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933년 1월 망명길에 오른 브레히트는 직접 체험할 수 없는 독일의 현실을 알기 위해 신문, 잡지, 방송, 보고문 등에서 나치 독일의 실상을 알려 주는 많은 자료를 수집했다. 《제3제국의 공포와 참상》은 이들 자료를 바탕으로 1937년 7월부터 1938년 6월까지 약 1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제3제국의 공포와 참상》은 독립된 27개 장면으로 되어 있다. 모든 에피소드가 자체로 완결성을 가지므로 무대에서도 일부 장면만 발췌 공연할 수 있도록 구상되었다. 브레히트는 이와 관련해 “이 작품은 27개 장면으로 이루어진 몽타주인 동시에 하나의 게스투스 목록”이라고 밝히며 “침묵하고 두려워 주위를 둘러보는, 공포에 떠는 제스처, 다시 말해 독재 치하의 게스투스”라고 부연했다. 이렇듯 브레히트는 《제3제국의 공포와 참상》에서 히틀러 독재 치하의 게스투스를 관찰하고 그 결과를 몽타주 기법으로 제시한다. 결국 독자, 관객은 각각의 에피소드를 통해 귀납적으로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된다. 27개 장면은 영화의 개별 쇼트처럼 다른 장면들과 유기적으로 결합해 전체로서도 생명력을 발휘한다. 개별 장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바로 모든 장면에서 공통으로 다루고 있는 허위, 배반, 불신, 적응 같은 테마다.
여러 장면에서 나치가 내세우는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허위인가 하는 점이 선명하게 부각된다. 베냐민이 “허위가 세계 질서가 되었다”고 할 만큼 이데올로기는 나치 정권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었다. 독일을 나치 독재로부터 구할 첫걸음은 바로 그들 이데올로기의 본질이 허위임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브레히트는 ‘허위’를 기본 테마로 삼아 독립된 각 장면들을 연결한다.
1937년 브레히트가 처음 이 희곡을 구상했을 때는 “공포 : 나치스 치하 독일 민족의 정신적 고양”이란 제목으로 다섯 편만 완성되어 있었다. 이듬해 20개 장면을 추가하면서 제목을 “제3제국의 공포와 참상”으로 바꾸었다. 1938년 최초로 출판된 《브레히트 전집》에 총 27개 장면으로 편집한 텍스트가 실릴 예정이었지만 불발되었다가 1941년 모스크바에서 13개 장면만 인쇄된 불완전한 형태로 출판되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야 완성본이 출판되었다.
200자평
망명길에 오른 브레히트가 매체에서 접한 나치 독일의 실상을 몽타주 기법으로 고발한 작품. 아들이 자신들을 밀고할까 공포에 떠는 부모, 남편을 믿지 못하는 부인, 고기 대신 자신의 몸뚱이를 걸어 놓는 정육점 주인 등 서로 다른 27개 장면은 ‘허위’라는 테마를 공유하며 히틀러 치하의 제3제국이 독일인들을 공포와 참상 속에 몰아넣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 준다.
지은이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1898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의 작은 도시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태어났다. 20대 초반까지 현실 비판적이긴 했지만, 그 대안을 찾지 못해 댄디풍의 청년으로 지내던 브레히트는 부친의 권유로 입학했던 뮌헨대학 의대도 1학기 만에 중퇴하고 뮌헨의 연극판에 뛰어든다. 1922년에는 희곡 <한밤의 북소리>로 클라이스트상도 수상한다.1924년 베를린으로 이주해, <사내는 사내다> 등을 무대에 올리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브레히트를 일약 베를린 문화계의 스타로 발돋움하게 해 준 작품은 1928년 초연된 서사적 음악극인 <서 푼짜리 오페라>였다.
