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정신과학과 자연과학
정신과학과 자연과학의 차이는 감각 경험으로 지각되는 외적 세계와, 직접적으로 경험되는 심리적 사실들에 대한 반성으로 인지되는 내적 세계라는 지각 대상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탐구 대상의 다름이나 지각과 반성의 간격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태도, 즉 대상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관계다. 어떤 대상과 맺는 관계에서 인간 경험과의 연관이 부재한다는 사실은 자연과학의 근본 특성이다. 하지만 그 관계에서 인간의 내적 삶과의 연관이 나타나면 정신과학이 된다.
≪정신과학 입문≫의 전개 방향
딜타이는 이 책의 논의를 두 방향으로 전개한다. 첫째는 정신과학의 정당한 영역을 정위하는 동시에, 정신과학의 내용이 역사적·사회적 현실성에 대한 인식의 직접성을 통해 획득된 일반성 또는 보편성을 띠고 있음을 입증함으로써 정신과학에 과학의 지위를 부여하는 일이다. 둘째는 자연과학에서의 수학과 같이 정신과학 일반의 인식론적 토대를 구축해 줄 하나의 과학을 정립하는 것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일이다. 딜타이가 주창한 그 정초(定礎)적인 하나의 과학은 종래의 형이상학과는 다르면서도 여전히 철학의 본성을 유지한다. 우리는 이것을 전통의 형이상학적 존재론에 대비해, 인식 비판에 근거한 역사주의적 생철학 혹은 해석학이라 부른다.
200자평
해석학의 새 이정표를 새운 딜타이의 역작. 헤겔 이후 현대철학의 지평을 확장한 책이다. 정신과학을 자연과학으로부터 명료히 분리해 냄으로써 정신과학이 자연과학만큼이나 확실한 것임을 보여 주고, 이를 통해 정신과학의 ‘인식론적 토대’를 구축할 하나의 과학을 정립할 필요성을 제시한다.
이 책은 헌사와 머리말, 1권 서론의 1~10, 14, 18~19장과 2권의 1장 1절을 모두 옮겼다. 옮긴이는 발췌를 위해 생략한 부분의 내용을 해당하는 위치에 각주를 달아 정리했다.
지은이
빌헬름 딜타이는 독일 라인란트에서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이델베르크와 베를린 대학에서 철학·역사학·신학을 전공했고, 1864년 베를린 대학에서 교수자격취득 논문을 제출해 통과했다. 1866년 스위스의 바젤 대학을 시작으로 킬 대학과 브레슬라우 대학을 거쳐 1882년 베를린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베크(J. T. Beck)와 랑케(L. von Lanke), 트렌델렌부르크(F. A. Trendelenburg), 피셔(K. Fischer) 등의 영향을 받았고, 해석학을 매개로 정신과학의 인식론적 토대를 역사주의 논리로써 구축하는 비판철학에 관심을 쏟았다. 정신과학을 위한 토대 구축이라는 과업을 위해, 훔볼트와 랑케 이후에 전개되었던 역사주의 학파에 닥친 상대주의의 위기에 맞서 싸우는 한편, 헤겔로 표상되는 전통 형이상학 및 당대 실증주의가 펼쳤던 독단의 국면에 맞서 저항했다. 이러한 철학의 두 현안을, 그는 자연의 자리가 아닌 정신의 자리에서 벼린 칸트의 비판적 방법으로써 정초한 ‘이해의 이성’을 통해 한꺼번에 해소하려 했다. ≪정신과학 입문≫ 이후의 책들, 특히 전집 5권 ≪정신의 세계, 생철학 입문. 1부; 정신과학의 토대 구축을 위한 논고들≫과 7권 ≪정신과학에서의 역사적 세계 건립≫에서, “해석학적 계획”과 “역사이성 비판”에 보다 넓고 깊게 천착함으로써 자신의 그러한 철학적 목적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섰다.
미슈(G. Misch), 슈프랑거(E. Spranger), 쾰러(M. F. Kölher) 등 철학자가 그의 학문적 경향을 추종했으며 웅거(R. Unger), 슈트리히(F. Strich), 코르프(H. A. Korff) 등 문학을 정신과학의 한 분과로 간주했던 일련의 인문학자들은 딜타이의 방법론을 문학 이론의 영역에서 계승하며 소위 ‘딜타이파’를 형성했다.
