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좀비, B급에서 A급으로
뛰는 좀비에서 음악, 커피, 와인 즐기며 사랑 느끼는 좀비까지 … 또 다른 ‘나’
B급 영화와 비디오를 통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 오던 좀비가 2000년대 이후 대중문화의 전면에 나서면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2016년 개봉된 <부산행>은 1000만 관객을 넘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2019)과 <지금 우리 학교는>(2022)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세계 최초의 좀비영화 <화이트 좀비>(1932)와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1943) 등 초기 할리우드 영화의 좀비는 마치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좀비보다는 좀비를 조종하는 주술사가 더 무섭게 그려졌다. 당시 관객들에게 좀비는 신비롭고 이상한 이교도의 주술일 뿐이었다. 인육을 먹는다거나 물리면 감염되고 머리를 제거해야 죽일 수 있다는 식의 좀비영화 규칙이 만들어진 것은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에서부터였다. 로메로는 <시체들의 새벽>(1978), <시체들의 낮>(1985)으로 이어지는 ‘시체’ 3부작을 통해 인종과 계급 문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드러냈다.
조지 로메로를 통해 재정의된 좀비영화는 여타 감독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1980년대 들어 <좀비 2> <공포의 묘지> 등 다양한 장르로 변주되었다. 뛰는 좀비가 등장하는 <28일 후…>(2002)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이후 가장 중요한 좀비영화가 되었다. <새벽의 저주>(2004)에서도 뛰는 좀비가 등장하면서 좀비영화는 속도감 있는 액션영화로 변모하였다. 2010년대 들어서는 ‘인간적인 좀비’가 나타났다. <웜 바디스>(2012) 같은 영화에서는 음악을 좋아하고 사랑을 느끼는 좀비가 나오기도 한다. 부성애를 강조하거나 커피와 와인, 와이파이를 찾는 좀비가 등장하기도 하며 치료제를 투여하면 일상생활이 가능한 좀비까지, 최근 등장하는 좀비는 마치 새로운 인종처럼 묘사되고 있다.
한국 최초의 좀비영화 <괴시>(1980)는 스페인 영화를 참고했다. 이때의 좀비는 중국의 강시에 가깝다. <괴시> 이후 오랫동안 끊겼던 좀비영화는 <죽음의 숲-어느 날 갑자기 네 번째 이야기>(2006)로 다시 이어진다. 이후 <이웃집 좀비>(2009), <미스터 좀비>(2010), <좀비스쿨>(2014) 같은 저예산 좀비영화가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블록버스터 좀비영화 <부산행>의 흥행 이후 <창궐>(2018), <좀비 크러쉬: 헤이리>(2020), <좀비는 좀비끼리 우리는 우리끼리>(2020), <좀비 파이터>(2020), <#살아있다>(2020), <반도>(2020) 등 좀비영화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인간의 살을 뜯어 먹는 혐오스러운 존재 ‘좀비’가 왜 인기인가? 사람들은 왜 ‘좀비’에 열광하는가?
좀비가 나와 닮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희생되어야 내가 살 수 있는 약육강식의 정글과 같은 사회를 좀비영화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자기만 살기 위해 옆 사람을 좀비에게 밀어버리는 <부산행>은 차가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남의 불행을 보면서 자신의 행복을 확인하는 비정함도 깃들어 있다. 좀비와 같은 둔하고 무기력한 존재로 추락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에 안도하는 것이다. 좀비를 살육하는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좀비를 처단하는 것은 꼴 보기 싫은 사람, 혹은 맘에 들지 않는 내 모습을 파괴하는 것과 같은 쾌감을 준다.
이 책에서는 여러 제작 상황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좀비영화를 정리한 뒤, 주제에 따라 범주화하였다. 사람들이 좀비를 좋아하는 이유를 현대 사회와 결부 지어 분석하였으며, 좀비영화의 계보를 살펴본다. 한국의 좀비영화에 대해 알아보고 좀비 캐릭터의 변천사에 관해서도 설명한다.
