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은 에드워드 그랜트의 방대한 독창적 연구에 기초해 이와 같은 초기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기존의 연구들을 종합한 중세 과학의 훌륭한 입문서다. 교과서의 형태로 씌어졌고, 따라서 짧은 지면 속에 고대 그리스 과학의 쇠퇴, 중세 대학에서 과학의 도입과 정착 과정, 중세 과학과 신학 사이의 갈등과 타협, 중세의 천문학과 우주론을 잘 정리해서 다루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 그랜트 교수는 암흑기부터 중세 말기에 이르기까지 중세 서유럽에서 행해진 자연에 대한 탐구가 신학, 철학과 어떠한 관련을 맺으며 발전했고, 또 그러한 발전의 성과물과 한계가 무엇이었는가를 아리스토텔레스주의 과학을 중심으로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은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대학에서 과학사 초급 과정의 중세 과학 강좌 교과서로 널리 사용될 정도로 중세 과학과 관련된 기본적이고 중요한 사실들을 간결하게 서술하고 있다. 1277년 금지령, 유명론자들의 자연철학, 중세 과학과 과학 혁명의 관계 등 중세 과학에 관한 중요한 사건과 특징에 대한 저자의 해석은 독창적이며 또한 포괄적이다.
중세를 전공한 저자는 다른 시기를 전공한 역사학자들이 잘 파악하지 못한 중세 과학의 흥미로운 특성들을 잘 드러내고 있다. 예를 들어 중세 물리학의 ‘내적 저항’ 개념을 사용하면 구성이 같은 두 물체는 무게에 관계없이 같은 속도로 낙하한다는 결론이 얻어지며, 중세 임페투스 역학에 의하면 임페투스가 다 소진된 물체는 일정한 속도로 계속 운동한다는 결과를 얻는다. 머튼 칼리지의 학자들은 기하학을 사용해서 운동을 분석했는데, 이들은 이로부터 ‘자연스럽게 가속한 운동’의 경우에 진행한 거리는 시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결과도 유도했다. 이 모든 결론은 갈릴레오가 17세기 초엽에 근대 역학의 새 장을 열면서 얻어낸 결과와 놀랄 만치 흡사하다.
그렇지만 그랜트는 이러한 유사성을 가지고 과학 혁명이 14세기에 시작되었다던가, 혹은 14세기 중세 과학에 이미 과학 혁명의 씨앗이 들어 있었다고 성급하게 결론짓지 않고 있다. 중세 학자들은 자연에 존재하는 물체의 운동 그 자체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철학적인 지적 훈련 비슷한 것으로 운동에 대한 논의를 이어 갔다. 또 많은 경우에 이들의 논의는 아리스토텔레스 자연철학의 문제를 그의 체계 속에서 해결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들은 자연 현상의 인과 관계를 찾아내서 현상을 설명하려고 하기보다는, “현상을 구제하는(save the phenomena)” 단계에 만족했다는 것이다. 자연과 과학을 보는 관점에서 중세 자연철학자들은 자연의 실재를 수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던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오와 무척 달랐던 것이다. 그랜트는 이 책에서 중세 과학의 놀라운 업적을 보이면서 그 한계를 꼼꼼하게 짚어 내고 있다.
200자평
중세 과학은 철학과 신학의 시녀였는가? 중세 과학을 재평가하는 입문서이다. 서양 중세는 과연 무지몽매한 암흑기였을까? 서구에서 로마의 세력이 확장되면서 그리스 과학은 거의 자취를 감췄지만 이슬람 학자들의 번역 활동이 과학을 보존했다.
유럽에서는 이 아리스토텔레스 전통 물리과학을 이어받아 곳곳의 대학을 중심으로 성과를 이뤘지만 그것을 이단으로 바라보는 신학이 걸림돌이었다. 중세 자연철학자들은 신학과의 갈등과 타협을 통해 자연의 실재에 대한 해석을 펼쳤다. 중세의 과학은 이후의 과학 혁명과 어떤 연속성과 단절점을 가질까? 중세 과학의 놀라운 업적과 한계를 꼼꼼하게 짚어 내는 책이다.
