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만지한국문학의 <지역 고전학 총서>는 서울 지역의 주요 문인에 가려 소외되었던 빛나는 지역 학자의 고전을 발굴 번역합니다. ‘중심’과 ‘주변’이라는 권력에서 벗어나 모든 지역의 문화 자산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지역 학문 발전에 이바지한 지역 지식인들의 치열한 삶과 그 성과를 통해 새로운 지식 지도를 만들어 나갑니다.
울산 최초의 대과 급제자
죽오 이근오는 울산을 대표하는 학성 이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경주 보문의 활산 남용만 문하에서 수학한 그는 1790년 울산 최초로 대과에 급제해 관직에 오른다. 중앙과 지역의 중간자적 위치에서 양쪽의 동향과 현안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지만 당시 세가 약했던 영남 출신으로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후학 양성에 힘쓰다
‘지역’과 ‘문벌’의 한계를 실감한 이근오는 병조정랑을 끝으로 낙향해 독서와 후진 양성에 매진했다. 경주, 밀양 등 주변 지역의 인사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울산이나 인근 고을에 부임한 관원들과도 밀접하게 교유해 후진의 출사를 도모하는 한편, 지역 인사들과 힘을 합해 고을의 인재를 길러 내기 위한 교육 기관인 양사재를 건립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 자리에 양사 초등학교가 있다. 이근오의 문하에 출입하며 소과 또는 대과에 합격한 사람들은 그를 엄한 스승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바로 울산의 윤병호, 윤병이와 경주의 남봉양, 권찬환 등이다.
충담하고 화평한 시문
이근오의 문학 작품은 대체로 충담하고 화평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그의 삶이 그리 녹록하지 않았음에도 작품에 세상을 원망하는 말이 없고 평이한 문체와 시어를 주로 구사한 것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시는 낙향한 후 자연 가운데 고요히 사색하는 자연시, 주변 인사들과 교유하면서 주고받은 교유시와 축하시, 지인들과 여행하며 함께 창수한 유람시 등으로 다양한데, 조선 후기 향반의 모습은 물론, 당시 울산 지역의 모습과 영남파 학맥, 인맥의 네트워크 등을 파악할 수 있는 귀한 자료가 된다.
200자평
18세기 울산과 조선을 이해하는 프리즘
18세기 울산을 대표하는 학자 죽오 이근오의 시 73수를 엮었다. 울산 최초의 대과 급제자로 여러 관직을 역임했으나 세가 약한 영남 출신으로서의 한계를 느낀 그는 낙향해 학문에 힘쓰는 한편 후진 양성에 매진한다. 지역 선비가 느낀 좌절과 이에 대한 극복, 조선 후기 울산 지역의 모습과 영남파 학맥의 연원을 살필 수 있다.
지은이
죽오(竹塢) 이근오(李覲吾, 1760∼1834)는 1760년(영조 36) 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석천리에서 태어났다. 초명은 중오(中吾)였는데 어느 날 꿈에 임금이 이름을 바꾸라고 해서 근오로 개명했다고 한다. 자는 성응(聖應), 호는 죽오(竹塢)·석천(石川)·남간(南磵) 등을 썼으며 본관은 학성(鶴城)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한 자질을 보였던 이근오는 10대 중반에 경주 보문의 활산 남용만 문하에 들면서 본격적으로 출사의 길을 모색했던 것으로 보인다. 1790년(정조 14) 대과에 급제해 여러 관직을 역임하면서 중앙의 동향을 전달하고 지역의 현안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당시 세가 약했던 영남 남인의 고충을 겪기도 했다.
결국 ‘지역’과 ‘문벌’이란 두 가지 점에서 한계를 느낀 이근오는 병조정랑을 끝으로 1804년(순조 4) 45세 때 낙향했고 이후 독서와 후진 양성에 매진하는 한편 울산, 언양, 경주, 양산, 밀양 등 동남 지역의 인사들과 교유하며 지역의 여론 주도층으로 활약했다.
조정에서 몇 차례 사헌부지평과 부사직으로 부르기도 했으나 더 이상 출사하지 않았고 1834년(순조 34) 75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옮긴이
엄형섭(嚴亨燮)은 1968년 울산 출생으로 동국대학교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부산대학교 대학원 한문학과 석박사통합과정을 수료했다. 조선 후기 한시의 보편성과 지역성의 변주, 영남 학맥을 공부하면서 울산 지역 문헌을 수집, 정리하고 있다. ≪울산금석문≫, ≪울산지리지≫, ≪경상좌병영 관련 문헌 집성≫, ≪용재총화≫ 등을 공역했고 ≪동남창수록≫, ≪보인계시첩≫, ≪영계유고≫를 번역 출간했다. 지금 부산대 강사, 울산대 강사,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자문위원, 울산광역시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논문으로 <울산 지역 문집의 현황과 과제사적 위상>, <동남창수록 연구>, <죽오 이근오의 시에 보이는 안분의 의미>, <포은의 언양 유배가 언양 지역에 끼친 영향과 그 의미> 등이 있다.
