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해체는 허무주의가 아니다
자크 데리다의 철학적 깊이를 이해하는 시작점
“왜 사람들은 해체가 허무주의나 회의주의가 결코 아니라는 점을 모른 체하는가? 왜 사람들은 그 반대라는 것을 20여 년 전부터 명확하게 주제별로 보여 준 그토록 많은 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런 주장을 자주 하는가? 왜 누군가가 이성과 이성의 형태와 역사 그리고 변화들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자 곧 반이성주의라고 규탄하는가?”
‘해체’ 개념으로 널리 알려진 자크 데리다의 등장은 서구 형이상학의 토대를 뒤흔드는 사건이었다. 데리다의 철학은 기반 없이 휘청이며 회의주의나 허무주의에 빠질 것이라는 많은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일부 사람들은 데리다의 철학을 단순히 문학적 수사나 은유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소 극단적으로 보이는 데리다의 사유는 언제나 ‘철학’을 지향했으며, 데리다의 글쓰기 전략은 은유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 데리다 철학의 엄밀성을 증명한다.
이 책은 알제리 출신으로서 데리다가 바라본 서구 철학 전통, 사후 나치 부역 혐의로 홍역을 치룬 데리다의 동료 폴 드 만과의 이야기, 레비나스 타자론과 데리다의 관계 등 다양한 맥락에서 데리다의 개념들을 소개한다. 짧은 분량 안에서 데리다의 거의 모든 저작의 개념을 소개한 이 책은 막연하게 데리다의 이름만 알고 있던 이에게도, 데리다의 특정 저작에 관심을 갖던 이에게도 충분한 의미를 제공할 것이다.
200자평
자크 데리다는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먼 이름이다. 해체주의자, 탈구조주의자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그지만, 데리다의 철학은 이 말들로 담을 수 없는 복잡한 맥락 속에 있다. 알제리 태생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활동하며 단일한 정체성을 요구하는 모든 종류의 억압에 맞섰다. 언어 유희로 가득한 데리다의 사유는 너무나 방대해서 그 시작점을 찾기 어렵다. 이 책 한 권에서 시작해 보자. 해체, 차연, 대리 보충, 환대, 용서 등 데리다의 키워드 10개를 뽑아 상세하게 해설하고 비평한다.
지은이
강선형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들뢰즈 철학에서 시간의 종합과 영화>로 석사 학위를, <들뢰즈와 칸트: 들뢰즈 철학의 형성에서 칸트 삼비판서의 역할>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학교, 국민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한국프랑스철학회 총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출판간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40회 영평상에서 신인평론상을 받았다. 논문으로는 <칸트와 들뢰즈에서 자아의 동일성 문제>, <랑시에르의 시간과 영화, 그리고 정치>, <아감벤의 잠재성과 무위>, <영화의 사운드와 자유간접적 역량>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자아의 초월성≫(공역), ≪니체, 버스킹을 하다≫, ≪철학극장: 철학과 영화의 마주침≫등이 있다.
차례
자크 데리다라는 사람
01 해체
02 음성중심주의
03 차연
04 대리 보충
05 타자
06 유령
07 환대
08 애도
09 용서
10 도래할 민주주의
책속으로
데리다가 조심스럽게 선택한 ‘déconstruction’이라는 번역어, 그의 철학의 중심에 오게 된 그 번역어가 알려주듯이 해체는 모든 것을 ‘파괴’해버리는 허무주의나 회의주의가 아니다. 해체는 체계라는 것에는 늘 한계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며, 체계 자체가 그 한계로부터만 가능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해체는 체계를 자처하는 것들 안에서, 체계에 의한 체계의 자기 해석들 안에서 어떤 탈구(dislocation)의 힘을 드러내고, 총체화 안에서, 추론적 종합의 운동 안에서 한계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_ “01 해체” 중에서
데리다는 라틴어 ‘differre’에서 온 프랑스어 ‘différer’가 ‘다르다’, ‘차이난다’라는 뜻과 ‘지연시키다’, ‘연기하다’라는 뜻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차연’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차이를 뜻하는 프랑스어 ‘différence’는 두 의미 가운데 하나인 시간화로서의 지연 또는 연기의 의미를 가리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_ “03 차연” 중에서
타자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모든 지반이 무너져 내렸을 때도 ‘공조’할 수 있고 ‘살아 있게’ 만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데리다에게 레비나스인 것이다. 레비나스 역시 자신의 철학과 데리다 철학의 만남에 대해 ‘교차(chiasme)의 한 가운데에서 접촉의 즐거움’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서로의 철학에서 이질적인 것을 남겨두면서 공조하고 교차하는 것, 그것이 바로 타자 개념에서 두 사람이 만나고 있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_ “05 타자” 중에서
데리다는 타자에 대한 관용을 이야기하는 태도에 감추어진 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주권은 오만하게 내려다보면서 타자에게 이렇게 말하죠. 네가 살아가게 내버려 두마, 넌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야, 내 집에 네 자리를 마련해두마, 그러나 이게 내 집이라는 건 잊지 마…”. 관용을 표방하는 태도에 감추어진 것은 내가 가진 권력을 보유하고자 하며 계속해서 경계를 짓는 태도다.
_ “07 환대” 중에서
이미 벌어진 일은 어디까지나 과거에 속하지만, 지나가 버리는 과거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수정되거나 망각되거나 만회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극단적인 악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들의 근본적인 특성이다.
_ “09 용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