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케트족은 크라스노야르스크 북부 지방에 거주하는 시베리아 소수 민족이다. 민속학적으로는 유럽인과 몽골의 특성이 공존하는 우랄 민족 계통에 속한다. 러시아 연방에서 독립된 영토를 갖고 있지 못한 열아홉 개 시베리아 원주민 중 하나로, 러시아 민족별 인구조사에 따르면 2002년에는 1494명이, 2010년에는 1219명이 생존하여 민족 자체의 명맥을 유지하기 어려우며 케트어 모국어 사용자 수도 현격하게 줄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2002년을 기준으로 크라스노야르스크 지방에 살고 있는 케트족 중 30%만이 케트어를 사용할 수 있다.
주요 생업은 수렵과 어로인데 사냥을 통해 잡은 포획물은 모피 가공의 대상이 되었다. 17세기경 남부지방에 살았던 케트족 일부는 농사를 지으며 말과 가축을 소유했고 또 철광석을 녹여 철을 생산하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
케트족의 토착 신앙의 근간은 샤머니즘과 물신숭배의 애니미즘이다. 그들은 세계가 신에게 속한 천상 세계, 인간 세계인 지상 세계와 지하 세계로 나뉘며 악령과 천사가 공존한다고 믿었다. 샤머니즘을 신봉하는 민족 특성상 케트족은 오랜 기간 곰을 숭배하여 곰을 직접 부르는 것을 불경하게 여겨 ‘숲의 주인’이라 완곡하게 표현했다. 이들은 곰을 가족 중에 죽은 사람이 환생한 동물로 여기며 설화에서 곰을 인간(주로 고인)과 동일시하는 장면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비록 곰이 식량 조달을 목적으로 한 사냥의 대상이었으나 곰을 죽여도 먼저 제사를 치르고 뼈를 묻어 주는 등 곰을 신성시하는 풍습은 곰 축제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이 책은 러시아어로 된 최초의 ≪케트족 민담집≫(1966)과 2001년에 케트어에서 러시아어로 번역 출간된 ≪케트족 신화, 전설, 민담≫에서 한국 독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작품 19편을 엄선하여 번역했다.
200자평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여러 민족의 역사를 보유하고 있는 의미 있는 곳, 시베리아. 지역의 언어, 문화, 주변 민족과의 관계, 사회법칙, 생활, 정신세계, 전통 등이 녹아 있는 설화. 시베리아 소수민족의 설화를 번역해 사라져 가는 그들의 문화를 역사 속에 남긴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시베리아 설화가 그리스 로마 신화나 북유럽의 설화에 조금은 식상해 있는 독자들에게 멀고 먼 시베리아 오지로 떠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도와주길 기대한다.
옮긴이
홍정현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를 졸업하고 모스크바대학교에서 석사학위(품사적 범주로서 대명사 특성 연구)와 박사학위(현대 러시아어 부정대명사의 텍스트론적 기능)를 받았다.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에서 러시아 여성문학과 미드컬트를 연구했고 청주대 한국문화 연구소에서 북아시아 원형스토리 발굴과 번역 프로젝트 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한국외대, 을지대 등에서 러시아어를 강의하고 있다. 역서로는 ≪러시아 여성의 눈≫(공역), ≪러시아 추리작가 10인 단편선≫(공역)과 ≪북아시아 설화집 6(투바족, 하카스족)≫ 등이 있다.
차례
곰 이야기
예틀의 며느리
발나
실레케
여우
우세시
반그셀
올기트
알바와 호샤담
강 상류에서 온 카이구시
단두큰 이야기
타닌가
쿄글 할머니
울게트
뉴냠
샤신쿠시 이야기
이다트 노인의 딸
카시케트와 예로호트 할아버지 이야기
빌게트
해설
옮긴이에 대해서
책속으로
호샤담은 땅에 있는 모든 악한 정령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녀가 부하 한 명을 인간에게 보내면 그 사람에게는 반드시 불행이 닥쳤다. 그녀가 직접 갈 경우에는 사람이 죽거나 역병으로 사슴이 몰살되거나 짐승이 타이가로 도망치고 강의 물고기가 사라지는 등 그보다 더한 일들이 일어났다.
호샤담은 부하들과 일흔일곱 개의 섬이 있는 큰 강가의 큰 산기슭에서 살고 있었다.
거대한 용사 알바가 태어날 때까지 호샤담은 인간을 괴롭히며 살았다.
알바는 자라서는 느릅나무로 만든 배를 타고 강을 돌아다녔고 물고기를 갈고리로 잡았으며, 강을 건너 순록과 큰사슴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알바는 대체 언제까지 호샤담이 인간을 죽이는 것을 보고만 있을 것인지 생각했다. 그리고 호샤담을 당장 찾아 전쟁을 치러야겠다고 결심했다.
-56∼57쪽