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368년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약 300년 동안 중원을 지배한 한족(漢族)의 왕조, 명나라의 창업 과정을 담고 있는 왕조 교체형 영웅소설이다. 일찍이 부모를 잃고 누이와 헤어져 고난을 겪는 ‘장백’과 조선 출신의 걸인으로 형상화되는 ‘주원장’이 중원의 자리를 두고 대결한다.
우리나라 영웅소설의 대부분은 명나라나 송나라 같은 한족의 왕조를 배경으로 하여 ‘오랑캐’라 불리는 이민족의 침입을 물리치는 주인공의 영웅담을 서사화한다. 이러한 구도에는 병자호란 이후 한반도에 형성된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청나라를 배척하자’는 당대인들의 숭명배청(崇明排淸)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장백전》이 창작된 18세기 무렵, 명나라는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며, 청나라는 ‘호운불백년(胡運不百年)’ 즉, 오랑캐의 운수는 백 년을 넘지 못한다는 오랜 믿음을 깨고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중원을 지배하고 있었다. 나아가 강희제-옹정제-건륭제로 이어지는 삼대 성군(聖君)을 배출하며 정치적 안정과 문화적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장백전》의 서사에는 당대의 변화한 대청인식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동국 출신의 걸인으로 그려지는 주원장에게서 존명 의식의 소멸을 엿볼 수 있고, 나아가 그가 중원을 차지하여 천자가 된다는 서사는 ‘천명(天明)’이 이민족, 즉 청나라로 옮겨 간 정세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즉, 《장백전》의 주원장은 망해 버린 명나라 태조와 당대 중원의 주인인 청나라를 동시에 상징한다.
한편, 당대의 보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천명’은 한족 출신인 장백에게 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장백은 고귀한 혈통과 능력, 확고한 창업 의지를 가졌음에도 결국은 창업주가 되지 못한다. 장백은 여러 과정을 통해 ‘천명’이 결국 주원장에게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이러한 장백의 모습은 오랜 번영을 지켜본 후에야 청나라로 ‘천명’이 옮겨 갔음을 인정한 조선인들과 닿아 있다. 《장백전》의 주원장이 그렇듯이, 장백 역시 천명이 떠나 버린 한족을 상징하는 동시에 청나라의 존재를 인정해 가는 조선인의 모습을 담고 있는 복잡한 상징물인 것이다. 이처럼 청나라에 대한 조선의 변화한 인식을 역사적 인물인 주원장과 허구적 인물인 장백을 통해 절묘하게 구현해 낸 《장백전》은 명나라의 창업 과정을 그린 《유문성전》, 《주원장창업실기》, 《석일태전》을 비롯해 수많은 작품의 창작에 다대한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20세기 중반까지 다양한 매체로 유통되며 무려 200년 동안이나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200자평
우리나라의 수많은 영웅소설 가운데 비교적 초기의 작품이다.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약 삼백 년 동안 중원을 지배한 한족(漢族)의 왕조인 명나라의 창업 과정을 담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 작품에서 명나라를 창업하는 주원장이 조선인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조선 출신의 이민족이 천명을 받아 명나라 천자가 됐다는 서사는, 역동하고 있던 조선 후기의 시대사상을 날카롭게 반영한 것으로, ‘천명(天命)’이 중화를 떠나 이민족에게도 존재할 수 있다는 새로운 인식을 표출한 것이다.
