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자평
질투는 나의 힘의 등장인물들은 기존윤리로는 접수하기 힘든 인물이지만 자기 삶의 기준을 갖고 살아가는 자유로운 인물이다. 그들의 행동은 상호 모순되며, 그들은 웃지 않는데도 우리를 웃게 하고, 자신은 슬프지 않은데 우리를 슬프게 한다. 삶에 위선이 끼어들어 있을망정 그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솔직하고 회의하며 또 다른 단계로 삶을 열어놓는다. 인생도 인간도 수수께끼지만 한번 풀어볼 만한 숙제라는 즐거운 마음에 젖게 해주는 기분 좋은 작품이다.
지은이
박찬옥
1968년생이다. 대학 졸업 후 뒤늦게 영화를 하기로 마음먹은 후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발을 딛은 박찬옥 감독은 짧은 대학생활과 ‘영화제작소 청년’에서 활동하는 동안 그의 개성이 오롯이 담긴 단편영화들을 만들면서 영화 연출의 기본을 착실하게 다졌다. 지하철에서 성추행의 위협을 느끼던 여자가 갑자기 동성애적인 충동에 사로잡히는 모습을 그린 <있다>로 제1회 서울여성영화제 우수작품상, 관객상(1996)을, 대학 입시를 100일 앞둔 두 고등학생의 작은 모험을 그린 <느린 여름>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선재상(1998)을 수상했다. 그녀는 장편 데뷔작인 <질투는 나의 힘>에서 불안하고 부조리한 청춘의 내면을,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섬세하고 깊이 있게 그려냄으로써 부산국제영화제 최우수 아시아 신인 작가상(2002), 로테르담 영화제 타이거상(2002)을 수상했다. 박찬옥 감독은 표면적으로는 잔잔하지만 내적으로는 격렬히 동요하는 인물을 그리거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균열을 섬세하게 그리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 준다. 이러한 그녀의 역량에 대한 세계 영화제들의 호응은 완성도 높은 작품의 발견과 함께 한국 영화를 이끌어 갈 또 하나의 젊은 감독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보인다.
한편, 단편영화 <잠복>이 2004년 제23회 밴쿠버 국제영화제 용호상(Dragons and Tigers) 부문에 초청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 졸업 작품인 <잠복>(35mm, 22분)은 가족 혹은 연인이라는 친밀한 관계에 잠복해 있는 어두운 이면의 모습을 박찬옥 감독 특유의 느리면서도 섬세한 터치로 그려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