지은이
에드워드 그랜트는 미국 인디애나대학 교수로, 1957년 위스콘신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이래로 중세 과학의 여러 측면들, 특히 중세 자연철학 및 우주론에 관한 연구를 해 오고 있다. 저서로 Much Ado about Nothing: Theories of Space and Vacuum from the Middle Ages to the Scientific Revolution(1981), The Foundations of Modern Science in the Middle Ages: Their Religious, Institutional and Intellectual Contexts(1996), Planets, Stars, and Orbs: The Medieval Cosmos, 1200-1687(1996), God and Reason in the Middle Ages(2001), Science and Religion, 400 B.C. to A.D. 1550: From Aristotle to Copernicus(2006), A History of Natural Philosophy: From the Ancient World to the Nineteenth Century(2007), The Nature of Natural Philosophy in the Late Middle Ages(2010) 등이 있으며, 편저서로 A Source Book in Medieval Science(1974) 등이 있다.
옮긴이
홍성욱은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과학사 및 과학철학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 미국 과학사학회에서 박사 과정 학생을 대상으로 수여하는 최우수 논문상인 슈만상을, 1996년에는 미국 기술사학회의 IEEE 종신회원상을 받았다. 캐나다 토론토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Wireless: From Marconi’s Black-Box to the Audion≫, ≪잡종, 새로운 문화읽기≫, ≪생산력과 문화로서의 과학기술≫, ≪네트워크 혁명, 그 열림과 닫힘≫, ≪파놉티콘, 정보사회 정보감옥≫, ≪하이브리드 세상읽기≫, ≪과학은 얼마나≫,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 ≪홍성욱의 과학 에세이≫, ≪그림으로 보는 과학의 숨은 역사≫ 등의 책을 냈으며, ≪2001 싸이버스페이스 오디쎄이≫, ≪남성의 과학을 넘어서≫, ≪뉴턴과 아인슈타인≫ ≪인간, 사물, 동맹≫ 등의 책을 엮었고, 2013년에는 토머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4판)를 공역했다.
김영식은 1947년에 태어나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화학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프린스턴대학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7년부터 2001년까지 서울대학교 화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2001년부터는 동양사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1984년부터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 겸임교수로 있으며, 2006년부터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원장으로 있다. 저서로 ≪정약용 사상 속의 과학기술: 유가전통, 실용성, 과학기술≫, ≪과학 혁명: 전통적 관점과 새로운 관점≫, ≪역사와 사회 속의 과학≫, ≪주희의 자연철학≫, ≪과학, 역사 그리고 과학사≫, ≪과학, 인문학 그리고 대학≫ 등이 있으며, 편집한 책으로는 ≪프리즘: 역사로 과학 읽기≫, ≪한국의 과학문화: 그 현재와 미래≫, ≪근현대 한국 사회의 과학≫ 등이 있다.
차례
서문
1장 500년부터 1000년 사이 과학의 상황
2장 과학의 시작과 번역의 시기: 1000년에서 1200년까지
3장 중세 대학과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사조의 영향
4장 운동의 물리학
5장 지구, 하늘, 그리고 그 바깥
6장 결론
참고문헌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리학보다도 우주론에서 세계의 구조에 대해 고도로 꽉 짜이고 일반적으로 만족할 만한 관점을 중세에 전수했다. 비록 그것의 이런저런 측면이 천문학적·물리학적 또는 신학적 근거에서 때때로 심하게 공격을 받았지만, 그 관점은 16세기와 17세기에 폐기되기까지 완전히 지배적인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것은 학식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질서정연하고 조화스러운 세계를 제공했고, 이 세계의 대체적 특징들은 그림처럼 생생하게 사회의 모든 계층에 전달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