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2인극은 의사소통의 최소단위인 단 두 명만이 무대에 올라 극을 끌어간다. 2인이라는 제한된 등장인물로 갈등 구조를 선명히 드러내야 한다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단 두 사람이 무대 위에서 만들어 내는 극적 긴장에 매력을 느끼며 호응하는 관객의 요구와 함께 2인극에 대한 창작자와 배우들의 선호 또한 커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20년간 2인극 공연 활성화에 기여해 온 ‘월드 2인극 페스티벌’이 올해 20주년을 맞아 국제 퍼포밍 아트 페스티벌로 자리매김한다. 지난 20년간 2인극 페스티벌 무대에 올랐던 300여 편이 넘는 창작극 가운데 20편을 정선해 ≪창작 2인극 선집≫으로 선보인다.
김진만의 <우중산책>
집중호우로 저지대의 집들이 모두 물에 잠긴 가운데 이주인과 도과장이 지붕 위에서 만난다. 날이 밝으면 구조되리란 희망이 계속된 비로 그전에 지붕까지 물에 잠길지 모른단 불안으로 바뀌며 두 사람은 생존을 위한 최후의 수단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2000년 9월 제1회 ‘2인극 페스티벌’ 공식참가작이다. 김진만 연출, 서상원, 정지환 출연으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초연되었다. ‘2인극 페스티벌’ 탄생의 계기가 되었다.
김숙종의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
크게 유명하지도 잘나가지도 않는, 한 소심한 만화가의 집에 출판사 영업사원이 방문한다. 그는 특유의 친화력과 집요함으로 만화가에게 백과사전 전집을 판매하는 데 성공한다. 계산만 앞둔 상황에서 만화가는 영업사원에게 직접 요리한 가정식 백반을 대접하며 천천히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2008년 2인극 페스티벌 공모 당선작으로 이후 수차례 재공연되었다.
윤지영의 <상선>
어스름이 짙은 항구 앞 포장마차에 창묵이 손님으로 찾아온다. 어묵을 끓이며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하던 유경에게 창묵은 자신의 가슴 아린 추억을 들려준다. 묵묵히 이야기를 듣던 유경도 감춰 두었던 과거 기억을 꺼내 놓는다. 2010년 2인극 페스티벌 공모 당선작으로 초연 이후 2013년 베세토 연극제 주최로 도쿄에서도 공연되었다.
최원종의 <마냥 씩씩한 로맨스>
성우와 인영은 매일 같은 시간 건물 옥상에서 만나 티격태격한다. 취업난과 고용 불안이라는 차가운 현실 속으로 내동댕이쳐졌던 두 남녀가 어리고 미숙했던 이십대와 결별하고 삼십대에 접어들었지만 약육강식의 현실은 여전하다. 두 주인공은 이제 자신들이 패배자임을 받아들이고 함께 새로운 인생, 사랑, 꿈을 시작하려 한다. 2010년 월드 2인극 페스티벌 공모 당선작이다.
김나정의 <사랑입니까>
무한경쟁 사회에서 상처받고 지쳐 세상을 등지고 산에서 홀로 생활하는 아들, 아들을 다시 세상 속으로 끄집어내려는 아버지가 옥신각신한다. 부자의 갈등은 가족은 언제나 서로에게 든든하고 힘이 되는 존재인가?, 사랑은 아름답기만 한 것인가?, ‘남들처럼’ 사는 게 정답일까? 하게 한다. 2012는 월드 2인극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이후 호평 속에 재공연되었던 작품이다.
200자평
‘월드 2인극 페스티벌’이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극적인 탐구’를 목적으로 한 2인극 페스티벌은 지난 성과를 바탕으로 2020년 세계인과 공연 예술로 소통하는 국제 퍼포밍 아트 페스티벌로 자리매김한다. ‘월드 2인극 페스티벌’의 20주년을 기념해 지난 20년간 2인극 페스티벌 무대에 올랐던 공모작 가운데 우수작 20편을 선별해 엮었다. 2인극만의 재미와 감동으로 초연 이후 꾸준히 재공연되고 있는 창작 2인극 작품들을 드디어 대본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지은이
김진만은 작가 겸 연출가다. 세종대학교 공연·영상·애니메이션학과 박사를 수료했다. 현재 ITI(국제극예술협회) 한국본부 축제분과위원장이다. 월드 2인극 페스티벌 창안자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2019 예술분야 문화체육관광부 표창장을 수상했다. <우중산책>, <홀(HOLE)>, <다목리 미상번지>, <보석보다 찬란한>, <안아 주세요>, <씨름사절단> 등 다수의 희곡을 썼다.
김숙종은 <싱싱 냉장고>, <템프파일>,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 <몽>, <콜라 소녀>, <여우들의 동창회>, <배웅>(2012), <엄마>를 공연했고, <배웅>(2009), <드림텔>, <접시꽃길 84번지>를 발표했다.
윤지영은 200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장흥댁>이 당선되었다. 주요 경력 사항으로는 2005년 <장흥댁> 공연(극단 작은신화), 2005년 <장흥댁> 부산 공연(극단 연희단거리패), 2006년 동대문학상 시나리오 당선, 2007년 대구문학신인상 희곡 당선, 2008년 동아문학상 희곡 당선, 2010년 <상선(上船)> 공연(극단 작은신화), 2010년 신작희곡페스티벌 희곡 당선, 2010년 <인간 김수연에 관한 정밀한 보고> 공연(극단 작은신화), 2011년 목포문학상 희곡 당선, 2013년 우리연극만들기 당선, 2013년 <우연한 살인자> 공연(극단 작은신화), 2013년 <상선(上船)> 동경 공연(베세토 연극제 참가작, 연출 야마다 히로유키), 2014년 <우연한 살인자> 공연(극단 작은신화), 2018년 <인간 김수연에 관한 사소한 보고> 공연(극단 작은신화), 2019년 창작산실 <하거도> 공연(극단 작은신화), 2019년 남산예술센터 낭독 공연 생존 3부작 공연(극단 꿈의동지) 등이 있다.
