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기원전 4만년부터 기원 후 8세기까지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미디어 문화의 역사
인간과 신의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한 제식도구로서 인간 미디어 조명
미디어 문화사는 높은 강도로 세분화된 개별 과학에 맞선 메타 과학
독일의 미디어학자 베르너 파울슈티히는 인류의 시작부터 서기2000년까지 존재했던 미디어의 문화적 핵심 의미를 다섯 권으로 서술했는데 이 책은 그 중 첫 번째다. 1권은 인류의 초기 즉 기원전 4만년부터 기원후 8세기까지 미디어 발달 과정을 다루었다. 지리적 범위는 유럽 문화권을 뛰어넘어 4대 문명 발상지인 수메르, 이집트, 인더스, 황하 문명을 포함하고, 북·중·남아메리카와 동북아시아(한국, 일본) 고대 문명에까지 이른다.
그동안 미디어문화사적 접근은 개별 미디어의 역사와 일반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역사라는 두 가지 형식으로 존재했다. 전자는 개별 미디어의 탄생과 발전 과정을 다른 미디어와의 상관관계 속에서 파악하지 못했고, 후자는 상이한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 개념-언어, 문자, 영화 등-을 상호 호환성 없이 다루었다. 이러한 방법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개별 미디어 역사와 일반적인 커뮤니케이션 역사 사이를 오가며 미디어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여기서 미디어문화사는 개별 미디어 역사의 연대기적 나열이 아니라, 서로 망으로 연결된 체계로서 모든 미디어의 역사를 의미하며 개별 문화과학과 마주한 일종의 메타 과학이다.
이 책에서 미디어는 특별한 기능에 따라 조직된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작동하는 복합적이고 제도화된 체계다.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 약 20개 미디어로 다룬다. 여성·히에로스 가모스·제물 의식·축제·춤·사제·샤먼·마술사·예언자·아오이데·음유시인·연극배우·교사·편지·드루이드 사제로 대표되는 ‘인간 미디어’, 토큰·셈 나무·피라미드·오벨리스크·부조·조각·석비와 같은 ‘조형 미디어’ 그리고 동굴벽·파피루스 두루마리·판·오스트라콘·제본·책으로 등장하는 ‘기록 미디어’가 그것이다. 인간 미디어는 인간과 번식·화해·속죄·황홀경 등을 주관하는 각종 신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매개했다. 조형 미디어는 고대의 고도문화 사회에서 이승과 저승 간의 교량을 놓는 기능을 수행했다. 기록 미디어는 중세까지 상징 권력 형성과 사회 지배 수단으로 작용했다. 이 세 가지 미디어는 공통적으로 제식(祭式, 제례 의식)에 사용된 미디어로 사회 조종, 인간 행위의 방향 제시, 사회 질서의 안정화 기능을 담당했다.
지금까지 미디어는 일반적으로 인간들 간의 커뮤니케이션 수단 또는 상징체계로서 코드가 작동하는 구조로 파악되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던진 질문은, “미디어가 사회 속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가?” 아니면 “어떤 미디어가 사회 공동체 유지를 위한 당면한 과제를 가장 잘 해결하는가?”이다. 이에 대한 답변은 미디어의 기능과 분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류 초창기에 인간 미디어인 여성이 가장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을 포함한 생물의 번식을 주관하는 여신과의 커뮤니케이션이었다. 또 여러 신들과 교감하는 사제의 기능은 제식과 제물 의식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이때 인간 미디어는 사회를 조화롭게 조종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민중에게 행동 방향을 제시하며, 불안한 사회를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다.
전 지구적으로 디지털 시대의 전형적인 사회적 미디어로서 스마트폰이 지배적인 위상을 누리고 있지만, 우리는 네트워크형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인간성 회복과 공동체 정신을 지향하는 포스트디지털 시대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여성, 사제, 샤먼, 사냥꾼, 무희, 음유 시인, 교사와 같은 ‘인간 미디어’, 석비와 피라미드 같은 ‘조형 미디어’, 그리고 편지와 두루마리 같은 고대의 ‘기록 미디어’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한 때다. 이 책은 인류의 시작과 고대 문명을 창조했던 조상들의 휴머니즘적 사유 체계와 공동체 정신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획기적 기획이기 때문이다. 초기 인류의 흔적을 아흔 세 장의 그림으로도 만난다.
