당으로 갔다. 성당은 맑은 하늘의 아름답기 그지없는 빛을 받으며 밝고 환한 모습으로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향유자로서 그 위대함, 그 화려함을 즐겼다. 이번에는 아는 척하는 취향으로 인해 자신을 오도하는 일 없이 날카로운 비판을 모두 억제했다. 그저 즐거움을 즐겼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