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수필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수필을 대표하는 주요 수필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일석 수필의 어법적 특징 가운데 두드러지는 것은 속담, 민담, 한문 고전, 국문 시가 등의 빈번한 인용이다. 속담이나 고전 등의 권위에 기대어 작가의 의견이나 주장의 진실성과 합리성을 확보함으로써 설득력을 높이고자 하는 글쓰기 전략의 산물이라 하겠다.
일석의 수필 세계를 관통하는 정신은 해학과 비판의 정신이다. ‘익살’ 또는 ‘우스개’라는 우리말에 대응하는 한자어 해학(諧謔)은 통상, 그 안에 비판적 요소를 담고 있지 않은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한 작가의 문학 세계를 일관하는 정신으로 이처럼 상반되는 해학의 정신과 비판의 정신을 함께 드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 일이 아닌가? 형식 논리상으로는 물론 그렇다. 그러나 큰 정신 속에는 서로 다른 다양한 정신이 동서하기도 하는 것이니, 해학의 정신과 비판의 정신이란 상반되는 정신이 함께 깃들어 있는 일석의 수필 세계는 역으로 일석이란 뛰어난 수필 작가의 정신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의 수필 세계로 미루어 볼 때 일석은 해학을 좋아했던 사람이고, 해학을 주고받으며 즐기는 가운데 주변 사람들 나아가서는 세계와 조화롭게 어울리고자 하였던 사람이며, 동시에, 인간과 세계의 부정과 불의를 예민하게 감지,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하는 날카로운 비판 정신의 소유자였음을 알 수 있다.
200자평
일석 이희승의 수필은 국어학자답게 빼어난 언어 감각을 자랑한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동서양과 고금에 두루 통하는 박학다식의 지적 교양이 어우러진 그의 글은 아무나 넘볼 수 없는 개성의 한 세계를 이루고 있다.
지은이
일석(一石) 이희승 (李熙昇)은 1897년 경기도 광주군 의곡면 포일리 양지펀(지금의 의왕시 포일동) ‘양지펀’이란 동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경모궁 참봉, 중추원 의관 등을 지낸 이종식이다.
고향인 상조강리에서 5년 정도 한학을 공부했다. 1908년 열 살 때 이정옥(李貞玉)과 결혼한 뒤, 서울로 올라와 관립 한성외국어학교 영어부에 입학해 새로운 배움의 길로 들어섰다.
경성고등보통학교, 양정의숙(養正義塾) 등을 거쳐 1918년 중앙고등보통학교(4년제)를 졸업했다. 중앙고보 졸업 후 경성 직뉴 주식회사(京城織紐株式會社)와 경성 방직 주식회사에서 일했는데 “외국 유학을 가자니 힘이 부치었고, 국내에서 진학하자니 지망하는 전공학과를 공부할 만한 학교가 없었으므로 본의”(<나의 30대>) 아니게 취직한 것이었다. 그가 ‘지망하는 전공’은 중앙고보 시절, 국어학자 주시경의 저서를 통해 ‘결심’을 세우고 있던 ‘국어학’이었다. 마침 1924년 경성 제국대학이 설립되었는데 조선어학과(공식 이름은 ‘朝鮮語學及文學科’)가 거기 개설되어 있어 그는 진학을 결단한다. 1925년 경성 제국대학에 입학했는데 무려 29살의 만학도였다. 예과 2년, 본과 3년을 수학하고 1930년 경성 제국대학 조선어문학과를 1회생 조윤제를 이어 1명뿐인 2회생으로 졸업했다. 대학에서 제대로 훈련받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학자가 탄생한 것이다.
1930년 조선어 학회에 입회해 간사, 간사장 등을 지내며 이 회에서 추진하고 있던 ‘한글 맞춤법 통일안’(1933년 완성)과 ‘표준어 사정(標準語査定)’(1937년 완성) 사업에 주도적으로 관여했다. 이 시기 이희승은 경성 사범학교 교유(敎諭),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서 국어학과 국문학을 가르쳤다. 1942년 10월 1일 조선어 학회 사건에 연루되어 검거되어 1945년 8월 17일까지 만 3년 가까이 감옥살이를 했다. 그리고 해방이 되었다. 이희승은 경성대학 법문학부 교수를 거쳐 1946년 10월 22일의 학제 개편으로 생긴 국립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되었다. 이후 1961년 정년 퇴임할 때까지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써 국어학을 근대적인 학문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54년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이 되었고, 1962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되었으며, 1963년 동아일보사 사장이 되었다. 학자로서의 이름이 높았던 만큼 퇴임 이후에도 여러 대학의 초빙을 받아 일했다. 대구대학 대학원장,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장, 단국대학교 부설 동양학연구소 소장(1971∼1981) 등이 되어 국학 연구를 이끌었다.