최원종은 희곡학교-라푸푸서원 대표이자 극단 명작옥수수밭 대표, WRITER GROUP CHA-WON-YI(차원이) 대표다. 주요 경력 사항으로는 200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내 마음의 삼류극장> 당선, 2007년 서울문화재단 젊은 예술가 지원사업(NArT) 선정, 2011년 대산창작기금 희곡부문 수혜자 선정, 2012년 제33회 서울연극제 개막식 및 연극인의 날 시상식 공로상(라푸푸서원) 수상 등이 있으며, 2012년 <에어로빅 보이즈>가 한국공연예술센터 제2회 대학로 코미디 페스티벌에 초청, 2015년 직접 쓰고 연출한 <청춘, 간다>로 제36회 서울연극제 6개 부문에서 수상(대상, 희곡상, 무대디자인상, 남자연기상, 여자연기상, 신인연기상), 2017년 <블루하츠>가 서울문화재단 예술작품제작지원작에 선정, <헤비메탈 걸스>(2013, 2015, 2019)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우수 작품 재공연·올해의 레퍼토리·종로문화재단 문화다양성연극제 무지개픽에 선정, 2019년 <안녕 후쿠시마>가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작으로 선정·네이버 TV 공연 생중계, 2020년 <외톨이들> 서울문화재단 예술작품제작지원작 선정 등이 있다. 희곡집으로는, ≪잘 가, 청춘신기루≫(연극과 인간, 2008), ≪걸어라 우울한 소년!≫(평민사, 2012,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 선정), ≪헤비메탈 걸스≫(평민사, 2018, 우수출판콘텐츠제작지원, 201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Arko 문학나눔 도서 선정) 등이 있다.
김나정은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 과정을 마쳤다. 201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여기서 먼가요>가 당선되었다. 2016년 대산창작기금을 수여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상자 속 흡혈귀>, <누가 살던 방>, <해뜨기 70분 전>, <방과 후 앨리스>, <연꽃 속의 불> 등이 있다.
차례
우중산책 / 김진만 지음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 / 김숙종 지음
상선(上船) / 윤지영 지음
마냥 씩씩한 로맨스 / 최원종 지음
사랑입니까? / 김나정 지음
목록
창작 2인극 선집 1
창작 2인극 선집 2
창작 2인극 선집 3
창작 2인극 선집 4
책속으로
도 과장 : (뒤로 주춤거리며 넘어져서 한쪽 팔이 지붕 아래에 닿는다.) 아 차거! 이게 웬 물이냐!
이 주인 : 제정신이 아니로구만, 쯧쯧쯧…
도 과장 :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려 한다.) 아니… 여기가 어디야?
이 주인 : 내 집 지붕이요. 물에 잠겨서 그렇지 이게 삼층 옥상 꼭대기요! 당신 내 집 지붕 아니었으면 벌써 물귀신 됐을 거야.
-8쪽, <우중산책> 중에서
김종태 : 다른 나무꾼처럼 지겟작대기로 개구리에게 겁을 주거나, 흉하다고 침을 뱉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따뜻한 눈길로 바라봐 주고, 먹기 쉽도록 한 입씩 숟가락으로 떠 넣어 주고, 싱거울까 봐 반찬까지 먹여 주며 희망을 줬잖아요. 다 닳아서 없어져 버린, 아니 처음부터 없다고 생각했던 희망. 근데 나무꾼이 준 건 희망이 아니라 동정이에요. 도시락도 나눌 수 없는 싸구려 동정심.
105쪽,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 중에서
유경 : 슈퍼에 가려다 여기까지 왔다구?
창묵 : 예.
유경 : (헛웃음) 별 희한한 양반 다 보겠네.
창묵 : …약속이 생각나서요.
유경 : 약속?
창묵 : 약속을 했었지요. 28년간 잊고 있던 약속…
유경 : … 아주 어마어마한 약속인가 보우. 자전거 하나 끌고 여기까지 내려온 걸 보면.
-117쪽, <상선> 중에서
성우 : 잠깐만. (주머니에서 수첩을 깨내는) 내가 물어보는 질문에 예, 아니요, 로 대답하고 예, 라는 대답이 열 개 넘으면 40대.
인영 : 해 봐, 질문.
성우 : 후회할 텐데.
인영 : 뭐, 그냥 테스튼데 뭐 어때.
성우 : 좋아. … 우선, 1번. 자주 피곤하다고 느낍니까?
인영 : 으흠.
성우 : 대부분의 시간에 행복하지 않다고 느낍니까?
인영 : …음.
성우 : 자주 화가 납니까?
인영 : 네.
성우 : 자주 우울합니까?
인영 : 네.
-182쪽, <마냥 씩씩한 로맨스> 중에서
용진 : 그냥 자식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둬. 자식을 자기 뜻대로 하겠다는 건 부모의 이기적 욕심일 뿐이야. 집착이고. 구속이라구.
만열 : 그건 본능이야. …너도 딱 너 같은 자식새끼 낳아 길러 보면 내 심정이 어떤지 알 거다! 그때 니 새끼 내던지지나 마.
용진 : 걱정 마.
만열 : …
용진 : 난 결혼도 안 하고 자식도 안 낳을 거니까.
만열 : …
용진 : 세상에 기죽고, 상처 받느니 아예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낫지.
만열 : 비겁한 놈. 이렇게 도망치면 그만이야?
-264쪽, <사랑입니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