옮긴이
송석랑은 대전고등학교와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모리스 메를로 뽕띠에 있어서의 예술의 존재론적 정초>(1989)라는 논문으로 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지역 신문사에서 일하다 어린이신문(충청소년신문) 편집국에서 만화를 그리고 칼럼을 쓰는 일을 끝으로 사직하고, 충남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은 <존재의미의 해석학적 사실성에 수반하는 언어의 변형과 전(前) 합리성의 문제: 하이데거와 메를로 뽕띠의 현상학을 중심으로>(1998)다. 이 논문은 나중에 충남대학교출판부에서 ≪언어와 합리성의 새 차원: 하이데거와 메를로 뽕띠≫(2003)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현재 목원대학교 교양교육원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현상학, 시적 감각의 지성≫(2012, 한국외대출판부 HUEBOOKs), ≪메를로 뽕띠의 철학: 존재와 예술과 진리의 현상학≫(2005, 문경출판사) 등이 있으며, 번역한 글과 책으로는 <메를로 뽕띠의 ≪강의록≫ 3편>(≪메를로 뽕띠의 철학≫ 부록, 2005)과 ≪하이데거의 존재의 역사와 언어의 변형≫(1996, 자작아카데미)이 있다. 최근 몇 년간, <시(詩)로 빚은 존재론의 경지: 백무산의 경우>(2006, ≪동서철학연구≫ 42호), <역사연구의 ‘과학-예술’성과 객관성: 현상학적 역사인식을 위한 고찰>(2007, ≪인문학연구≫ 34권), <‘귀향’의 시간, ‘유랑’의 시간: 하이데거와 메를로 뽕띠의 ‘존재론적 주체론’의 토대>(2007, ≪동서철학연구≫ 46호), <두 개의 정물화, 두 개의 현상학>(2008, ≪철학과 현상학연구≫ 37집), 그리고 <시(詩): 성적 욕망의 현상학>(2008, ≪시와 인식≫ 16집), <하이데거와 메를로 뽕띠의 ‘타자’성: 시적 폭력의 극복과 재건을 위한 고찰>(2009, ≪철학과 현상학연구≫ 40집), <일상사의 방법론과 해석학적 현상학>(2011, ≪철학과 현상학연구≫ 49집), <하이데거: 현상학 확장의 우회로>(2012, ≪존재론연구≫ 30집), <뇌 과학과 철학의 접점에서>(2013, ≪철학과 문화≫ 26집)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요르크 폰 바르텐부르크 백작에게
1. 머리말: 이 책의 논지와 구상에 대해
2. 이 책 ≪정신과학 입문≫의 의도
3. 자연과학과 나란히 하나의 독립된 전체로서 존재하는 정신과학
4. 자연과학 전체에 대한 정신과학 전체의 관계
5. 정신과학의 분절 구조화를 위한 개관
6. 정신과학의 내용을 구성하는 재료
7. 정신과학이 사용하는 세 가지 진술 유형
8. 역사적·사회적 현실성으로부터 분리되는 개별 정신과학들
9. 역사적·사회적 현실성의 요소들인 개별적 인간존재들을 다루는 과학들
10. 역사적·사회적 현실성의 연관구조를 향한 인식의 태도
11. 개별 민족들 및 인간 일반의 자연적인 분절 구조화에 대한 과학적 연구
12. 역사철학과 사회학은 현실적인 진정성을 갖는 과학이 아니다
13. 개별 정신과학들의 점진적인 확장과 완성
14. 개별 정신과학들을 위한 인식론적 토대 구축의 필요성
15. 맺음말: ‘지금까지의 논의’[1권 서론]의 결과들로부터 생기는 과제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나는 지금 쓰고 있는 이 책이 정치학자와 법학자, 그리고 신학자와 교육학자 등의 과제를 보다 가볍게 해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사회와 비유된 그 기계적 작업장의 ‘그’로써 달리 말하자면] 고립된 위치에서 사회의 한 도구처럼 존재했던 그에게, 이 책이 인간 사회의 포괄적인 현실성으로 그 자신을 이끌어줄 원리와 규칙들의 위상을 알게 해주고, 그리하여 그가 관여하는 바로 그 고립적 위치에서 그의 ‘삶의 노동’이 마침내 인간 사회의 포괄적인 현실성에 바쳐지게 해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49쪽
과학의 엄밀한 요구에 따라 현실성을 분석하는 것과 이러한 분석을 넘어선 현실성의 실재를 승인하는 것, 그것은 경험의 한 관점이 갖는 서로 다른 두 측면일 뿐이다.
-1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