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행복의 전제 조건, ‘자유’
인식의 한계로부터 자유 … 묻고, 따지고, 사유하라
장자(莊子)는 전국시대의 혼란스런 삶 속에서도 자유를 꿈꾸고, 자유를 노래하고, 자유를 사유한 철학자다. 그가 생각하는 행복의 절대 조건은 자유다. 철학적 사유의 출발점이 자유라면, 행복은 그것의 궁극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장자는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삶의 주체성을 박탈당하지 않으려면 허명(虛名)을 벗어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장자의 우언(寓言)에 담긴 삶의 철학은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이 책은 장자의 사유를 통해 현대인의 자유와 행복을 이야기한다. 장자의 다채로운 이야기로 현대사회의 병폐를 꼬집으며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온전한 삶의 길로 안내한다. 장자철학에서 자유는 행복의 전제 조건이다. 행복한 삶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식의 한계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고, 자유를 구속하는 감옥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간은 자유로운 자기로서 온전히 존재할 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자철학에서 도출되는 자유 개념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로부터의 자유’고, 다른 하나는 ‘∼에로의 자유’다. 전자는 일반적인 자유 개념이고, 후자는 장자철학에서 발견되는 절대 자유라는 독특한 개념이다. 절대 자유란 ‘∼로부터의 자유’와는 차원이 다른 개념으로 삶과 죽음을 초극해서 죽지도 않고 살지도 않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이 책의 주제어는 ‘지식과 행복’, ‘자유와 행복’ 두 가지다. 장자에 따르면 지식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행복의 지침이 되기도 하고 재앙을 부르는 화근덩어리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자유를 구속하고 행복의 길을 차단하는 것인지 열어 주는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소크라테스의 조언에 따라 끊임없이 묻고 따지고 사유해야 한다. 묻고, 따지고, 사유하는 것이 바로 철학함의 방법이다.
200자평
장자는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삶의 주체성을 박탈당하지 않으려면 허명(虛名)을 벗어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장자의 우언(寓言)에 담긴 삶의 철학은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이 책은 장자의 사유를 통해 현대인의 자유와 행복을 이야기한다. 장자의 다채로운 이야기로 현대사회의 병폐를 꼬집으며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온전한 삶의 길로 안내한다. 장자철학에서 자유는 행복의 전제 조건이자 절대 조건이다. 행복한 삶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식의 한계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고, 자유를 구속하는 감옥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간은 자유로운 자기로서 온전히 존재할 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과 법률의 제정을 목표로 하는 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전술을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조직의 행위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지은이
박혜순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이며, 생태·생명위기의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서강대학교, 국민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서강대학교CTL 주관으로 진행한 ‘고전 100권 읽기’의 저변 확대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 『생태문명 생각하기‑내 삶을 바꾸는 환경철학』(공저, 2018)이 있고, 주요 논문은 “공존의 생태윤리를 위한 대안적 제언 이수관물(以水觀物)”, “『태일생수』에 나타난 물과 생명의 관계방식 고찰”, “삶과 죽음 그리고 자유에 대한 해석학적 접근”, “21세기 생태담론, 거피취차”, “수평사회를 지향하는 성인의 ‘자(自)’ 연구”, “신뢰사회의 원형 탐구”, “사유력 강화의 방법론, 불언지교” 등이 있다.
차례
행복의 전제 조건, 자유
01 북명과 남명
02 지식과 행복
03 닫힌 지식과 열린 지식
04 안지약명
05 삶과 죽음
06 비움의 철학
07 시선의 감옥
08 상처의 치유
09 왕태의 불언지교
10 행복
책속으로
4차 산업혁명이 세계와 인류를 바꾼다는 것은 인간이 주체성을 상실하고 기술의 부림을 당하게 된다는 의미다. 이와 같은 생명 위기, 인공지능에게 주체성을 박탈당하는 위기에 노출되고 싶지 않다면 전체적 맥락을 읽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그 방법의 하나가 장자철학에 담긴 아날로그적 감성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_서문-“행복의 전제 조건, 자유” 중에서
곤이 존재의 질적 전환을 이루는 화이위조는 왈칵 울음이 터질 것 같은 곤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마치 아스라이 먼 하늘에서 오케스트라의 장대한 연주가 울려오는 것 같은 스펙터클한 영화 같은 한 장면이다. 이때 빛을 발하는 것이 바로 적후지공(積厚之功)의 내공이다. 깊은 내적 수양이 쌓여 있지 않으면 때가 와도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없고 기회가 와도 이상적 자아를 실현할 수 없다.
_”01 북명과 남명” 중에서
사태를 정확하게 아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것을 긍정하고 수용하는 것은 더 어렵다. 우리가 삶의 중대한 문제에 부딪쳐 괴로움을 겪을 때, 앞이 보이지 않아 막막할 때, 그것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을 알면[知其不可奈何]” 안다는 것 자체가 말할 수 없는 고통이기 때문이다.
_”04 안지약명” 중에서
세상의 시선에서 무신경해지고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 것은 자기를 존중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자신을 더 이상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방치하지 않는 자유인의 태도다. 타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평가하는 것은 그들의 인품과 인격이 미숙하다는 증거일 뿐이다. 그들의 미숙한 인격 때문에 자존감을 해치는 것은 자기를 존중하는 사람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우리가 타인의 정신적 미숙함까지 끌어안고 고통스러워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_”07 시선의 감옥” 중에서
우리들 대부분이 (중략) 자신이 자기 삶을 그리고 창조하는 자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삶이라는 그림 속에 매몰되어 그림 속의 자기를 진짜 자기로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을 그렇게 만드는 주된 요인은 바로 육체와 감각이다. 육체와 감각의 의미를 부정하고 가볍게 털어 냄으로써 ‘그림을 그리는 나’의 지위를 되찾고 “자기 삶을 창조적으로 건축하는 자기”로 격상시킬 수 있다.
_”09 왕태의 불언지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