국어학자로서, ≪한글 맞춤법 강의≫(1946), ≪조선어학 논고≫(1947), ≪국어학 개설≫(1955) 등의 연구서와 ≪초등 국어 문법≫(1949)과 ≪새고등 문법≫(1957) 등의 교과서를 내었으며 ≪국어 대사전≫(1961)을 편찬했다. 이 가운데 ≪한글 맞춤법 강의≫는 ‘한글맞춤법통일안’(1933)의 원리를 자세히 설명한 것으로 조선어 학회의 기관지인 ≪한글≫에 연재(1938∼1940, 20회 연재)한 것을 보완한 것이다. 이희승은 국문학 연구에도 관심을 가져 ≪역대 조선 문학 정화≫(1938), ≪조선 문학 연구초≫(1946) 등을 냈다.
이희승은 또한 섬세한 서정의 시인이었다. ≪박꽃≫(1947), ≪심장의 파편≫(1961) 두 권의 시집이 전한다.
무엇보다도 이희승은 수필가였다. 다섯 권[≪벙어리 냉가슴≫(1956), ≪소경의 잠꼬대≫(1962), ≪한 개의 돌이로다≫(1971), ≪먹추의 말참견≫(1975), ≪메아리 없는 넉두리≫(1988)]의 창작 수필집을 냈다. 이들 수필집 옆에는 두 권의 자서전이 놓여 있다. 자서전인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1977)과 육성 녹음한 것을 토대로 사후에 펴낸 구술 자서전 ≪딸깍발이 선비의 일생≫(1966)에 담긴 내용은 다섯 권 수필집에 실린 수필들의 내용과 대부분 겹친다. 일석이 쓴 수필 가운데는 수필집에 수록되지 않은 작품도 많다. 이 수필집에 실리지 않은 작품들은 사후에 간행된 ≪일석 이희승 전집(一石李熙昇全集)≫(전 9권,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에 대부분 수습되어 있다.
엮은이
정호웅은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석사,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6년 이래 문학 평론가로 활동해 오고 있으며, 한국 근현대 문학사를 연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를 거쳐 현재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로서 우리 현대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에 ≪우리 소설이 걸어온 길≫, ≪한국 현대 소설사론≫, ≪임화−세계 개진의 열정≫, ≪반영과 지향≫, ≪한국 문학의 근본주의적 상상력≫, ≪한국의 역사 소설≫, ≪김남천 평전≫, ≪문학사 연구와 문학 교육≫ 등이 있다. ≪김동리 작품집≫과 ≪김남천 작품집≫을 엮었으며, 이주형·권영민 교수와 함께 ≪한국 근대 단편 소설 대계≫(전 35권)와 ≪한국 근대 장편 소설 대계≫(전 30권)를, 손정수 교수와 함께 ≪김남천 평론선집≫(전 2권)을 편집하는 등 우리 근대 문학 자료를 엮어 간행하는 작업도 많이 했다.
차례
딸깍발이
自我反省의 時機
멋
둥구재
好辯
七佛堂
五 尺 短軀
機智 두 가지
한글 巡禮(光州行)
言語와 民族
우리말의 감칠맛
닭과 개
納凉
形式主義
깃대 꼭지
인간 李允宰
서울의 今昔
虛榮·欺瞞·姑息
알쥐샌님
돌팔이 醫師
잘 사는 길
朝三暮四를 棄揚하자
王道는 터부우일까
志操
나의 三○ 代
벙어리 냉가슴
유우머 哲學
사랑에만 빠지지 않으신 어머니
옥중 풍토기(獄中風土記)
분서기(焚書記)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이 배외사상(排外思想)이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겸양(謙讓)의 덕에서 나온 일이라면, 우리나라에는 대각통도(大覺通道)한 성자(聖者)가 거재두량(車載斗量)으로, 이루 세일 수 없을 것이다. 참으로 경사스러운 일이다.
말에 글에 들어서도 제 나라 것은 다들 훌륭하고 좋다고 떠들어 댄다. 그런데, 이 方面에 있어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겸양의 덕이 도저하다.
오늘날까지 우리네 兄弟들의 입에서 日本 말이 술술 흘러나온다. 이것은 多年 일제(日帝) 압박 밑에서 굴욕(屈辱)의 생활을 하든 타력(惰力)이라 할가. 그러나, 타력이란 것은 自主的 제동력(制動力)이 없는 물체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는 어느 때까지나 타력에 휘둘리기만 하여야 할 것인가. 자주적으로 움직이어야 할 것인가.
그것도 그러려니와, 요새 와서는 혀도 잘 돌아가지 않는 꼬부랑말이 왜 그리 유행하는지. 우리네 일상 會話에 있어서, 장년(壯年)·청년·중학생·소학생들의 어느 계급을 물론하고, 몇 마디씩 영어 부스레기를 씨부렁거리는 것은 항다반(恒茶飯)의 일이다. 그뿐이랴. 갓 시집간 새색씨까지도 시어머니 말끝에 ‘오케’·‘땡큐 베리머취’ 하고 응수(應需)를 한다니, 겸양의 덕도 이만하면 과식의 정도를 지나, 위궤양(胃潰瘍)의 重態에 빠진 것이 아닐가. 언어도단(言語道斷)도 분수가 있지, 참으로 한심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말의 감칠맛>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