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아랍의 탈무드
인도, 페르시아, 아랍을 거치면서 진화하는 고전
≪칼릴라와 딤나≫는 인도의 설화집 ≪판차탄트라(Pancatantra)≫에서 유래된 것으로 6세기경 페르시아 고대어인 파흘라비어로 번역되었다. 페르시아인들은 인도의 이야기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취향에 맞게 이야기를 변형시키거나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였다. 750년 이븐 알 무카파가 이를 아랍어로 번역하게 되는데, 그는 번역하는 과정에서 페르시아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원문에 얽매이지 않고 아랍·이슬람적 사상과 더불어 자신의 철학과 정치사상, 사회 개혁 의지를 투영시켰다. 덕분에 이 작품은 아랍의 수사학과 페르시아의 과장법, 그리스의 논리, 인도의 지혜를 모두 수용하고 있다. 이븐 알 무카파는 형식보다는 의미 전달에 중점을 두어 쉽고 간략한 문체를 사용했다. 이 작품은 아랍의 많은 시인들과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알 파라비(al-Farabi)나 이븐 시나(Ibn Sina)와 같은 철학자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아랍 풍자문학의 효시이며 산문문학의 표본으로 간주되는 이 작품은 세계의 여러 언어로 완역되거나 발췌, 번안되어 오늘날까지 전 세계의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천일야화≫와 더불어 아랍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지혜의 서’
≪칼릴라와 딤나≫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시도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서문 4장과 본문 1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 4개의 장에서는 저술 동기와 유래, 작품 해설, 그리고 번역자의 전기 등이 실려 있다. 본문 15개 장은 ‘다브샬림’ 왕과 현자 ‘바이다바’ 간의 대화체 형식으로 전개된다. 다브샬림왕이 현자 바이다바에게 특정한 주제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요청하면 현자 바이다바가 그 주제에 맞는 동물 우화를 들려주는 형식이다. 원전은 틀 이야기(frame-story) 형식으로 되어 있어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작은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 작은 이야기가 끝나면 다시 틀 이야기로 돌아가게 되는데 독자들이 읽는 데는 원래의 틀 이야기로 돌아가기 위해 약간의 수고가 필요하다. 이러한 구조가 인도문학의 영향을 받은 아랍문학의 서술적 특징이기는 하나 독자들이 책의 내용을 보다 직접적으로 읽어 내는 데 방해가 된다. 따라서 전체적인 틀 이야기를 생략하고 독자들에게 흥미와 교훈을 가져다줄 수 있는 개별 이야기를 선별하여 직접 소개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짤막하게 부제로 달았다. 모든 이야기에 14~16세기경 아랍 필사본의 삽화를 함께 실었다. 철저한 유일신 신앙에 우상숭배를 엄격히 금지하는 이슬람 문화에서는 인물이나 동물을 그린 그림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례적으로 ≪칼릴라와 딤나≫는 삽화가 포함된 필사본이 여럿 전해지는데, 대중에게 널리 읽히기 위함으로 짐작된다. 이 책의 그림은 영국 옥스퍼드 보들리언 도서관, 독일 바이에른 주립도서관에 디지털 소장된 13~16세기 필사본 중 완성도가 높고 보존 상태가 좋은 그림이 실린 원본에서 골라낸 것이다.
200자평
아랍의 탈무드라 불릴 만한 아랍의 대표적인 산문이자 우화집이다. 네발짐승이나 새의 혀를 빌려 삶의 지혜와 교훈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통치자의 폭정과 만행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칼릴라와 딤나≫의 기원은 인도의 설화집 ≪판차탄트라(Pancatantra)≫다. 페르시아어로 편역된 ≪판차탄트라≫를 750년 이븐 알 무카파가 워문에 얽매이지 않고 당대의 종교 문화적 배경과 자신의 철학을 투영해 아랍어로 옮겼다. ≪천일야화≫와 더불어 아랍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이 책은 원전의 틀 이야기 구조에서 벗어나 개별 이야기 가운데 3분의 1을 선별했고, 16세기경 아랍 필사본의 삽화 30컷을 함께 실었다.
지은이
압둘라 이븐 알 무카파(Abdullah Ibn al-Muqqafa, 724∼759)는 724년 페르시아에서 출생했다. 그의 부친 핫자즈 븐 유시프(Hajjaj bn Yusif)는 우마이야 시대에 세무 관리로 일하다 공금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손에 매를 맞아 ‘알 무카파(손이 오그라든 사람)’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븐 알 무카파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지닌 조롱조의 별명이다. 그는 페르시아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조로아스터교를 믿으며 성장했다. 그 후 바스라로 옮겨 가 웅변과 수사학으로 유명했던 알 아흐탐(al-‘Ahtam) 아랍 가문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왕조 교체와 권력 투쟁으로 인한 혼란의 시기에 권력자의 눈 밖에 나, 조로아스터교 사상을 이슬람에 전파한 이단자로 낙인 찍혀 36세의 나이에 살해된다.