1933년 독일 제국의사당이 나치스의 방화로 불탄 다음 날 브레히트는 가족과 함께 망명길에 오른다. 그 후 그는 “신발보다 더 자주 나라를 바꿔 가며” 유럽을 전전하다, 194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다. 작가 브레히트에게 망명은 곧 독자와 무대의 상실을 의미했다. 작품을 써도 읽어 줄 독자와 그 작품을 올릴 무대가 그에게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망명 기간에 집필한 <사천의 선인>, <억척어멈>, <갈릴레이의 생애>, <아르투로 우이> 등의 대작 희곡은 모두 책상 서랍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전쟁이 끝나자 미국에는 극우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어닥쳤다. 브레히트는 1947년 10월 30일 “반미활동 청문회”에 소환받아 공산당원 전력 등에 대해 심문을 받게 된다. 다음 날 미국을 떠나 파리를 거쳐 그해 11월 취리히에 도착한다. 취리히에서 브레히트는 독일 귀환을 준비한다. 하지만 분단된 독일은 모든 망명객들에게 두 개의 독일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했다. 브레히트는 결국 사상적으로 가깝고, 자신에게 연극 무대를 제공해 준 동독을 선택하면서 오랜 망명 생활을 청산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민중과 멀어진 당, 동독 문화 정책과의 불협화음 속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오랜 지병인 신장염이 재발해 1956년 8월 14일 5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옮긴이
이승진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양어대학 독일어과 및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독일 카를스루에 대학교에서 브레히트의 시집 《도시인을 위한 독본》에 대한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원광대학교 인문대학 유럽문화학부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Aus dem Lesebuch für Städtebewohner. Schallplattenlyrik zum Einverständnis》와 《매체작가 브레히트》, 《브레히트의 서사극》(공저), 《브레히트 연극사전》(공저), 《청년 브레히트》(공저), 역서로서는 《전쟁교본(브레히트의 사진시집)》, 《제3제국의 공포와 참상》, 《독일 연극이론》(공역), 《브레히트의 연극이론》(공역) 등이 있으며, 〈친절한 세상을 위한 브레히트의 “불친절한 시”〉, 〈‘거지 오페라’에서 ‘서푼짜리 영화’까지−‘서푼짜리 소재’의 변용 스토리텔링 연구〉 등 40여 편의 브레히트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차례
독일 열병식
1. 민족 공동체
2. 배반
3. 분필 십자 표시
4. 국민에 대한 봉사
5. 적법한 판결
6. 직업병
7. 물리학자
8. 유태 여인
9. 밀정
10. 검은 신발
11. 노동 봉사
12. 노동자의 시대
13. 궤짝
14. 국제 노동자동맹의 노래
15. 석방된 사내
16. 선거
17. 새 옷
18. 동계 빈민 구제 사업
19. 제빵사 두 명
20. 농부가 돼지에게 먹이를 주다
21. 구나치용사
22. 산상수훈
23. 신앙 고백
24. 알메리아 지방에 대한 폭격 사실이 병영에 알려지다
25. 고용 창출
26. 독가스 공습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27. 국민 투표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형사반장 : (단호하게) 판사님,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방법원 판사 무엇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구요?
형사반장 : 헤베를레, 쉰트, 가우니처가 ‘종족 모독’으로 인해 자극을 받았다고 말입니다.
지방법원 판사 왜 아닙니까?
형사반장 : 그 종족 모독을 했다는 아리아인의 이름은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한 번도 명확하게 거론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 사내가 누구인지는 신만이 아실 겁니다. 아리아인들 무리가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에서나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리고 그러한 아리아인들 무리가 어디 있지요? 간단히 말해서, 돌격대는 그들 이름이 거론되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60-61쪽
부인 : 얘가 정말 없어졌어요.
남편 : 그 아이가 나가면 왜 안 된단 말이오?
부인 : 비가 쏟아지고 있단 말이에요.
남편 : 그 아이가 밖에 나가면 왜 당신 신경이 그렇게 날카로워지오?
부인 : 우리가 무슨 말을 했지요.
남편 : 그게 아이가 없어진 것과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부인 : 당신은 요즈음 너무 자제심이 없었어요.
남편 : 내가 최근 자제심이 없었던 건 물론 아니지만 내가 감정을 드러냈다 하더라도 그것과 그 녀석이 사라진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부인 : 하지만 당신도 알잖아요, 그들이 엿듣고 있다는 것을.
남편 : 그래서?
부인 :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그 아이가 온 동네 떠들고 다니면 어떡하죠? 당신도 알잖아요, 그들이 히틀러 소년단원들에게 뭐라고 교육시키는지. 그들은 아이들에게 들은 것을 모두 보고하라고 요구하고 있어요. 그 아이가 이렇게 아무 말 없이 사라지다니 참 이상하네요.
남편 : 쓸데없는 소릴.
130-1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