200자평
인류의 시작부터 고대까지 약 4만년의 미디어 문화의 역사를 조명했다. 여성, 사제, 샤먼, 사냥꾼, 무희, 음유 시인, 교사 같은 ‘인간 미디어’, 석비와 피라미드 같은 ‘조형 미디어’, 편지와 두루마리 같은 ‘기록 미디어’를 다룬다. 이때 인간 미디어는 사회를 조화롭게 조종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민중에게 행동 방향을 제시하며, 불안한 사회를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 책은 초기 인류의 삶과 고대 문명을 창조했던 조상들의 휴머니즘적 사유 체계와 공동체 정신을 발굴한 획기적 기획이다.
지은이
베르너 파울슈티히(Werner Faulstich, 1946-2019)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독어독문학, 영어영문학, 미국문학, 철학, 신학을 공부했고, 1973년 ‘베스트셀러’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튜빙엔대학에서 ‘매체미학’을 다룬 논문으로 미디어학과 영국철학을 가르칠 수 있는 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1987년부터 시겐대학 교수로 활동하다 1989년부터 뤼네부르크대학에서 미디어학 정교수로 재직하면서 대학 내 응용미디어연구소(IfAM) 소장을 역임했다. 그는 미디어 기본 지식, 미디어학 개론, 여론 작업, 영화 분석 기본 코스, 미디어 문화, 미디어 이론 등과 관련한 40여 권의 교과서와 연구서를 펴냈지만, 그의 연구 중점은 미디어 역사와 20세기 문화사다. 미디어와 미디어 현상에 대한 그의 접근법은 문화 과학이다. 그에게는 항상 포괄적인 맥락, 현재와 전통의 전형적인 응축, 그리고 가치와 관련된 것이 중요했기에 그는 비교적 넓은 의미에서 미디어 구상을 제시했다.
옮긴이
김성재
조선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다. 연세대학교에서 사실주의 독문학을 공부했고, 독일 뮌스터대학교 언론학과에서 “유행과 반유행”(1992)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논문은 수동적 및 능동적인 공론장에서 어떤 주제가 대중의 주의와 인기를 끄는 것을 커뮤니케이션 현상으로 간주하고, 이를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한 작업이다.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 중앙대학교 강사를 거쳐 1994년부터 조선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2022년 정년퇴임했다. 학내에서 커뮤니케이션 이론, 매체 철학, 매체 미학을 강의하면서 한국의 소리 커뮤니케이션을 중점적으로 연구했다. 학외에서는 한국지역언론학회장, 한국미디어문화학회장, 독일 바이로이트대학 객원교수, 광주연구소 소장, 한국지역사회학회장을 역임했다. 『유행과 반유행: 공론장의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대한 사회과학적 접근』(1993, 독어판), 『체계이론과 커뮤니케이션: 루만의 커뮤니케이션 이론』(1998, 2005 증보판), 『매체미학』(1998, 편저), 『코무니콜로기』(2001, 번역), 『피상성 예찬』(2004, 번역), 『상상력의 커뮤니케이션』(2010), 『한국의 소리 커뮤니케이션』(2012) 등을 포함해 스물네 권이 넘는 책을 쓰고 쉰 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다.
