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체코 민담의 위대한 재창조자
체코는 일찍이 신교 운동을 시도하다가 17세기 초 가톨릭 국가인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이후 체코에서는 체코판 분서갱유, 즉 체코 언어 말살 정책이 조직적으로 행해졌다. 17~18세기 약 2세기 동안 기록문학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이유다. 대신 순수한 체코어 문학의 명맥을 이어 온 것이 수십만 개의 민요, 속담, 격언과 민담 등 구비문학이다.
체코 낭만주의자들은 체코 땅에 사는 독일 작가들의 흔적을 따라 민담을 기록하고 재창조했다. 과업을 훌륭하게 이어 후대에 체코 이야기의 원형을 전해 준 대표적인 두 작가가 에르벤(Erben)과 넴초바(Němcová)다. 에르벤이 민속 이야기에서 유럽의 보편적 신화적인 이야기를 다룬 반면에 넴초바는 작품에서 개인적인 꿈, 사랑에 대한 욕망, 인본주의와 정의에 대한 신념을 형상화했다. 물론 두 작가는 민속 이야기를 들은 그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예술적으로 재창조해 냈다.
보편적 이야기 속 체코 전통의 색채
민담은 인간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사람들의 내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져 민중에게 효과를 발휘한다. 구성은 이야기를 위한 최적의 선택이고, 오랜 세월 구전으로 이어져 내려왔기에 언중의 선택으로 살아남은 말과 자연스러운 대화로 이루어진다.
체코 민담 역시 그 특징이 잘 드러난다. 전세계적으로 익숙한 이야기의 보편성을 띠고 있지만, 동시에 체코 민족이 속한 슬라브 전통의 색채가 강하고 다른 유럽이나 아시아, 그리스 등의 전통과도 관련이 있다. 이야기에서는 자연을 다룬 알레고리, 종교적인 예배의식과 자연적인 신화의 흔적 등을 발견할 수 있으며, 다루는 것은 고대 그리스의 이소포스에서 유래된 동물 우화(<백조 이야기>), 유머, 익살극, 종교 이야기, 마술 이야기(<마법의 칼>), 반복 이야기, 로망스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한다. 변신과 모험의 모티프에서는 강한 낭만주의 경향을 볼 수 있고, 민중의 생활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는 다채로운 유머와 풍자, 아이러니로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의 무거움을 덜어낸다.
번역자가 다수의 저본을 참조해 넴초바의 대표작으로 손색없는 체코 민담 24편을 선별했다. 원서의 컬러 삽화 11컷을 함께 수록해 텍스트만으로 짐작하기 어려운 체코 색채를 느낄 수 있다. 삽화는 체코 화가 아르투스 샤이너(Artuš Scheiner)의 작품이다.
200자평
한국에 처음 선보이는 체코 민담집이다. 체코의 위대한 작가 보제나 넴초바는 오랜 기간 기록문학이 발전할 수 없었던 체코의 특수한 역사 속에서 명맥을 이어 온 구비문학을 기록하고 재창조했다. 보편적 이야기 속에서 체코의 민속적 색채와 문학적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번역자가 다수의 저본을 참조해 넴초바의 대표작으로 손색없는 체코 민담 24편을 선별했다. 체코 화가 아르투스 샤이너(Artuš Scheiner)의 컬러 삽화 11컷을 함께 수록했다.
지은이
보제나 넴초바(Božena Němcová, 1820∼1862)는 1820년 빈의 귀족 집 하녀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체코 시골 전통을 이어 온 외할머니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정규 교육을 받을 기회는 적었다. 1837년 열일곱 살에 어머니의 유언으로 반강제로 열다섯 살 연상의 요세프 네메츠(Josef Němec)라는 관리와 결혼해 온갖 고생을 겪었다. 남편을 따라 자주 이사하면서 시골 풍습, 민속 의식과 행사를 목격하고 이에 대한 수많은 글을 발표했다. 1842년부터 1845년까지 프라하에 살던 기간에는 유명한 작가, 지식인들과 교제했다. 당시 본격적으로 시작한 문학은 그녀의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지방에서 거주하면서 민담, 설화 등을 수집하였으며 그 지역 의식과 풍습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도마즐리츠카 주변의 묘사(Obrazy z okolí Domažlického)≫는 생생한 묘사로 훗날 비평가들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푸치크(Fučík)는 이를 체코 문학 ‘최초의 근대 산문’이라고 평가했다. 대표작 ≪할머니≫를 비롯해 주요한 작품으로 ≪가을날(Podzímní den)≫과, 상드의 소설 ≪소녀 파데트(Malé Fadetty)≫의 영향을 보여 주는 ≪디바 바라(Divá Bára)≫(1856) 등이 있다.
삶에 지쳐 병들고 약해져 1862년 왕성한 창작이 이루어질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그녀의 묘는 프라하의 고적명승지 비세흐라트의 국립묘지에 있다.
