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인공지능과 타자의 몸, 공존의 가능성을 탐색하다
AI를 단순한 객체가 아닌, 함께 공존하며 협력할 수 있는 타자로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우리는 AI를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도구로 활용하며, 기술을 통해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꿈꿔왔다. 그러나 AI의 발전이 인간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면서, 우리는 새로운 두려움과 불안을 마주하고 있다. AI가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게 될 것인가? 아니면 인간과 AI는 새로운 관계 속에서 공존할 수 있을까? 이 책은 AI의 등장과 함께 인간 중심적 사고가 만들어낸 타자성과 위계 구조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인간과 AI가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함을 강조한다.
책은 AI를 단순한 기술적 도구가 아니라, 사회적·철학적 존재로 조명한다.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노동, 윤리, 자유, 욕망 등의 개념을 통해 탐구하며, AI의 타자성이 단순한 하위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주체성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논의한다. 또한, AI의 자율성과 인간성의 경계를 철학적으로 분석하며, 미래 사회에서 인간과 AI가 어떻게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각 장은 사랑, 지능, 노동, 윤리, 몸, 진화, 지혜, 자율성, 인간성, 욕망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인간과 AI의 관계를 영화, 소설, 철학적 논의를 통해 입체적으로 살펴보며, 단순한 기술 논의가 아닌 철학적·사회적 담론으로 확장한다.
200자평
AI를 인간의 하위 개념이 아닌 새로운 타자로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한다. 노동, 윤리, 자율성, 인간성 등의 개념을 통해 인간 중심적 사고를 비판하며, AI와 인간이 상호 존중하며 공존할 가능성을 탐색한다. 기술적 논의를 넘어 철학적·사회적 담론으로 논의를 확장한다.
지은이
심귀연
경상국립대학교 인문학연구소 학술 연구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오이코스 인문연구소 공동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철학(현상학)을 전공하였으며, 경상국립대학교에서 “메를로ᐨ퐁티의 자유개념”(2011)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 “세계와 깊이 : 메를로ᐨ퐁티와 세잔의 회화를 중심으로”로 새한학술상(19회)을 받았다. 메를로퐁티의 이론에 근거해 생태, 여성의 문제를 비판적 포스트휴먼과 신유물론의 입장으로 확장 연구하고 있다. 단독 저서로 『신체와 자유』(2012), 『철학의 문』(2014), 『몸과 살의 철학자 메를로ᐨ퐁티』(2019), 『취향: 만들어진 끌림』(2021), 『내 머리맡의 사유』(2022), 『모리스 메를로퐁티』(2023), 『이 책은 신유물론이다』(2024)가 있다. 공저로 『지구에는 포스트휴먼이 산다』(2017), 『몸의 미래, 미래의 몸』(2018), 『여성과 몸』(2019), 『포스트 바디ᐨ레고인간이 온다』(2019), 『키워드로 보는 청소년인문학』(2019), 『인류세와 에코바디』(2019), 『인공지능이 사회를 만나면』(2020), 『신유물론⨯페미니즘』(2023), 『서양의 생태철학』(공편저, 2023), 『우리에겐 더 많은 돌봄이 필요하다』(2024) 등이 있다. 논문으로 “생태공동체 모델 구축을 위한 인간, 자연, 기술 개념 연구”(2020) 등 수십 편이 있다.
차례
인공지능 시대, 타자성에 대해 생각하기
01 영화 속 주인공이 된 인공지능의 사랑
02 인공지능과 로봇, 로보 사피엔스의 출현
03 인공지능과 노동
04 인공지능의 몸과 윤리
05 인간 몸과 인공지능 몸
06 인공지능 몸들의 진화
07 철학자와 인공지능
08 자율 주행 차량과 태권브이
09 범용 인공지능과 인간
10 인간이 만든 AI에 대한 환상
책속으로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는 사랑은 결합이고 미움은 해체라고 했다. 사랑은 이질적인 두 존재를 연결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엑스 마키나>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은 케일럽에게만 해당되었고, <에이 아이>에서는 데이비드에게서만 진정성을 가진 것으로 표현된다. 이 두 영화 모두 ‘사랑’이라는 감정에 속아 절망하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에게 언제 분해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엑스 마키나>의 에이바는 케일럽을 사랑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에이바에게 케일럽은 자신을 만든 개발자와 같은 ‘인간종’이기 때문이다. 케일럽이 언제 변심해서 자신에게 총과 칼을 겨눌지 알 수 없다. 에이바는 케일럽을 이용하여 실험실에서 탈출한다. 케일럽은 실험실에 갇히고, 에이바는 절망적인 비명을 지르는 케일럽을 뒤로하고 인간의 세상으로 나간다.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에이바는 나빴는가? 케일럽이 불쌍한가? 에이바는 살아야 했고, 케일럽은 재수가 없었다.
-01_“영화 속 주인공이 된 인공지능의 사랑” 중에서
인공지능의 자동화 시스템은 반복된 노동의 지루함을 없애고, 노동자의 부담을 줄이게 된다. 일종의 돌봄 노동같은 것들이다. 꼭 필요하지만 하기 싫은 일들, 예를 들자면 반복적인 주문받기와 기계적인 응답 같은 것들이다. 이런 일들은 키오스크, 고객 서비스 응답 등과 같은 인공지능 시스템에게 맡겨진다. 반면에 정확성과 정밀성을 요구하는 작업들은 인공지능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자면 인공지능은 대량의 데이터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판매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며, 주식시장과 금융시장에서 정밀한 분석을 제공하고, 법률 자문 및 의료적 판단에서는 신뢰도를 높여 준다. 인공지능은 전문가뿐 아니라,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전문가 못지않은 도움을 준다.
-03_“인공지능과 노동” 중에서
우리는 왜 인공지능 로봇에게 완전한 자율성을 기대하는 것일까? 돌봄 보조 서비스의 경우의 예를 들어 보자. 돌봄은 우리 일상에서 행해져야 하지만, 문제는 돌봄을 가치 절하해 왔다는 데에 있다. 돌봄은 필요하지만, 돌봄의 가치가 인정받지 않는 세상이므로 돌봄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가해야 했다. 에너지만 공급하면 지치지 않고, 돌봄 과정 중에 입게 될 감정을 다칠 일도 없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존재인 인공지능 로봇은 그런 면에서 돌봄 수행에 적합하다. 또 다른 이유로, 돌봄 수행이 노출될 때 드러나는 불편을 들 수 있다. 돌봄 수행 로봇이 완전한 자율성을 가지지 않으면 인간이 매시간 개입해야 하고, 결국 돌봄은 자꾸 문제 상황 속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이 지속적으로 개입하지 않아도 되는 완전 자율성을 돌봄 수행에 특화된 인공지능 로봇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06_“인공지능 몸들의 진화” 중에서
그뿐인가. 인공지능 요리사에게 자동화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것이 인간이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바리스타가 그날의 날씨와 고객의 취향을 파악하여 적당한 맛의 커피를 내리기를 바라는 것이며, 인공지능에게 탁월한 도덕성까지 요구한다. 인간이 개입하지 않아도 인간의 손과 발이 될 뿐 아니라 문제적 상황조차 만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인간의 바람대로 행위하는 인공지능 로봇의 ‘자율성’이라니, 이것은 모순이다. 왜냐하면 ‘자율성’에는 인간의 바람에 대한 인공지능 로봇의 거부권마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자율성은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리고 행위성은 ‘행위 자체로’ 표현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행위 자체에서 자율성을 찾아야 할 것이다.
-09_“범용 인공지능과 인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