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평론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임헌영 비평은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참여문학에서 민족문학으로, 그리고 리얼리즘문학을 거쳐, 노동자·농민의 민중문학’에 이르는 도정을 걷고 있다. 그는 역사의식을 강조하고, 근현대의 민족 수난사를 다룬 작품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적극적으로 의미화했다.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현실과 문학 이념 사이의 긴장을 인정했고, 다문화 이론과 디아스포라, 그리고 민주주의의 문제에 관해서도 지속적인 글쓰기를 해 왔다. 그렇다면, 임헌영 비평의 특징은 어떻게 의미화할 수 있을까? 임헌영 비평은 1) 금기를 위반하는 문학의 자유, 2) 민족적 민족의식에 기반한 글쓰기, 3) 역사적 실증주의, 4) 변증법적 지성의 비평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임헌영의 비평 세계는 ‘민중의 입장’에서 일본 제국주의와 서구 문화제국주의를 비판하는 것이었다. 그가 ‘신항일문학론’을 제기한 것이나, ‘신친일문학론’을 비판한 것도 민족의식에 토대를 둔 것이었다. 독특하게도 동학혁명을 민족문학사의 전통으로 제시했고, 민족문학의 핵심 지위로 ‘분단문학’을 지속적으로 탐구했다. 그가 주목한 테마는 사회변혁과 문학의 관계였다. 그는 4·19혁명 문학,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문학,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과 관련한 문학에 대해 비평 작업을 공들여 수행했다. 그가 주목한 작가는 조명희, 이기영, 이익상, 김정한, 고은, 박경리, 이병주, 신경림, 김지하, 황석영, 양성우, 김남주, 채광석이었다. 하지만 그는 작가의 위대함보다는 민족문화의 전통에 가 닿으려는 민중문학에서 더 큰 울림을 경험했다. 변증법적 지성으로서 임헌영의 비평은 ‘지구화 시대의 문학’에 대한 탐구에 이르러서도 ‘다문화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펼치는 활력을 지속하고 있다. 그는 ‘민중의 편에 서서 말할 줄 아는 평론가다.
200자평
문학평론가 임헌영은 1970년대를 온몸으로 견뎌 내며 자신을 숙성시킨 ‘행동하는 지성’이다. 임헌영의 대표 평론을 수록했다.
지은이
임헌영은 1941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다. 1961년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 1965년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했다. 중앙대, 상명여대 등에 출강했고, 중앙대학교 국문학과 겸임교수를 지냈다.
본격적인 문학평론 활동은 1966년 ≪현대문학≫ 3월 호에 <장용학론−아나키스트의 환가>를 발표하면서 시작했다. 이후 <니힐과 반항>(1966), <까토의 자유론>(1966), <전쟁 속의 인간상>(1969), <도전의 문학>(1969), <민족문학에의 길>(1970), <한국문학 사상사 시론>(1971), <한국문학의 과제>(1971), <미학의 사회적 기초>(1971), <참여와 어용>(1977), <한의 문학과 민중의식>(1984), <4·19와 한국소설>(1985), <카프문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1989), <대중문화와 민중문화>(1989) 등을 발표했다. 역사와 민족의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두었다. 1974년 1월 문학인 사건에 연루, 구속되었다가 7월 제1심에서 석방되었다. 1979년 10월 시국 사건으로 다시 구속되어 1983년 8월에 풀려났다. 1998년 8월 15일 광복절 사면 복권되었다. 2006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되었다.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 아카데미 원장, 민족문제연구소 부소장을 지냈고,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는 대학 교재용 ≪한국 근대소설의 탐구≫(범우사, 1974), 참고서 ≪명작과 함께하는 주제별 논술≫(한샘출판사, 1996)이 있고, 평론집으로 ≪문학의 시대는 갔는가≫(평민사, 1978), ≪창조와 변혁≫(형성사, 1979) 등이, 산문집으로 ≪새벽을 위한 밤의 연가≫(범우사, 1979), ≪문학을 시작하려면≫(생활지혜, 1994) 등이, 공저로 ≪해방 전후사의 인식 1≫(한길사, 1979), ≪토지문화재단 심포지엄−한국문학사 어떻게 쓸 것인가≫(한길사, 2001) 등이, 해설서로 ≪납월북 예술가 산문 축전≫(전 3권, 동아, 1989), ≪명작 속의 여성 73≫(공동체, 1993) 등이 있다. 그 밖에 기획·출간한 책으로 ≪한국문학 대계≫(태극출판사, 1978)가 있고, 윤동주 한·미·중·일 4개국 대역 시집 ≪별 헤는 밤(서시)≫의 해설, ≪친일문학론≫(민족문제연구소, 임종국 저, 이건재 교주, 2013)에 보론을 썼다.
해설자
오창은은 1970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출생했다.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 도시소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계간 ≪실천문학≫ 편집위원,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평론집으로 ≪비평의 모험≫(2005)과 ≪모욕당한 자들을 위한 사유≫(2011)가 있고, 인문비평서로 ≪절망의 인문학≫(2013)이 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평론분과 위원장, ≪문화/과학≫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중앙대학교 교양학부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차례
현대문학과 다문화주의
근현대 문단 이면사 엿보기
경이로운 시인, 세계문학사에 등정하다−고은론
임헌영 ≪아리랑≫의 민족운동사적 접근
해설
임헌영은
해설자 오창은은
책속으로
파인이 기자 활동으로 받은 촌지를 아껴 종합 월간지 ≪삼천리≫를 창간한 것은 1929년 6월(잡지는 7월 호). 최정희가 중앙보육학교(현 중앙대 전신) 박희도 교장의 소개장을 들고 파인을 찾은 건 1931년 9월. 1930년 3월 영화인 김유영(金幽影, 본명 榮得)과 결혼한 최정희는 이 잡지사에 근무하면서 창작 활동을 겸하여 카프 검거(1934)에 여성 작가로서는 유일하게 연루되어 투옥당하는 등 고난을 겪으면서 좌우익 문단의 편안한 마돈나 역할을 맡았다.
그녀는 개인적으로 사심 없는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로서의 인간성 때문에, 공적으로는 ≪삼천리≫라는 막강한 잡지사 여기자로서, 그리고 파인 김동환의 총애를 받는 여인이라는 여러 요인을 두루 갖췄기 때문에 당대의 거의 모든 문인들과 스스럼없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녀는 당대 문인들의 소식과 동정의 정보통이었고, 전화가 드물었던 터라(최정희가 첫 출근 했을 땐 삼천리사에도 전화가 없었다) 편지는 원고 청탁이나 만나기 위한 약속의 선결 요건이었다.
최정희에게 편지를 보낸 문인들은 그 숫자에 못지않게 문학적 유파를 초월한 점으로 미뤄 볼 때 실로 놀라운 일이다. 우선 함경·평안 등 파인이나 최정희의 고향인 북쪽 지역 문사들이 삼천리사를 사교장처럼 드나들었던 사실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은 상경하면 일차적으로 이 사무실엘 들락거리며 다른 동향 문우들을 찾곤 했음이 드러난다. 그다음으로 편지들은 각종 업무가 반드시 편지나 직접 만나서 이뤄졌던 시대였음을 보여 준다. 편지들은 우편에 못지않게 직접 전달하는 형식의 서간이 많았던 점도 특이하다.
―<근현대 문단 이면사 엿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