200자평
좀비 열풍이 불고 있다. 영화뿐만 아니라 게임, 웹툰, 드라마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좀비를 소환한다. 21세기 한국에서 좀비가 주목을 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영화를 중심으로 그 이유를 찾으려 했다. 사람들이 좀비를 좋아하는 이유를 현대 사회와 결부 지어 분석하였으며, 좀비영화의 계보를 살펴보았다. 좀비는 원래 부두교 주술에 의해 살아난 시체이지만, 로메로가 창조한 좀비는 사람을 물기 시작했다. 이제는 뛰는 좀비에 이어 인간의 감성을 가진 좀비까지 출현하고 있다. 좀비를 불러낸 것도, 변화시킨 것도 인간이다. 이렇듯 좀비는 인간의 욕망이자 또 다른 얼굴이 된다.
지은이
오세섭
독립영화감독이자 영화 연구자다. 중앙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Z세대 청소년영화에 나타난 영화교육의 시사점”(2021) 등 다수 논문을 발표했으며, 청소년 영화교수학습방법(2022) 등 여러 권의 영화교육 전문서를 집필하였다. 더불어 “대전 생활문화동아리 기초조사 및 활성화 방안”(2021) 등 다양한 문화연구에 참여하였다. 어릴 때부터 공포영화에 관심이 많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창작, 집필,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하여 공포영화, 한국 사회의 거울(2020)을 출간했고, 장편독립영화 <좀비는 좀비끼리 우리는 우리끼리>(2020)를 만들기도 했다.
차례
우리는 왜 좀비에 열광하는가?
01 현대 사회가 키운 괴물 : 로메로의 시체 3부작
02 전체주의 망령들 : <데드 스노우> 외
03 좀비와 함께 춤을 : <좀비오> 외
04 신자유주의 시대의 풍경 : <랜드 오브 데드> 외
05 속도를 끌어올린 좀비 : <28일 후…> 외
06 전염병 시대의 은유 : <월드워Z> 외
07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좀비 : <웜 바디스> 외
08 또 하나의 가족 : <카고> 외
09 좀비동산으로 놀러 오세요 : <좀비랜드> 외
10 한국 사회의 아웃사이더 : <불한당들> 외
책속으로
조지 로메로를 빼고 좀비를 이야기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좀비의 특성은 모두 조지 로메로가 창조한 좀비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무리 지어 다니며 인간을 뜯어 먹고, 머리를 제거해야 죽으며, 물리면 감염된다는 것 등 좀비의 특성 거의 모든 것을 조지 로메로에게 빚지고 있다.
_ “01 현대사회가 키운 괴물 : 로메로의 시체 3부작” 중에서
좀비와 유머를 뒤섞은 이유는 무엇일까? 유머 이론 중 ‘각성·완화 이론’에 따르면, 공포와 두려움으로 인한 심리적 긴장 상태에서 갑자기 두려움이 사라지는 순간 웃음이 발생한다. 즉, 긴장 상태가 해소되는 순간, 심리적 편안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스플래터 좀비영화는 좀비에게서 느끼는 언캐니, 그리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유머를 가미한 장르인 것이다.
_ “03 좀비와 함께 춤을 : <좀비오> 외” 중에서
뛰는 좀비가 2002년(<28일 후…>의 개봉 연도)에 등장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전 세계에 인터넷이 보급되어 활용하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온라인 중심으로 전환되던 때에 뛰는 좀비가 나타났다. 그리고 인간에게 더 빨리 뛰라고 재촉하고 있다. 사실, 뛰는 좀비는 전에도 있었다.
_ “05 속도를 끌어올린 좀비 : <28일 후…> 외” 중에서
1980년대 번성했던 좀비영화는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침체기에 빠졌다. 대신 좀비를 활용한 분야는 게임이다(김형식, 2020). 당시 게임에서 좀비는 주인공의 목표를 방해하는 흔한 장애물로 활용되었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좀비들을 죽이며 목표를 향해 나갔다. 그리고 이 설정은 2000년대 좀비영화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_ “09 좀비동산으로 놀러 오세요 : <좀비랜드> 외” 중에서
같은 연출자가 만들었지만 거대 자본이 들어간 <부산행>과 달리 10억 원 미만의 저예산으로 제작된 <서울역>은 좀 더 연출자의 주제 의식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으면 세상의 어떤 사람들에겐 좀비나 노숙자가 별반 다를 바 없고, 시위하는 사람들이나 좀비가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_ “10 한국 사회의 아웃사이더 : <불한당들> 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