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극은 1942년 봄, ‘작은댁’이 ‘큰댁’과 처음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후 ‘작은댁’에게 아이가 들어선 1943년, 그녀가 ‘큰댁’, 남편, 아이와 함께 창경원으로 소풍을 간 1945년부터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그리고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1975년에 이르기까지 ‘작은댁’의 삶을 시간 경과에 따라 엮었다. 이 작품은 어머니와 할머니 세대의 고통을 그렸다고 할 수 있다. 가부장제와 축첩이라는 구습과 일제강점과 전쟁이라는 역사적 비극이 겹치는 복합적인 상황에서 여성이기에 감내해야 했던 삶을 조명한다. 아들을 낳지 못해 구박당하는 ‘큰댁’도, 아들을 낳으면 본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과 달리 결국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첩으로 살아야 하는 ‘작은댁’도 모두 가부장적인 남편의 일방적 폭력에 시달린다. ‘작은댁’은 독립운동을 위해 집을 떠난 남편을 대신해 남의 집 첩살이를 하며 가정과 딸을 지켜 낸다. 한편 ‘큰댁’은 전쟁통에 강간을 당해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이처럼 작품에 나오는 여성 인물들은 이중적인 고통 속에서 남편 혹은 아버지가 없는 가정을 지킨다.
1995년 극단 민예가 강영걸 연출로 문예회관소극장에서 초연했다. 작가가 가족 관계에서 직접 체험하고 전해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창작한 이 극은 여러 지역을 순회공연하며 인기를 얻었다.
200자평
‘그 여자의 소설’이라는 부제가 달린 8장 희곡이다. 축첩이 허용되던 환경에서 씨받이로 들어온 ‘작은댁’의 삶을 연대기로 제시해 한국 근현대사 중턱에서 여성이자 어머니로서 삶이 어떠했는지 보여 주며 그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다.
지은이
엄인희는 1955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실향민으로 농협 지점장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경기도 일대 농촌 지역을 옮겨 다니며 유년기를 보냈다. 서울예술대학을 졸업했으며 198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부유도>가,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희곡 <저수지>가 당선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3년 대한민국문학상 희곡 부문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 사회운동에 참여, ‘여성의 전화’, ‘민요연구회’에서 활동했다. 안양문화예술운동연합 의장, 한국여성단체연합 문화위원회 위원, 민족문화작가회의 희곡ㆍ시나리오 분과위원장, 민족극운동협의회 지도위원 등을 지냈다. 또한 어린이문학회 희곡분과위원을 지내며 아동극 분야에서도 활동했다. 2001년 폐선암으로 작고했다. 대표작으로 <생과부 위자료 청구 소송>, <부유도>, <저수지> 등이 있으며 단행본으로는 ≪엄인희 대표 희곡선≫, ≪재미있는 극본 쓰기≫ 등이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제7장
제8장
<작은할머니: 그 여자의 소설>은
엄인희는
책속으로
작은댁: 뭐? 이 손, 발로 뭐 했는데? 과수원 농사, 밭농사 누가 다했어? 정순이 여고 때 홍수 났을 때, 우리 집 돼지들 다 누가 구했어? 내가 이 머리에서 꾀를 내 가지고 구했어. 도망 안 가고 돼지들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서.
남편: (아무거나 집어 던지며) 이년이 반말을 찍찍 갈겨!
작은댁: 진범이가 중학교 때, 깡패 한다고, 당신이 나 때리는 거 보기 싫어서 막 나가겠다고 술 먹고 돌아다닐 때, 당신 어딨었어? 울릉도 집에서 계집 끼고 들어오지 않았잖아. 진범이 이 가슴에 폭 싸안고 사람 만들었어. 이 가슴에서 정이 나와서 애를 고쳤어. 뭐 알어? 뭐 궁둥이를 어째?
남편: 궁시렁거리지 마라. 이년아! 그 궁뎅이 아녔으면 보릿고개도 못 넘기고 황천길 갔다, 잡년아! 화냥년아! 여자란 것이 원래 사내들 애 낳아 주려고 사는 년들인데, 뭐가 어째? 머리에서 꾀가 나와? 그렇게 잘난 년이 왜 평생 맞고 살아? 이년아, 개도 대들지 못하고 깨갱거리기만 하면 더 맞어. 이 벼락 맞을 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