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 이 책은 지식을만드는지식의 도스토옙스키 4대 장편 한정판 시리즈 첫 번째 책입니다. 오래 소장할 수 있도록 매우 공들여 만든 가죽장정 하드커버입니다. 앞뒤 표지와 케이스에는 24K 금박 문양을 찍었고, 책등을 제외한 3면에는 금장을 도색했습니다. 일정 수량 한정판으로 출판합니다.
1. 인간의 법률 너머에서 심판할 이론의 살인
도스토옙스키는 왜 자신의 대작에 살인 사건을 등장시켰을까? 모자라고 유한한 인간은 잠시 이성을 잃고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것은 감정의 농간이다. 이에 반해 라스콜니코프의 살인은 이론의 살인이다. 이[虱]와 같은 존재인 전당포 노파를 죽여 그 돈으로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자신과 같은 초인은 그 일을 행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런 철학적이고 이론적인 살인, 즉 누군가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살인은 인간의 법률을 넘어서는 신의 영역이다.
도스토옙스키의 많은 긍정적 인물들은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신의 진리는 직관적이고 즉각적인 능력으로만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언어로 접근하는 무신론적인 인텔리겐치아의 담론 방식으로는 종교와 신에 대한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그렇기에 너무 많은 독서, 그리고 서구에서 들어온 니힐리즘, 공리주의 등의 신사상을 담고 있는 책을 접한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은 모두 라스콜니코프처럼 신과 믿음의 세계에서 멀어지고, 오만의 죄를 짓고 벌을 받게 된다. ≪지하생활자의 수기≫의 ‘나’가 그러했고,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 ≪악령≫의 스타브로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스메르댜코프와 이반 카라마조프가 그 맥을 잇는다. 그리고 또한 이 모두가 살인을 종용하거나 실제로 행한 직·간접적인 살인자들이다. 서구 사상이 인간을 얼마나 파괴적으로 만드는지 보여 주려는 작가의 의도가 분명하다.
2. 죄(преступление : Crime or Sin?)와 벌
‘죄’라고 번역한 러시아어 ‘프레스투플레니예(преступление)’는 ‘경계를 넘다’라는 뜻이다. 작가의 젊은 날의 분신인 라스콜니코프의 죄는 살인이 아니다. 공리주의, 니힐리즘, 무신론과 같은 서구 사상에 물든 것, 그래서 신에게서 멀어져 간 것, 그것이 그의 죄다. 오히려 명백한 ‘죄’로 여겨지는 전당포 노파 살인은 그가 받게 되는 벌의 일부다. 살인을 저지르기 이전부터 라스콜니코프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스스로의 껍질 속에 처박혀 버린다. 이런 고독, 사람들로부터 멀어짐, 그에 따른 정신의 이상 상태, 이 모든 것이 벌의 시작임을 주인공 자신이 철저히 느끼고 있다. 살인의 준비와 살해 상황 어디에도 주인공의 의지는 없다. 그것은 마치 ‘악마’가 그의 몸을 조종해 끌고 가듯이 거의 타성적으로 행해진다.
3. 성서의 상징들로 가득 찬 텍스트
유형 후의 도스토옙스키 작품 세계는 연구하면 할수록 놀라우리만치 기독교적 이상으로 충만해 있다. 중심 테마뿐만 아니라 라이트모티프, 심지어 색깔이나 숫자, 그리고 구조에 이르기까지 모두 성서 텍스트에 근거를 두고 있다. 철저하게 기독교 작가가 된 도스토옙스키의 눈에 비친 서구는 악의 축이며, 서구 사상은 악마이고, 이 악마는 사람들을 신의 빛에서 떼어 놓아 길을 잃게 만들며, 결국은 파괴적인 결말로 이끌어 가는 존재였다. 이런 종교적인 깨달음을 얻게 한 시베리아 유형을 자신을 구원코자 한 신의 계획으로 이해했으며, 서구 사상이라는 악마의 농간에 놀림을 당해 길을 잃은 어린 양이 고통의 여정을 통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다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온 것으로 해석했다. 그는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보낸 4년간을 나사로가 무덤에서 보낸 4일에 비유했으며, 죽음을 통해 부활한 나사로와 자신을 동일시했다. 도스토옙스키의 4대 장편 모두가 성서적 상징으로 충만하지만, ≪죄와 벌≫만큼 형식과 내용, 거대 테마와 작은 상징들에 이르기까지 성서 텍스트에 가까운 작품은 없을 것이다.