차례
역자 서문
서문
도입: 문화사 혹은 미디어
1장 개괄: 인류 초기 문화
1.1. 최초 도시 문화를 거쳐 거석문화에 이르는 원시 역사와 초기 역사에 대하여
1.2. 동아시아(중국, 일본)와 인디아의 문화
1.3.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화
1.4. 중동과 유라시아의 문화
1.5. 고대 그리스·로마의 문화
1.6. 북·중·남아메리카의 문화
1.7. 켈트족과 게르만족의 문화: 유럽 문화의 탄생
1.8. 결론
2장 선사 시대 미디어로서 여성
2.1. 태초에 여자가 있었으니: 모계 사회의 미디어사적 중요성
2.2. 모성과 모권
2.3. 성인식과 히에로스 가모스
3장 가부장적 의식들
3.1. 미디어 역사에서 가부장제의 중요성에 대하여
3.2. 사냥꾼들의 제물 의식
3.3. 성스러운 결혼식의 아테네풍 축제로의 기능 전환
4장 미디어로서 춤과 그 기능
4.1. 신성한 춤과 종교적인 춤
4.2. 보여 주는 춤, 합창단 춤, 사교춤: 오락으로서 춤
5장 초기 역사 시대의 미디어로서 동굴 벽
5.1. 채색된 동물 그림: 사냥 토템 – 종족의 역사 – 가치 반영
5.2. 새겨진 자국: 우주적 공간과 순환적인 시간
5.3. 요약
6장 이집트 문화의 조형 미디어와 기록 미디어
6.1. 이집트의 고도문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저장 미디어
6.2. 조형 미디어
6.3. 기록 미디어
7장 사제, 샤먼, 마법사, 예언자 : 고대 지배 미디어의 발전에 대해
7.1. 사제
7.2. 샤먼
7.3. 여 치료사들, 남 의술사들, 마법사들
7.4. 예언자와 선지자
8장 아오이데에서 음유 시인까지
9장 디오니소스 제식에서 고대 연극까지
9.1. 디오니소스 종교와 디오니소스 축제
9.2. 고대 연극의 특징들: 비극과 희극
10장 교사와 교과‘서(書)’
11장 두루마리에서 제본까지: 미디어 ‘책’의 초기 역사에 대해
11.1. 낱장의 종이 미디어와 두루마리
11.2. 고대의 두루마리와 두루마리 거래
11.3. 제본으로서 책
11.4. 전망: 비잔티움의 책, 중국의 두루마리
12장 편지의 기원에서 “속달 운송” 체계의 붕괴와 칼리프들의 국가 우체국까지
12.1. 이집트인, 페르시아인, 그리스인들의 편지
12.2 로마 제국의 편지: “속달 운송 체계”
12.3. 칼리프와 술탄의 우편 제도
13장 역사의 마지막 순수 인간 미디어로서 고대 켈트족의 드루이드 사제
13.1. 고대 켈트족의 특성
13.2. 드루이드 사제
14장 요약: 제식으로서 미디어
그림 출처
참고문헌
책속으로
여성, 월경, 어머니, 사춘기, 결혼 등은 오늘날에도 존재하지만, 조종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로서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머니로서의 여성에서 순전히 생물학적인 의미 외에 그 어떤 영적 의미를 찾지 않는다. 월경과 임신이 지니는 우주적 상징체계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대부분 피임약과 콘돔의 기능으로 축소되었다. 공공장소에서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의 행위를 서로 연결시켰던 여성의 제식적 조정 기능은 수백 년 전부터 이미 잊히고 사장되었다.
“2장 선사 시대 미디어로서 여성” 중에서
이제부터 지배적인 미디어가 된 새로운 미디어는 원래 사냥꾼들의 의식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의식의 두 단계 발전 과정 중 첫 번째 단계다. 이 단계는 다시 고대의 새로운 미디어인 극장의 시작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 극장에서는 신화에서 이성으로, 성스러운 제식에서 역사적인 행위로, 원형(原型)에서 구조로의 전환이 완결된다. 두 번째 단계로서 모계 사회의 제식들, 특히 성스러운 결혼은 그 기능이 전환되어 아테네 풍의 축제로 기술된다. 이로써 하나의 완전히 다른 발전의 갈래가 입증되었는데, 중세의 성에서 활동했던 궁정 광대들뿐만 아니라 농촌에서 일어났던 중세적 농부 놀이 및 축제와 함께 카니발 혹은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사육제로까지 이어졌다.