차례
석천정
신유년 가을에 영남에서 새로 급제한 다섯 사람과 같이 수창하다
후릉에서 한 해를 보내며
후릉에서 정월 보름날 밤에 감회를 펴다
후릉에서 감회를 읊다
전찰원에서 쇄직하다
섣달 그믐날 밤
섣달 그믐날 밤, 경모궁에서 재숙하다
설날 새벽 경치
설날 아침, 하례하고 어가를 따라 경모궁에 이르다
정월 26일, 큰 눈이 오다
성균관에서 동짓날에, 두보의 시에 보운하다
동짓날 감회를 펴다
동지 다음 날, 김종수에게 주다
성균관에서 김일로, 강세백린, 조심, 좌랑 이규진과 같이 짓다
조경원의 시에 차운하다
김일로에게 주다
태상에서 숙직하다가 권찬환에게 지어 보내다
신야 이인행이 저작 신석림에게 준 시의 운을 써서 여러 사람의 책상 위에 받들어 올리다
지평 신문첨과 창수하다
이기현의 회갑 시에 차운하다
이기발의 회갑 시에 차운하다
단옷날 소종형 반계 이양오를 모시고 운흥사에 노닐다
죽오
만옹 이증신의 <조대> 시에 차운하다
동래부사 윤필병의 시에 차운하다
눈을 읊다
안화암에서 남봉양에게 주다
안화암에서 윤병호에게 주다
남간에서 병중에 감회가 있어
옥산 서원을 나서서 갑호에 머물며 세자시강원 보덕 이정병, 남려 이정엄, 창려 이정기, 의은 이원상, 권동진과 함께 읊다
임오년 중구일에 여러 벗들과 은을암 남대에 오르다
설산 이남규와 함께 내산을 유람하며
범어사에서 동래부로 향하다
시어루에 올라 시판의 시에 차운하다
이설산과 헤어지며
파 상인에게 남겨 주다
삽포에서 헤어지면서 노두의 <구일(九日)> 운으로 좌랑 박정원에게 주다
안화암에서 후난정회를 열고 윤현과 그의 두 아들 종범과 병이, 이운두와 그의 아들 병연, 이운협과 그의 아들 회연, 권문옥, 내 동생 강오, 세 아들 종기, 종화, 종제, 조카 종일, 족질 종적, 재종제 길오와 그 외 관동 예닐곱 명과 같이 모여서 애오라지 한 수를 읊어 산중의 기이한 일로 남기다
장도의 시에 차운하다
안화암 소회
양사재에서 가을비 오는 날 낙성 때의 운을 따라
치암 남경희, 도와 최남복, 용암 최기영, 최천용과 함께 백련사에 모여 이야기하다
입춘일, 문정에서의 문회
잠(簪) 운을 따라 이설산의 원적산 유람을 뒤좇아 읊다
음(音) 운을 따라 이정순에게 주다
귀령 길에서 죽리 손병로, 치암 남경희와 같이 읊다
<입암> 시에 차운하다
말 위에서 구호하다
<일아정> 시에 화답해 이설산에게 주다
응양에서 돌아오는 길에 쌍벽루에 올라
백련사에서 최경지와 헤어지는데 나에게 5언 율시 한 수를 지어 주기에 말 위에서 화답해 주다
고양수에서 이설산(李雪山)을 기다리며
독락당에 묵으며 선생의 문집 속 시에 공경히 차운하다
구강 서원에서 강(江) 운을 내어
오산 만회정
서활의 만포정 시에 차운하다
사인암
윤종범의 문희연 시에 차운하다
이요당에서 이남려가 진후산의 <보진지(葆眞池)>에 차운한 시에 화운하다
경오년 설날이 바로 입춘이다. 두세 동지와 함께 지연정에 모여 주자의 <입춘대설> 시에 공경히 보운하다
김성중 진사에게 화답하다
다산 정약용의 시에 차운하다
하계 이가순과 함께 태화루에 올라 점필재 김 선생의 시판 시에 공경히 차운하다
반구정에서 이학원과 함께 안화암으로 향하다
하수 박기령에게 축하의 뜻으로 주다
장선재 소화
최옥의 용담 정사 시에 차운하다
최사진의 동호 시에 차운하다
이언호의 시에 차운하다
동각 시에 화운해 만소 박뇌환에게 주다
달전의 재사에서 열린 입춘 모임에서 향와 이정진을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다
상주목사 유한식의 시에 화운하다
부록
≪죽오유집≫ 서문
유사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 후기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석천정
정자 몇 칸 푸른 산언덕에 있고
시냇물 졸졸졸 숲 그림자 비껴 있네.
덧없는 공명이라 관이며 인끈이 부끄럽더니
늙어서야 내 마음 자연에 있어라.
강호를 때때로 찾아오는 보통 나그네요
뽕밭에 봄이 한가로운 여덟아홉 집이라.
겹겹의 검푸른 절벽을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며
내 좋아하는 바를 따르니 속된 마음 멀어지네.
石川亭
數間亭子碧山坡 溪水潺湲樹影斜
浮世功名羞冕紱 晩年痼疾在烟霞
江湖時過尋常客 桑柘春閒八九家
三疊蒼巖朝暮對 從吾所好俗心遐
죽오
띠풀 베어 내고 터를 가려 작은 정자를 지으니
나와 대나무가 마치 기약함이 있는 듯하네.
해[歲]가 저물어도 긴 줄기는 푸르름을 홀로 떨치고
밤이 깊을수록 빈방엔 흰빛이 생겨나네.
어버이를 여읜 종신(終身)의 아픔 견디기 어렵지만
맑은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불어올 때가 제일 좋다네.
자식 가르치고 농사지음이 참으로 나의 분수이니
그윽한 대숲에 앉아 있는 곳을 남이 알까 두렵네.
竹塢
誅茅卜築小亭奇 吾與此君若有期
歲暮脩竿靑獨也 夜深虛室白生之
那堪孤露終身痛 最愛淸風拂面吹
訓子課農眞我分 幽篁坐處怕人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