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20세기 도스토옙스키라 불리며 러시아 대표 극작가에 꼽히는 불가코프의 말년은 암울했다. 그는 1932년 이후 죽을 때까지 <투르빈가의 나날들> 단 한 편의 희곡만을 상연할 수 있었다. 당국의 검열 때문이었다. <적자색 섬>에는 작가의 답답하고 절박한 심정이 배어 있다.
[극중극 구정을 통한 현실 풍자]
<적자색 섬>의 구성에서 가장 눈에 띄는 극중극 형태는, 패러디를 용이하게 함과 동시에 당대 극장의 부조리하다 못해 코믹한 현실을 고스란히 재현해 내는 데 큰 몫을 한다. 희곡에 붙은 부제 ‘겐나디 판필로비치의 극장에서 있었던 쥘 베른 동지 희곡의 총리허설’이 암시하듯, 희곡의 줄거리는 극단장 겐나디 판필로비치가 디모가츠키의 창작 희곡 <적자색 섬>을 무대에 올리기 위한 리허설 과정을 골자로 한다.
[진정성 없는 인물 설정 통한 패러디 효과의 극대화]
이 희곡에서는 진정 고뇌하고 사색하는 인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겐나디뿐만 아니라 디모가츠키, 그리고 배우들이 빈번히 인용하는 고전 문구들이 이러한 한계를 직·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이들의 박식함과 재치가 오랜 세월 연극계에 몸담아 온 자들의 연륜과 순발력을 증명하며, 또한 연극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는 등의 순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고뇌와 사색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 현실을 예측 가능한 허구적·연극적 상황에 빗대 타인의 말로 규격화하는 인식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극에서 인용되고 있는 그리보예도프나 셰익스피어, 수마로코프, 푸시킨 등은 그래서 어느 순간 고전의 매력과 힘을 상실한 채 공허한 말장난으로 변질되고 만다.
200자평
불가코프의 희곡 <적자색 섬>을 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한다. 검열과 감시로 제대로 된 상연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불가코프가 자신의 울분을 이 작품에서 패러디와 풍자로 유쾌하게 토해 냈다. 세태를 비판하고자 한 의도가 그대로 드러나 불가코프의 희곡 중에서도 특히 노골적인 작품이다.
지은이
미하일 불가코프(Михаил Булгаков, 1891∼1940)는 키예프 성직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키예프 의과대학에 입학한 그는 제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전선에서 그리고 러시아의 지방 소도시를 전전하며 의사로 일했다. 어릴 적부터 문학과 예술에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오페라와 연극에 큰 관심을 가졌던 불가코프의 예술적 창작력은 풍자적 단편을 비롯해 중편소설, 희곡, 장편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그 결실을 맺었다. 그가 작가로서의 문명을 얻기 시작한 때는 1924년 잡지 ≪러시아≫에 소설 ≪백위군≫을 연재하면서부터였다. 1925년 모스크바 예술극장으로부터 잡지의 폐간으로 완성되지 못한 소설을 희곡으로 각색해 달라는 제안을 받은 뒤로 불가코프는 극장과 평생의 인연을 맺게 된다. 같은 해 희곡 <조이카의 아파트>를 집필했으며 이듬해에는 그의 중편 <개의 심장>을 각색해 무대에 올리기로 모스크바 예술극장과 계약을 맺기도 했다.
그러나 1926년 5월 국가보안국은 소비에트 체제에 반하는 요소가 있다는 이유로 <개의 심장> 원고를 압수하고 희곡의 상연을 중지시켰다. 희곡 <백위군> 역시 반혁명적 희곡으로 낙인찍혔고 이로 인해 불가코프는 국가보안국에 소환되어 심문을 받기에 이른다. 같은 해 10월에는 중앙레퍼토리총국과의 지루한 논쟁과 수정, 심의 과정을 거쳐 희곡 <백위군>이 <투르빈가의 나날들>로 제목을 바꾸어 <조이카의 아파트>과 함께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1940년 3월 10일 사망한 불가코프의 유해는 모스크바 노보데비치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옮긴이
심지은은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아문학연구소(푸시킨스키 돔)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문학 지리 한국인의 심상 공간(공저)≫(논형, 2005), ≪현실과 기호의 이질동상성(공저)≫(민속원, 2007), 역서로는 ≪러시아인, 조선을 거닐다≫(한국학술정보, 2006), ≪대위의 딸≫(웅진펭귄클래식, 2009) 등이 있다.
차례
해설······················6
지은이에 대해··················15
나오는 사람들··················23
프롤로그····················25
제1막······················55
제2막······················81
제3막·····················111
제4막·····················157
에필로그····················177
옮긴이에 대해··················200
책속으로
집중들 하십시오! 서두를 수밖에 없는 급박한 상황입니다. 사바 루키치가 한 달간 자리를 비웁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분장과 의상을 갖추고 총리허설을 시작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