“3장 가부장적 의식들” 중에서
미결정성, 무상함, 공포에 당면했을 때 제공되는 확신, 안정 그리고 희망에서 유래한 힘은 다양한 형식의 예언술로 유입되기 때문에 위험한 고비, 거칠고 사나운 시기에 예언자, 직업적인 점쟁이, 치료사, 점성술사는 사회를 안정시키는 데 영향력을 행사했다. (…) 선하고 악한 권력과 관련해 비전을 담은 경험과 신비로운 힘, 신탁의 표현 (…) 명민한 관찰, 치료의 능숙함, 동물 해부학과 성좌에 대한 기술적인 지식, 새점이나 그 밖의 예언이나 점성술에 속한 수단 덕분에 그들은 스스로 초월적인 사회 계층에 소속되었다.
“7장 사제, 샤먼, 마법사, 예언자 : 고대 지배 미디어의 발전에 대해” 중에서
아오이데는 라우테 또는 리라에 맞추어 직접 작곡한 신과 영웅들의 노래를 연주하고 다니는 유랑 가수다. 때에 따라서는 옛날의 전설, 춤곡, 장송곡도 연주했다. 문제는 그들이 궁정에서 특권을 누리는 직업적인 가수였다는 사실과 무엇보다도 죽음의 극복을 통해 얻은 명성이다. 헤르비히 멜러는 아오이데의 과제를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그를 통해 위대한 영웅과 그들의 행적에 대한 회상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계속 살아 있다.” 말하자면 그는 ‘알림’ 속에서, 곧 영웅들의 노래 속에서 그들의 영생을 위한 보증인이다. 이러한 존속은 엄밀히 말하면, 스스로 죽음을 초월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호머에게 다음과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 그것은 무엇인가 신적인 것이다. 자세히 말하면 그것은 인간에게 열려 있는, 신적인 것의 몫을 나누어 받는 유일한 형식이다.
“8장 아오이데에서 음유 시인까지” 중에서
비둘기는 파발꾼처럼 숨어서 기다리다가 편지를 강탈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안전했다. 불편한 점은 비둘기에게 무거운 것을 매달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랍인들은 해결책을 알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들은 종이 제조법을 알고 있었고, 이것으로 파피루스를 대체했다. (중략) ‘새종이’라고 불렸던 특히 섬세한 종류의 종이를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미 8세기에는 우편 비둘기의 정거장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대개 일반적인 우편로를 따라서 보다 큰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우편 비둘기들은 말하자면 릴레이식 비행을 한 것이다.
“12장 편지의 기원에서 “속달 운송” 체계의 붕괴와 칼리프들의 국가 우체국까지” 중에서
드루이드 사제는 사제 신분 그 이상이었다. 장 마르칼레는 이것을 “기독교로 개종하기 전 켈트족의 모든 종교적, 지적, 예술적, 사회적, 과학적 구상의 총체”라고 정의한다. 바로 이것 때문에 켈트족에 대한 로마인들의 투쟁은 사실은 드루이드 사제들을 겨냥했고, 로마인들은 그들이 켈트족을 로마에 저항하기 위해 하나로 뭉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했다. 드루이드 사제들이 포괄적으로 가진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제식적인 의미와, 부분적으로 가진 경제적 의미는 매우 특별한 그들의 미디어 형식 때문이다. (중략) 켈트 문화는 순수한 구두 문화이며 조형 문화였다. 켈트족의 언어는 한 번도 문자로 쓰이지 않았다. 문자적 기록이 필요하면, 켈트족은 그들의 고유한 문자를 개발하는 대신 간단히 그리스 문자를 사용했다. 따라서 드루이드 사제들은 켈트족 사회에서 구두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적인 언어환경으로, 곧 사회적, 제식적 상호작용 과정들을 구두로 결정하는 조직원리로 기능했다.
“13장 역사의 마지막 순수 인간 미디어로서 고대 켈트족의 드루이드 사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