4. 19세기 나사로, 라스콜니코프
≪죄와 벌≫의 본문 전체에 나타나는 공간들은 좁고 어둡고 답답하다. 유명한 도스토옙스키 비평가 바흐친의 말을 빌리면 그곳은 “위기”의 공간이며, “불안한” 공간이며 “질식할 듯”이 폐쇄된 공간이다. 숨을 쉴 수가 없는 그 공간에서 거주자들은 질식사하거나 미쳐 가거나 둘 중 하나다. 라스콜니코프는 ‘살고자’ 한다. ‘한 번뿐인 삶을’ 잘 살아 내고자 한다. 그렇다면 살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다. 그 공간에서 뛰쳐나오는 것!
성서에 나오는 가장 커다란 기적은 부활이다. 장사 지낸 지 여러 날이 되어 송장 썩는 냄새가 나는 나사로가 살아나는 이야기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버금가는 전무후무한 기적이다. 라스콜니코프는 소냐와 함께 나사로의 부활이 들어 있는 <요한복음>을 읽는다. 성서의 나사로 이야기가 그리스도 자신의 죽음과 부활의 전조이듯이, 라스콜니코프가 그 이야기를 읽는 것은 에필로그에서 있을 자신의 정신적인 회복과 갱생을 의미한다. 도스토옙스키가 ‘나사로’를 읽는 장면을 4부 4장에 위치시킨 것은 죽은 지 4일 만에 부활한 나사로와 연관시켜 4라는 숫자를 통해 나사로와 라스콜니코프의 상징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작품 속에서 직접 언급되지는 않으나 라스콜니코프의 영적인 부활의 시점이 되는 시베리아 유형도 역시 그가 페테르부르크의 “관” 같은 방에서 거주를 시작한 지 4년 만이다. 유령과 같은 죽음의 도시에서 거주한 지 4년째에 라스콜니코프는 신선한 공기가 있는 구원의 공간인 시베리아로 보내진다. 19세기의 나사로인 라스콜니코프는 4년 만에 시베리아 감옥에서 부활한 도스토옙스키 자신이다.
5. 그리스도의 현신, 소냐
소냐와 그리스도의 유사성은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리스도적인 사랑과 겸손, 자기애로부터의 완전한 자유, 영적 깊이와 통찰력, 연민과 동정의 힘, 나를 희생하고 타자를 위해 응답하는 자세 등이 그러하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라스콜니코프를 정신적으로 부활시키며, 동시에 자신은 육신의 부활을 경험한다. 에필로그에서 소냐도 라스콜니코프와 함께 부활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단 한 번도 정신적으로 타락했던 적이 없는 그녀가 무엇으로부터 부활한다는 것인가? 육체적인 순결의 부활이다. 그녀가 지니고 살아야 했던 창녀의 표식인 황색 감찰은 예수가 지고 가야 했던 십자가와 다름없으며, 이것은 그녀가 자신의 순결을 팔러 나간 시간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받으며 죽어 간 시간과 정확히 일치함으로써 소냐=그리스도의 비유는 더욱더 뚜렷해진다. 소냐는 5시가 넘어 나가서 8시가 지나 집으로 돌아와 계모에게 30루블을 건네준다. 바로 이 제6시와 제9시의 시간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천지가 애통해하며 온 땅이 어둠으로 덮인 시간이다. 이런 성서적 숫자 상징을 통해 자신의 순결을 희생한 소냐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인간의 육신을 갖고 태어난 신의 아들이 겪어야 했던 극심한 고통과 하나가 된다. 물론 소냐가 순결의 대가로 받은 30루블이라는 돈의 액수 역시 유다가 예수의 몸값으로 받은 30달란트에 대한 직접적인 비유다.
6. 에필로그에 대한 변호
많은 도스토옙스키 비평가들이 에필로그를 ≪죄와 벌≫의 사족이라고 비판했다. 소설의 본문에서 나타났던 긴장과 불안정성은 에필로그에 오면 거의 완전히 사라진다.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주된 특성인 다성성(多聲性) 역시 사라져 모든 것이 소설의 본체와는 달라져 있다. 그러나 상징과 테마는 같은 코드들에 지배되고 있으며, 본문의 크고 작은 모든 상징 코드와 소설 주제의 정수는 에필로그에 드러나 있다. 만약 에필로그가 없다면 독자는 고치는 깨졌으나 그곳에서 성충이 되어 나온 아름다운 나비를 보지 못하는 것이고, 무덤은 열렸으나 죽음을 이기고 걸어 나오는 나사로는 보지 못하는 셈이 된다. 에필로그로 인해 ≪죄와 벌≫은 구원의 씨앗이 실제적으로 열매 맺는 것을 보여 주는 유일한 작품으로 자리매김된다. 죽음에서 부활한 라스콜니코프=나사로는 숨 막힐 듯한 더위, 썩어 가는 악취, 먼지로 가득한 무덤인 페테르부르크의 공간에서 벗어나 맑은 물, 신선한 공기, 초록빛 들판, 넓은 전망의 시베리아로 나아가야만 했던 것이다. 에필로그가 있어야만 서구 문명이 지배하고 있는 페테르부르크에서 질식해 가는 주인공이 본성적인 믿음을 되찾고 구원을 받는 것, 즉 부활의 완성작이 탄생하는 것이다.