옮긴이
주수민(周修旼)은 서울에서 출생했다. 홍익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였고 뒤늦게 공부를 다시 시작하여 충북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하여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하여 고소설을 공부하고 2017년 〈고전소설에 나타난 중국인식 연구−원·청 배경 작품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익대학교 및 남서울대학교에서 시간 강의를 하였으며, 홍익대학교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2년간 근무한 뒤 2020년부터 현재까지 한국학중앙연구원 전통한국연구소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처음에는 중국 배경 작품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고소설의 서사적 특성을 고려하여 고소설의 ‘중국 배경’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해당 작품들에 나타난 중국에 대한 작자 인식을 연구했고 이를 통해 중국 배경 고소설 작품들이 중국에 대한 소설 향유자들의 인식을 상당히 입체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소설의 시공간 배경에 대한 실증적인 검토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현전하는 상당수의 작품을 검토의 대상으로 하여 유형별로 배경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다. 현재는 중국의 역사적 왕조를 배경으로 서사를 전개하고 있는 조선 후기 장편소설 작품들을 대상으로 각 작품에 나타난 중국의 역사담이 어떠한 서사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가를 연구하고 있다. 〈〈장백전〉의 형성동인과 주제의식〉 및 〈〈현수문전〉 이본 연구〉를 비롯하여 〈조선 후기 가문소설의 시·공간 배경과 재위 황제〉, 〈광무제 시대 배경의 한국 고소설 〈옥환기봉〉의 서사적 의의−중국 TV 사극 〈수려강산지장가행〉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화정선행록〉의 창작방식 연구−역사 인물의 소설화 양상과 방식을 중심으로〉 등 여러 편의 논문을 학계에 발표했다.
책속으로
“낭자는 내 행색이 누추하다고 침 뱉지 말라. 비록 모습은 그러하나 가슴속에는 천하의 흥망을 품었으니 실로 나라를 세울 것이다. 지금 자취를 감추고 다니며 천시(天時)를 기다리던 중 우연히 이 절에 들어와 낭자를 만났으니 이는 하늘이 정하신 연분이라. 내가 장차 천하를 평정한 후에 낭자를 예를 갖추어 아내로 맞이할 것이니, 혹여 신물(信物)이 있다면 날 주어 훗날의 증표로 삼는 것이 좋으리라.”
걸인의 말을 들은 장 소저는 놀라움을 이기지 못했으나 사세가 어쩔 수 없음을 알고는 잠깐 눈을 들어 걸인의 모습을 보았다. 얼굴에는 묵은 때가 가득하여 눈 아래 코가 있음을 알 수 없었고 머리털은 헝클어져 방석 같고 옷은 해져서 몸을 가리지 못했으니 그 누추함은 차마 똑바로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엄숙한 몸가짐은 기산 기산(岐山) : 중국 섬서성(陝西省) 보계시(寶鷄市) 기산현(岐山縣) 동부에 있는 산으로 주나라 시조인 고공단보(古公亶父)가 이 산 남쪽 기슭을 주나라 왕실의 본거지로 삼아 간혹 왕실의 발상지에 비유됨.
에 웅크린 맹호(猛虎) 같았고, 상쾌한 모습은 청룡이 벽해(碧海)에서 몸부림을 치는 듯했다. 또한 풍채는 늠름하였으며 코가 우뚝하고 얼굴 생김새는 용과 같아 당당히 제왕(帝王)의 기상이 있었다.
“우리가 서로 적이 되어 천하를 다투고 있으니 사사로운 이야기를 할 바는 아니로되, 소장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누이를 의지하며 지내던 중 동네 노파의 흉계에 빠져 외가로 가던 길에 도적에게 누이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소장은 나이가 어려서 누이를 찾지 못하고 망극한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왔으니 그때는 살고 싶은 마음도 없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까지 목숨을 보전하고 있으나 늘 누이를 생각하면 설움이 북받칩니다. 그런데 아까 바람이 불어 주렴 사이로 본 황후의 얼굴이 누이와 방불하니 자연히 비창한 마음이 듭니다.”
장백의 말을 들은 상은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말을 들은 황후가 좌우를 물리치고 급히 나와 장백의 손을 잡고 큰 소리로 목 놓아 울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마침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네가 내 동생 장백이냐? 그사이 어떻게 살았느냐? 그때 도적에게 잡혀갈 때 길에서 너를 잃고 어찌할 줄 몰랐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