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경계 밖으로 버려진 것들, ‘애브젝트’를 끌어안다
기호학과 정신분석학으로 엮은 새로운 페미니즘
페미니즘의 고군분투에도 여성은 지속적으로 소외되어 왔다. 남성성/여성성의 이분법과 여성이라는 단일한 범주 속에서 여성들이 지닌 다양한 표현과 관심사가 지워졌기 때문이다. 이에 쥘리아 크리스테바는 개별 여성의 특이성에 기반한 새로운 페미니즘을 정초한다. 여성을 재현할 수 없는 존재, 말할 수 없는 존재로 간주하며 동일성과 차이를 모두 고려한다. 이러한 페미니즘은 유색인, 이민자, 범죄자, 장애인 등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을 아우르며 21세기의 휴머니즘으로 확장된다.
크리스테바는 언어, 예술, 정신분석 등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독창적인 사상을 전개한다. 후기구조주의의 영향을 받아 텍스트에서 억압된 이데올로기를 발견하고,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을 발전시켜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주체 형성 과정을 탐색한다. 이론뿐 아니라 회화 작품과 신화,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 겪은 생생한 체험과 정신분석의 진료 경험을 폭넓게 참조하면서 여성 신체와 모성 등에 대해 지금껏 없던 색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이 책은 경계를 가로지르는 크리스테바의 사유를 열 가지 키워드로 조망한다. 언어를 배우기 전 아이와 어머니의 역동적 관계를 반영하는 “기호계”부터, 경계 밖으로 버려진 것들을 의미하는 “애브젝트”까지 다방면에 적용할 수 있는 크리스테바의 개념들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성, 정체성, 언어 등 현대 사회의 주요 쟁점들을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쥘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 1941∼ )
언어학, 정신분석학, 인류학, 철학, 페미니즘 등 다양한 분야를 가로지르며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킨 불가리아 태생의 프랑스 사상가다. 현재 파리 제7대학 명예교수다. 소피아대학교와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전공하며 사회학과 철학의 기초를 다졌다. 1965년 프랑스 정부 초청 장학생 자격으로 파리대학교 박사 과정에서 프랑스 현대문학을 전공했다. 언어학자 에밀 뱅베니스트,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에게서 수학했다. 1968년 파리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와 정신분석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텔 켈≫ 편집위원, ≪랭피니≫ 편집위원, ≪세미오티케≫ 부주간, 국제기호학회 회장을 지냈다. 국내에 번역 소개된 주요 저술로는 ≪시적 언어의 혁명≫, ≪공포의 권력≫, ≪사랑의 역사≫, ≪사랑의 정신분석≫, ≪검은 태양≫, ≪반항의 의미와 무의미≫,≪여성과 성스러움≫, ≪새로운 영혼의 병≫, ≪정신병, 모친살해 그리고 창조성: 멜라니 클라인≫ 등이 있다.
200자평
쥘리아 크리스테바는 기호학과 정신분석학을 접목해 개별 여성의 특이성에 기반한 새로운 페미니즘을 정초한다. 여성을 재현할 수 없는 존재, 말할 수 없는 존재로 간주하며 예술 작품과 신화, 정신분석의 진료 경험 등을 바탕으로 모성과 여성 신체를 새롭게 해석한다. 이 책은 열 가지 키워드로 크리스테바의 독창적 사유를 폭넓게 조망한다. “기호계”, “애브젝트” 등의 개념을 통해 성·정체성·언어를 새롭게 바라볼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지은이
정연이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를 졸업하고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조형예술학과에서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애브젝트(abject)개념 연구: 현대미술에 나타난 여성의 몸을 중심으로≫(2019)라는 논문으로 조형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건양대학교에서 “유럽미술관 탐방”, “미술관으로의 초대”를 주제로 강의했다. 정신분석과 젠더를 예술 비평에 접목하는 데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논문으로 “현대미술에 나타난 애브젝트로서의 여성의 몸: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애브젝트(Abject)개념을 중심으로”(2018), “제니 샤빌의 작품에 나타난 혐오의 미학: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애브젝트 개념을 중심으로”(2020), “론 뮤익의 조각에 나타난 삶과 죽음의 미학”(2022), “영화 <블랙스완>에 나타난 과정 중의 주체와 모성의 예술적 승화”(2022)가 있다.
차례
경계를 가로지르는 쥘리아 크리스테바
01 상호텍스트성
02 페미니즘
03 기호계
04 코라
05 과정 중의 주체
06 애브젝트
07 애브젝트로서 여성의 몸
08 모성 이론
09 멜랑콜리
10 사랑의 정신분석
책속으로
기호계는 라캉의 거울 단계 이전에 나타나고 전 오이디푸스 단계에 속하는 일차적이고 육체적인 과정이다. 기호계는 아이가 언어를 획득하기 전, 즉 상징계에 들어가기 전에 어머니와 하나로 뒤섞인 채 경험한 충동들 혹은 충동들의 리듬·억양·반향언어증과 관련된다. 주체는 언어를 상징과 문법과 통사를 활용해서 사용하기 전에 다양한 억양과 제스처로 자신을 표현한다. 아기가 옹알이를 하거나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의 리듬을 모방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이러한 종류의 의미화가 크리스테바의 ‘기호계’를 구성한다.
_“03 기호계” 중에서
크리스테바에게 중요한 것은 상징 질서 속에 있는 자아다. 크리스테바는 기호계가 상징계에서 벗어나면 그것이 지닌 혁명적 힘이 광기나 정신병자의 발화로 전락하거나 무정부 상태에 빠지게 된다고 보았다. 이는 인간의 삶을 황폐하게 한다. 반대로 기호계가 완전히 억압되면 상징계가 전횡한다고 주장한다. 크리스테바는 이 양극단을 피하려 한다. 따라서 사회적 구조 내에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변증법적 추(dialectical oscillation) 운동을 제안한다. 아방가르드 시인, 임신한 성모, 정신분석을 받는 내담자와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는 외부인, 외계인 혹은 과정 중의 주체다. 우리는 급격히 변해 가는 세상 속에서 불안정한 경계 내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_“05 과정 중의 주체” 중에서
크리스테바는 애브젝트를 세 가지 형태로 분류한다. 구강과 관계있는 음식물, 항문과 연관되는 배설물, 여성의 생식기와 관련된 월경혈이다. 음식물에 대한 혐오는 가장 오래되고 근본적인 형태의 애브젝션이다. 크리스테바는 배설물이라는 애브젝트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시체를 든다. 시체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표시하고 자아의 확고부동성에 질문을 던지면서 공포감을 준다. 시체는 모든 것을 침범하는 경계선으로, 더 이상 ‘나’가 아닌 쫓겨난 ‘나’다. 시체의 현존은 나 자신의 경계에 침투한다.
_“06 애브젝트” 중에서
현대 여성은 여전히 어머니가 되고 싶어 하지만, 자기 자신을 거부하는 마조히스트가 되길 원하지는 않는다. 모성의 표상이 욕망을 포기하게 한다면, 여전히 어머니가 되기 위해 모성을 선택하는 현대 여성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크리스테바는 여성에게 모성과 욕망 중 하나를 선택하기보다 모성의 표상을 재구성할 방법을 모색해 보라고 제안한다. 크리스테바는 여성에 대한 억압의 책임이 강요된 모성이나 재생산에 있다고 보는 페미니스트들과 달리 그러한 책임을 모성의 표상(representation)에서 찾는다. 아울러 문학·철학·종교 텍스트를 새롭게 분석해 모성의 표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_“08 모성 이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