이븐 알 무카파는 작가이며 사상가이자 사회개혁가였다. 폭력으로 정권을 세운 압바스 왕조를 목격한 그는 정치적인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환경에서 통치자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고 충고할 수 있는 우화집 ≪칼릴라와 딤나≫를 번역하는 데 정성을 쏟았다. 정치제도에 대한 비평과 그 개혁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교우들의 서한≫, 훌륭한 도덕과 행동에 관한 명언집 ≪작은 예절≫과 ≪큰 예절≫ 등의 책을 남겼다.
옮긴이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대학원 한아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또 튀니지 국립대학교 아랍어과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명지대 아랍지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아랍문학과 이슬람 여성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아랍문학의 이해≫, ≪아랍문학사≫, ≪아랍인 주하 이야기≫, ≪아시아문학의 이해≫, ≪이슬람 여성의 이해≫ 등이 있으며, ≪한국문학 단편선≫, ≪한국 속담≫ 등을 아랍어로 번역하여 아랍 세계에 소개했다.
차례
토끼와 코끼리 왕
― 약자에게 힘을 자랑하는 자는 그 힘으로 인해 자멸한다.
큰 쥐와 고양이
― 강한 적이 친절하게 굴 때 조심해야 안전하게 살아남는다.
왕과 판자 새
― 지혜로운 사람은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암사자와 자칼
― 다른 이들이 당신에게 당한 일을 참았듯이 당신도 다른 이들에게서 당한 일을 참아 내라.
사자와 자칼과 친구
― 어떠한 상황에서든 가까이 두어야 할 사람이 있다.
여우와 북
― 가장 보잘것없는 것이 소리가 요란하다.
왕의 꿈
― 적이 충고할 때는 반드시 의심하라.
물개와 안카
― 어려울 때는 남에게 도움을 청하라.
노인과 세 아들
― 돈은 많이 버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자와 낙타
― 신의와 배신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우물과 금 세공인과 여행자
― 인간은 뱀보다 호랑이보다 더 배은망덕하다.
왕자의 친구들
― 주어진 숙명을 인내하고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다.
까마귀와 큰 뱀
― 꾀를 부리다가 오히려 제 꾀에 빠진다.
원숭이와 목수
― 남의 일에 섣불리 참견하면 봉변당한다.
세 마리 물고기
― 탈출은 빠른 결단력에서 비롯된다.
수도승과 값비싼 옷
― 모든 악은 우리 마음의 욕심에서 나온다.
새와 원숭이
― 충고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자에게 섣불리 충고하지 마라.
엉터리 약사와 하녀
― 거짓말쟁이는 반드시 끝이 안 좋다.
쥐와 쇠붙이
― 속임수는 먼저 시작하는 자가 더 나쁘다.
비둘기와 올가미
― 협동하면 서로를 구해 줄 수 있다.
매 조련사
― 보지도 않은 것을 거짓 증언하면 처참한 벌이 따른다.
독사와 개구리 왕
― 비천하게 살아남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늑대와 화살
― 어리석은 행동은 탐욕에서 나온다.
처녀 쥐
― 결혼은 끼리끼리 해야 한다.
농부와 벌거벗은 두 아내
― 남을 흉보기 전에 자기 허물부터 살펴라.
수도승과 꿀단지
― 허황된 꿈이 인생을 망친다.
당나귀와 사자
― 얻기는 어려우나 잃는 것은 순식간이다.
수도승과 손님
―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을 하는 자는 어리석다.
백로 이야기
― 남에게 충고하기 전에 자신에게 충고하라.
비둘기 한 쌍
― 사랑하는 사람을 박대하면 후회하게 된다.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자고로 특사란 식견과 지혜, 유연함, 덕망으로 자신의 소명을 수행해야 하거늘, 유연함과 온화함, 신중함, 인내심을 가져야 하오. 부드럽게 대하면 상대방의 가슴을 녹일 것이요, 비수를 꽂으면 상대방의 가슴을 굳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오.
−<토끼와 코끼리 왕> 중
강한 적이 약자를 속이고 친절하게 굴 때 약자는 강자를 조심하는 것이 안전하게 살아남는 법이라오. 지혜로운 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적과 화해를 하고 적에게 호의를 보이고 적을 친절하게 대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을 때는 서둘러 강자를 피해 떠난다오.
빠른 신뢰는 곧 사라지게 마련이오. 지혜로운 자는 화해를 한 적에게 한 약속은 지키지만 적을 완전히 신뢰하진 않소. 따라서 가까이 있는 적에게 안심하지 않는다오.
−<큰 쥐와 고양이> 중
지혜로운 사람은 증오심의 침묵에 속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증오심은 그 동기를 찾지 못하면 장작을 발견하지 못한 숨겨진 불씨와 같사옵니다. 그러다 적절한 구실을 찾으면 그 불길은 훨훨 타오릅니다.
−<왕과 판자 새>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