200자평
* 이 책은 지식을만드는지식의 도스토옙스키 4대 장편 한정판 시리즈 첫 번째 책입니다. 오래 소장할 수 있도록 매우 공들여 만든 가죽장정 하드커버입니다. 앞뒤 표지와 케이스에는 24K 금박 문양을 찍었고, 책등을 제외한 3면에는 금장을 도색했습니다. 일정 수량 한정판으로 출판합니다.
<<죄와 벌>>은 도스토옙스키의 4대 장편 중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고, 유일하게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1860년대 러시아, 그중에서도 온갖 모순이 첨예하게 대립한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서구 문명과 파괴라는 참으로 도스토옙스키적이면서도 특수한 러시아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라는 지역적 경계를 넘어 ‘세계의 명작’으로 자리매김한 이 작품은 19세기라는 시간 역시 뛰어넘어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의 가슴을 감동으로 물들인다. 이는 가난, 매춘, 음주 등 인류가 존재하는 한 끝나지 않을 테마의 보편성,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은 통찰, 또 신과 인간이라는 영원한 철학적 과제, 그리고 다성악성 같은 다양하고 현대적인 소설의 기법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이유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는 1821년 10월 30일 태어났다. 아버지는 모스크바 빈민 병원에서 일했으며, 잔인할 정도로 엄격한 성격의 소지주였다. 종교적이고 온화한 성격의 어머니와는 달리, 잔혹한 아버지의 이미지는 도스토옙스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쳐, 그의 작품 속 아버지들은 처음부터 부재하거나, 무능하거나, 잔학하여 자신의 자식들을 길거리로 내몰아 몸을 팔게 하거나, 자식들에게 살해당하거나, 아니면 그 자신이 자녀에 대한 육체적, 정신적, 심지어 성적인 폭군으로 등장하거나 한다.
도스토옙스키가 태어나고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은 그의 아버지가 의사로 일하던 모스크바 빈민 병원이었는데, 그 병원의 많은 환자들은 모두가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었으며, 어린 도스토옙스키는 이들과 대화하기를 즐겼다. 가난의 심리학의 대가가 될 씨앗이 여기서부터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작가 스스로도 평생을 가난의 굴레에서 허덕였다. 그는 돈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결코 “현실적”이지 못했고, 감당할 능력이 있건 없건 간에 떠넘겨지는 짐을 사양할 줄 몰랐다.
도스토옙스키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1846년)에는 작가의 가난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 가난이 인간 심리와 삶에 끼치는 영향들, 그리고 가난하고 핍박받는 자들에 대한 강한 동정심이 잘 나타나 있다. 이런 젊은 날의 도스토옙스키에게 형제애 속에서 모두가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르치는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의 모임인 페트라솁스키 서클은 목마른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반가운 만남이었다. 하지만 차르 니콜라이 1세의 반동 정치하에서는 당대 현실에 대한 비판뿐만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유토피아 등에 대해 토론하는 것, 금지 서적을 읽는 것들만으로도 총살감이었다.
고골에게 보내는 벨린스키의 편지를 낭독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된 도스토옙스키는 사형은 간신히 면했으나 시베리아로 끌려갔고, 4년간의 감옥 생활과 또 4년간의 유형생활을 보낸다. 그 후, 도스토옙스키의 인간관 및 세계관은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 있었다. 1840년대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를 지향했던 도스토옙스키는 1860년대 완전히 극우 보수주의자(슬라브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유형을 마치고 돌아온 작가는 1861년 러시아의 문화적 정치적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잡지 ≪시대(Время)≫를 창간했고, 1863년 ≪시대≫지가 정치적 이유로 발행정지 조치를 받게 되어 폐간된다. 이듬해 형 미하일과 함께 두 번째 잡지, 더욱더 극우적이고 슬라브주의적인 잡지 ≪세기(Эпоха)≫를 발간하여, 그 첫 호에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발표한다.