옮긴이
학산(學山) 김규진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러시아어과에 재학 중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시카고대학교 대학원 슬라브어문학과에서 석·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체코 프라하 카렐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카렐대학교 한국학과 교환교수를 거쳐 2014년까지 한국외국어대학교 체코·슬로바키아어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명예교수로 체코문학 번역에 전념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캠퍼스 부총장과 동유럽학대학장을 지냈다. 전국부총장협의회 회장직을 지냈다. 한국동유럽발칸학회 회장, 세계문학비교학회 부회장, 번역원 이사, 대한민국오페라연합회 상임고문 등을 맡았다. 1990년부터 신문 및 잡지 등에 러시아와 동유럽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여행기를 써 왔다. 저서로는 ≪한 권으로 읽는 밀란 쿤데라≫, ≪카렐 차페크 평전≫, ≪일생에 한번은 프라하를 만나라≫, ≪체코현대문학론≫, ≪프라하−매혹적인 유럽의 박물관≫, ≪여행 필수 체코어 회화≫, ≪여행 필수 슬로바키아어 회화≫, ≪러시아·동유럽 문학·예술 기행≫, ≪내 사랑 압사라 앙코르와트 무희의 미소: 캄보디아 사회 문화 인상기≫ 등이 있고, 번역서로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별의 왈츠≫, 미할 아이바스의 ≪제2의 프라하≫, 카렐 차페크의 소설 ≪별똥별≫, ≪첫 번째 주머니 속 이야기≫, ≪두 번째 주머니 속 이야기≫, ≪압솔루트노 공장≫, ≪크라카티트≫, 타탸나 루바쇼의 과학 장편만화 ≪로봇≫(Robot)과 카렐 차페크 원작, 추포바의 과학 희곡만화 ≪R.U.R.≫(로숨 유니버설 로봇), 편역으로 ≪러시아문학 입문≫ 등이 있다. 2006년 체코학을 해외에 소개한 공로로 체코의 ‘그라티아스 아지트(Gratias Agit)’ 상에 이어, 2021년 체코 문학을 번역하고 체코 문화를 해외에 소개한 공로로 아시아 최초로 체코에서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권위 있는 문학상인 ‘이르지 타이너 문학상(The Jiří Theiner Prize)’을 수상했다.
현재 여러 대학, 각종 문화 단체나, 여러 백화점 등 문화 기관에서, ≪러시아, 동유럽 여행≫에 대한 특강을 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 방문한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여행기를 블로그 <김규진 교수의 세계여행기>에 집필 중이고, 자서전 ≪호기심은 창조의 지름길?≫(가칭)을 집필 중이다. 체코 문학 연구와 체코 문학 작품 번역에 매진하고 있다.
차례
야로밀은 어떻게 행운을 잡았나
마법의 칼
용감한 미케시
일곱 마리 까마귀
영리한 공주 이야기
태양의 왕, 달의 왕 그리고 바람의 왕 이야기
슈테른베르크
악마와 카차
말하는 새, 생명수 그리고 세 그루 황금 사과나무 이야기
누가 더 어리석은가?
백조 이야기
이마에 황금별을 단 공주
요자와 야네크 이야기
스몰리체크 이야기
소금과 황금
생강빵집 이야기
황금 언덕
벌 받은 교만함
흰 뱀 이야기
설화석고로 만든 작은 손 조각
바야야 왕자
발리부크
새의 머리와 심장
현명한 금세공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어느 날 엄마가 빵을 굽고 있었다. 엄마는 일곱 아들들에게 조용히 하면 작은 빵 한 덩어리씩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아이들은 잠시 동안 거품처럼 조용했지만, 빵이 빨리 구워지지 않자 참지 못했다. 아이들은 엄마를 성가시게 했고 계속해서 치마를 끌어당기며 언제 빵이 다 되느냐고 보챘다. 엄마는 오랫동안 참고 참다가 결국 화가 나서 소리쳤다.
“모두 까마귀나 되어 버려라.”
엄마가 말을 마치자마자 일곱 아이들은 까마귀로 변해 버렸다. 아이들은 슬픈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다가 날개를 퍼드덕거리며 바람을 일으켰다. 엄마가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아이들은 멀리 날아갔다. 그녀는 머리를 쥐어뜯고 후회하며 소리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이들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일곱 마리 까마귀>
혼지츠카와 마루슈카라는 두 아이를 둔 가난한 아버지가 살았다. 아버지는 숲으로 나무를 하러 다녔기 때문에 아이들을 잘 돌볼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엄마는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엄마를 만들어 주려고 두 번째 결혼을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두 번째 부인은 선량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이들의 아버지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슬펐다. 어느 날 계모가 아이들이 너무 싫은 나머지 남편에게 두 아이들을 집에서 키울 수가 없으니 아이들을 버리자고 제안했다. 아버지가 아이들을 버릴 수는 없다고 했지만 아내는 아버지를 계속 괴롭혔다. 아내가 두려웠던 아버지는 결국 어느 날 아이들에게 아주 슬픈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작은 주전자를 가지고 오너라. 오늘은 나와 함께 숲으로 가서 딸기를 따 오자꾸나.”
아이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생강빵집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