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한국동화문학선집’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0명의 동화작가와 시공을 초월해 명작으로 살아남을 그들의 대표작 선집이다.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 공동 기획으로 7인의 기획위원이 작가를 선정했다. 작가가 직접 자신의 대표작을 고르고 자기소개를 썼다. 평론가의 수준 높은 작품 해설이 수록됐다. 깊은 시선으로 그려진 작가 초상화가 곁들여졌다. 삽화를 없애고 텍스트만 제시, 전 연령층이 즐기는 동심의 문학이라는 동화의 본질을 추구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편저자가 작품을 선정하고 작가 소개와 해설을 집필했으며,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다.
진은진의 작품은 교훈성이나 교육성에 치중하는 여타 동화 작품과 구분된다. 죽음으로 삶을 이야기한다. 전설과 신화로 현실을 이야기한다. 어두움으로 밝음을, 목표 지향이 아닌 사랑 지향을, 과학이 아니라 신화와 전설 그리고 마법으로 증명해 내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 이 모든 것들을 강요하지 않는다. 진은진의 동화 세계는 웅변이 없는 서사의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는 죽음이지만 결코 어둡지 않다. <할머니의 날개>에서는 북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 할머니 ‘연탄집 할매’의 죽음이 나온다. ‘연탄집 할매’의 죽음은 슬픔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죽음은 삶의 참다운 가치를 깨닫게 하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절차에 불과하다. <마고할미는 어디로 갔을까>에서 노환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할머니로부터 무한한 생명력을 지닌 마고할미를 떠올리는 주인공의 모습은 죽음과 탄생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그대로 드러낸다. <봉숭아>에 손녀와 마주 앉아 봉숭아물을 들인 할머니는 다음 날 아침에 깨어나지 못한다. ‘저승길을 밝혀 준다’던 봉숭아물은 죽은 할머니와 살아 있는 손녀를 이어 주는 역할을 한다. 삶과 죽음이 이어져 돌아가는 우리네 삶을 보여 준다.
진은진의 동화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소재는 전설과 옛이야기다. 인당수(印塘水)에 몸을 던진 심청이가 등장하기도 하고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청아 청아>, <나무꾼과 선녀>, <동쪽 나라 임금님>, <무명암>, <용두사 이야기> 등은 모두가 한 번쯤 접해 보았을 법한 옛날이야기들을 소재로 한다. 소재는 익숙하지만 그 내용은 매우 새롭다. 게다가 그것들이 지향하는 것은 옛날이 아니라 바로 오늘이며 미래를 조망하기도 한다.
진은진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다. 옛이야기도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며 순환하는 자연의 일부분이다. 옛이야기는 미래에 대한 예언과 같다.
200자평
진은진은 죽음으로 삶을 이야기한다. 전설과 신화로 현실을 이야기한다. 어두움으로 밝음을, 목표 지향이 아닌 사랑 지향을, 과학이 아니라 신화와 전설 그리고 마법으로 증명해 내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 이 모든 것들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 책에는 등단작 <할머니의 날개> 외 12편이 수록되었다.
지은이
1969년 경상남도 하동에서 태어났다. 1987년에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였다. 1995년 단편 <할머니의 날개>로 제3회 MBC창작동화대상을 받으면서 등단했다. 같은 해 8월에 <우렁색시 설화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 <여성탐색담의 서사적 전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에는 그간에 썼던 단편들을 모아 ≪마고할미는 어디로 갔을까≫와 ≪하늘나라 기차≫를 펴냈다. ≪아동문학평론≫ 2010년 가을 호에 단편 <청아 청아>를 발표했다. 2013년 현재 경희대학교 교양학부 객원교수로 있다.
해설자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림대학교 사학과를 거쳐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03년 계간 ≪아동문학평론≫ 평론 부문 신인상을 받았으며 이후 아동문학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96가지 이야기≫, ≪행복한 세상≫, ≪아름다운 세상≫, ≪현명한 부모가 지혜로운 아이를 만든다≫ 등의 책을 냈다. 2013년 현재 계간 ≪아동문학평론≫ 편집 위원, 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 연구 위원이며, 유교현대화사업단 책임연구원으로 유교 관련 고전의 번역 및 현대화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차례
작가의 말
할머니의 날개
할머니의 틀니를 찾아라
마고할미는 어디로 갔을까
봉숭아
양말 한 켤레
동쪽 나라 임금님
하늘나라 기차
무명암
내 첫 운동회
용두사 이야기
보물찾기
나무꾼과 선녀
청아 청아
해설
진은진은
이도환은
책속으로
1.
나는 기회다 싶어서 벌떡 일어나 앉아 할머니를 찬찬히 쳐다보았다. 눈은 움푹 들어가서 그렇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틀림없이 저 자리에 해와 달이 있었을 거야.’
나는 확신했다.
할머니는 광대뼈가 유난히 불거져서 그 아래에 있는 볼은 숟가락으로 퍼낸 것만 같다. 그래서 할머니가 뭐라고 말을 할 때마다 볼이 불룩거렸다. 할머니의 쪼글쪼글한 입에 바람을 가득 불어넣으면 홀쭉한 볼이 풍선처럼 동그랗게 부풀어 오를 것 같았다.
‘그래, 저 볼에 가득 공기를 담아 후 바람을 불게 했을 거야. 그래 가지고 만주 벌판을 다 날려 버린 거 아냐.’
휠체어 손잡이를 단단히 잡은 할머니 손은 크고도 검었다. 손톱 밑에는 검은 때가 가득 끼어 있었다.
‘그래, 저 손으로 땅을 긁은 거야. 그러니 손톱 밑에 검은 때가 저렇게 끼어 있지. 비녀를 찾으려고 말이야.’
할머니가 비녀를 찌르고 계신가 보았다. 역시 그랬다. 갓난아기 주먹만 한 하얀 쪽머리에 은색 비녀가 비스듬히 찔려 있었다.
하얀 실내화를 신은 발은 유난히 크고 검었다.
‘동해 바다에 한 발, 서해 바다에 한 발, 발을 담그고 물장구를 치느라 검게 그을렸겠지. 저렇게 큰 발로 물장구를 쳤으면 바다에는 태풍이 일었겠다.’
할머니가 물장구치는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날 것만 같아서 도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몰래 킥킥거렸다.
-<마고할미는 어디로 갔을까> 중에서
2.
봉숭아물을 들이느라 개구리 손같이 되어 있는 할머니 손을 잡으시더니 이내 고개를 떨구셨어요.
…
마당의 봉숭아꽃이 아침 햇살을 받아 더욱 빨갛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할머니 손톱에 물들인 빨갛고 고운 빛이 할머니 저승길을 밝게 비춰 줄 거라고 생각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봉숭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