1866년, 후에 그의 부인이 된 속기사 안나를 고용하여 ≪노름꾼≫과 ≪죄와 벌≫을 속기하게 하여 발표하고, 1868년 그리스도를 닮은 “긍정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인간”을 그리고자 한 ≪백치≫를, 1872년 ≪악령≫을, 죽기 한 해 전인 1880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발표했다.
이렇게 해서 세계문학사 중 가장 위대한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1881년 1월 28일, 그의 소설만큼이나 극적인 사건들이 넘쳐 나는 자신의 삶을 마감했다. 러시아 철학자 니콜라이 베르댜예프가 말한 것처럼, 도스토옙스키라는 작가를 낳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지구상에 러시아인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옮긴이
김정아는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서울대학교 박사 과정 중 미국으로 유학 가서, 일리노이대학교(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ᐨChampaign) 슬라브어문학부 대학원에서 슬라브 문학으로 석 ·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부전공으로는 폴란드 문학을 공부했다. 박사 논문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 나타난 숫자와 상징>이며, 다수의 소논문을 국내외 언론에 발표했고, 서울대학교 등에서 문학을 강의했다. ≪죽음의 집의 기록≫ ≪지하생활자의 수기≫ ≪도박사≫ ≪학대받고 모욕받은 사람들≫ ≪미성년≫ ≪온순한 여자/우스운 사람의 꿈≫(이상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집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다닐 하름스), ≪부실한 컨테이너≫(미하일 조셴코), ≪되찾은 젊음≫(미하일 조셴코), ≪카람진 단편집≫(니콜라이 카람진), ≪무엇을 할 것인가?≫(니콜라이 체르니솁스키) 등의 역서와 ≪패션 MD1 : 바잉편≫, ≪패션 MD2 : 브랜드편≫, ≪패션 MD3 : 쇼룸편≫, ≪모칠라 스토리≫ 등의 저서가 있다. 오디오북 ≪백 인의 배우 세계문학을 읽다≫에 <코>(니콜라이 고골), <우스운 사람의 꿈>(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역자로 참여했다. 20세기 소비에트 문학과 소비에트 여성의 문제, 그리고 유토피아 문학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으며,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소비에트 시기 문학 작품의 번역을 준비하고 있다.
차례
주요 등장인물
제1부
제2부
제3부
제4부
제5부
제6부
에필로그
작품 이해를 돕는 자료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나는 당신에게 고개를 숙인 게 아니야. 나는 전 인류의 고통 앞에 고개를 숙인 거야.” 다소 거칠게 이런 말을 내뱉고 그는 창가로 갔다. “한번 들어 봐.” 1분쯤 지나 그녀에게 돌아온 후 그가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아까 어떤 무례한 녀석에게 당신의 새끼손가락만 한 가치도 없는 놈이라고… 또 오늘 내 여동생에게 당신과 같이 앉을 수 있는 영광을 주었다고 그렇게 그놈에게 말해 주었어.”
“아휴, 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것도 동생분이 계신 데서?” 소냐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저와 함께 앉다니요! 그게 영광이라니요! 정말이지 전… 수치스러운 여자예요, 전 정말이지 크나큰 죄인인걸요! 아휴, 그런데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당신의 수치나 죄를 두고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고, 당신의 위대한 고통을 두고 한 말이야. 하지만 당신이 크나큰 죄인이라는 건 맞는 말이야.” 그가 거의 희열에 들떠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이 죄인인 것은 무엇보다 쓸데없이 자신을 죽이고 배반했기 때문이야. 이거야말로 정말 끔찍한 거 아니겠어! 자신이 그토록이나 증오하는 진창 속에 살고 있고, 동시에(눈만 똑바로 뜬다면) 그렇게 함으로써 누구 한 사람 돕지도 못하고, 누구 한 사람 그 무엇으로부터도 구해 내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더 잘 아는데, 이거야말로 정말 끔찍한 거 아니겠어! 그리고 끝으로 나한테 말 좀 해 봐.” 그가 미친 듯이 흥분해서 말했다. “대체 어떻게 이토록 더럽고 천한 일과, 그와는 정반대되는 신성한 감정이 당신 안에 공존할 수 있단 말이야? 정말이지 차라리 머리부터 거꾸로 물속에 뛰어들어 모든 걸 한꺼번에 깨끗이 끝내는 게 더 옳고 더 현명한 방법이 아니겠냐고!”
“그럼 저들은 다 어쩌고요?” 고통에 찬 시선으로 그를 보며 소냐는 힘없이 이렇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